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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

한숨은그만 |2012.09.23 19:35
조회 620 |추천 0

몇일전 엄마와 언니에 대한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글로 썼던 사람입니다.

제가 쓴 글 연결해놓았습니다.

오늘도 역시 글이 깁니다.

 

댓글 써주신분들의 글을 하나하나 읽자니 이럴수도 있겠구나 싶었었습니다.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보았지만 정답을 찾을수가 없으니 답답했습니다.

 

몇일동안 계속되는 언니와 엄마의 전화에 시달리며 밤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예랑이는 예랑이대로 속이 터지고 저는 저대로 맘이 아팠습니다.

 

예랑이는 주 5일근무, 저는 토요일 4시까지 근무하는데 어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점심시간에 퇴근해서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내려가겠다고 말을 해놓았더니 엄마와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랑이는 시댁으로 보내고 저는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마루에 앉아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왔냐며 밥은 먹었냐고 물었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조용조용 돈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아빠가 어찌저찌 해결했다며 어쩔수 없었다고 말했고 저는 말없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끝에 저는 한가지만 묻자고했고 수없이 묻고싶었지만 정말 아닐까봐 하지못했던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엄마 딸 아니가? 엄마는 내가 왜그래 미운데? 언니는? 내한테 왜 이카는데?"

 

엄마는 한숨을 푹 쉬며 "와 내딸이 아니고 니도 내 배아파 낳은 자식이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나는 이해할수없다며 이게 정말 친엄마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냐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엄마는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냐며 미안은하지만 돌이킬수 없는일 아니냐며 돌아 앉으셨습니다.

티끌같던 미움이 해를 거듭하며 태산이되었는데 그 태산같은 미움을 풀어낼길이 없다면서 말입니다.

 

언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판에 글 쓴거 봤다며 언니속에있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처음엔 화가났지만 쓴 글 중엔 거짓이없다는걸 깨닳은 순간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구요..

 

그저 어린시절 할머니와 아빠의 편애때문에 시작된 미웁입니다.

동생만 예뻐하는 할머니와 아빠에 대한 미움이고 저에 대한 시샘입니다.

 

엄마가 달갑지않았던 할머니가 엄마를 빼닮았다며 말주변없고 무뚝뚝한 언니를 싫어했습니다.

언니가 할머니한테 당하면 엄마는 나를 더 구박했고 그런내가 불쌍해 아빠는 저를 감싸주곤했습니다.

저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아빠를 많이 닮아서 애교가 많고 웃음도 많은편입니다.

제 밝고 순한 성격은 할머니와 아빠의 사랑이 큰몫을 했겠지요..

 

엄마는 언니가 불쌍했고 저는 얄미웠던게 시작인데 그 미움이 점점 커졌답니다.

언니는 점점 더 가여웠고 그래서 엄마가 조금 더 사랑해줘야겠다 생각한게 지금의 모습이된거라고..

형부는 저지경인데 예랑이가 잘났으니 언니가 더 가엽다며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엄마는 못줬지만 아빠와 할머니께 사랑 많이 받았으니 서럽다 생각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빠가 친구분들과 막걸리 한잔이 길어지니 모셔와야겠다고 엄마가 서둘러 나가고 언니와 어색하게 앉았습니다. 마음이 여린 언니는 내내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면서 미안하다고했습니다.

 

어찌보면 언니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판에 글을써서 엄마와 언니를 욕먹였으니.. 미안한 마음에 말없이 내내 울었습니다.

 

엄마, 언니와 함께 오랫만에 세여자가 한방에서 잠을잤습니다.

유년시절의 서러웠던 이야기를 하다보니 밤이 어찌나 짧던지요..

 

오늘, 아침일찍 예랑이가 친정집으로 데리러와서 시댁으로 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아빠가 마당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며 예랑이를 불러서 돈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빚내서쓰고 수확이 끝나고 입금이되면 여유가 생길테니 걱정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랑이에게 미안하고 면목없다며 올라갈때 기름값하라고 10만원을 주셨다네요..

 

엄마와 언니, 저는 앞으로 조금씩 응어리를 풀어내며 살자고 인사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한 처음으로 제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시어머니손도 좋지만 엄마손이 낫지" 하시며 어색한듯 무심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예랑이에게도 아직은 이름을 부르지만 식올리고나면 박서방이라고 부르겠다며 지난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숨기지않으셨습니다.

 

시댁으로 가는길에 예랑이는 "밤새 뭔일이 있긴 있었나부네~" 하며 걱정 많이했는데 전과 같은일이 없어서 다행이라며 맘고생 많았다고 저를 토닥여주었습니다.

 

댓글 써주신대로 저희 시부모님은 정말 좋은분들입니다.

 

중학교때부터 뵈서 그런지 친숙하기도하고 그때부터 딸삼고 싶다고 말씀하신게 말이 씨가됐다며 저를 며느리 자리로 흡족해해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친정과 시댁이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있는데 친정 부모님들과도 잘 아시고 어릴때부터 저를 며느리로 달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땐 큰며느리자리를 이야기하셨지만 작은며느리가되네요^^;;

 

입덧과 이러저러하 문제로 밥을 제대로 못먹어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남들은 입덧할때 김치 냄새도 맡기 싫다고 몸서리를 쳤다는데 저는 묵은지가 왜이리 당기는지..

엄마가 묵은지를 잔뜩 싸주셔서 집에오자마자 김치냉장고를 개시했습니다.

 

 

예랑이와 저는 계속 고민했지만 이거다 싶은 결론을 못내려서 머리가 복잡해 투통이 심했었습니다.

예랑이가 결혼을 무르고 싶어도 뱃속 아기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두려웠습니다.

 

집으로 오는내내 예랑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속전속결.. 엉망으로 엉킨 실타래를 조금은 풀어낸것 같아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용서란 미움에게 마음의 방 한칸만 내주면 된다던 유명한 말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결혼식은 10월 21일 출산 예정일은 내년 3월 25일입니다.

 

내님과 시댁, 친정에 잘하고 태어날 아기도 예쁘게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집합니다.

앞으로 속상한 마음을 판에다 하소연 할 일 없도록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내님..

학창시절엔 둘도없는 좋은친구였던.. 군생활땐 선임을 바꿔주며 통화해달라고하는 내맘도 몰라주는 나쁜놈이었을.. 내 오랜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게해준 내님.. 맘고생 많았을 속깊은 내 남자 박유현씨 많이 사랑합니다♡

 

긴 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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