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추석날 대낮 보건소 안에서 국가공무원에게
살인공모 당했습니다!!! (교살 및 폭행)
- 당장 해당 공무원 파면하라!!!
안녕하십니까 .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하지만 도저히 사람으로써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무리 하루가 멀다하고 인면수심의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이렇게 영화보다도 더 잔인한 일을 겪은 제 신분은 승려입니다.
비구니 스님입니다.
속세를 떠나 출가한 스님이 뭐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나 하시겠지만,
저는 얼마 전 추석날 백주 대낮에 경북 안동시 녹전면 보건소 안에서 폭행 당하고, 교살 당할 뻔 하였습니다. 추석이고 대낮이라 행인도 많았지만, 관공서 안에서 그것도 국가 공무원이 주도한 살인 공모에 의해 저는 개죽음을 당할 뻔 했습니다.
저의 사건은 112 신고가 되어 경찰에 접수가 되었지만,
담당 안동경찰서에서는 5일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국민 여러분이 볼 수 있는 사이트에 한 집안의 몰락을 예견하면서도 글을 올리는 것은 제 목숨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저도 사람인지라 정말.. 살고 싶어서...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며 글을 올립니다.
저는 안동 지역에서만 폭행과 살인 미수를 최근 3년 내에 2번이나 있었고,
이번이 3번째입니다. 하지만 전의 두 번의 사건 조사와 판결 선고 결과
부당하다고 생각되고, 억울한 점이 매우 많았으며
사건 조사와 진행이 불투명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이상 지역 경찰서를 믿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국민 여러분들에게 제가 직접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어 봅니다.
녹전면 보건소의 E씨는 저의 계모입니다. 저의 나이는 51세이며 저와 불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새어머니이십니다. 저의 친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는 약 25여년 정도 되며, 돌아가신지 몇 년 되지 않아 제 친부는 재혼을 하셨습니다. 계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며 제가 출가한 것을 아주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구정 즈음 제 친어머니 제사 때 제가 참석하자 “남의 집에 왜 왔냐?” 하였고, 그로 인해 저는 직계가족 및 친족에게 집단 구타 당하였습니다. 그 이후 새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나, 제 연락을 피하였고 만날 방도가 없었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추석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고자 안동에 들렀고, 마침 새어머니께서 녹전면 보건소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화를 하고 싶어 녹전면 보건소를 방문했습니다. 당직 중이던 E씨는 보건소 입구에 나왔고, “대화 좀 하자”는 말에 대답이 없어 5~6번을 되물었고, 갑자기 막 가라면서 제 가슴을 밀치며 때렸습니다.
그러더니 휙 안으로 들어갔고, 저는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아 보건소 안으로 들어가니, 제 친부와 큰 남동생, 막내 남동생 셋이서 보건소에 비치된 자동 안마기에서 안마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의 형제는 5남매이며 저는 장녀입니다.)
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제 친부와 남동생들로부터 여러번 폭행을 당했던 저로써는 이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저승사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런 이들이에게 E씨는 뭐라고 속닥속닥였습니다. 저는 당황했으나, “여자끼리 대화 좀 하자” 하자고 했고,
이에 친부(70代이나,180cm ,80kg이 넘는 거구) 다짜고짜 “가라”, “시끄럽다, 이 년아!” 하면서 제게 다가오며 유방을 움켜쥐었고, 저는 잡히지 않기 위해 손을 내둘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의 양 급소를 움켜쥐며 입구 옆 벽에 저를 밀어붙이고 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숨을 도저히 쉴 수 가 없었고, 발버둥 쳤으나 70kg에 가까운 저는 벽 위로 끌어올려졌습니다. 그런 상황은 E씨와 큰남동생, 막내 남동생은 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큰남동생은 저의 그러한 상황들을 안마기에 앉아서 안마를 받으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막내 남동생은 친부가 폭행하기 전 저의 팔을 마구 비틀며 “이런 미친년, 정신 또라이” 라고 하며 폭언에, 폭행까지 가담했습니다. 그러자 큰남동생은 “괜히 손대지 말라”며 추후 사건에 대비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 아버지를 저지하고 싶었으나, 180cm가 훨씬 넘는 거구의 남자에게 키도 닿지 않고(제 키는 163cm입니다), 힘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누군가가 살아있나 죽었나 흔드는 듯한 느낌에 어슴푸레 눈을 뜨니 친부가 ‘전신자동안마기’에 반쯤 걸터 앉아 저를 살았는지 죽어가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제 발끝은 현관문과 안마기기들 사이의 공간에서 대각선으로 뉘여진 자세 때문에 현관문 바깥에 일부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 보건소의 문은 밀고 당기는 문이였으며, 나무문이었습니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 그림을 첨부합니다.(직접 그린 것이라 미비하지만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올 쯤, 네 명이서 “죽었으면... 목 조른 자국이, 자살하기 위해 목매달은 상처와 비슷하니 자살로 꾸미자” 라는 말을 들었고, 저는 정신이 들자 ‘아! 내가 왜 여기 있지?’ ‘나, 살아야겠다! 신고해야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큰 大로 누워있음을 알고 다리를 추스르려 했습니다. 그 때에 제 발이 현관문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는 제가 목조름을 당하던 위치에서 이동되어 있었습니다. 옷이 쓸려져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제가 쓰러진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으로 이동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죽은 상태였으면 ‘시신 유기’ 였겠죠.
저는 신고하려 했으나 저를 막았으며, 천신만고 끝에 저는 데스크의 전화기에서 9번을 눌러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가려 하자 친부는
“저 년 도망친다! 못가게 막아라!!” 했으며, 동생들은 저를 잡으려 했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서, 정말 친아버지, 친남동생들 손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는 꼴을 면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제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달려 근처 슈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제가 신고를 했을 때는 이미 남동생이 먼저 “ 어떤 여자가 와서 행패를 부린다” 며 신고를 했습니다.
막내 남동생은 제가 갓난아기때부터 업어키운 자식같은 동생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동생이 저에게 이제는 구타와 “씨X 미친년, 정신또라이, 행패 부리는 여자” 라고 합니다. 이것이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제 동생의 현재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약과입니다.
큰남동생은 지방대학교 교수입니다. 말 다했죠?
대한민국 최고 지성인인 교수입니다. 게다가 국가의 굵직한 일을 하였고, 이름만 대고, 조금만 노력하면 모두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웬만한 법조인, 국가 고위 공무원 다 아시는 대단한 분이 되셨습니다.
그런 분에게 2009년 4월, 대학교 교직원 숙소에서 개패듯이 맞아 병원에서 입원치료까지 받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참았고, 집안의 장남이니까. 사회 체면이 있기에 . 꾹 참았습니다.
그런데 부전자전이라고 친아버지가 사람 때리는 것을 여사로 아는 자이기에 자식도 배웠나 봅니다.
저의 아버지 역시 경상북도 지역 내에서 꽤 고위직까지 지내신 국가공무원이셨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들과 아버지의 인맥이 경상도 내에 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2년여 전 갈비뼈가 부러지고, 이가 파절되고, 코뼈가 부러지고, 농기구로 머리를 맞아 지금까지도 머리통이 깨질 것 같은데도 , 고작 가정폭력이라는 미명 아래
제 친부가 사회봉사명령 80시간 밖에 안 받은 이유일까요? ( 이 이야기는 뒷부분에 마저 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왜 갑자기 정신을 잃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저의 환부 사진을 보며 생각해보건데,
아무리 보아도 머리에 난 상처와 목에 난 상처가 단지 타인의 신체로 인한 상처라고 생각이 안됩니다.
목이 조여오고 있는 상황에서 발버둥을 치던 것도 생각이 나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것은 ‘혹시 둔기에 맞은 것이 아닌가?’ 에 대한 의문이 들고, 제가 혼절했기에 의식을 잃은 후 끈과 같은 도구로 교살 시도를 당한 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머리의 상처는 제가 보건소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하더라도 매끄러운 바닥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시면 아실텐데 빗금무늬로 상처가 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티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진을 보시면 여러분도 그러한 생각이 드시리라 생각됩니다. 또 제가 쓰러진 곳이 안마기와 헬스기구, 끈 등이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근처 녹전 파출소에서 경관 두 명이 출동하여 저의 상해 흔적과 현장 사진을 찍어 갔습니다. 사건 발생 몇 십분 전 저는 스마트폰 밧데리가 없어서 지구대에 들러서 충전기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없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출동한 경관님들이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아니, 스님 갑자기 왜 이렇게 되셨나?” 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계모이자 보건소 고위 담당자인 당일 당직자 E씨는 보건소 내부 다른 방에 숨어 있었으며, 경찰이 출동하여 직접 찾아냈습니다. 이게 살인을 공모하고 방조한 국가 공무원의 행태입니다!!
그것도 대낮 관공서 안에서 당직 중에 말입니다.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저는 이것은 가정폭력의 고발의 선에서 넘어서 관공서에서 대낮, 국가 공무원이 살인을 공모했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합니다.!!!
이 4명은 소위 대한민국에서 지도자 계층입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양반인 체, 가족을 매우 위하는 체 하며 집안에 들어서면 야누스처럼 흉기를 휘두르고 사람까지 죽이려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죽을 뻔 했습니다.
지금 그 날 그 상황 이후 바로 119 응급차로 실려와 현재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저는 구토와 속이 미식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습니다. 제가 의식을 잃었을 때 구타를 했는지 허리와 옆구리가 아파 죽겠습니다.
저는 20여년 전 교통사고로 3년 동안 하반신 마비로 병원에 있었고, 6급 장애인입니다. 그것을 뻔히 아는 친아버지가 그대로 밀어트려서 시멘트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했고, 지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습니다. 목 안 쪽에서 부풀어 올라 침 삼킬 때마다 쓰라리고, 메스껍습니다. 쓰고 있던 안경은 금이 갔고, 얼굴에도 상처가 나 있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가 어떻게 날 죽이려 하느냐? 날 때리려 하느냐? 이런 것에 분노해서 단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 친부는, 친부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입니다
지난 2010년 10월 3일 경 안동, 제 어머니의 눈물과 恨과 피땀이 서려 있는 과수 농장에서 저를 농기구인 매기로 쳐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주먹으로 코를 쳐서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었고, 치아가 나가고, 또 그 분의 특기인 여자 유방을 그 큰손으로 시커멓게 멍이 들 정도로 쥐어짰습니다. 또 입에 담기도 어렵지만, 제 음부를 잡고 흔들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도망치지 못하도록 생지옥의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를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여성의로서의 지독한 수치심을 안겨 주면서...
저의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도 그러했듯이...
그 당시 이러한 사실을 경찰 조사에서 여러 차례 진술했으나, 경찰에서는 고의 누락시켰고, 친부의 폭행으로 피범벅이 된 옷을 현장 증거로 채택해주길 원했으나 증거로 채택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이번 추석에 살인 미수에 그치는 강력 범죄를 당했으나, 지구대에서 안동경찰서로 넘어간지 5일이 지나감에도 경찰서 측에서 한 통화의 전화도 없고.
또한!! 현장에서는 “스님, 스님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하셨던 경찰 역시 통합된 도산 파출소로 전화해 사건 진행 상황 및 추가 진술할 것이 있어서 전화하자 “사법 당국이 알아서 할테니 치료나 우선 받아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금 112에 신고하여 ‘그 사법 당국’으로부터 받은 조치의 ‘모~두’입니다.
피해자의 피묻은 옷을 피해자가 직접 주었는데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경찰. 과연 깨끗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범죄의 증거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인데, 고작 ‘사회봉사명령 80시간’ 판결 선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다 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2012년 초 구정 즈음 친어머니 제삿날, 저는 현재 친부가 거주하고 있는 안동 시내 아파트 내부에서 남동생과 일부 친족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아파트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집안에는 구정과 제사 때문에 약 20여명이 넘는 친척들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조카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저를 도와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경찰도 출동했으나, 경찰서 조사 단계에서 모두 ‘무혐의’로 풀려나왔습니다.
목격자도 있는데, 무혐의랍니다.
저는 그럼 도대체 누구에게 맞은 겁니까?
귀신에게 맞았습니까??
이것이 안동이라는 지방의 경찰 조사 행태인 모양입니다. 가족 내 일이라고 쉬쉬, 유야무야.. 저는 더 이상 지역 경찰서를 믿을 수 없습니다.
또 올해 중순 제가 어머니 산소 주변의 나무를 좀 정리했는데, 그것을 친부가 고소했습니다. ‘사유재산침해’로.
하...참.
제사 한 번 지내지 않고, 장남 티내기 위해서인지 어머니 영정 사진만 달랑 모셔간 장남이
너~무 산소를 잘 돌보아서.
산소가 주변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변 정리 좀 했는데,
죽은 부인의 묘소를
장녀가 정리한 게 고소 사건으로 성립이나 됩니까?
저는 안동 경찰서의 이상한 행태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저의 폭행 사건 때에는 정말 길고 길었던 수사가
제가 고소 당한 사건 때에는 초스피드로 진행이 되었고,
검찰에 넘어가서 결국
검찰조정위원회에까지 두 부녀가 회부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조정위원들은 조정해 주지 못하셨고,
친부는 그냥 자리를 떴습니다.
그 이후 검찰에서도 조정의 의지가 없었고, 단 한 번의 연락도 더 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저의 부녀는 2010년 10월 폭행 사건으로 ‘안동 역사상 친족 형사 사건으로 친부가 형을 받은 최초의 부녀’ 였습니다.
저는 2010년의 사건으로 인해 몇 천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모두 제가 부담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도 되지 않았습니다.
후유증으로 인해 승려로서의 구실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아버지로서의 미련이 남아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좋게 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향후를 생각해서도, 혹시나 해서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돈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답이 없었습니다.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자기 변명만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이번에도 저에게 다가오며 가슴에 손을 대려 했을 때, 때리려고 했을 때
“ 또!! 또!! 만질려고 하시냐? 또 날 죽이려 하시냐?” 며 소리쳤을 때
그 분은 충분히 폭력을 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많이 맞고,
너무 많이 참았고,
너무 많이 억울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자궁암에 걸려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제가 어머니의 썩어져 가는 산 송장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누런 고름이 아홉 구멍에서 흘러져 나오는데도
그렇게라도...
내 어머니가 살아만 있었으면... 단 하루라도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남매에게 헌신적이었고, 집안을 일으킨.. 머슴같이 일만 하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는.. 정말
다른 식구에게는 소중한 어머니가 아니었나봅니다...
저는 외동딸이었을까요?...
돌아가신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죽음에 대해 애통해 하는 사람이
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스스로 삶에 대한 의지를 놓으신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임종을 맞아 가시며 제게, " 너희 아버지한테 맞아 죽으나 이렇게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다..." 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저녁, 공무원이셨던 친부가 돌아오는 저녁 6시는 제게
죽음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그 시간만 되면 심장이 이유도 없이 터질 것 같이 뛰었습니다
365일 중에 360일을 술에 떡이 되어 들어와서는
집안 살림을 다 부수고,
그 때 마다 저희 5남매는 집안 곳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요즘의 학대받는 개들보다 더하게 갖가지 도구들로 정말 개같이 맞았습니다.
옛날 문고리는 동그란 고리에 숟가락을 꽂으면 절대 열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꽂는 동시에 어머니의 비명은 시작되었고,
문밖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싶었던 맏딸인 저는, 힘이 없어...
어머니의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를 눈물과 함께 동생들의 귀를 막으며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바탕 다 때리고 부수고 나면, 술에 취해 곯아 떨어져 있고
어머니가 나오면 온몸이 시커멓게 멍에..
정말 세상의 어떤 감정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몰골로 울면서 저를 봅니다.
그래도 제가 맏딸이라고.. 저를 안고 우셨습니다.
저희 집은 그 때 당시 어려워 7-8명이 한 방에 잤습니다.
첫 닭이 우는 어스푸름한 새벽에 이상한 낌새가 있어 실눈을 떠보면
아버지가 어머니께 성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미친 듯이
때렸던 부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아직도 혁띠로 맞아 어머니 몸에 뱀이 감겨져 있는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동네에서는 그렇게 좋은 사람 세상에 없다.. 하신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자궁암에 걸린 이유는 이 사건이 만천하에 알려져 공공연히 되면
그 때
또 진실을 폭로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전, 저승길을 코앞에 두신지 아시면서도
오남매 먹을 된장 담그신다고 옥상에서 내려오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의 복수로 가득 찬 배를 그 큰 주먹으로,
저의 코뼈를 치신 그 주먹으로 ... 쳤습니다.
어머니의 복수는 터졌고,
그 광경을 저는 보았습니다. 막내 여동생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는
지금까지도 ..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아 괴로운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묘에 추석날에도 갔습니다.
아직까지도 묘에 풀이 나지 않습니다..........
.
.
.
.
이십오년이 훨씬 넘었는데 풀이 안 납니다.
아마도 그 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를 살려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양반이 도대체 무엇인지
농기구를 흉기로 설치는 사람이 과연 이 시대에도,
그 옛날 어머니를 때릴 때에도 양반이라서 여자를 학대했는지.
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머니를 대신해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단지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오남매 중 저 빼고 모두 대한민국에서 중산층 이상
먹고 살만한, 일부는 누군가의 지도자인 계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 때 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폭력은 진실을 잠시 은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폭력을 썼다는 사실 조차 은폐할 수 있는
힘조차도 없다』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도 온갖 지연, 학연, 혈연을 동원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폭력을 쓰더라도 그 fact를 절대, 영원히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기에 -
저와 같이 힘없고, 빽없고, 못배운 사람도 진실하게 살면
언젠가 그것을 밝힐 수 있을 것임을... 도와 달라고 이렇게 마지막으로
절실한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비록 많이 길고, 또 두서없는 글이지만
많이 추천해 주시고, 많이 퍼날라 주셔서 널리 알려주세요.
저는 네 바퀴 수레의 두 바퀴가 없는 듯 ..
힘도 없고 이 세상에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외수레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두렵고 위태위태 합니다.
병원으로 누군가 잠입해 날 죽이진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루 빨리 조속히 그 사람들이 죄의 대가를 치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글을 통해 가족을 잃어버릴 것이란 두려움과 실오라기 같은 화합의
기대감에
이 때 까지 참고 또 참고, 또 인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통하여 절실히 알았습니다.
아
.
.
.
.
.
이 사람들은 이미, 나를 가족의 '가' 字로도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저도 살기 위해 이렇게 방편을 취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현재 제 상태를 사진으로 첨부합니다.
끝으로 경북 안동시 녹전면 보건지소 고위직 E씨 (추석 당일 당직자)는
국가 공무원으로써
단 1초의 자격도 없으며 인면수심의 살인 공모자 이므로 즉각 파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