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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피어나 "노래가 '여자'가 되어 다가오다."

탕이 |2012.10.06 01:17
조회 3,100 |추천 6

노래가 '여자'가 되어 다가오다.

 

팝이나 팝을 모방한 대중음악들의 주 특징은 주제가 매우 뚜렷하다는 것이다. 주로 한 가지 주제 그 중에서도 한 가지 감정을, 많아야 두세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쳤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주는 아티스트 역시 곡 안에서의 특징은 명확했다. 섹시함이라면 섹시함, 소녀스러움이라면 소녀스러움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집약적인 컨셉이 그런 단순한 음악을 소화하는데 훨씬 용이했고 생산자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그 안에서 파격에서 파격으로 자극에서 더 강한 자극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기존의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사랑에 빠진 여자"를 화자로 한 곡은 많았다. 그러나 그 주제의 화자는 "사랑에 빠진 당찬 여자"거나 "사랑에 빠졌으나 수줍음을 타는 여자"였지 "사랑에 빠진 여자" 그 자체로 보긴 힘들었다. 실제로 사랑을 하는 여자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 속 화자들의 성격은 일관되었고 그 가사들이나 곡 구성 또한 한 가지 토픽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인의 노래를 들어보자. 기타와 함께 들어가기 시작하는 초반부 “나 말이야 ~ 단 한 번의 kiss” 부분은

가사만큼이나 솔직하고 당찬 여성이 느껴진다. 작사가가 의도한 것이 성적인 것이었든 무엇이었든 간에 화자 자신을 꽃으로 비유하면서도 도발적으로 던지는 솔직한 메세지 속에 담겨진 함의를 파악하고 싶어지는 것을 느끼다보면 “단 한번의 kiss” 뒤에 붙는 작은 효과음을 들을 수 있다. 이전까지 도발적이었던 그녀의 kiss는 기존의 대중음악대로라면 길고 진한 키스여야 익숙하다. 그러나 그녀의 키스는 짧고 가벼웠다. 뒷부분에서 이어지게 될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미리 확인 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speak up”의 반복 브릿지는 당찬 이전의 그녀와 달리 무언가 확신에 차지 못한, 약한 모습이다. 마치 연인의 오리무중한 마음을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 앓고 있는 연애에 능하지 못한 소녀가 느껴지는 것만 같으면서 반복되는 “Speak up”은 자신에게 마음을 더 크게 표현해 달라는 듯한 화자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 뒤에 느껴지는 것은 이전의 섹시한 모습의 화자는 온데간데없이 5월의 봄바람이 부는 한강공원을 연인과 함께 장난치며 가볍게 뛰어가는 연애 초기의 20대이다. 듣기만 해도 상쾌하지며 흥겨워지는 느낌인데 이 전의 그녀와 이 부분의 소녀가 같은 인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괴리감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여자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밝은 햇빛 아래 그녀는 풋풋하고 발랄하고 해맑으면서도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가끔은 도발적이고 솔직하기도 하며 집에선 휴대폰을 붙잡고 연인의 마음을 파악하기 위해 전전긍긍 앓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사랑에 빠진 여자’를 잘 표현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하지 않았는가. 2절 역시 이러한 구성을 따른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당차고 솔직하다가도 ‘좋을까 말까’하며 속을 앓고. 여리다가도 연인과 함께하는 순간의 그녀는 행복에 차있으며 발랄하다. 더 듣다 보면 “네게 잡힌 내 손 예뻐. 널 부를 땐 입술이 예뻐” 라고 표현한다. 모두 연인의 존재가 자신 스스로를 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잠시 김춘수 시인의 ‘꽃’을 감상하고 오자.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에서의 아름다운 ‘꽃’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존재인 것처럼 이 노래의 가사 역시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미’를 얻게 된다.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이 평소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불만족하고 있다가도 자신의 외모를 칭찬해주는 연인의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지면서 거울을 다시 한 번 몰래 바라보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연인이 잡고 있는 손이 예쁘다고 하는 것은 사랑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인 것이고 거울을 보며 말하지 않는 이상 화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연인을 부르는 입술이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연인에게 사랑을 주는 스스로의 모습이 느껴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예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연인에게 “난 다시 (꽃으로) 피어나”라고 말하고 자신에게만 키스할 것을 짧게 말하며 곡을 마친다.

 

 

이민수 작곡가가 작곡한 ‘좋은 날’ 과 ‘너랑 나’가 이 곡의 후렴부에서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유의 소녀성 역시 “사랑에 빠진 여자”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유의 소녀성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전부는 아니다. 노래 실력에 관해선 누가 어떻다 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필자도 아이유의 가창력을 결코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노래의 가인이 소화해낸 “사랑에 빠진 여자의 다양한 모습”을 밝은 소녀 이미지의 아이유가 쉽게 소화하기엔 경험적으로나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러한 모습을 나이가 많지도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으면서 매력적인 외모와 함께 실력 또한 출중한 가인이 소화함으로써 ‘피어나’라는 환상적인 곡이 탄생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추천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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