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2년 1월 3일에 군에 입대해서 8주간 훈련을 마치고
3월 5일에 25사단 72연대 3대대 11중대 GOP(최전방)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다른 이등병과는 다르게 2주대기도 없이 작전(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100일 휴가를 6월 14일~ 6월 18일까지 당일 저녁에 부대복귀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대에서는 소초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사람이 없다고 근무를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명받은 근무는 00:00~04:00시까지 상황병(일병)과 불침번(본인)2명이 근무였습니다.
저는 23:00시에 자다가 일어나서 불침번 근무를 하기 위해서 복장을 갖추고
총과 탄약을 빼고서 23:30분경 군장검사대(총의 안전을 검사하고 탄약을 불출 하는 곳)로
가는 도중에 노00 병장(가해자)이 짜증스런 말투로
“넌 군장검사 안하니까 안에 들어가 있어.” 라고 말을 하기에
전 아무 말 없이 상황실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23:45분경 동초근무자였던 노00 병장과 한 이등병이 상황실로 들어왔습니다.
소초장이 관리해야할 탄약박스 열쇠를 열쇠보관함에 대신 걸어두기 위해서 노병장은
상황실에 들어온것입니다.
열쇠를 걸고 저를 보더니“이등병이 휴가복귀하자마자 졸고있냐?”하고 목덜미를 세차례
가격했고 제 오른쪽에 앉아있던 상황병(일병)과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해자 노병장의 총구가 제 가슴을 향하고 있는것을 나는 보았고
저는 차마 말년병장인 노00에게 총구좀 치워달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에 앉은의자를 뒤로빼서 총구를 살짝피했습니다.
잠시 후 귀를 찢는 총음이 들렸고 저는 놀라서 오른쪽을 돌아보는 순간 총음이
다시 한번 들렸습니다. 두 차례의 사격이 있었던거죠[총4발 발사되었고 총상은 6군데]
저는 제가 총을 맞았는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잠시후 제 가슴과 왼쪽 팔, 왼쪽다리를 따뜻하게 적시는 느낌을 받았고
저는 이대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군 간부를 통해서 구급차를 타고 양주병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수도병원에서는 저를 한시간 동안 방치하면서 입에다 거즈를 물려주고는
진통제 놔주는 것 그것 빼고는 아무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도 전 지혈이 잘 되지않아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여기서 수술이 안되면 다른병원으로 옮겨야 하지 않냐고 말을 하니까
“현실이 이래요..”
“아버님 혹시 아시는 개인병원 있으세요?”하며 여유롭게 대처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때서 저를 옮길 병원을 알아봤습니다.
모든 병원에서 저를 거부했고 몇분 뒤에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 응급실에서
데려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아주대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병원측에선 지금 수술할 사람이 없으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침 7시경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급히 응급실로 옮겨져 수술에 들어갔고
오후 1시반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났다고 합니다.
수술을 하고 5일뒤에 깨어난 저는 산소호흡기를 끼고“응급집중치료실”에 누워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뒤에 병동으로 옮겨졌고 제 주치의에 이국종 교수님은
“저승사자 앞에 있는 너를 내가 끄집어 왔으니 큰일하면서 살아라” 라고 말씀하셧습니다. 석해균 선장이 총을 맞아 죽어가고 있을때 수술해서 살렸던 그 이국종 교수입니다.
또 한사람의 목숨을 구한거죠...
그렇게 지금까지 저는 5번의 수술을 했고
왼쪽팔꿈치가 없어진 제 왼팔은 골반에 있는 생뼈를 잘라서 붙이는 수술을 했습니다
지금 제 왼팔엔 아직도 철심이 세줄이나 박혀있습니다.
정신과주치의 소견서로는
‘상기 환자는 2012년 6월 18일 gun-shot injury 후 반복적으로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거나 사건에 연관된 악몽을 꾸고 있으며 사건 연관 회피 증상과 과도하게 예민해져있는 과각성 상태를 보여 2012년 7월부터 정신과 협진되어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하에 약물치료 중입니다. 환자 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우울감, 수면장애, 불안감 호소하고 있으며 현재는 중증도 이상의 PTSD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 됩니다. 환자 향후 4개월 가량은 집중적인 정신과 약물치료와 면담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며 치료기간은 경과에 따라 연장될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저 있습니다.
군에서는 가해자 노00 병장을 의무반으로 보내서 별도 격리조치 하고 전역이 한달가량
남았는데도 헌병대에 보내지 않고 의무반에서 생활하다가 만기전역을 했고
헌병대에서는 피해자 조사도 없이 가해자 말만듣고 영장청구 그리고 기각.그 다음 피해자
조사해서 민간법정으로 넘겨버린 사고입니다.
일베에 제 친구가 올린글에는 영창을 갔다고 했는데 영창도 않갔습니다.
여러분...
가해자 노00은 현재 민간인으로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 측에서 저희에겐 6월 사고당시 간병인비 쓰라고 200만원을 보냈는데 보내기전에
어머니께 전화해서 돈이 없다고 삭감해달라고 했다고 한것과, 9월달에 아버지에게 찾아와
제 안부를 묻기도 전에 돈이 없어서 공탁을 걸어야 되는데 차라리 공탁금으로 합의서를
써주는게 어떻냐고? 묻는 반 협박식의 이야기, 이 두 번의 연락외에는 병문안이나 안부전화
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발사고라고 주장하는데 왜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번도 하지않고 있는걸까요?
그리고 헌병대에서 조사를 할때
제가 말도 못하고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였는데 가해자 진술만 듣고 피해자 진술없이
가해자 조사내용으로 사건을 기각시켰다고 합니다.
기각이 한번 되고 나서 저한테 헌병대에서 진술을 받으러 왔는데 그때 당시도
저는 밥도 못먹고 물만 먹을수있는 상황이였는데 와서 제게 질문 몆마디 하고
사고당시 상황만 읽으면서 말도못한 나에게 맞아요? 맞아요? 하는식 이였습니다.
형식적으로 조사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식적인 조사조차 두 번째 기각을 시킬땐 반영조차 되지않았다고 합니다.
정말 억울하죠.
이 사건은 고의성이 돋보입니다. 가해자 노병장의 총은 K-3입니다.
최근에 나온 총이라는데 링크탄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총입니다.
GOP에서 군장검사 경험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군장검사를 할 때 실탄이 있는 탄창을 끼우는건 맞지만
약실(장전하면 총알이 들어가는 곳 : 방아쇠를 당기면 사격됨)을 확인해서
총알이 들어가지 않았나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안전버튼이 있는데 사격/안전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군장검사대에선 장전을 하지 않고, 안전버튼을 안전에 놓았다라는 것을 같은 동초근무자에게 직접 만지게 하는걸로 총의 안전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군장검사가 끝나고 상황실에 들어온 가해자 노00 병장은 왜 장전을 했고,
왜 안전버튼을 사격에 놓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왜? 방아쇠를 당겼을까요?
가해자 노00은 격발이 방아쇄가 옷에 걸려서 오발사고라고 조사에서 이야기 합니다.
정말 우연히 옷에 걸려서 총이 장전되고 안전버튼이 사격으로 눌러지고
방아쇠까지 당기는 것이 오발사고라고 주장하는 가해자 노00 이는
너무 증오스럽고 화가 납니다. 이게 단순 오발이다, 군대간부들이나 윗선들 몸조심하려고
단순사고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갔습니다.
말년병장이니 괜히 사건 떠맡아서 시끄럽지 않게 전역 시킨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왼쪽 팔꿈치에 벼락치는 듯한 진통이 심합니다. 손가락은 엄지, 검지를 뺀 3개의 손가락에 감각도 없습니다. 오늘은 신경과에서 왼쪽팔을 검사했는데 완전손상된 신경과 불완전손상된 신경이 동시에 있고, 완전한회복은 불가능할것같다 얘기를 하십니다.. 팔 안에는 3개의 철심이 뼈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단순 오발 사고입니까? 정말 너무 억울하고 화가나서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적이 한두번도 아니였습니다.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글을 올립니다.
군법원이 아니지만 서울북부지검에서도 잘 조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도와주세요..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