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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

화상땅콩 |2012.10.26 10:41
조회 2,622 |추천 15

 

 

안녕하세요 판 여러분.

 

 

 

저는 이제 곧 문예창작과, 혹은 시나리오 제작학과에 들어가게 될 예비 대학생입니다!

대학에 붙은 지 얼마 안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붙었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제일 많이 저를 축하해 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이 지금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람 자신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편지를 꼭 그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판에는 한 세번정도 글을 써봤지만 이렇게 진지한 글은 처음 써보기 때문에 많이 떨리네요.

 

 

오늘 저는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될 지는 아직 모릅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이 글을 봐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 없는 사이입니다.

제가 편지를 전달하는 대상은 저희 가족 중 한사람입니다. :)

제가 태어나고, 그리고 태어나고 나서부터 저를 길러 준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전달할 수 없고.. 또 그러기엔 저희 둘이 너무 먼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혹여나 언젠가, 이 글을 그 사람이 보게된다면, 아니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씁니다.

 

 

 

 

 

 

 

 

 

 

 

To. 사랑하는 당신에게.

 

 첫 바람이 불 때, 이야기 했었지?

 

혜정아 사랑해, 사랑해..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되었고, 당신 역시 더 이상 젊은 청년이 아니게 되었어.

 

 

 이 글을 당신이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을 지 몰라. 우리가 공유해왔던 수많은 추억,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 당신과 나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겪었을 추억들..

 

 어느 날 앨범을 열었을 때, 거기에 있던 당신은 너무 젊고 나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이렇게 내가 성인이 되었고 당신 역시 늙어감으로써 잊어버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싶어.

 

 우리는 질긴 끈으로 묶여있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범람할 수 없는 댐과 같은.. 질기고도 그리고 또 한없이 나약한 그런 끈으로 묶여있어. 그것이 혈연관계란 것을,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가 갈라섰을 때 제일 먼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그런 끈이란것을 당신과 나, 우리 둘 다 알고있지.

 

 때로는 가족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짙은 어둠에서 구해 줄 것이라는것도 당신과 나는 역시 알고 있을거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기엔 너무나도 먼 길을 와버렸지.

 

 내가 왜 당신에게 소리를 질렀는지 당신은 모를거야.

 

 당신이 나를 20년동안 알아왔고, 나 역시 당신을 20년동안 알아왔기 때문에, 혹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빈틈에 당신이 있을 수 있고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빈틈에 내가 있을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게모르게 가까웠던거야. 이모나 할머니, 엄마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항상 그랬지.

 

 ' 너희는 정말, 가깝고 친한 사이구나. 어쩜- 혜정이랑 균락이는 엄마보다 더 친할까? '

 

 그게 우리였고, 나였고, 당신이었지. 나는 당신이 그렇게 축 쳐진 모습을 보기 싫었어.

 

 내 기억속 당신은 항상 위풍당당한 남자였지. 함께 놀았던 독립문공원 한가운데서도, 내가 포카리스웨트를 사서 뛰어가면 그 큰 어깨로 늘 받아줬었잖아? 내 기억속에서 당신은 항상 커다란 존재였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당신과 내가 틀어지게 된 것은.

 

 당신에게 소리를 지름으로써 이제 더 이상 우리 사이는 회복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 미안해서 늘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조차 사라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늦은 가을이 되었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해야겠다고, 늘 그렇게 상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는 힘든 사이잖아? 그렇지?.. 나는 늘 고대하고 있어. 당신이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또 나 역시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서, 우리가 그 때 걸었던 고수부지의 둑 위를 이제는 다 큰 채로, 이제는 조금 늙은 채로, 그렇게 그 때를 떠올리면서 당신과 나 함께 손을 잡고 그곳을 걸을 수 있기를.

 
 어제 사진첩을 열어봤어.

 

 당신에게는 아버지였고, 내게는 할아버지였던 늙었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은색 머리칼을 가진 그 분의 사진을 보았지.

 

 그 분이 돌아가신지 3년 하고도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동안 나는 그분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있었나봐. 사진을 손가락으로 훑는데도 아직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있으실 것 같고,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동일하이마트 앞에서 허리를 잠시 쭉 펴고 미소짓고 계실 것 같지.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의 얼굴이 너무나도 생소한거야. 마치 나와 할아버지가 삼년이 아니고 더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던 것 처럼.

 

 있잖아, 그래 당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참 많이 울었지. 잃어버린 한자책을 떠올리고, 그분이 아끼셨던 초록색 만년필을 떠올리며 영정 사진을 손으로 쓸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지. 그 때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았지만, 내 손을 잡으면서 다음 생에 또 만날 수 있다고 위로해준건 다름아닌 당신이었잖아.

 

 우리는 왜 몰랐을까?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은, 초록색 만년필도 아니고, 오래된 한자책도 아니고, 당신과 나와의 사진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란것을.. 할아버지가 남겨주신건, 그런 쓸데없는 것이 아닌, 본인의 희생으로 한 자리에 모인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우리는 왜 몰랐을까? 그리고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을까?

 

 만약 내가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그곳에 자리한 젊은날의 당신과 어린날의 내가 없었다면, 어린 나를 안고 미소짓는 할아버지가 그곳에 없었다면, 그리고 우리엄마와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미소짓는 당신과, 엄마가 없었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랬을까?

 

 나는 오늘 당신에게 전화를 할 거야. 그리고 사과를 하겠지.

 

 어쩌면 나는, 전화를 안 할 수도 있어. 나를 꾸짖는 당신이 무서워서, 혹은 절망해있을 당신이 두려워서, 또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당신이 너무나도 싫어서.

 

 하지만 나는 노력할거야. 당신이 할아버지처럼 재가되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직 건재하신 할머니가 끝내 우리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기 전에, 혹은 지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게 전화하기 전에 나는 바로 그 전에 먼저 전화할게. 약속할게.

 

 잊지말자 우리. 그 어느때라도, 사이가 나쁘더라도,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라도, 안보이는곳에서 안들리는곳에서 서로 험담하고 헐뜯더라도, 나와 당신, 그리고 당신과 우리는 지독하고도 질긴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잊지말자.

 

 언젠가, 진짜로 손을 잡고, 정말 좋아했던 포카리스웨트를 하나씩 들고 당신과 내가 고수부지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도록.

 


ps. 참! 나 대학 합격했어.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참 좋아하잖아? 내가 쓴 글을 진지하게 읽어 준 사람도 당신뿐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떠올렸어.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당신이 꼭 축하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사랑하는 조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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