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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판 빠알갛고 노오란 좀비들 산업화 프로젝트

ㅁㅁ |2012.10.28 22:48
조회 888 |추천 3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혈서 조작행태

 

민족문제 연구소의 그간 주장해왔던 것은 다음과 같다.- 자꾸 말을 바꾼다 최근에는 또 말을 바꿈

 

1. 만주일보에 1939년 박통이 일왕에게 혈서맹세(일본육사입학을 위해) 기사가 실렸다고 5년 넘게 사기쳐왔다

2. 더구나 그 혈서내용은 "盡忠報國 滅私奉公"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놈들이 아래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조작이 오히려 드러난다

 

 




 

드디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1939년 3월 31일자 ‘민주신문’ 기사의 사본을 공개했을 때 지난 수년간의 "盡忠報國 滅私奉公" 혈서설은 조작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1. 과연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그 원문 기사 어느곳에 "盡忠報國 滅私奉公"가 있는가? 
눈씻고 동영상을 봐도 없다...

오히려... "一死以 テ御奉公"(아래 설명) 만 보이지 않는가?

 

참고)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 :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
일사에 어봉공"(一死以 テ御奉公) : 입학시켜 주면 좋은 생도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힌 말

만약 그 시대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면 친일이었는가? 

 

 

2. 그간 민족문제연구소는 1908년 폐간된 만주일보에 1939년 박통이 혈서맹세했다고 5년간 주장해왔는데...그 연도가 안 맞는다는 말이 .. 그간에 있으니까... 위의 놈이...슬그머니 만주일보에서 만주신문으로 말을 바꾸는 것 잘 들어보라.
(증거동영상 보시오)

 

2. 연대가 맞지 않는다. 박정희의 만주국 군관학교 진학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940년의 일이다. 
만약 박정희가 혈서를 썼고, 민족문제연구소 주장대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면 만주로 가기 전에 남로당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박정희가 귀국하자마자 남로당이 VIP 특별대우를 하며 박정희를 추종하였겠는가? 

박정희가 아직 만주에 있었을 때도 광복군이 달려와 그를 광복군 중대장으로 영입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등소평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국 최고 영웅으로 추대하였을 리 있겠는가?

3.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지원서를 올렸다?

박정희의 지원서가 일본 천황에게로 배달되었다는 종전의 주장과 달리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치안부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의 하급 계원에게로 그 지원서가 배달되었다는 것이다.

4. 더구나 혈서 사진도없고

5. 혈서 목격자도 없다,

6. 만주국군은 그 누구도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경성과 평양 훈련소에 입소한 자들(예:신상묵)이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조작증거정리

 

 

1. 신문 원본이 없고 
2. 조작된 복사본 한장만 딸랑있다

3. 날짜가 다르다 
박정희대통령이 1939년 3월29일에 혈서를 썼다고 주장함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합격한 군관학교는 1939년 2월 24일날 합격자 발표를 이미 함

4. 이미 폐간된 신문이다.






















 





세계 여러나라 학자들,지도자,지식인들은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칭송하고 찬양하는데


정작 한국에선 박정희대통령 역사와 업적을 난도질하고 욕만하기 바쁘네...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것을 모른다.


많은 수의 좌성향 국민들은 그저 감성과 선동에 빠져


뭐가 진짜 자신을 위해서 희생했던 대통령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추천수3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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