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
미술. 여러분은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난해하
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작가란 작품을 제작한 이후에는 작품이 작가의 모든 것
을 말해주는 것이니 감상과 해석에 따라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되니까 난해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
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미술품과 작가를 접할 때, 책이나 전시 도록 혹은 미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를 통해서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때 마다 꼭 작가의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서 작가
를 쉽게 기억하기도 하고 특징으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정한 수식어로 표현된 작가는
계속 누군가의 입과 글을 통해서 전달되고 고정되어 버립니다. 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에바 헤세는 왜 '비운의 여성 작가'가 됐을까?>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중에 에바 헤세(Eva Hess, 1936-1970)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가는 보통 미술
사의 책 속에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미술사조에 속해 있습니다. 포스트 미니멀리즘이란 사조는 로버트
핀쿠스-위튼(Robert pincus-witten)이라는 미술사가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이 미술사가는 헤세가 어린
시절 나치의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도피한 점, 어머니가 일찍 자살하고 조각가인 톰 도일(Tom doyle)과 결
혼을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 삶으로 이혼했다는 점, 또한 뇌종양으로 일찍 작고했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 작
가와 작품을 해석하여 ‘비운의 여성 작가’라는 뿌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이 연구생들이나 대중
들에게 계속 되풀이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술사가가 당연히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하시겠죠? 물론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
고 작품을 해석할 때는 주관성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주관성이 불가피함에도 삶 중에
서 ‘비운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품을 해석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사를 기술
하는 방법 중에 정신분석학적 방법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정신과 심리 상태 등을 분석하여 작품의
표면에 드러낸 것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헤세가 평면의 2차원
에 선, 코드, 줄 등을 붙여서 3차원의 공간으로 돌출하는 작품을 했을 때, 어린 시절 나치의 탄압을 받고 강
제수용소 생활을 했을 때 생긴 트라우마가 독일에 돌아왔을 때 (독일에 가게 된 이유는 남편이자 조각가인
톰 도일이 독일의 미술 컬렉터인 아른하르트 샤이트(Arnhard Scheidt)의 후원을 받아 폐공장에서 작업 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억압된 것이 분출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변화가 나타난다고 해석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한 가지 해석일 수는 있지만 저는 헤세의 무의식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이 작품에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입니다. 또한, 무의식중에 억압된 것은 좀처럼 의식의 영역으로 나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식의 영역
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억압된 것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작가'였을 가능성>
그래서 저는 왜 헤세의 작품이 2차원의 회화에서 3차원의 조각으로 변형되었는지 찾아보고 생각해 보았습
니다. 헤세는 예일 대학교에서 요셉 알버스(Josep Albers)라는 교수에게 그림을 배웠고 선생님은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그림을 가르쳤는데, 헤세는 늘 그런 방식을 싫어했고 추상표현주의자가 되고 싶어 했고, 더 나
아가 자신 만의 작품을 펼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헤세는 독일에 가기 전에 추상표현주의의 작품들, 예
를 들면 사이 톰블리(cy twombly)와 유사한 작품을 했고, 이러한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가려고 했습
니다. 또한, 독일에서는 유럽의 모더니즘 조각과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접했습니다. 이에 관한 사례로 헤세
가 독일에 있을 때, 1964년 10월에 베른 미술관에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을 접했고, 바
젤에서는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작품을 봤습니다, 1964년 11월에는 폴크왕 뮤지엄(Folkwang Muse
um)에서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의 작품을 접했었습니다. 또한, 헤세는 남편인 톰 도일과 함께 폐공장
에서 작업 하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해서 각기 다른 재료를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시
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회화에서는 선의 변형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껴왔고, 헤세는 재료를 선택할 때
의식적인 선택과 결합을 추구하는 동시에 회화의 평면에서 벗어나 3차원의 조각으로 변형하고자 했기 때문
입니다.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 중의 한 명이자 헤세의 친구였던 멜 보흐너(Mel Bocher)는 헤세의 작품을 시리얼
아트(Serial Art)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하며, 추상표현주의자의 무의식과는 다른 일련의 체계와 논리를 가지
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도 이 생각에 동의하고 헤세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작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따
라서 에바 헤세라는 작가가 단지 ‘비운의 여성 작가’로 알려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운의 여성
작가’라는 수식어를 벗어나 더 많은 헤세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많은 사람이 좀 더 댜양한
각도로 작가와 작품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