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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면 사랑도 하면 안된다던 내 과거가 생각나서 한참 울었습니다.

ㅠㅠ |2012.12.03 15:29
조회 2,933 |추천 11

청담동앨리스보셨나요?

기본 줄거리는 좀 현실과 동떨어져있는데 딱 하나.. 주인공의 가정과 주인공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저를 아프게 하네요.

 

 절 아프게 한 내용이 뭐였냐면

가난한 남녀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남자가 둘의 월급을 들어가면서 그 월급과 생활비 공과금 그리고

어머니 병원비 대출금이자 원금 등등 제하면 우리는 한달에 마이너스고 1년이면 천만원이가 이천만원 마이너스다.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이번에 어머니 수술하고 나오시는데 잘됐다는 그말에 또 치료비 생각이 났다.. 돌아가셨으면 했다.. 가난하니까 꿈이 작아진다 라고 하던  그 부분이었는데..

 

가난하면 사랑도 하지 말아야 했나봐요.

전 나이가 적지 않습니다. 30대 중반이고, IMF가 터질때 대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공장은 부도가 낫고 저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알바를 하고 있었죠.

다행히 저희가 손해보거나 빚진 금액이 크지 않아 저희가 살던 집은 남겼고 그마저도 팔아서

아버지는 가게를 하나 하실 생각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계실떄였습니다.

하지만 손대는 것마다 간신히 손실없이 끝나고 그렇다고 이익도 없고... 집에 돈 못갖다주신지

2년여가 지나고 실질적인 가장은 제가 되어 있었죠.

2년간 알바하다가 결국 중퇴하고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부자로 산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어느정도 하면서 살던 제가 할 게 뭐가 있겠나요.

총무부에 들어가서 사무비품이나 정리하고 사내 행사나 주관하면서 의미없이 하루하루 살고

월급은 모조리 집에 들어가고...

 

그래도 아버지는 의욕을 잃지 않고 엄마와 나를 위해 이것저것 손대셨지만 그때는 또 얼마를 날리려고 저러나... 지금 있는 원금이라도 지키지... 라고 생각하고 미웠어요.

그래서 월급도 집에 몇달 안가져다주고 독촉도 못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정신차리라고 몇달 끊겠다고

큰소리 치고.. 생각해보니 참 못된 딸이었어요..

그러다가 참 가당키나 한지.. 그렇게 악착같이 살면서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회사 다른 부서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시작도 더뎠는데.. 좋은 감정 가지고도 한참동안이나 서로 서성이기만 해서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 후에야 사귀게 되었지요.

연애는 난생 처음 해보는거였는데도 선물 하나 해주는 것이 나에게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고 자연스럽게 데이트비용은 그가 내는 것으로 나는 힘드니까.. 하고 애써 위로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저와의 데이트 횟수를 줄이더라고요.

그래서 돈이 부담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어느날 퇴근하는 그를 따라가서 다그쳤더니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 미안하다고... 데이트비용이 좀 부담스러워서 그랬다고..나는 너무 만나고 싶은데

돈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비싼 데를 간 것도 아닌데  좋은 곳을 간 것도 아닌데 그정도도 매번 못해주는 자기가 미웠다면서

공원 한구석에서 눈물을 떨구는 그를 부둥켜 안고 엄청 울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는 부모없이 큰 4남매의 맏이였고.. 애달프게도 아직 막내는 부모의 손이 필요한 중학생..

가난해도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고 열심히 하면 되잖아... 하고 정말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때부터 더욱더

정말 너무 외식이 하고 싶으면 김밥천국 가서 김치볶음밥 시켜먹고 평소에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다정한 눈을 한 그는 구내식당 아주머니들에게도 인기가 좋아서 남은 반찬도 잘 받았고

우린 그 반찬을 들고 퇴근하면서 동생들 밥 차려주고 둘이 나가 공원에 앉아 별보고 달보고 하면서

알콩달콩 데이트 했고... 겨울이면 따뜻한 캔커피 하나 들고 시려운 발 동동 거리다가

결국 편의점 안에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지금 생각하니... 너무 가난했네요..

 

그렇게 4년 사귀면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믿어달라고 한 가게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저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몇년만에 처음으로 집에 돈을 가져온 날 우리 세식구는 울면서 케이크를 켜고 자축했습니다.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 항상 아끼면서 잘 살자고,,, 지금의 성공이 성공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다음달부터 제 월급이 고스란히 저의 것이 되었고 저는 기쁜 마음에 그의 해진 지갑을 생각하고

좋은 지갑을 하나 샀습니다. 좋다고 해도 1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의 지갑을..

그런데 그는 기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무슨 돈으로 샀냐고 하길래 다 말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가게 하시던 것이 어느정도 자리 잡아서 나 이제 월급 집에 안줘도 된다

어느정도 저축하고 이제 내가 데이트비용 댈테니까 이거 받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그는 화난 어조로 다 아끼고 저축하라고.. 돈생겼다고 펑펑 쓰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서 지갑을

내밀더라고요. 아버님 드리라고.... 자기 곧 생일이니까..생일 선물로 받아.. 하고 억지로 끼워주고

그날도 공원에서 해보고 별보고 그러고...

그는 돈 모아서  자기한테 시집오라고...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를 했고... 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의 데이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와 그가 조금 더 마음이 풍요로워졌다는 것.. 이백도 안되는 이 돈이 꼬박꼬박 모이고 있다는

사실에 비록 내 월급만이지만... 손해본다는 생각 없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우리 둘의 결혼 비용이라는 사실에요..

혼자 몇년 뒤에 결혼 할 걸 가정해서 얼마 모일 것을 예상하고 얼마를 집값에 쓰고

가전제품은 부모님한테 사달래야지 하면서 꿈을 꾸어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막내동생이 하교길에 친구들과 몰래 피시방에 들렸다 오다가 골목길에서 뺑소니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골절 부위는 크지 않지만 하필 골반 뼈를 다치는 바람에 걷지를 못하고 수술도 어렵게 되어

2개월 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보험이 있을리 만무하여 모두 남자친구가 부담하게 되었고.. 가뜩이나 모은 돈도 없는데 병원비까지

약 800정도 들게 되었고.. 이제 막 20살이 되어 사회인이 된 셋째 여동생과 군대간 둘째 남동생의 힘도

못 빌리고.. 결국 아끼고 아껴 모았던 결혼자금을 내어주었습니다.

우리 나이는 벌써 30이 다되가는데...

그렇게 결혼자금을 주고... 며칠간 만나지 않았습니다.

만날 수가 없었지요. 마음이 너무 허해서 얼굴을 보면 때릴 것 같아서.. 내가 이거밖에 안됐구나

결국 저사람의 행복을 위해 모으던 돈인데.. 당연히 저사람을 위해서 써야 하는데..

나는 참 못됐구나.. 자책하면서..

그런데 그의 문자가 왔습니다. 그만 하자고.. 용기도 없어서 목소리도 못듣고 얼굴도 못보겠다고.

그런데 회사는 못그만 두겠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너무 현실적인 이별에 더 마음이 아파서 그의 집 가서 만나고 왜 그러냐고.. 미안하다고 그깟 돈

다시 모으면 된다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설득했습니다.

어차피 자길 위해 모은 돈이야 하면서 다시 모으면 돼 하고 말하는데 가로막으면서

 

"이런 일 또 없으리란 법 없고.. 이런 일 생기면.. 그땐 빚이야.. 그동안 큰일 없이 살아와서 대출같은 거

모르고 살았는데.. 너 없었으면 나 아마 대출받았을꺼야..그런 행운은 한번으로 족하자.

계속 니 돈이나 기대면서 사는 그런 희망없는 삶 싫다. 너희 집 이제 살림 괜찮다며..

힘든 일 생길때마다 너 쳐다보면서 너만 바라보면서.. 내 못난 부분에 대해서 내 가난에 대해

책임져 달라고 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 이제 여기까지만 하자."

 

돌아오면서.. 눈물이 펑펑 흐르고.. 시내버스안에서 전철안에서.. 누가 보던말던 엉엉 울면서..

그가 마지막 선물이라고 손에 쥐어준 립스틱 하나 쥐고.. 더 좋은 남자 만나라고..

그 이후  뒤늦게 알게 된 부모님의 성화에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안 엄마는 가슴을 쥐뜯으시면서 소리지르셨고..

가난이 가난을 낳는다. 내 딸도 이런 꼴로 사는 거 나는 못본다. 이제 우리도 어느정도 중간 됐으니

우리보다 적어도 나은 놈 만나서 이런 꼴 안 보면서 살아라. 가난한 놈은 죽어도 안되니까 엄마를 죽여라

 

그리고 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갔고 그 기간이 길어져서 1년.더..머물렀고 돌아와보니. 어느새 제 나이는 30대를 넘겨버렸고 아버지의 가게는 점점 잘 되시면서 가게도 2개가 되었지만.. 가난했던 기억 때문이신지 일단 제 앞으로 집한채 해 두시고 전보다 더 아끼면서

저희 가족은 그렇게 단단해져 갔습니다.

 

이제 저도 그 아팠던 기억은 가슴에 묻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살지는 않지만 최소한 가난에 허덕이고 몸부림 치는 자아는 없는..

그냥 양친부모 모시고 누이동생 하나에 화목하게 잘 살고 있는 중산층 가정..

제 아픔은 싹 감춘 채 외국 유학갔다와서 지금 아버지 가게 점장하고 있는 자신으로 갈아타고

그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했던 처절한 기억을 이 사람에게 보여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된다면 그 아팠던 기억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냥... 요새 드라마 보고... 그 헤어짐이 너무 가슴아프게.. 현실적으로 와 닿아서..

저도 모르게 주절주절 써 내려갔네요.

 

이제 5시가 되면 출근해서 오후타임을 마감해야겠지요.

10시가 넘으면 그 사람이 마중나올겁니다. 지금 하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내 그 아팠던 "찌질했던" 그 가난했던 모습도.. 그도 정말 사랑했습니다.

 

 

 

추천수1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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