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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

SlowT |2012.12.16 14:03
조회 103 |추천 1
저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저는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비록 공부와 아는것도 없지만 여러분께 저의 생각을 전합니다.
항상 실패를 반복하고 숫자에 헤매며 속은 불만과 욕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국어 또한 완전하지 못한 저는 제 자신을 그래도 너그렇게 보고 사랑합니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Childhood제가 어릴때 저는 주로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관심을 제일 적게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저희 누나들에게 주로 관심을 주었습니다. (학생이라 중요한 때라)
그런 이유 였을까? 저는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알려졌습니다. 말 한마디로 밉상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에 거절하고 
학교 규칙을 어기고, 말 그대로 항상 벌 청소를 받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매일 벌 청소를
받았다는걸 아마 모르셨을겁니다. 제가 벌 청소를 하고 집에 와도 집은 항상 침묵으로 저를 반겼으니깐요.
(저희 부모님 모두 직장을 다니십니다)
그럼 이제 공부는 커녕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서 TV앞에 하루를 보냅니다.
저는 밥은 또 잘먹었습니다. 철은 없어도 밥은 먹을줄 알았습니다. 
저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합니다. "멍청한놈이 밥은 또 잘 쳐먹었네."
형제, 남매
위에는 누나 둘이있습니다. 큰누나는 제가 미운짓해도 저를 잘 봐주었습니다. 그런 반면 작은누나는
저의 라이벌이였습니다. 별것도 아닌것에 싸움이 일어나고 부모님께 많이 혼났습니다.
욕심
저는 어렸을때 물건에 대한 욕심이 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엄마 지갑에 돈을 쉼없이 몰래 꺼내가
저의 욕심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돈 관리 박사인 엄마께 항상 들켜 크게 혼났습니다. 하지만 그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욕심이 저의 선한 마음을 이기고 항상 돈을 슬쩍 했습니다. 이 일이 반복
되자 결국 아빠가 행동을 취했습니다. 아빠가 움직이는 날엔 저는 아이로서 죽음과 인사를 나눴었습니다.
아빠가 무서워진 나는 끝내 엄마 돈을 더이상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학원
꼬마였던 저는 학원에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학원을 안가고 친구들과 
놀기 일수 였습니다. 운이 안좋은 날엔 학원에서 집으로 전화 해서 부모님께 혼났고
운이 좋은 날엔 집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다닌 학원을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의 저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제가 뭘 
배웠는지 다 까먹었네요. 저는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그리고 또 다녔는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Student어느덧 저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학생이 된 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뭐가 나쁘고 옳은지는 판단을 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쁜 환경은 대도록이면 피하고 좋은 환경에서 주로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저는 공부에 지지리도 관심 없었습니다. 저는 그져 매일 머리속에 '오늘은 뭐하고 놀까?'
이런 생각만 반복하였습니다. 여전히 집에 오면 집은 침묵으로 저를 반겼습니다. 그런 저는 신나며
친구와 만나 놀러 나갑니다.
친구
저에게는 정말 친한 친구가 4명 있었습니다. 1명은 제가 초등학생때 부터 알았고. 나머지 3명은 중학교 때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넷이서 모든걸 항상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하도 마음이 맞아 떨어지는지 
무엇을 같이 하든 항상 콤비가 맞아 떨어져습니다. 개그와 드립을 쳐도 항상 환상적인 콤비로 웃음과
미소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 곁에 있을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을땐 마치 물고기가 물 만난 기분과 같았습니다. 
(지금은 그들과의 연락이 끓어져 마음 아픕니다. 그들을 다시 볼수 있다면 예전과 같을까? 라는
생각도 가끔 해봅니다.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제 생에 최고의 친구들
이였으니깐요.통곡)
International Student그렇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연락이 끓어진 이유는 바로 유학이 였습니다. (짜잔~) (????)
공부도 못하는 저는 부모님이 끝내 유학을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전 유치원때 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살아온
동네를 떠나고, 반갑지도 않는 외진곳을 간다니...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한국학교를 더이상 다니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결국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 유학을 캐나다로 떠납니다. 지금까지 함께한 모든걸 뒤에 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캐나다
제가 온 캐나다는 엄청나게 낯설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시간이 엄청 걸리더군요. 전 긴장을 
너무 했던 나머지 잠은 커녕 계속 의자에 붙어있는 모니터만 만지작 거렸습니다. 주위에는 대부분
외국사람들이 집으로 귀국하는지, 행복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국가를 떠나고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게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잤습니다. (????)
많은 시간이 흘러 드디어 캐나다에 들어오고, 저를 관리해주시는 가디언이 저를 맞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가디언분의 차를 타고 제가 다닐 영어 학원을 방문하고, 드디어 저희 홈스테이에 도착하였습니다.
홈스테이 가족
저는 홈스테이 집을 들어가자마자 너무 긴장하여 그냥 제방에서 하루종일 잤습니다. 다행이 아무도
저에게 관심을 안주더군요. 그리고 몇일이 지나고, 저는 캐나다의 문화를 하나씩 배워 나갔습니다.
영어를 할줄 모른 나머지, (한국) 반에서 제일 말이 많던 저는 금새 조용한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의 홈스테이 가족은 이렇구 구성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큰딸, 쌍둥이(남,녀), 그리고 막내. 다행이 쌍둥
이가 저와 동갑이라 마음이 조금 편했습니다.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마음대로, 저녁은 엄마나 아빠가 
요리. 홈스테이는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라 밥먹기전에 기도를 항상 했습니다. 저는 무교라 교회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처음에 기도할때 저는 그냥 말똥말똥 고개 숙인 가족들을 쳐다만 봤습니다. 나중엔
왜 기도하는지 이해가 가서 기도 하는척 따라했습니다. (저는 무교 입니다, 제 삶에서 종교란 무의미 합니
다) 그리고 이분들은 일요일에 꼭 교회를 갑니다. 저도 한 가족이라고 저도 끌고 가더군요. 
(그래도 무교임 ㅎ) 제가 사는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교회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날수 있더군요.
물론 교회에 있는 사람중에 저와 친한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예배가 끝나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 보내더군요. 저는 멍청하게 서있거나 아니면 저희 홈스테이 유일한 아들인, 그를 따라다녔
습니다. 그를 통해 아는 사람은 많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저와 함께할 친구들은 아니였습니다.
학교
학교도 종교 학교입니다. 그래서인지 애들이 대부분 착합니다. 하지만 역시 인종차별은 보이더군요.
캐나다는 미국과 같이 한국처럼 교실에 학생들이 남아 있지않고 종이 울리면 전부 자신이 일년동안 받는
임시 라커(locker)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직접 찾아가더군요. 처음이였던 저는 그런것도 모르고
종이 울리고 모두가 사라지자, 당황해서 어딜가야하나?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office가서 도움을 받고 제
수업을 찾아갑니다. 교실엔 전부 백인들. 벌써 부터 두려워 집니다. 모두가 저에게는 
모두 무관심이였습니다. 물론 저도 그들에게 무관심을 주었습니다. 
(말걸지 마라, 나 영어 할줄 모른다) 이런 기세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백인 친구가 없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학교에 한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친구들)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아니면 주로 같은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방과후 그들과 남아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학교 프로그램 Called ESL? ELL?)
거기선 모두가 영어 허접이여서 다행이 바보 같은 영어로 해도 부끄러우지 않았습니다.
You stupid, no you 스투피드. shut up 플리즈. 노 노 you shut up. 아이 노 스피크 English.
뭐 이런 분위기? 뭐 모두 처음 시작이였으니깐요 짱
간이 꽤 많이 흘렀네요... 나중에 이어서 계속 쓰겠습니다. 저의 과거 이야기뿐만 아니라 제가 살면서
발견한 저의 생각도 여러분께 보여줄 생각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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