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리뷰]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 개인의 전쟁과 집단 투쟁의 접점에서 울려 퍼지는 감동의 Alive Voice
▲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감독: 톰 후퍼 / 배우: 휴 잭맨, 앤 헤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러셀 크로우)
대한민국 겨울 극장가는 치열했던 민주화 쟁취의 역사 현장이었던 광주사태와 대공분실 고문사건의 영화, “26년”과 “남영동 1985”에 의해 피로 적셔진 스크린이 관객들의 분노와 공분을 샀다. 비단 이 영화들의 스토리와 서사과정은 다를지언정, 관객들이 가슴으로 느끼는 것과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일치한다. 우리가 취하고 있는 자유가 결단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 처참했던 쟁취를 통해 얻어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애써 외면하거나 깊이 묻어두었던 이 사실들을 가슴에 아로새겨 기억하자는 합의점에 도달한다. 먼 나라 프랑스의 이야기 “레 미제라블”도 일맥상통한다. “레 미제라블”은 자유를 갈망하던 개인의 사투와 집단의 혁명이 접점에 다다르면서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이른다.
고작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 동안의 고된 노역을 짊어졌던 장발장(휴 잭맨). 평생 그를 따라다닐 자베르(러셀 크로우)와 위험인물이라는 족쇄(평생 가석방). 신부님(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의 손길 아래에서 찢어버릴 수 있었던 신분. 갈망하던 자유를 손에 넣은 장발장이었지만 가방에 뉘인 은촛대처럼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양심. 장발장 앞에 나타난 그녀(시궁창으로 내몰고 간 가난과 겁탈당한 자유에 신음하는 판틴(앤 헤서웨이))는 속죄인 동시에 숙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와 사랑의 접점을 이룰 때, 장발장이 평생을 싸워왔던 자유도 프랑스 자유혁명과의 접점에서 요동친다.
여기까지는 “레 미제라블”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작임을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토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이야기를 뛰어 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뮤지컬 영화가 고수해 온 기존의 립싱크 형식(스튜디오 녹음 - 촬영장 립싱크)을 탈피해 촬영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배우들의 노래를 캐치했다. 캐릭터, 스토리 어느 하나 새로울 것 없을 영화에 살아있는 목소리를 채용하여, 노래 자체에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녹아든다. 이는 지금까지의 뮤지컬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다. 끊임없이 노래로 구성되어 있기에(대사로 진행하는 방식이 거의 없어), 자칫 밋밋할 수 있던 흐름을 라이브 형식의 촬영이 뮤지컬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셈이다.
앤 헤서웨이, 그녀는 이 영화에서의 판틴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이미 앤 헤서웨이가 7살일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 역을 소화했었다고 한다. 어쩌면 판틴 역에 최적화된 그녀의 유전자는 “레 미제라블”에서 독보적이다. 라이브 방식으로 편린만큼의 숨결조차 살려낸 앤 헤서웨이의 "I dreamed a dream"은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기력과 가창력이 어우러져 이 시대 뮤지컬 영화 중 최고의 한 씬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로맨틱 코미디의 공주로만 스크린에 존재할 것 같았던 그녀가 "레이첼, 결혼하다"에서 포텐(potential)을 터트리고, "러브&드럭스"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인정받으며, “레 미제라블”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에게 그녀의 가치를 공고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휴 잭맨은 자유와 양심, 그리고 믿음을 갈구하는 수준 높은 연기와 무난한 가창력으로 장발장을 소화한 반면, 러셀 크로우는 가혹한 정의감의 법치수호자 자베르를 무난하게 연기했지만 터지지 않는 답답한 가창력으로 이 영화의 유일한 미스캐스팅으로 손꼽힌다. 이미 맘마미아를 통해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꽃미남은 아니더라도 노래 실력만큼은 확실한 마리우스 역의 에디 레드메인과 함께 수준급 가창력으로 환상의 호흡을 선사한다. 마리우스를 흠모한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는 이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25주년 공연에서 에포닌을 소화해낸 실력으로 당당히 스크린을 빛내고, 개인적으로 “도브”와 “파이트 클럽” 이후를 기억하기 싫은 헬레나 본햄 카터는 “스위니 토드”에서 보여주었던 비슷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인다.
장대한 서사를 지닌 작품인 만큼 다양한 배역이 존재하는 “레 미제라블”은 90%이상의 완벽한 캐스팅을 이뤄내고, 뮤지컬과 책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현실적이고 생생한 광경과, 뮤지컬 공연의 장점으로만 여겨왔던 생생한 노래를 함께 담아 뮤지컬 영화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한 남자의 일생에 걸친 자유의 노래가,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들의 피에 젖은 노래가, 길거리 왕초 소년 가브로쉬의 당당한 노래가, (누구나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보았음직한 그림의 형태로)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접점에 다다랐을 때, 그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가슴에 묵직한 감동으로 자리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이 땅에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별점]
작품 - ★★★★ (8/10)
배우 - ★★★★☆ (9/10)
오락 - ★★★★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