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의 피살로 박근혜 후보가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던 시절, 벼랑 끝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청와대에 보낸 편지 한 장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박 후보님 기억하시나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근혜 언니에게’라고 보냈던 그 손 편지를요..
아무런 학연도 지연도, 인맥도 없었던 제가 근혜 언니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습니다. 1959년 충산 논산에서 1남 6녀 중 중간박이로 태어난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머니까지 화병으로 여의어야 했습니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는 작은 어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난곡동... 화려한 저택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첩첩산중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군용천막집을 보자마자 망연자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타령 먹을 것 타령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구로동 공장을 돌며 일자리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제 첫 직장은 TV와 라디오 부품을 생산하는 동남전자라는 회사였습니다. 월급은 한 달에 당시 돈 2만원이었으니 보수는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연차도 차고, 여유도 생겨 남들처럼 저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푼 안 되는 월급에서 생활비와 관리비를 내고 남은 돈으로 보험도 들었습니다. 당시 제일생명보험회사라는 곳에 몇 년에 걸쳐 납입한 보험금이 무려 50만원. 그때의 50만 원이면 지금의 500만원이나 마찬가지니 당시 스무 살이었던 제겐 너무나 큰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 보험계약을 담당했던 설계사님이 연락이 두절된 채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공장에서 뛰쳐나와 곧바로 보험회사가 있는 청계천 사무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관리소장이라는 분이 나와 하신다는 말씀이 “그 친구 사기치고 도망가서 이제 회사 안 나와. 그러니 네 보험금은 우리도 책임질 수 없어”였습니다.
어떻게 번 돈인데..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며 추위에 떨어가며 공부한 번 해보겠다고 열심히 번 돈인데.... 사무실에 일주일을 매일같이 찾아가 소장님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도 매몰차게 내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돈 받을 길이 막막해지자 문득 박정희 대통령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대통령님께 호소하면 들어주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맡고 있던 지금의 박근혜 후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설마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이 하찮은 편지를 읽어주실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근혜 언니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지 10일이 지난 후 보험회사 측 직원 두 명이 제가 자취하는 집에 찾아와 보험금을 찾아 줄테니 사무실로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해서 보험금 100%를 돌려받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미용사의 꿈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반드시 미용인으로 성공해서 못 다한 공부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꼭 한 번 기회가 된다면 박근혜 후보님의 머리도 손질해드려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결국 저는 남들처럼 대학에도 가고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강남 압구정동에서 ‘박수영’이라는 제 이름 석자를 걸고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들이 찾는 단골 미용실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손길하나도 놓치지 않고 민생을 위해 힘써주신 박근혜 후보님 덕분에 스물살 소녀가 이제 53세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박 후보님 만약 대통령이 되신다면 33년 전 그때 그 마음으로 서민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는 그런 대통령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