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에게 청혼받은 20대 후반 여성입니다.
가정환경, 자녀의 선택도 잘못도 아닌 상처라는 것과 그 사람의 인품을 보라는 것...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마음은 고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가정환경이란 재력, 학력,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부부간의 애정, 부모자식간의 관계, 화목함 그런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사별과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저는 매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반면, 프로포즈 받은 남친의 가정환경은 매우 좋질 못합니다.
아버지의 폭력, 외도가 결혼 생활 내내 지속되었고 항상 싸우는 모습만 보고 자랐으며
어머니 역시 자식들에 대한 케어가 전혀 없는 방관자 역할을 하셨더군요.
(자식들에게 폭력이 가해져도 막아주질 못하고 자식에게 기대기만 하시는....)
일단 남친 아버지란 분 정말 그 어린 아들을 때렸다는 것부터 백수인 본인을 대신해
힘들게 가장노릇을 하려는 어머니의 일터까지 찾아가서 행패와 폭행을 일삼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 여자들을 바꿔가며 항상 불륜을 저질러 오셨다는 것에 너무 경악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최근 남친의 형제가 결혼하는데 축의금으로 장난을 칠 생각까지 하셨다는군요.
아내야 그렇다쳐도 어쩌면 자기 자식이 커서까지 그렇게 못할 수가 있죠?
심지어 남친 생일날도 모르고 전화와서는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진짜 남도 아니고 자기 자식인데...
차라리 그런 환경이었다면 어머니가 얼른 결단을 하셔서 일찍 이혼하고 나오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못볼 꼴 보이며 사시다가 이제사 겨우 자식들이 이혼을 시켰다는군요.
남친 어머니는 남친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엄청 기대고 계십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연락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면서도 두 분 사이의 돈 문제가 엮이면
아버지와 통화도 싫다고 무조건 남친에게 아버지를 만나서 네가 다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남친이 자기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조차 스트레스 받아하는데 말입니다.
가족 문제로 어떤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친에게만 떠밀고만 계십니다.
좋게 말해 남친 어머니는 세상물정 모르고 착하기만 하신 분입니다.
심지어 동창들과 놀러가는데 어떤 친구분이 돈이 없어 못 놀러간다며
남친에게 돈 빌려서 그분 주겠다는 분이 남친 어머니십니다.
자기 아들이 거래처에서 이런 욕 저런 욕 먹어가며 공과금, 집세, 할부 다 책임지느라
돈도 저축 못해서 허덕이는데요...(물론 그 얘기 듣고 남친은 어머니에게 딱 잘라 안된다고 했지만
그런 상황에 자기가 죄책감을 느끼고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했어요.)
친가쪽에서도 남친과 어머니를 엄청 괴롭혀서 인연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친척중에서도 이혼하신 분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결혼과 가정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특히 저에게 한 프로포즈는 남친에게 의미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니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소리를 들은 저는 고민됩니다.
어떤 분들께는 상처가 될 말임을 알아서 매우 죄송하지만...
저는 살면서 이런 가정환경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런 가정을 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안 싸우고 순탄하기만 한 집안이 어딨겠어요. 저희 집안도 부모님이 싸우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된장찌개를 이렇게 끓여야 하느니 아니니...같은 사소한 문제로 티격태격하거나
크게 싸운다하셔도 잠시 각 방에서 휴전하시다가 서로 본인들이 과했다고 화해하십니다.
저희 집안 가세가 기울 때 돈 문제로 두 분이 싸우시려다가도 저희가 있으면 밖에 나가셔서 있다가
들어오셨어요. 돈 없어서 힘들어도 최대한 자식들에게 사랑으로 뭉치려고 하셨고
또 그만큼 두분이 불철주야 노력하셨고요.
결혼하면 시집이 두 개가 되는 상황은 그렇다쳐도 이런 환경에 익숙치 못한 제가
과연 시댁 분위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살면 다 적응하게 되니까?
남친을 사랑하고 안쓰럽고 보듬고 싶으면서 멈칫하게 되는 제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남친이 말했습니다. 자기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목한 가정을 보면 어색하다고...저한텐 당연한 상황이 남친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요...
남친은 그렇게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막상 아버지와 연을 끊질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가장 큰 피해자이기때문에 저도 남친어머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남친은 맹목적으로 그런 자기 어머니는 무조건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의외로 무덤덤했고 제가 복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합니다.
차라리 확실하게 나는 이러이러한 환경이어서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에 대해 똑바로 마주하고 상처를 보듬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면 확신이 들텐데...
머리로는 남자친구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너무 가엾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혼란스럽고 무섭습니다.
과연 결혼을 해도 괜찮을지 고민됩니다.
최종 결정은 제가 하게 될 것이고 그 책임도 제가 지겠지요.
일단 제가 결혼을 결심해도 저희 부모님 반대의 산을 또 건너야 하겠고요..
그래도 이런 진부한 고민인지도 모르지만 제 3자의 입장으로 결혼하신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불편하실 수 있는 글일지도 모르기에 혹시 상처받으실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 다시 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