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아가미를 갖게 된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운명」
저자 : 구병모
출판사 : 자음과모음(이룸)
출판일 : 2011년 03월
■ 제가 슬프다고 한 건,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사람들마다 삶의 무게가 비슷하구나 싶어서입니다. -p.51
■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고, 살아 있는 건 언제 어디서라도 그걸 부르는 자에 의해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었으며, 곤에게 의미 있는 건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지였다. -p.62
■ 사람은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 맘에 들기도 하지만 울컥 화도 나는 거죠. -p.106
■ 슬픔은 현실을 인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뿐으로, 직접 사태를 확인하기 전에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p.152
■ 당신이 이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강하가 당신을 특별히 좋아하고 아꼈다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싫어'라는 건 반드시 증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달리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싫다는 것뿐이지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에요. 그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넓은 거라고 봐요. -p.166
■ 아무리 산란회유를 하는 물고기처럼 힘차게 몸을 솟구치려 해도, 이 세상에 혼자만의 힘으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고 말이에요. 누에고치처럼 틀어박혀 자신만의 잠사로 온몸을 감싼 채로는, 코가 뚫리고 건강한 폐를 가졌다 해서 숨 쉴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누구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하며, 내 옆에는 다행히 그런 분들이 있다고 말이에요. -p.202~203 <작가의 말>
리뷰
선양이 덕분에 알게 된 구병모 작가와 그의 책 <아가미>.
작가의 이름만 들었을 땐 남자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책표지 안쪽을 보니 여성작가였다. :)
장편이라고 하기엔 조금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왠지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다.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처럼 '참혹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설!' 이란 말이 이제서야 와닿는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그림부터 살펴보며 이 소년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의 등을 따라 빛나고 있는
저 몽환적인 색채들은 뭘 의미하는 걸까, 자세히보면 소년의 어깨부분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신기한 무늬들도 보이고, 왜 이 책의 제목이 '아가미'일까에대해서도 많이 궁금한 채로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사업실패 후 힘든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린아들과 물에 빠져 자살하려는
한 가장의 가슴 저린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호수로 뛰어들어 끝내 목숨을 잃지만,
그 때 아이는 홀로 살아남고 그 때부터 그 아이의 귀와 목사이에는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생기게 된다.
사람에게 아가미가 있을 수 있다니, 분명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관심이 간 것 같다.
도대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분명 '아가미'는 무언가를 은유하고 있을텐데,
그것에 부여한 작가의 의미는 무엇일지 내심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점점 내용에 빠져들다보니
어쩌면 이 아이가 물속에서 희박한 산소를 찾아 호흡하려는 본능적인 의지로 아가미가 생겨 살아남은 것처럼
결국 작가는 인간이 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가미'를 생각해낸 것 같다.
온전히 사람이라고 볼 수도, 그렇다고 물고기도 아닌 이 소년은 호수 주변에 살던 할아버지에게 발견되어
그 후로 '곤'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집에서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인 강하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시도때도 없이 곤을 괴롭히는 '강하'라는 인물을 보면서 참 나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점점 스토리가 흘러갈수록
새로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곤과 함께 지내면서 겉으론 그를 미워하며 폭력도 가하고 나쁜말들도 서슴치않던 그였지만,
나중에 가서 돌이켜보니 표현방식이 조금 거칠었을 뿐, 그의 내면에는 분명 곤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실수로 강하의 친어머니를 죽이게 되는 곤을 두고 자신이 처리할테니 도망가라고 말하던 그 장면이 아른거린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라고 묻던 곤에게 "……물론 죽이고 싶지.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라고 대답하던 장면에선
가슴깊은 곳에서 곤을 아끼던 강하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위에 삽입해놓은 만화도 바로 그 장면인데
이 책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잔잔한 멜로디 음악과 함께 만화 <아가미>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뭔가 기존에 읽던 책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신비로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책이었던 것 같다.
뭔가 생각할 게 많았고 그래서 더 많이 와닿은 책, 다음에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책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