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에 글을 올립니다. 욕을 하셔도 상관없고 그냥 누군가 들어주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가정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일하기 싫어하시는 아빠.
엄마는 생활고에 못이겨 자주 아빠와 싸우시곤 집을 나가셨고, 그럴때마다 언니와 저는 먹을 거리가 없어서 라면하나로 끓이면 금새 먹게 되니 부숴먹으면서 3일이고 4일이고 버티고는 했습니다.
늘 쫓기거나, 쫓겨나는 삶이었고, 그로인해 초등학교땐 4번 중학교때는 1번 고등학교때 1번
빚쟁이들에 쫓겨 서울에서 경남까지 쫓겨다니며 전학을 계속 다니게 되었고, 자연히 친구들을 사귄다던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고3때 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는 언니를 데리고 서울에 올라가셨고, 저는 그대로
아버지와 경남에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장 밖에 입고나갈 외투조차 없이 주민등록증은 말소가 된상태로 일도 할수없었고,
아버지께서 막노동을 하시며 하루하루 살아오다 그렇게집안에 저자신을 가둔채 20살을 보냈습니다.
21 살이 되어서 간신히 주민등록증을 살리고 첫취직을 하게되었습니다.
제가 취직을 하자 아버지는 곧바로 일을 하지 않으셨고, 제 수입 10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아버지와
저는 생활을 했습니다.
전세 보증금이 없어서 달세로만 한달에 50만원씩 내고 나면 고작 5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빚 갚으며
힘겹게 살아야했고, 저는 그런 삶이 너무나 지겨워서 어린나이지만 그냥 하루 빨리 결혼을 하고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늘 기죽어있는 모습이었고, 사람상대하는것도 어려워하다보니, 자연히 일하는것이
실수투성이 었습니다.
그럴때 회사의 과장님이었던 지금의 신랑을 만나 너무나 다정하고 저를 잘 챙겨주는 모습에 그동안 부모님께 받아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그사람에게 신뢰를 주고 정을 주게 되었습니다.
저와 신랑은 아홉살 이라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차이를 갖고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나이차이가
많아서 더욱더 신랑을 믿고 따랐고, 친아빠보다도 오히려 저를 자상히 잘 챙겨주는 남편의 모습에
이남자와 결혼을 하면 고생없이 사랑받고 살수있을 꺼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22살에 혼전임신을 하게 되고, 저는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남편의 말을 믿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한푼없었고, 그러기에 시집갈때도 저는 아무것도 해갈수 없었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저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시댁도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식을 올리지 못하고, 임신 5개월째 시댁에서 해준 전세 보증금을 가지고 집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근데 그때 부터 신랑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실하고 자상하던 신랑은 집을 구하며 본격적으로 함께 사는 것이 현실화 되자
술을 자주 마시고, 집도 구하려 하지않고, 노래방을 다니며 도우미를 끼고 놀고,
집을보러간 곳에서 집주인 아주머니를 보고 저에게 속삭이듯 " 저 아줌마 맛있게다" 라는 말을농담삼아
던지고 했습니다.
뱃속에 자신의 아이까지 있는 저에게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면,
"저 치마를 들어올려 한번하고싶네." 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했고, 저는 한번도 보지못한 남편의 행동에
화를 내며 하지말라고 하면 그냥 농담인데 예민하게 군다며 오히려 저를 이상하다 했습니다.
같이 살기 전에 아이를 지우고 헤어져야 겠다고 다짐했지만 지우러가면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려주고,
그소리를 들으면 내가 아이를 포기하면 엄마가 나를 버리고 나갔던 것처럼 나도 그런 엄마가 되는거 같아
할수가 없었습니다.
지우러 간 병원밖에서 세시간 넘게 혼자 울다 돌아온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제가 아이를 지우러갔다는 사실을 알게된후 이제 그런 농담안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바뀌겠다고 하며 서둘러 집을 구했고, 한 두달 평화로운 삶을 살며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느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함께산지 두달만에 회사를 관두었고, 제가 아이를 낳고나면 친정 어머니가 안계시니 산후조리까지 함께 돌봐주고 회사를 다시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성실하던 사람이니 정말그렇겠지하고 지냈습니다.
신랑이 결혼전 틈틈이 모아두었던 600만원되는 돈을 두사람이 쓰기엔 한달에 생활비가 3~4십도 채 안들었기에 무리없이 지냈습니다. 하지만 신랑은 집에서 있으면서 술마시러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잦아졌고, 나갈때마다 노래방에가서 도우미를 부르고 놀다 새벽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좋지만 신랑은 그걸또 이야기를 합니다. 도우미를 불렀다고,,
남편은 처음하는 임신이어서 무섭고 혼란스러운 제 곁에 있어주지 않고, 예정일 전날에도 도우미를 불러새벽까지 놀다 들어오곤했습니다.
분명 예정일 전날이라 일찍 오라했지만 또 자정이 넘어가서 걱정되서 전화를 하니 여자분이 받고는 전화기를 끊어 버리더라구요,, 전원을 아예꺼놔서 연락조차 안가게 ..
그다음날 많이 다투었고, 그런 와중에 진통이 와서 아기를 낳으러 갔습니다.
12시간 진통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어머니께서 서울에 계셨기 때문에 주변에 제 산후조리를 해주실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권유로 시댁에 들어가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안들리시는 장애가 있으셨는데, 그로인해 언어장애 까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제가 어머니를 무시할것 같이 느껴지셨는지 참 좋은분이지만 제가 아무것도 해온것이 없어서 인지 식구들과 함께 있을땐 자상하셨지만 저와 단둘이 계실땐 180도 달라지셔서
저를 미워하시곤 했습니다. 그미움은 3년이 되서 조금씩 달라지셨고 지금은 잘해주십니다.
산후조리를 받으러 가선 청소며 빨래며 제가 하게되었고, 밥먹고난뒤 설겆이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자기어머니 다리에 베고 누워서 저를 도와주기는커녕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드렸습니다.
밤에는 우는 아이 달래고, 낮에는 시댁 살이하며 산후조리 같지않은 산후조리를 3개월이나 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지고 했지만 남편은 생활비 든다고 시댁에 있자고 했고, 참다못해 제가 그냥 혼자 나오고 나서야 남편은 불만을 가지고 집에 따라왔습니다.
남편은 주말마다 시댁에 들어가자고 했고, 저는 시어머니 마주치는것이 싫어서 들어갈때마다 싸우곤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가 둘이 있으면 행동이 달라지신다고 하자 남편은 자기 어머니는 그럴분이 아니라며
또 저를 몰아세웠고, 저는 늘 이길수없어 따라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저희 시댁은 시골이어서 많이 추웠습니다.
그날도 아이 병원에가야 한다고 하자 남편은 시댁에 가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못간다고하며 아이 병원에 간다고 혼자 가라 했더니 저에게 시댁을 싫어 한다고 썩을년이라는 욕을 했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싸우고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엄마의 집을 찾아갔고,
한달 만에 신랑은 설이 다가 온다고 내려오라고 저를 찾으러 왔습니다.
저희 엄마에게 남편은 혼이 낫고, 직장을 꼭 구하겠다고 엄마에게 약속을 하고, 저를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그후 남편은 직장을 구하러 다녔지만 이게 맘에 안든다 저게 맘에 안든다하며 또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고, 저는 당신이 직장을 구할때까지 함께 일을 하자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8개월 쯤이었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시댁에 당분간 맡기자 했더니 남편은 어떻게 자기엄마에게 다 떠넘기냐고, 그냥 시댁에 들어가 살자했습니다. 1년 정도만 살다가 자리잡고 나오자고했습니다.
저는싫었지만 저역시 자리를 잡고 싶었기에 그러자고 했고, 시댁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저는 백화점을 다녔고, 신랑은 아는 사람과 동업을 한다며 10개월간 동업을 하며 돈 300만원가져다 준것이 전부였습니다. 제가 벌어서 시어머니 용돈에 시댁에 생활비내고, 아이 기저귀 값과 분유값 신랑 용돈
제 생활비까지 다 도맡아했습니다.
일을 끝내고 오면 쌓여있는 설겆이를 했고, 밤에는 자주 깨는 아이를 돌보고 쉬는날이면
밀린 빨래에 청소에 아이 그리고, 함께 살던 아주버님과 아가씨 식사 까지 챙기며 생활했습니다.
10개월쯤 하던 사업이 망하게 되고, 신랑은 새로운 회사에 취직을 하며 술자리가 또 잦아졌습니다.
저희 시댁은 시골이어서 제가 일이 끝나면 밤 아홉시였는데 그땐 집앞에 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막차로 11시가 넘어야 한대 있었는데 신랑이 술을 마시는 날이면 꼼짝없이 그 버스를 기다리던가
동네 아래쪽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로등하나없는 캄캄한 길을 2~30분 걸어가야했습니다.
그로인해 자주 다투게 되었고, 한날은 다투다 신랑이 자고 있던 아이곁에 앉아있던 제게 유리컵을 집어 던지기 까지 했습니다. 기분좋게 술마시고 들어왔는데 제가 기분을 망쳤다는 이유였지요.
그래서 저는 참다못해 또 아이를 데리고 엄마에게 올라갔고, 엄마는 분가할것과 술을 자제 할것을 요구했습니다.
저역시 신랑에게 필름이 끊길만큼 술을 마시지 말라고했고, 신랑은 약속을했습니다.
분가는 이루어졌고, 신랑의 술은 7년 간 살아오며 최근에 되서 자기 몸이 나빠지자 이제야 겨우
줄이기 시작합니다.
노래방도 틈틈히 가더니 요즘 위가 안좋아 지고 나서 술이 줄어들더라고요..
분가를 하고, 둘째를 낳고 회사도 안정이 되고, 저희 부모님도 함께 다시 사시게 되고,
한동안 또 행복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느라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신랑은 예전에 백화점다니면서 돈잘벌때 왜 한푼도 모아둔게 없냐며 이제와서는 저를 돈 헤프게 쓰는 여자라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아이 기저귀를 산다던가 분유를 산다던가 집에 먹을 거리를 산다던가 하면 카드를 쓰게 되면 카드 문자가 신랑에게 가고, 그러면 1분도 안돼 전화를 해선 "왜내돈을 니가 함부로 쓰냐" 고 얘기를합니다.
월급들어오는 통장에서 현금을 찾는 다던지 쓴다던지 하면 통장을 정리해와선 빨간 색 펜으로 죽 그어놓고 대체 어디에 쓰냐고 2만원 3만원씩 아이를 키우다보면 현금을 쓸때도 있는데, 카드를 써도 뭐라하고
현금을 써도 뭐라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쓰냐면 제가 한달에 현금쓰는 돈이 10만원 정도 됩니다. 이래저래.. 저는 7년동안 제 속옷한장 못사입었는데 저보고 헤프다면서 장모님닮아서 그런거라고 합니다.
참다못해 내가 내돈벌어서 써야지 하고 취직자리를 구하려했지만 그때 작은 아이가 돌도 안된 탓에 큰애만 어린이 집에 보내고 신랑에게 가게를 차려달라고 했습니다.
생활비라도 내가 벌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할수있게 작은 가게를 내달라하니 신랑은 돈이없어서 못해주고
자기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벌어오는 돈으로 살라고.. 하지만 저는 아이 분유조차 눈치를 보며 사야하는 삶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친정부모님께 부탁해서 대출을좀 받아달라고 했고 신랑이 반대해서 신랑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가게를 차렸습니다.
가게를 차린후에 신랑에게 말을 하자 신랑은 대출은 몰랐었기에 친정에서 해준거라고 생각하고 내심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가게가 잘 되지 않았고, 신랑 모르게 뺀 대출을 갚기도 급급했습니다.
그러자 신랑은 생활비도 못가져오는 가게 때문에 제가 살림이 소홀하다고 가게를 접으라고 했고,
저는 신랑이 쉬는 날에도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한평반 남짓한 가게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장사를 했습니다.
도저히 가게를 꾸려나가기 어려워질때쯤 대출받은것이 신랑에게 들통이 낫고, 신랑은 크게 화를 냈지만
제가 살아보겠다고 혼자 잘살겟다고 낸것이 아니고, 또 자기가 너무 생활비를 쪼아서 그렇게 된거 같다며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받아들였습니다.
한동안 신랑은 대출이자를 내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도 그동안 힘들었던점 신랑의 성실한 모습과 대출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에 다 사라지고, 미안함만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대출을 갚는지 1년이 조금 넘어 2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신랑은 저에게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며 저와 사는것이 힘들다며, 저와살며 돈때문에 지저분하게 살아가는게 싫다고 합니다.
저는 22살때부터 지금껏 친구도 한번 만나지 않고 집에서 살림하고 틈틈이 직장다니고,
집안일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사랑받고 싶어 한 결혼인데 신랑은 7년 내내 제 머릿속에 이혼이라는 단어만남김니다.
저를 대하는 태도는 20살의 어린사람대하듯 무시하고 저에게 바라는 모습은 자신의 또래..
혹은 자신보다 더 나이많은 사람이 하는듯이 모든걸 포기하고 가정에 헌신하는 여자,
살림도 완벽하고 음식도 잘하고 아이도 잘키우고 돈도 잘벌어오는 슈퍼우먼을 바랍니다.
그사람이 원하는대로 살기위해서 바깥에 개인적으론 나가지도 않고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림하고
살아왔지만 자꾸만 쌓여가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20살을 행복하자고 그사람에게 다 준것이 너무나 속상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엇던게 다였는데 어린시절 너무나 힘들었기때문에 사랑받고 싶었던것 뿐인데
전늘 외로웠고, 아이는 오롯이 제 몫이었고, 전 다 포기 해야했습니다.
그사람에게 묻고싶습니다.
당신이 나라면 22살의 나였다면 나처럼 다 포기 할수있었냐고..
엄마니까 한집안의 아내이고 두아이의 엄마니까 다 포기해야하고 가정만을 위해 시댁만을 위해 살아야하는 것이 당연한거라면 당신도 22살로 돌아간다면 그런삶살수있냐고..
최근 3년 새에 남편도 자신이 많은것을 포기했다고 힘들어합니다.
돈벌어오고 자기 용돈도 없이 힘들게 산다고..
하지만 남편은 친구도 만나러 가고 회식한다고 새벽에도 들어오고 친구들과 회사사람들과 낚시도 가고 등산도 갑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참고 살지만 쌓이고 쌓인 감정을 닦아내기가 힘듭니다.
절실히 이혼하고 싶지만 제 아이들에게 제가 겪은 상처를 주고싶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이고 분명 아빠가 필요할테니까요.
아이의 삶이 최선인지 제 삶이 최선인지 요즘 답이 없습니다.
그사람얼굴만 봐도 힘들었던 지난 날에 보기 싫어집니다.
너무나 긴이야기 였기때문에 주변에 말할곳도없고, 그래서 들어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눈물이흐르며 쓴글이라 두서도 없고 이상하지만 속은 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