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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찌어찌 우울하고 그런 나날들을 보내다가 내가 미국오기 하루 전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 오빠는 내게 무심했고, 나도 이젠 슬슬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였다.
A오빠는 자기가 내일 공항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돈이 없고 빌릴데도 없어서
데려다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버스표를 끊어줄테니까 버스를 타면 어떻게 공항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했다.
나도 질릴만큼 질렸고 더 이상 신세지고 싶지도 않아
공항철도 타본적은 없는데 그거 타고 가겠다고 그냥 버스 끊어달라고 했다.
떠나는 날,
나는 큰 캐리어를 하나 들고 고속버스를 탔고,
그 오빠는 자리까지 와서 데려다주곤 잘가라고 하고
어떠한 스킨쉽도 따뜻한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갔다.
끝까지 나에게 그렇게 무심한 걸 보며,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내내
나는 완전히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리어를 끌고 내려서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낑낑대며 갔는데,
아뿔싸, 네xx에 검색했던 가격과 달리 인천공항까지의 요금이 100원이 더 비쌌다.
한화가 전혀 없었던 나는, 마트에서는 미국에서 가지고 온 체크카드를 썼었는데,
그 오빠 방을 청소하다가 나온 돈을 맞춰서 가지고 (허락맡고) 왔었었다.
헐.
어떻게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옆에서 기계 앞에 줄 서계시던 남자분께 백원을 구걸했다.
그리고나서 기계에 돈을 다 집어넣었는데.. 보증금 500원을 더 넣으란다.
산 넘어 산이다.
다른 쪽에 있던 아주머니께 500원을 빌렸다. 한번 해봤더니 철판까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멀쩡해보이는 애가 느닷없이 동전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당황하셨을텐데
난처해하면서도 동전을 빌려주셨던, 아니 주셨던 그 두 분께 너무나도 감사를 드린다.
아직 한국은 정이 많은 살기 좋은 나라구나 라는 걸 또 한번 느꼈다.
캐리어 끌고 지하철을 타는 것 까진 좋았는데 환승하는데에 또 한참을 낑낑대고 다녔다.
겨우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돌아왔다.
갈 때에는 정말 설레고 신이 나서 갔었는데, 가서 너무 얻은 것이 없어서 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씁쓸했던 감정은, 내가 돌아간 후에 알게 된 사실에 비하면 약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