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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병장의 심리수첩 (여심#1): 우리 소대 세탁기는 왜 매일 고장나 있을까? [방관자 효과에 대하여-]

여병장 |2013.03.20 14:22
조회 1,510 |추천 3

 

 

방관자 효과 (Bystander Effect)란....

      주위에 목격자나 사람이 많을수록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줄어들게 되는 심리학적 현상.

 

      조그마한 공간에 여러명이서 부대끼며 생활하여야 하는 군인들에게 청결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하루에 최소 두 번씩 샤워 하는 것은 물론 개인 세탁물에도 항상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세탁기는 보통 화장실에 위치해 있는 우리 소대 같은 경우에는 1소대와 본부/작전 소대가 생활관이 붙어 있는 대형 생활관 형태이기 때문에 사용 인원이 많아서 세탁기 역시 두 대 이다. 일과가 시작하는 월요일 전 날인 일요일을 맞이하여 나는 약간은 귀찮은 마음에 세탁물과 세재를 들고 세탁기로 향했다 (휴 누가 대신 해주면 참 좋을 텐데...)

"여병장님 세탁기 고장 나서 작동 안됩니다. 3소대 화장실꺼 사용하셔 할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이일병이 얘기한다. 나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아 왜 우리 세탁기는 항상 작동하질 않는 거야. 지난주에도 분명 고장 나 있었던 거 같은데. 

정신 나간거 아냐? 왜 아무도 보고를 하지 않는 거야 도대체!"

왜 우리 소대 세탁기는 항상 고장 나 있는 것일까. 왜 아무도 보고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왜 나는 일주일 전에 고장 난 세탁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것일까. 


 


      거의 모든 심리학 입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제노비스의 비극"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비록 지금은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제노비스의 비극은 당시 사회 심리학자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신문에 따르면 1964년 뉴욕의 어느 날 새벽 3시쯤...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은 자신의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괴한의 칼에 찔렸다. 일명 묻지마 범죄였던 것이다. 그녀는 고통에 힘겨워 도와달라는 비명을 질렀고 깜짝 놀란 괴한은 도망을 쳤다. 38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심지어 그녀의 죽어가는 비명소리가 들렸음에도 단 한 명만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했고 30분 동안 다시 돌아온 범인은 반복하며 그녀를 계속 찔러댔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범인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제노비스만이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도대체 1964년 뉴욕 한복판에서 시체로 발견된 제노비스와 본부/작전 소대의 고장난 세탁기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우리 소대 LG 드럼 세탁기는 군대버전 제노비스인 것이다. 그녀가 처참한 고장의 수렁에 빠지기 까지 발견한 그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는 하지 않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군중에 섞여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줄어드는 심리학적 현상'을'방관자 효과 (Bystander Effect)' 라고 이름 지었다. 모두가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 하나하나가 지고 있는 책임감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빕 라타네 (Bibb Latane)와 존 달리 (John Darley)는 이러한 '책임감 분산 (Diffusion of Responsibility)' 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해왔다. 실험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 마케팅 실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잠시 뒤 두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미리 녹음된 테이프를 바로 옆방에서 재생시킨다 (옆방에서 들릴만한 큰 소리로).

"(의자에서 넘어지며) 아...내 발...움직일 수가 없어요. 누군가 제발 도와주세요."

방에 혼자 있던 참가자들의 70%가 방에서 나와 옆 방을 살펴 도우려 한 반면 여러명이 함께 있던 방의 참가자들은 오직 13%만이 그렇게 행동하였다. 내가 돕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돕겠지라는 책임감 분산의 효과가 절실히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의 또 다른 예로는 '집단적 무지 (Pluralistic Ignorance)' 가 있다. "도와야 할까 말아야 할까"와 같이 애매모호한 상황에 처할 때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보고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social norm)을 찾는다. 주위 사람들의 무반응이 그 상황에 너무나 당연하고 적합한 모범 답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요구한 후, 몇 분이 흐른 후 환기구를 통하여 연기를 흘러 넣었다. 정말 신기하고도 놀랍게도 방에 혼자 있던 참가자가 흘러들어오는 연기를 알아채는 데 까지는 고작 5초가 걸린 반면, 두 명이 함께 있는 방의 참가자는 평균 20초가 걸렸따. 혼자 있던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그 후 연구진에게 달려가 연기가 나고 있음을 알렸다. 반명 두 명이 있던 방의 참가자는 연기가 가득차서 설문지가 안보일 때까지 상대방의 행동을 살필 뿐이었다. '혹시 연기가 났던 게 아니면 내가 겁쟁이나 바보로 보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겠찌만 그는 자기와 같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실험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 다시 우리 소대의 세탁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왜 나는 세탁기가 고장 났다고 보고하지 않았을까? 빕 라타네와 존 달리의 실험이 말해주듯 나는 방관자 효과의 노예였던 것이다. 세탁기는 '어, 세탁기가 고장 났네. 내가 굳이 보고 안해도 다른 병사들이 불편하면 알아서 말하고 고쳐놓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또 이렇게 방관자 효과에 빠진 병사들의 반응은 서로가 눈치만 보는 '집단적 무지'로 이끌어지고 이제는 고장 난 세탁기를 간부님께 알리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 사회적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탁기와 제노비스가 시사하고 있는 중요한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군대에는 너무나 많은 제노비스들이 있다. 아무도 치울 생각이 없어서 행정반 라디에이터 밑에 가득히 쌓여 있는 먼지. 마치 공예부리듯 흡연장 근처에 수북이 쌓여 화려한 파인애플모양 탑을 쌓고 있는 담배꽁초들. 남들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방관자 태도의 폐해들이다. 더더욱 나아가 선임에게 부당하게 괴롭힘 받고 있는 후임들을 나몰라하는 행위 역시 군대판 제노비스의 변형된 모습들이지 않을까. 특히나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대라는 사회에서의 방관자 효과는 극대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후임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굳이 자신이 나서서 실행에 옮겨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또는 병영부조리를 행하고 있는 선임보다 계급이 낮은 자신이 나서서 서로가 불편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병장의 TIP : 우리에 필요한 건 영웅! 바로 당신!


      행정반에서는 지금 조인성과 송혜교가 나오는 "그 겨울...바람이 분다"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나오는 송혜교가 앞이 안보여 물에 빠지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고 눈치만 살피고 발만 동동 구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 왜 답답하게 도와주지를 않는 거야"라며 심병장, 장일병, 그리고 우리 소대장님이 투덜거리며 소리치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바로 영웅이다. 바로 당신.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당장 꼬깃꼬깃 구겨서 휴지통에 버려주기 바란다. 특히 주위에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면 된다. 모두가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땅에 떨어진 꽁초를 줍고 행정반 라디에이터 아래로 고개 숙여 묵은 먼지를 빗자루질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후임을 위해 손을 내미는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 되어야 한다. 이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주던, 길거리 자선공연에 나서 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폭설에 미끄러진 여성분을 일으켜드리던, 먼저 시작하라. 한 사람이 돕기 시작하면 곧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나서 도움을 주는 그런 기적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 군부대의 세탁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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