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올림픽.
당시 금메달 0 은메달 0 동메달 0으로 노메달로 동계올림픽을 마치게 될 위험에 빠진 일본에게
뜻밖의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그건 바로 아라카와 시즈카.
아라카와 시즈카가 피겨스케이팅 쇼트에서 3위를 하며 메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는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와 사샤코헨(미국).
일본은 동메달만 따도 좋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였습니다.
사샤코헨과 이리나가 연이은 실수를 하고
뒤에 등장한 아라카와 시즈카가 난이도를 낮추고 깨끗하게 클린을 하여 금메달을 딴 것이였습니다.
사실 아라카와는 일본에서 인기가 없는 선수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던 선수는 바로 안도미키와 아사다마오였습니다.
안도미키는 쿼드 살코를 뛰면서 일본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고,
아사다마오는 트리플 악셀과 귀여운 외모를 무기로 한참 인기와 관심을 얻고 있던 중이였습니다.
총리까지 나서서 아사다 마오를 올림픽에 보내고자 했으나
결국 나이제한으로 실패하고,
아사다를 대신해서 나가는 아라카와는 주변사람들이 계속해서 아사다와 비교하는 소리를 들으며
씁쓸해합니다.
당시 아라카와의 점프 구성을 짜주던 일본 빙상연맹의 간부가
마오는 말야... 라면서 아라카와에게 충고하자
아라카와가 "마오와 비교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힙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아라카와가 보여준 금메달은 일본을 감격시켰고,
아라카와는 일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아이스쇼를 매년 열 정도로
처지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일본의 인기선수였던 안도 미키는
올림픽에서 최악의 의상과 최악의 무대를 보여주면서
일본인들을 실망시켰고,
인기가 많을 때 했던 경솔하고 건방진 언행이 들추어지면서
인기가 엄청나게 하락하고, 이때부터 일본 사람들의 호감과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한때 일본에서 '미키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안도 미키>
당시 재미있는 것은 일본네티즌들이 피겨에서 금메달이라는 사실에 흥분하여
한국은 쇼트트랙에서만 메달을 따기 때문에
일본이 딴 동계올림픽의 꽃 피겨의 금메달 하나가 한국의 모든 금메달보다 우얼하다며 의기양양해다는 것입니다.
아라카와는 금메달을 땄으나
다른 선수들의 실수로 딴 메달인데다가 아사다가 있었기에
일본인 대부분은 마오가 나갔다면 금메달은 마오의 것이였으며,
다음 올림픽 금메달은 당연히 마오의 것이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아사다 본인도 내가 올림픽에 나갔다면 금메달이였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요.
한편 주니어월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김연아의 연습환경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김연아는 이전까진 국내코치들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연아를 가르치던 김세열코치는
김연아에게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쳤다. 이제 더 좋은 코치를 만나라'며
김연아가 더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캐나다의 안무가 윌슨에게 메일을 보내
'김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캐나다의 안무가 윌슨에게 안무를 받게 된 김연아는
윌슨이 일하고 있던 연습장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르는 3주동안
오서코치에게 처음 레슨을 받게 됩니다.
당시 오서코치는 선수로써의 경력과 활약은 유명하지만
코치로서는 이름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또한 여자선수를 전담해서 가르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서코치의 지도를 받은 김연아는
오서코치에게 자신의 전담코치가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오서코치는 이에 놀라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부탁에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오서는 3월부터 김연아의 코치직을 시작하기로 하고
국내로 돌아간 김연아에게
빙상연맹에서는 오서가 없는 동안 김연아를 맡을 한 코치를 추천하여
김연아는 임시적으로 5개월동안 이 코치와 함께합니다.
하지만, 그 코치의 훈련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김연아의 훈련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김연아가 부상을 입은 것도 잘 모르는 상태였지만
김연아의 코치라는 이름으로 언론노출은 자주 하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김연아의 우승에 나의 분석이 도움이 큰 것 같네요.'
'김연아 혼자만 아픈게 아니니 부상이라느니 체력이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라고 하지만
인터뷰 직후 김연아는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고
출전하기로 했던 대회를 포기합니다.
또한 임시코치가 아닌 김연아의 전속코치를 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당황하고 실망한 김연아와 엄마는
이 코치와 계약을 해지할 것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계약해지를 한 이후 바로 기사가 뜹니다.
"1년 6개월동안 코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은 자신을 오랫동안 키운 코치를 김연아가 버렸다는 것이였습니다.
곧 사람들의 비난이 김연아와 엄마에게 쏟아지고
당황한 김연아의 어머니는 상황을 살피다
뒤늦게 이 코치가 언론을 통해 한 인터뷰와 발언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태에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더이상 허위보도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결국 그 코치는 김연아모녀에게 사과를 하지만,
이미 둘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김연아는 다시 아사다 마오를 세계선수권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실 주니어 월드의 김연아선수의 충격적인 우승 이후
시니어로 데뷔하고 나서 이미 아사다와 연아는 만난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랑프리 파이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연아는 다시 아사다를 12점차를 누르고 우승을 하며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보여줍니다.
(당시 우승은 했지만 김연아와 엄마의 분석은 냉정했습니다.
아사다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졌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국제 피겨 대회에서 권위는 그랑프리 파이널보다 세계선수권이 훨씬 높았고,
07세계선수권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이때.
연아의 컨디션은 최악이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난방이 안돼는 거친 빙상장에서
연습을 한 김연아에게 허리 부상이라는 고통이 옵니다.
게다가 빙상연맹에서는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김연아에게 국내 대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김연아는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허리의 고통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스핀을 하고
40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 점수도 국내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였습니다.
당시 이 경기를 해설하던 해설자는
카메라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비추자
'저게 우리나라의 연맹의 쟁쟁하신 분들입니다'
'김연아는 선수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부상은 누구나 달고 사는 겁니다'라며
빙상연맹 출신 코치를 해고한 김연아에게 쓴소리를 합니다.
이 말을 티비를 통해 고스란히 들은 김연아는 눈물을 쏟습니다.
결국, 세계선수권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을 땄지만
당시 부상으로 힘들어 하는 김연아에게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다른 피겨 선수들의 김연아에 대한 견제와 미움도 상당해서
잘해봤자 동메달? 어디한번 열심히 해보세요.
라는 싸늘한 반응이였습니다.
국내링크장에서 연습을 하는 김연아에게
일부 피겨맘들은
CF나 찍으니까 부상을 당하지.라고 비꼬며
피겨 선수들에게 연습방해를 시킵니다.
이러한 국내의 장면을 처음 본 오서코치는 크게 당황하지만
이런일을 지속적으로 당한
김연아와 엄마는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훈련합니다.
(후에 오서코치는 이 일을 언론에 따로 언급할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
마음의 상처만 입은 연아는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일본으로 향합니다.
당시 제대로 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였기에
김연아는 13시간의 비행동안 이코노미석을 탔고,
이로 인한 허리 부상이 더욱 악화되어 힘들어합니다.
김연아는 록산느의 탱고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섭니다.
바로 이때,
김연아는 부상입은 몸으로 무아지경의 연기를 펼치며
71.95점이라는 점수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당시 지켜보던 각국의 해설자과 일본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 독일 해설자는
'이 한국에서 온 작은 16살의 소녀는 나중에 피겨계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라며 극찬을 합니다.
그리고 연아뒤에 나선 마오는 긴장으로 실수를 하며 쇼트에서 5위라는 성적을 냅니다.
당시 한국도 김연아의 놀라운 성적에 힘입어
프리 프로그램을 생중계하지만,
쇼트 후에 다시 몰려오는 피로와 누적된 부상으로
김연아는 트리플러츠에서 2번 넘어지며 프리에서 4위를 하며 총합 3위로
한국최초의 피겨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땁니다.
(연아를 째려보다가 카메라에 잡힌 마오. 어린선수들이지만 라이벌이라는 건 격렬한것 같습니다.)
연아의 실수를 보고 나선 아사다는 프리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할 수있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안도미키는 프리에서 2위를 했지만
쇼트에서 아사다보다 앞섰기에
총합에서 결국 우승을 하게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아사다는 다시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때부터 아사다의 팬들은 안도 미키를 싫어하게 됩니다.
마오의 금메달을 빼앗았다구요.
나중에 안도 미키는 부진하다가 또한번 뜻밖의 선전을 펼쳐 마오를 밀어내며
또 원성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들이
안도 미키의 승리에 기뻐하기보다는
아사다 마오가 2위라는 사실에 아까워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아가 3위라는 생각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부상으로 3위를 했지만
김연아가 쇼트에서 보여준 연기는
16살 소녀가 보여줬다고는 믿을 수 없는 격렬한 연기였습니다.
당시 김연아가 스파이럴을 하면서 보여줬던 미소에 놀란 일본은
이때부터 김연아를 요염하다고 표현하며
기술의 마오와 표현의 연아라고 하며 둘의 라이벌 관계를 다시금 조명합니다.
(이건 기자회견 당시 사진인것 같은데 셋다 너무 귀여워서 붙쳤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때 일본이 김연아의 외모에 크게 감탄하는 모습이였던 것입니다.
종달새를 연기하는 김연아의 청순한 모습에
일본언론은 미녀라는 수식어를 붙치기 시작하고,
일본 웹사이트에는 김연아 화장법에 대한 검색어가 떴고,마오는 다음 시즌 쇼트에서 똑같이 새를 연기한다는 컨셉을 들고 나와서
비슷한 안무와 메이크업을 하곤 합니다.
당시 일본 웹사이트에서 미녀스케이터를 묻는 설문조사를 보면
김연아 선수가 압도적으로 1위를 하는
지금의 김연아 선수에 대한 일본인들의 미움과 시기를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는 자료도 있습니다.
(당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던 사이트 : http://multianq.uic.to/mesganq.cgi?room=sktsk10)
(김연아를 스포츠 3대미녀중 하나로 선정한 일본 방송)
그리고 기술의 마오와 표현의 연아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실 이 표현은 점프를 더 중시하는 일본에서
트리플 악셀을 뛰는 마오를 연아보다 더 우위에 두고자 썼던 표현이였습니다.
사실 김연아는 피겨 강국의 국적을 가진 것도 아니였기에
일명 예술점수라고 불리는 PCS가 오히려 일본선수보다 낮았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연아의 소식을 접한 우리나라 언론들이
일본 기사를 그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도 기술의 마오, 예술의 연아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사실 이건 틀린 표현입니다.
기술도 연아요, 예술도 연아입니다.
(07 월드 시상식 사진)
출처-http://blog.daum.net/yunaaaaaaaaaaa/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