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21살,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뚜루왑 |2013.04.24 11:25
조회 41,827 |추천 539

몇 년 전 저는 우연히 인간 냄새 나는 한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재원.

 

세상에서 상처받은 듯, 버려진 듯한 그에게

글쓰는 일은 전부인 듯 보였습니다.

 

작가님의 SNS에서 본 글

이 글을 잠시 빌리겠습니다.

 

 -------------------------------------------------------------------------

 

 

 

 

 

 

 

 

 

 

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지체장애 3급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는 가난과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싫다며 도망갔습니다.

13살.
저는 어머니에게 버려졌고,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야 했어요.
제 나이가 서른하나. 헌데 고등학교 때 라면 한 개조차 먹기 힘들어 굶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에 있느냐며 물으시겠지만 사실이에요. 누구나 믿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가난이 저에게는 현실이었답니다..
그뿐이 아니었어요. 가난하기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죠. 저는 아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늘 떨어져서 지켜만 봐야 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왕따를 당했어요. 아! 친구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멀어졌거든요.
제 10대는 그렇게 아무런 추억도 없는 악몽으로 남겨졌답니다.

 

20대.
노숙자 생활을 했어요. 장애를 얻었고. 늘 얻어맞아서 온몸에 흉터자국이 선명했습니다.
20대 초반 저는 집을 나왔어요. 성공하고 싶었거든요. 가난으로 찌들어 버린 제 생활의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엄마를 찾아 복수하고 싶기도 했어요.
성공해서 가난하게 사는 엄마를 찾아가 당신 없이도 이렇게 살아간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노숙을 하면서 가장 싫었던 건 경찰들과 고등학생들이었어요.
매일 저를 때렸거든요. 김밥을 길거리에 쪼그려서 먹고 있으면 고등학생들이 제 손을 발로 차 바닥에 떨어진 김밥을 주워 먹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젊은 의경으로 보이는 경찰들은 매일 같이 저를 불러서 장난감 대하듯이 괴롭혔죠.
아! 취객들은 제가 거리에서 자고 있으면 오줌을 제 몸에 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는 꿈을 잃지 않았어요. 성공해야 했어요. 지독한 가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돌파구. 잠시라도 괴로움을 잊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행복한 상상. 바로 꿈이었거든요.
상상이 현실로 되면 저는 늘 행복 속에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무조건 이뤄야만 했습니다.

소설가를 꿈꿨어요.
해서 일용직 노동을 해서 중고 노트북을 30만원이나 주고 구입을 했지요.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어요. 벌써부터 소설가가 되어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는 것 같았죠.
그런데 그 꿈은 24시간도 가지 않았어요.
한 힘 있는 노숙자가 제 노트북을 빼앗으려 했고 저는 필사적으로 방어했어요. 처음으로 노숙자들에게 반항을 했죠. 그 모습이 점차 격렬해지자 늘 저를 괴롭히는 젊은 경찰들이 곁으로 다가왔어요. 노트북을 훔치려던 노숙자는 제가 물건을 훔쳤다고 말하고는 재빨리 사라졌고 경찰들은 저를 감싸고 추궁하기 시작했어요. 몇몇은 제가 끝까지 훔치지 않았다고 우기자 때리기 시작했어요. 엄지손가락이 터졌고 중지가 터져나가 꿰매야 하는 상황까지 가버렸죠. 엄청난 피가 흐르자 그들도 멈칫했어요. 저는 진짜라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판 상인의 명함을 보여줬어요. 그들은 확인도 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어요.
네 주제에 노트북이 어울려? 그러니 얻어맞는 거야, 라고.......
저는 화를 내지 않았어요. 화를 냈다가는 또 맞을게 뻔했거든요. 그저 실실 웃으며 비위를 맞췄죠.
“그러게요. 헤헤, 죄송합니다. 주제를 알고 살아가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 말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들은 피를 흘린 바닥이 더러우니 깨끗이 청소하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그들의 더러운 구두 밑창은 늘 제 얼굴에 닿아있었다는 겁니다.

그 뒤로 저는 어떻게 해서든 노숙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습니다. 이곳에서 제게 발전이라는 건 기대하기 힘들었거든요. 처음 5일은 노숙. 이틀은 찜질방. 이런 식으로 살아가며 돈을 모았어요. 그 뒤로 달방이라고 하죠. 초라한 여인숙을 한 달씩 잡아서 생활하며 글을 써내려갔어요.
점차 안정되어가는 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련으로 저는 주저앉아야 했어요.
시각장애가 찾아왔습니다.

 


 

 

 

 

21살.
저는 시각장애 5급의 장애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죽어라 노숙자 주제에……. 라는 말에서 벗어났는데 이제는 장애인 주제에……. 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소설가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저는 모든 걸 잃었다는 절망에 자살시도를 서른 번이나 했으며 삶을 포기하려 했죠.
진짜 마지막 자살시도를 하려는 찰나…….
한 가지 생각이 절 사로 잡았습니다.
타인들의 말에 귀를 닫자. 그리고 나답게 딱 서른 살까지만 살아보자. 서른 번을 자살할 수 있었던 용기로 서른 살까지 살며 노력해 보자. 그래도 안 되면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하자!
그렇게 죽을힘으로 저는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지금 저는 서른하나입니다.
감사하게도
살아있습니다.
26살 때 꿈을 이뤘어요.
영화 <비스티보이즈> 원안 소설을 출판했고, 그 뒤로 8작품을 독자들 앞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또 제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거장 감독님께서 제작에 들어가셨습니다.

지금까지 제 작품을 읽어주신 독자 120만 명께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며칠 전 숨겨져 있는 첫 작품이 공개되었습니다.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해 어린이 재단에 기부되는 도서로 의미가 큽니다...

 

여러분, 함께 살아갑시다. 

 

 

 

추천수539
반대수5
베플소재원|2013.04.24 22:25
부끄러운 제 이야기가 올라와 있네요. 제 미니홈피가 고민을 상담해드리는 공간이라 용기를 드리려 썼던 다이어리 글이 올라와 있는걸 보니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이 절 울렁이게 합니다. 글을 올려주신 분은 제게 쪽지를 주시면 감사할거 같아요. 제가 그렇게 좋은 모습으로 당신의 눈동자에 담겼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쁜 마음으로 약자들을 대변하는 글로 늘 진심으로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베플김성애|2013.04.24 12:03
TV에서 봤어요. 자주 나오시던데 인생을 이야기 하실때마다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정말 예쁜 작가님이신거 같아요.
베플도토리|2013.04.24 11:58
젊은 나이에 노숙도 하고 장애까지 얻고 힘겹게 사시다가 지금은 소설가가 되었네요.. 대단합니다. 사실 소재원작가의 소설은 읽어 보지는 않았는데요.. 서점에 가게되면 저도 읽어 볼랍니다^^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