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6. 금.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는 것.
서울에 올라온지 오늘로 2주하고 4일 째.
어제 아래 학원 종강을 하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학교 입학하게 된다면 또 다시 바빠지겠지.
그 전까지는 변함없이 잘 놀 생각.
오늘 오후 12시 22분 기차로 집에 내려간다.
일주일 만인데도 한 달은 족히 된 것 같이 느껴진다.
엄마가 매일 같이 영상통활 거신다. 늘 곁에 있다가 없으니
많이 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의 sns들은 bgm 제공을 안 한다는게 함정이다.
단순히 노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bgm, back-ground music을 까는 것 말이다.
홈을 방문했을 때 깔리는 bgm,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 때 상대가 받을 때 까지 기다리며 듣는 컬러링,
길을 지나가다가 상점의 스피커에서 흐르는 그녀의 애창곡 1번.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이에게는 그 만의 한 사람을 상징하고 있는
음악적 묘사다.
음악이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음악으로 나를 appeal, 표현할 수 있다.
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을 내비출 수 있는 것이다.
단 하나의 선곡으로 내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음악의 힘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은
한 음악의 가사나 선율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객관적인 전달과는 다르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 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 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이 가사는 누가 봐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대중 음악의 멜랑콜리한 대부분의 발라드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사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흥행과 직결 되기에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가사를 쓰려 하기 마련이다.
허나 조금 더 나아가서 음악의 해석적(주관적)인 이해에 대한 예를 들자면..
좋은 예로, 한 인터뷰에서 이은미씨에게 그녀의 명곡 '애인 있어요'의
가장 큰 흥행 요소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애절한 선율과 함께 그녀는 가사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그 공감의 의미는 듣는 각자의
관점마다 다른 해석적인 부분에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 둘꺼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청자의 관점에 따라 짝사랑이 될 수 있고, 사별한 이에 대한 그리움이 될 수도 있으며,
이별한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 하는 내용이 될 수 있는 그녀의 노래.
그 인터뷰를 보고 나는 곧장 이 곡을 5번 정도 반복해서 들어 보았다.
물론 매번 다른 입장을 가정하고 시작하면서.
신기하게도 각기 다른 입장에서 느낄 때 마다 내용은 다르게 다가왔다.
묘한 매력이 있는 노래가 틀림이 없었다.
이처럼 음악이란 듣는 사람마다 느껴지는 바가 다를 수 있다.
더군다나 한 노래에 대한 애잔한 경험, 추억이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토록 지극히 주관적인 음악은, 어쩔 때는 그에게 그녀를 떠올릴 순간을 마련해준다.
길을 지나가다가 들리는 노래 소리에 그는 의도치 않게 은연 중에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하물며 상대방의 홈을 방문했을 때 자연스럽게 흐르는 bgm은 어떤가.
클라이언트는 홈 주인을 인지하며 동시에 그 음악을 듣게 되므로 지각과 청각의 동시자극으로 합쳐진 반응이 생길 것이고, 홈 주인은 자신을 어떻게라도 표현하게 되는 bgm을 사용 할 것이다.
언어 뿐 아닌 음악으로도 자기표현-전달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자기 표현을 기반으로 하여 의사소통의 매개체로 자리 잡은 요즘의 sns는
이런 면에서 bgm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여러가지 의미있는 부분들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가 상업적 기능으로서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결론은.
음악은 언어와 제스쳐가 가지지 못한 기능과 더불어
우리들이 단순히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