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
달리는 택시 안. 나와 동생은 아무 말도 없었다. 흐르던 눈물도 어느새 말라버렸는지 눈이 뜨거워졌다. 슬쩍. 백미러를 통해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와 그 어깨에 기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은혜를 바라본다. 은혜야.. 은혜야. 조금만 힘내줘. 꼭 너를..
“부산이네.”
동생의 말에 앞에 달린 표지판을 바라본다. 드디어 왔구나. 수많은 고생 끝에 드디어..
“유람선.. 아직도 있을까?”
내 말에 동생은 확실하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모르겠지.”
아빠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좋겠는데.. 우리가 너무 시간을 지체한 탓에 이미 유람선이 떠나버렸거나 운행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 녀석들이 그곳에 대기하고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부아앙. 아저씨의 차가 먼저 앞질러간다. 그 뒤를 차분히 따르며 운행을 한다. 10분.. 15분. 얼마 가지 않아 시청이 눈에 띈다. 슬슬 멈춘 아저씨 차. 문이 열리며 준우 아저씨와 우민이 형이 내린다. 잠시 쉬었다가 가는거겠지.. 앞으로 무슨 일이 다가올지 모르니 가볍게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뒤에 조심스럽게 주차한 후 차에서 내린다. 남자는 여전히 은혜를 곁에 둔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부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괴물 녀석들과 싸워야할 사람들의 얼굴처럼 뻣뻣히 굳어 있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 준우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나 원.. 막상 여기에 오니 더 떨리네. 젠장.”
“마지막.. 이니까요.”
우민이 형이 말했다. 어느새 형의 눈이 불거져 있다. 죽어버린 대위님.. 생각이 나는 것일까. 아저씨는 소총을 어깨에 매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가지. 여기서 항구까지 10분 거리도 안되니까 말이야.”
그 말을 한 아저씨는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씩 본 후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차에 남아 있는 은혜라면 걱정 없다. 남자와 같이 있으니 알아서 지켜주겠지.
띵-동.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열린다. 저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매장 안으로 들어선다. 피비린내와 뭔가 썩는 냄새.. 그리고 음식이 상해 파리가 들끓는 모습은 그리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이다. 이 정도는 참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다.
대충 파리들을 치워내고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음식들을 먼저 챙긴 후 라면이나 즉석식품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 이럴까. 괜히 마음이 먹먹해지고 답답하다.
“만약.. 만약에요.”
내 말에 모두 멈칫하더니 곧 식사를 계속 한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어렵고 드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진성아. 괜찮아.”
준우 아저씨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옆에 우민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없으면 다시 그 부대로 돌아가면 되잖아. 앞으로 살아갈 일들만 생각하자.”
“..그렇죠?”
역시 아빠와 엄마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이다. 나와 동생 할 것 없이 모두 사정이 딱한 것은 매한가지다.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내 지나친 욕심이야.. 그래.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거야.
다시 밥알을 입에 넣는다. 편의점 창문을 통해 택시가 주차된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남자의 뒷모습과 옆에 기댄 은혜의 모습이 보인다. 난 은혜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는 건가? 이대로 은혜가 가버리면.. 그러면..
“모두 총 챙겨.”
아저씨의 말에 저마다 먹던 것을 냅두고 한 곳에 모였다. 아저씨는 차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을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걸음걸이가 이상한 수많은 사람들이 차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마다 몸 곳곳에 검은 털들이 돋아난 것을 보아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총을 챙기고서 편의점 문을 열었다. 띵-동.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지만 저 괴물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주욱 걸어가면 남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 왜 못 본거지? 우두머리가 죽어서? 여기가 부산이라서?
“섣불리 움직이지마. 괜히 여기로 관심이 끌리면 곤란해지니까. 일단 남자가 있으니 같은 종족으로 인식하고 공격하지는 않을거야.”
아저씨 말에 우리는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차 뒤에 은폐하여 상황을 주시했다. 차 문을 닫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조그만 공간을 통해 은혜의 체취가 녀석들을 자극한다면 아무리 남자가 있다고 쳐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용히 숨을 들이키며 괴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한다. 그대로. 그대로.. 지나가라. 제발. 하지만 이런 바램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아!”
사람들이 나타난 곳 반대 편에서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란 우리는 몸을 더욱 숙이며 소리가 난 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모두 신음성을 흘리며 욕을 내뱉었다. 10명.. 정도 되어 보이는 많이 봐야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녀석들이 손에 쇠 파이프나 야구 방망이 등을 꼬나 쥐고 괴물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저대로 가면 개죽음 당하게 십상이다. 벌떡. 본능적으로 몸이 일으켜지지만 옆에 앉아 있던 준우 아저씨의 힘에 눌려 다시 다리를 구부릴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
준우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최소 괴물 녀석의 수가 서른이다. 지금은 저렇지만 일제히 변하면 아무리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승산이 없어.”
“..아저씨!”
“지금은 그냥 두고 봐야해.”
하지만 저런 어린 놈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더더욱 보기 싫었다.
“지금은 준우 아저씨 말대로 해. 여기까지 왔는데 죽을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하는 동생을 가만히 본다. 일말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얼굴이다. 그 결연한 얼굴을 차마 계속 볼 수가 없어서 무모하게 달려드는 고등학생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으아압!”
제일 선두에 선 녀석이 기세 좋게 괴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퍼억.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는 괴물.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녀석들이 탄력을 받았는지 저마다 괴성을 질러대며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추풍낙엽처럼 픽픽 쓰러지는 괴물을 보며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변하지 않지?”
“너무 일방적인데?”
“뭐가 어떻게 된거야?”
모두의 솔직한 평이었다. 그래, 내 심정도 같았다. 왜 저 괴물들이 저토록 무기력한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답을 내릴 수가 없기에 우린 고등학생 녀석들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퍼억. 퍽. 퍼퍼퍽. 녀석들은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저마다 일당백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저 정도의 실력과 경험이 있으니 저렇게 달려든 것인가? 쟤네들은 이미 괴물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괴물이 약해진건가?
“흐아압!”
마지막 남은 괴물의 머리가 흉물스럽게 찌그러진다. 10분정도 지났을까. 생사를 건 전투를 마친 고등학생들은 무기에 묻은 피나 살점 등을 대충 털어 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 우리의 모습이 들켜버리면 곤란할지도 모른다.
제일 선두에 선 녀석이 허리 춤에 달린 주머니 비슷한 것에 파이프를 꽂아 넣고는 말했다.
“옮기자.”
그 말에 일사분란하게 괴물의 시체를 옮기는 녀석들. 뭐하려는거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 행동을 지켜본다. 저마다 맡은 시체의 다리를 끌고 가는 녀석들. 보아하니 이 부근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다가가 주변 상황이나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내 어깨를 꽉 누르고 있는 준우 아저씨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덜컥.
“젠장..”
낭패다. 남자의 돌발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등학생 녀석들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하나 둘 무기를 강하게 움켜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지만 고요한 동작으로 소리가 난 택시 주변을 천천히 에워싸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모두 소총을 장전하며 언제든 발포할 준비를 한다. 대체 왜? 같은 사람들끼리 왜 싸워야하는거지? 당장 일어나서 이들을 말리고 싶었지만 차에 타고 있는 남자와 은혜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만약 허튼 짓이라도 했다가는..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조용히 차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남자가 아닌 은혜였다. 흰색 피부에 짙은 흑발의 은혜. 드디어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은혜야..”
아저씨의 말에 적잖은 감정이 느껴진다. 남자의 말이 틀렸다.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니. 우리 은혜가 절대로 그럴리 없다.
“여자?”
“멀쩡하네?”
고등학생 녀석들은 멀쩡한 모습의 은혜를 보고는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중에 한 놈이 제일 선두에 선 놈에게 말했다.
“태성아. 어떡할래?”
선두에 선 놈. 태성이라고 불린 학생은 은혜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히 짐만 늘어난다. 그냥 가자.”
그 말에 처음 말을 꺼낸 녀석이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너무 없어. 데려가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아저씨가 당장에 일어나려고 했지만 우민이 형과 동생이 그것을 간신히 제지했다.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남자의 존재다. 이대로 은혜에게 해코지라도 했다가는 저 학생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태성이라는 학생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친구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녀석 같았다. 녀석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몸을 돌려 시체들을 끌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다른 녀석들도 묵묵히 시체를 끌기 시작했고 은혜에게 입맛을 다시던 녀석은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신 뒤를 힐끔거리며 시체를 끌었다.
“후..”
저마다 한숨을 쉬며 녀석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살짝 몸을 내밀어 녀석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황급히 택시에 올라 시청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일단은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