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늦게 까지 이어진 회식 자리를 마치고 오늘도 어김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하는 길 이었다.
우리 동네는 단독 주택과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주택가 이다.
얼마 전 회사 에서 조금 더 가까운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출,퇴근 길이 상당히 수월 해 늦은 시간 까지 술자리를 갖는 때가 많았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나는 송은 멘션 이라고 불리는 빌라형 다세대 주택 월세를 살고 있다.
출, 퇴근을 하기 위해서는 주택 들이 길게 이어져 있는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드문 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의지해 집으로 걸어 가는 골목길.
골목길을 지날 때면 늘 한 단독 주택 집 문 앞에서 한기를 느끼고는 한다.
그 집은 겉으로 보기에도 지어진지 20년은 넘어 보이는 보통의 양식 주택 이었는데 대문은 파란색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철창형 이었다.
출근 할 때 그 집 앞을 지나치며 흘끔 쳐다 보고는 하는데 잘 정돈 된 화단과 보도 블록으로 안채 까지 짧은 길이 나 있는 평범한 단독 주택의 모습 이었다.
마당 한켠 에는 빨랫줄이 늘어져 있고 때때로 이불 빨래며, 옷가지 등을 널어 놓는 것으로 봐서 평범한 가족들이 생활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집 이었다.
그런데 왜 늦은 시간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한기가 느껴지는 것 일까.
아니... 해가 지고 난 이후 주변의 사물도 구별 하기 힘들 만큼 어둠이 내려 앉았을 때 만이 아니다.
주말이면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벗 삼아 여유로운 시간 이라도 즐기기 위해 슈퍼를 찾는다.
슈퍼를 찾을 때 에도 어김없이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제 겨우 붉은 노을이 떨어지고 있는 저녁의 골목길을 지날 때에도 유독 그 집 앞에서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저 느낌 일 뿐 일까. 그러던 어느 날.전 날 친구들과 늦게 까지 이어진 술자리 덕분에 결국 다음 날 술병이 나고 말았다.
출근 하자 마자 구토와 발열로 고생을 했다.
결국 나는 부장님께 몸 상태를 말씀 드리고 점심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반차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푹신한 침대와 휴식이 간절 했던 나는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에 거의 도착 했을 무렵 어김 없이 파란색 대문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적어도 80세는 되어 보이는 늙은 노파...지저분한 백발이 엉켜 산발이 되어 버린 모습...
백발에 가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늙은 할머니 임에도 불구 하고 커다란 눈과 새까만 눈동자...
눈 주위로 아주 깊게 파인 크레바스 같은 주름...
쩍쩍 갈라져 버린 손과 얼룩 덜룩 찌든 듯한 차림새 까지...
왠지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는 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모습 이었다.
할머니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쪼글 쪼글한 손으로 손녀의 것으로 생각 되는 여자 아이 모양의 헝겊 인형을 바느질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와 나는 대문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할머니는 나를 쫓기 라도 하듯 으르릉 크르릉, 으갸갸 라는 괴기한 소리를 내기 시작 했다.
나는 머지 않아 그 자리를 피했고 집에 도착 해 금새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혀 버리고 말았다.
그 날 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갈증을 참기가 힘들었다.
냉장고를 열고 살폈지만 물 한병이 없었다.
생수 한병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 그래. 늙은 노파..."
갑자기 슈퍼 가는 길이 내키지 않았다.
골목길을 마주 보게 되니 정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갈증도 만만치 않았던 데다 단순히 할머니를 마주쳤던 오후의 기억 때문에 이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자존심과 갈증 해소에 대한 욕망이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리고 파란색 대문...
그 집 앞을 지날 때...
나는 소름이 돋았다.등골이 싸늘 하고 피가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형체를 한 검은 형상이 대문의 철창 너머에 서 있었다.
금방 이라도 대문을 통과 해서 자신을 향해 다가 올 것만 같은 모습 이었다.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신발 바닥은 얼어 붙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팽창 된 동공은 점점 커지고 온 몸의 습기는 전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역한 냄새...
생전 처음 맡아 보는 역한 냄새가 비강을 찌르고 또 찔렀다.
대문 사이로 흐르는 질척한 액체...
어두웠던 골목길에서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도 할 수 없었다.
흐르는 액체와 더불어 점점 녹아 내리듯 사라지는 검은 형체...
모든 장면을 목격한 후에야 나는 발걸음을 뗄 수 있었고 꼬리뼈가 뽑히도록 집을 향해 내달렸다.
갈증도 잊어 버린채 나는 집 밖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소름과 우울감과 공포가 나를 지배하던 밤 이었다.
나는 이제 술 약속 따위는 잡지 않았다.회식 자리에도 나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 졌고 회사 업무에 있어서도 많은 지장이 생기기 시작 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 가고 싶었을 뿐 이다.
이후 그 집 앞을 지날 때 마다 할머니의 모습을 흘끔 흘끔 몇 번을 마주쳤지만 결코 집 앞에 머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해가 길었던 여름이 지나 가고 있었다.
해가 짧아 지는 가을이 되기 전에 이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집은 생각처럼 빨리 나가지 않았고 계약 기간 역시 상당 기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노을이 일찍 떨어지는 가을을 맞이 했다.
그리고 나는 퇴근 할 때 마다 그 이상한 일을 종종 겪어야 했다.
검은 형체와 참기 힘든 역한 냄새...
아니... 이상한 일이 아니라 피가 마르고 소름이 돋는 그 검은 형체와 다소 밝은 늦은 저녁에도 어김없이 마주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업무 상 시골의 한 돼지 농장으로 당일 출장을 가게 되었다.
농장주와 업무에 관한 내용을 상의 하고 농장을 둘러 보기 위해 돼지 축사를 찾았다.
그런데 이 냄새...
돼지의 썩은 소변 냄새...
이 익숙한 냄새가 내 코를 격하게 자극 했다.
그 냄새다.
검은 형체가 뿜어 내던 역하고 토할 것 같은 더러운 냄새...
"어째서..."
다음 날 출장을 마치고 회사에 들러 간단한 보고를 마친 후 부장님의 배려로 조금 이른 퇴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왠지 두렵고 꺼림칙한 마음을 애써 접어 두고 그 집 안을 유심히 살펴 보기 시작 했다.
잘 정돈 된 화단, 잘 정돈 된 보도 블록.
"잘 정돈 된 보도 블록?"
무언가 이상 했다.
보도 블록과 보도 블록 사이를 메우고 있어야 할 흙더미나 시멘트가 아닌 검은 기름 같은 것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저건 뭐지..."
그리고 그 순간... 집 안 창문...
아무 것도 보이는 않는 집 안에서 다시 기괴한 소리가 들려 왔다.
으르릉 크르릉, 으갸갸...
나는 다시 금새 용기를 집어 먹고 집으로 황급히 돌아 왔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 속이 가득 하던 그 날 밤...
밤 12시를 가르키던 시계...
우리 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문 밖의 정체 모를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실을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처럼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구냐고...
역시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이유 모를 두려움에 대뜸 경찰에 신고 부터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그 순간 가래 가득 낀 한 노파의 찢어 지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이... 사... 떡..."
세글자...
이 시간에... 이사떡 이라니...
온 몸에 소름이 퍼졌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할머니...그 파란색 대문 집 그 할머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에서 멀찌감치 떨어 졌다.
그리고 다시 찢어 지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이... 사... 떡..."
인터폰을 눌러 밖을 확인한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엄청난 공포감에 순간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폰으로 본 복도에는 그 노파가 나를 똑바로 쳐다 보며 서 있었고 노파의 바로 뒤에는 하얀색 실로 촘촘히 바느질 되어 있는 검은 형체의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할머니의 음성이 문 밖에서 들렸다.
"이... 사... 떡... 맛 좀 봐... 시루가... 아... 주... 잘... 쪄... 졌어..."
나는 방 한켠에 웅크린 채 지옥 같은 밤을 보냈다.
언제 돌아 갔는지 이른 아침 인터폰으로 확인한 밖의 풍경 속 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회사도 그만두고 그 집을 뛰쳐 나와 시골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내려 왔다.
몇 달간 부모님이 운영 하시는 읍내의 철물점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세면대 배관 부속을 구입 하러 들르신 추어탕집 김사장님께 물건을 찾아 드리던 중...
뉴스를 통해 우리 동네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되었다.
파란색 대문의 단독 주택...
대문이 활짝 열린 채 많은 기자들과 인파들로 인해 그 집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 이었다.
파헤쳐진 보도 블록... 한 구의 시체...
끔찍하게 바느질 되어 있는 한 여자의 시체... 고여 있는 피...
마르지도 땅 밑으로 스며 들지도 않은 채... 고여 있는 검은 기름 같은 썩은 피...대문 밖으로 녹아 내리듯 흐르고 있는 썩은 피...
그리고 원인 모를 심한 악취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진동 하고 있다는 기자의 보도...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이같이 끔찍한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기사 내용...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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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직접 쓴 자작 단편글 입니다. 여지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