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ann.nate.com/talk/318716815
결혼/시집/친정 "제사때문에 시댁에서 소외 받는 거 같아요" 관련
아주 오랫만에 톡을 올립니다.
날도 덥고, 장마라 습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시험없어져서 딸래미 둘은 아주 신난 한 학기의 끝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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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 : 글쓴이는 유치원 교사
시백부께서 주관하는 제사에 유치원 업무가 많아 일찍 가지 못하고 그걸로 사촌동서들끼리 학벌운운하며 비하했고 시어머니께서 격노하셔서 사촌동서들이 말도 못했고 집에 모며 기분좋았다는 내용
댓글의 댓글까지 18분이 글을 올리셨는데 잘못했다부터 시어머니께서 시키는대로 해라까지 다양하네요.
저도 아직 많은 경험을 한건 아니지만 가끔 제사에 대해 글을 보다보면 과연 이것이 보편적인 우리나라 여성들의 생각일까하는 의문도 듭니다.
제가 선친 돌아가시고서 제사를 주관하는 입장인 동시에 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둘째집인 경우죠.
저희 조부께서 5남매(4형제) 중 둘째셔서 증조부모, 고조부모, 현조부모(당숙 입장에서 고조부모) 기제사에 춘추 묘사, 명절 제사에 주막할머니(자손이 없던 분인데 증조부 어릴적 업어 키우다시피 하셨다는 인연) 제사까지 연중 11번의 집안 제사를 큰집에서 지냅니다. 거기에 큰할아버지/할머니 기제사를 포함하면 13번이 되죠.
적은 제사가 아닙니다. 물론 재종형님 말씀은 본인한테 오면 고조부모, 주막할머니까지는 묘사로 합치겠다고 공약을 하셨지만 앞은 10년? 20년? 뒤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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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어지면 옆으로 셀 수 있으니 각설하고 제사에 대해 이야기할까합니다.
제사는 과거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을 함께 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임란 이후)부터 장자봉사, 형식주의 제례의 극한을 치달으면서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강화가 되었습니다.
흔히 어른들께서 하는 옛날부터 그랬다는 건 조선후기부터의 관습이 대부분이죠.
문젠 한국적 전통에 있어 이 부분은 대단히 짧은 기간이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속법은 자녀들의 상속을 동일하게 두고 부양의무도 동일하게 둡니다.
이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전통과 부합되는 것 이해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제사에 있어서 장자봉사보다 윤회봉사, 심지어 외손봉사까지 있었다는 걸 모르는 분들 많죠.
외손봉사를 말하면 상놈의 집안이라 가로젓는 분들 계시는데 유성룡집안이 외손봉사를 받들던 집안입니다.
“풍산 류씨 입향조인 류종혜는 흥해 배씨 배상공과 함께 하회마을에 정착하였다. 이후 안동 권씨 권옹이 배상공의 손서(孫壻, 배소裵素의 사위)가 되어 하회마을에 살게 되었으며, 류종혜의 손자 류소가 다시 권옹의 사위가 되어 처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현재 풍산 류씨는 권옹을 위한 외손봉사, 배상공과 배소를 위한 외외손봉사를 하고 있다.
...(중략)... 권옹은 아들을 두지 못한 후사를 잇지 못한 배상공의 장남인 배소의 사위가 되어 하회마을로 이거하면서 흥해 배씨의 봉제사를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권옹 역시 후사를 두지 못해 사위인 류소에게 재산을 물려주는데, 이때 권옹이 모시고 있던 흥해 배씨의 외손봉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풍산 류씨는 권옹을 위한 외손봉사를 비롯하여 배상공과 배소를 위한 외외손봉사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이들의 봉제사는 류소의 장남 류자형(柳子泂)의 가계가 절손되어 차남 류자온(柳子溫, 류중영의 조부)으로 내려온다. 매년 10월에 묘제를 지내고 있다.“
펌 : [네이버 지식백과] 외손봉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전통민속마을),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류자온의 손자인 류중영이 류성룡의 부친입니다.
또한 제사는 다양한 인연으로 조상이 아님에도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 집안에서 주막할머니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예라 하겠습니다. 어느 집안은 난중에 주인을 보살피다 죽은 머슴의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는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과거 분재기에도 나와있듯 매우 균등한 상속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속이 장자에게 몰리기 시작한 시기가 임란 이후 조선 후기라 학계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데
그것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분재기 내용도 확인되구요.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89658&cp=nv
『조선시대 남녀차별의 시작 보여주는 분재기 발견… “여성 재산상속 후기부터 배제”』
재산의 분배는 곧 의무의 분배와 동일시 됩니다.
어떤 분이 제사를 맏이의 영역이라 칭하시며 재산도 더 받는다는 취지로 댓글다셨는데 지금 그렇게 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현격한 차이가 나도록 분배했다면 제사를 모실 목적으로 상속이 추가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나 이 경우는 언급이 없으니 함부로 논할 문제가 아니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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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유산(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을 물려받은 후손들의 공통적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남자건 여자건 예외일 수 없는 의무죠.
문젠 제사가 여자에겐 음식준비하는 노동이고 남자는 친족들끼리 모여 술먹는 자리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제사는 그 형식을 통해 친족간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음식 준비는 남녀 모두의 의무임을 인지해야 하며, 준비방식이 모든 음식을 무조건 집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몰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가면 좋다”라는 의식이 생기면 가지마라고 해도 갑니다.
남편이 시가에 가는 거나, 부인이 처가에 가는 거나 본인이 가면 편하다는 거죠.
가끔 여자분들 그런 이야기 합니다. 나는 시가에 가면 일을 하지만 너는 처가에 가면 먹고 놀다오니 좋지 않으냐.. 그러니 친정에 가자..
남자도 싫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동서, 처남이 술고래인데 본인이 술이 약하면 답도 없음.. 거기에 벌이 등 여러 사유로 눈칫밥 먹기 시작하면 못가겠다 말도 못하고 골병드는 경우도 적지 않죠.. 뉴스들 참고하시면 됩니다.
여튼 준비가 편하진 않겠지만 남녀구분없이 준비하고 사서 준비할 건 사서한다면 지금보다 불만이 덜하겠죠.
또한 앞서 언급했지만 제사는 후손 모두의 의무입니다.
큰집에서 하니 난 몰라. 맏이가 있으니 빠지자.. 아주 나쁜 행태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남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며 당신의 시부모, 장인장모가 스스로 난게 아닙니다.
그 조상이 있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죠.
처가제사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 많은데 조선 중기까지 이런 사례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습니다. 류성룡에게 사사받은 경당 장흥효의 기록에 보면 처가와 외가의 제사 참여 등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죠..
주자가례로 대표하는 유교(엄밀히 유교 학설중 하나인 성리학)가 엄격히 적용되는 조선 후기부터 거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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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에 언급한 톡쓰신 분 퐁듀님 글을 정리할까 합니다.
대학 학벌은 처음부터 사촌동서들이 언급은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치원 업무를 이유로 늦거나 안오면서 학과/학교에 언급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또하나 퐁듀님은 시어머니께서 막아줬다고 보시는데 제가 보기엔 시어머니께서 집안 말아먹고 계신 걸로 판단됩니다.
1. 정 심하다 싶으면 시어머님께서 밥상 엎는다시네요^^(시어머님이 조금 무섭답니다^^)
2. 그 때 찍소리도 못하는 사촌형님들을 보니 집에 갈때 절로 웃음만 나더군요..
솔직히 남편의 사촌 형들 취직시켜준게 저희 시아버님이라 아무말도 못하네요~^^
직장, 사회생활 해보신 분들 느낌이 오실 겁니다.
가진자의 권력..
우리가 이 정도 했는데 누가 시비거느냐.. 딱 이 모양샙니다.
큰집에선 자식들 취직시켜줬으니 말도 못하고 있겠죠.
거기에 시숙모님과 사촌동서는 일 핑계로 늦거나 안오기 일쑤고,
그러니 툭툭 몇마디 던지는데 그마저도 밥상 엎으며 상황 종료..
다른 시나라오도 있습니다만 감히 가정할 수 있는 다음 시나리오도 알려드린다면
드디어 시어머니께서 큰집 제사 가지마라고 선언
큰집에선 도움받은게 있어 냉가슴 앓다가 그냥 지냄
어느날 시백부께서 시아버지 술자리에서 푸념..
열받은 시아버지 집에서 시어머니와 부부싸움
시어머니 드러누우시고 시아버지께서 부부에게 일찍 가서 제사준비하라고 명령!
정확히 아셔야 할 것은 “남편 사촌 형들 취직시켜준게 시아버님”입니다.
시어머니가 아니죠.
시아버지와 시백부는 형제입니다. 우애가 돈독하지 않으면 1명도 아닌 조카들을 모두 취직시켜주진 않죠.
여기서 2가지가 나옵니다.
1. 집안의 결속이 있다.
2. 시아버지와 시백부는 친형제이다.
집안의 결속은 그냥 나오는게 아닙니다.
자주 보고 친밀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가 되거나 적당히 빠지자가 되면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회생활과 같죠. 아니 오히려 더하죠.
돈독한 형제관계는 부부관계 이상입니다.
흔히 홀랑벗고 어린 시절을 지낸 관계죠.
남녀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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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제사의무는 후손 모두에게 있다. - 장남, 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딸, 사위도 있다.
2. 제사준비가 불만이면 남자도 참여시켜라. - 1번과 이어서임
3. 가기가 힘들면 차라리 나눠라. - 제사를 돌아가며 지내라. 윤회봉사
4. 처가, 외가제사도 엄밀히 따지면 책임이 있다.
5. 제사 참여 안하는게 자랑이 아니다.
6.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기피하는 것은 핑계다. - 성경에 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하늘에도 제사를 지내는데 조상이 잡귀냐? 널 있게 한 분에 대해 예의다.
그게 싫으면 산소는 왜 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