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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기담 시리즈-조선, 한집안 엇갈린 운명의 여인들.

기담 |2013.07.19 06:47
조회 219,628 |추천 346

밤새 작업하고 자려다가..

출근길에 가볍게 보시라고 한편 쓰고 갑니다~~

 

오늘 쓰는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닌 조선왕후실록이라고 볼수 있어요.

그중에서 조선왕조 한 집안에 엇갈린 운명을 맞이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써봅니다.

댓글에 어떤분이 소재제공을 해주셔서ㅎㅎ

최대한 쉽게 쓰긴 했는데 좀 길고 어려울지 몰라요 이번편은..

 

 순서는 역대왕 순서 <세문단세예성연중 여기까지.>

 

소헌왕후 심씨

 

세종의 정비. 세종대왕님의 부인답게 인품이 매우 훌륭했음.

하지만 아버지인 심온이 사돈 잘못 만난(<-태종) 탓에 누명을 쓰고 역적이 됨.

소헌왕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함.

세종대왕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까봐 불안, 초조..

근데 이 사돈을 죽인 망할 태종임금이 또 시아버지라고 며느리 사랑은 지극해서

평소 현명하고 인품좋고 덕망 높은 며느리를 쫓아내기에는 미안했는지 안쫓아냄.

그래서 다행히 소헌왕후는 폐서인되지 않았고, 세종대왕님과 사이에 8남2녀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사셨음.

 

첫째아들 문종임금, 둘째아들 수양대군(세조), 셋째아들 안평대군, 넷째아들 임영대군,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 정소공주, 정의공주

 

(후궁 제외하고 세종대왕님이 소헌왕후에게서만 얻은 자식들)

 

다만 살아생전 흠이라면 광평대군과 평원대군, 정소공주를 일찍 잃었다는 것...

 

그리고 죽고나서 더 큰 흠이 찾아 옴.(딱히 소헌왕후의 흠은 아니지만..)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 됨.

 

현덕왕후 권씨

 

문종의 정비. 단종의 어머니. 앞서 나온 문종의 세자빈 휘빈김씨, 순빈봉씨가 폐서인 된 후 세번째로 세자빈이 되었음. 하지만 왕비가 된 후 단종을 낳고 3일만에 산고로 사망.

딸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 덕에 알려진 경혜공주(단종의 친누이)가 있음.

 

뜬금없지만 경혜공주, 지아비 정종이 단종을 돕다가 유배가게 되었는데 따라가서 도움.

 

비운의 여인임..남편 정종, 수양대군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함( 팔 다리 목을 줄로 묶고 소,말에다가 끌게해서 사지를 찢어 죽이는 벌. 육시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

 

경혜공주는 공주에서 노비가 되어 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노비로 사는데 신분은 공주 그대로였다 함.

 

*현덕왕후는 계유정난 이후 세조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이 벌어짐.

 

정순왕후 송씨

 

단종의 정비. 단종이 즉위하고 혼인하여 아내가 되었는데 얼마 안가 단종이 쫓겨나고 살해당하면서 평생을 홀로 살게 됨.

 

정희왕후 윤씨

 

세조의 정비. 정희왕후는 본인 자체의 비극보다는 자식적인 비극이 큼. 큰아들 의경세자 아들낳고 사망, 둘째 예종은 즉위 1년만에 사망.

 

항간에선..지아비인 세조임금의 악랄했던 과거때문에 벌받은 것이라고 함.

하지만 정희왕후는 죽은 단종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고 함.

 

안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1461년 세자빈으로 들어가 1468년에 예종이 즉위하면서 왕후가 되었지만 바로 다음 해에 예종이 사망하면서 25세에 청상과부가 됨.

 

폐비 윤씨

 

성종의 계비. 연산군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 있음. 역적의 자식이라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소헌왕후도 인품 덕에 폐서인 신세를 면했는데 꼭 그 이유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지아비인 성종임금의 볼을 손톱으로 할퀴었다는 이유로 폐비가 되어 사약 마시고 죽음.

 

거창군부인 신씨

 

 연산군의 부인. 지아비가 왕이 아닌 군이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처럼 ~왕후 시호가 없음. 다른 누명을 쓰고 죽었던 왕비들은 나중에라도 복권되었지만 이 여인은 아직도 거창군부인 신씨.

거창군부인 신씨인 이유는 그녀가 거창신씨여서. 폐비 신씨라고도 불림.

 

흔히 연산군하면 폭군, 장녹수를 떠올리지만 거창군부인 신씨는 그런 폭군의 성정을 잠재워주는 덕이 높은 인품을 가졌다고 함. 연산군의 폭정을 말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함. 그래서 연산군이 죽을 때 유일하게 보고싶다고 한 조강지처.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장녹수가 아니라 거창군부인 신씨.

 

재밌는 것은 연산군은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세조)의 아들 의경세자의 아들 성종의 아들.

한마디로 수양대군의 증손자.

근데 거창군 부인 신씨는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의 동생 임영대군의 증손녀.

한 형제의 증손주들끼리 결혼했으니 뭔가 이상하지만 조선 법상 가능했던 혼인이라고 함.

거창군부인 신씨가 그토록 집안의 평화를 중요시했던 이유는 임영대군이 형 수양대군의 악행을 목격한 후 은거하고 살면서 평소 가족들에게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자주 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함.

 

 

단경왕후 신씨

 

중종의 첫번째 부인.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정으로 임금이 되기 전 사가에 있을 때 부인이었지만 집안이 위에 거창군부인 신씨의 친정이었고,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폐서인 된 후 중종과 생이별 함. 평생을 먼 곳에서 지아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살다가 죽게 됨.

 

그리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

 

 

*계유정난

 

계유년에 일어난 난이라고 해서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큰아버지 양녕대군의 지지를 받아 임영대군, 정인지, 신숙주, 최항, 권람등과 함께 동생 안평대군과 그 지지 세력들(김종서, 황보 인,등등)을 무참하게 죽인 사건. 안평대군의 그당시 권력이 엄청났고 단종의 지지세력이었으니까.

 

임영대군과 신숙주는 직접적으로 계유정난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임영대군은 형의 만행을 방관한 꼴이 되어 너무 큰 실망감에 그 후 은거하며 조용히 살게 됨. 그래서 위에 말한 가정의 평화가 나옴.

 

신숙주는 당시 지방에 있었지만 계유정난에 간접적으로 관여해 원래 수양대군시절부터 친하긴 했지만 세조의 더 큰 신임을 받아 젊은 나이에 영의정에 오름.

 

(웃긴것은 정인지, 최항, 신숙주는 모두 안평대군과 절친했음. 다 배신했다는 소리. 그래서 신숙주 덕에 빨리 쉰다해서 숙주나물이 생겼는데 고령 신씨들이 정말 숙주나물을 싫어함. 안평대군이 역모죄로 죽고 그 식솔들이 노비가 되었는데 전편 정순봉 이야기처럼 안평대군의 식솔들은 대부분 일등공신 권람의 노비로 하사 됨.)

 

수양대군, 계유정난이 일어난 후 지지세력 없이 허허벌판에 홀로 서게 된 어린 조카 단종을 쫓아냄.

 

수양대군의 아우인 금성대군과 그 세력들이 지방에 있다가 단종복위를 시도하는데 들켜서 수양대군에게 죽음.

 

단종, 쫓겨나서 영월에 유배되어 지내다가 살해되었는데 전해지는 얘기로는 세조가 군사들에게 시켜서 활시위로 목졸라 죽였다는 얘기가 있고 단종을 죽인 뒤 시신을 그냥 강에 던져버림.

 

그 시신을 수습해서 잘 묻어준 사람이 엄흥도. 그래서 지금 단종 릉에 가 보면 엄흥도가 공신으로 있음.

 

얘기하면 한도끝도 없이 길어지니 여기까지...

 

그냥 한마디로 세조 임금은 후대에서도 역사적 재평가를 받지 못하는 나쁜...

 

이어지는 글이 10개까지밖에 등록이 안되네요..ㅠㅠ

이전 내용 링크 걸어둡니다~

 

http://pann.nate.com/talk/318737010 

 

추천수346
반대수34
베플용돼|2013.07.19 12:22
글쓴이님 아는게 왜케 많아요? 존경
베플흐귱|2013.07.19 10:23
수양대군은 영원 무궁토록 개잡넘 인두겁을 쓴 악마임
베플|2013.07.19 12:51
제헌왕후 윤씨는 폐비윤씨로 표기하는게 맞아요 제헌왕후라는 호칭은 연산군이 내린건데 연산군이 왕에서 쫓겨난뒤에 제헌왕후 시호도 없애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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