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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까지마 (스포주의)

웃기다 진짜. 너네는 봉준호감독이 만든 영화를 눈요기로 밖에 볼줄모르지?ㅋㅋㅋㅋㅋㅋ

 

겁나 뭐 강한 임펙트가 없네 생동감이 않넘치네 실망이다 어쩌구저쩌구

 

하긴 머리는 비어서 오로지지 눈으로만 즐기고 판단하고 지네들이 아주 되단한 평론가나셔서

 

생각은저 쓰레기처리장으로 넣어야될 썩은논리로 추천수 좀 받으니깐 뭐 눈에 베이는게없지?

 

설국열차는 그저 그냥 관객만 사로잡을려는 그딴 영화들하고 달라 알기나 하냐???ㅋㅋㅋㅋ

 

글구 그저 보여지는 영상그자체로만 판단하는 한국관객수준이 이정도니..........

 

당근 흥행적으로나 관객을 잡아이끌수있는 파워나 요소가 보여줘야된다고 생각은해 그치만

 

영화가 말하고자하는바가 눈앞에 보이지않고 익숙했던 흥미로운게 없으니깐

 

이지랄 들 이잖아   니네가 먼데??????? 봉준호감독 영화를 디스질.......

 

까지는 이해해  근데 그 썩은논리갖고 허벌리짓거리애들은 이거 꼭 봣음면 한다

 

영화를 보진 않은사람들은 잘모르겠지만 본사람들이면 정말 화들짝 할거야......

 

까는애들아! 니네가 이해는 가냐? 백번은 읽어도 너네는 모르겠지뭐

 

아 그리고 이상한논리짓거리는  애한테 말한다

 

뭐? 봉준호감독이 예술관에목맨 나머지 이렇게 된거래

 

설국열차로인해서 그거 하나잘잡았으면

 

미래산업육성은 끝나는거였는데, 경제회복할수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10만불20만불넘게 벌어들일수있는 기회를 놓치고 진짜 개지랄 하네

 

이건 진짜  빡쳐서 그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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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잡을 수 있어도 이 엄동설한에 오늘도 종종걸음으로 직업소개소를 향하는 100만 청년실업과 치솟는 물가는 잡을 수 없다.





예술은 인간사에서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여유가 있을 때 번창했고, 예술가 자신의 생각을 노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나 다름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어떤 사람들은 뛰어내려 죽기 바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철탑 오르기에 바쁘다.




사회는 여유가 없이 각박함만이 남았다.




새 대통령에게 경제, 복지가 우선이라고 닥달하는 것이나, 끊임없는 서민타령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상황에선 우리나라의 우수한 예술인들도 자신의 신념과 예술적 야망을 미뤄두고 산업계와 힘을 모아야한다. 국민의 일원으로서 희생하고 봉사해야한다.




흥행과 더불어 확실한 외화벌이, 거기에 산업계와의 상생의 길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예술계가 달려나가야 할 비상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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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가 머래냐???????????????????ㅋㅋㅋㅋㅋㅋㅋ 지가 머라도 나셨어

 

아주 대한민국을 지가 통치할기세야 ㄷㄷㄷㄷ 국민일원으로서 희생?????

 

멘탈이 저정도 밖에 안되는 아가하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수치스러울 따름이야

 

감독이 원하고 창조해내고 이뤄나가는 작품에 니가 뭐 보태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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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칸 = 인류의 역사. 

 

 

열차 칸의 순서가

모자와 신발로 표현되는 "계급"을 뜻함은 

영화홍보에서부터 익히 알려져 왔고,

 

그보다 흥미로운 설정은!

 

열차칸이 계급의 순서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맞춰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식인의 야만에서

벌레채집 - 사냥(물고기,동물) - 농사까지.

(=큰 승리 이후로 순조롭게 획득한 영역까지 )

 

커티스 일행의 혁명 1일차는

"식(食)"에 관한 인류의 전진을 뜻한다.

 

 

특히

커티스 일행이 겪게 되는 대규모 전투가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띄는데,

 

이는 인류가

자신들보다 더 육체적 능력(=도끼,투시경)이 뛰어난 동물들과

물과 "물고기"를 얻을 수 있는 생활권을 놓고서 다투는 상황으로,

 

고전하던 인류는 "불"을 발견함으로서 승리한다.

 

그렇게 물은 확보하였기에

그 다음 칸(=1단계 미래)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동시에 커티스 일행의 혁명 1일차는

식(食)뿐만이 아니라 주(住)의 변화도 나타낸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동굴(꼬리칸)에서

물가(급수시설, 샤워장) 근처의 생활권을 거쳐

농경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이런 열차칸의 전진은 

인류의 거주지 변화(=역사)를 상징한다.

 

 

 

 

# 인류의 변화 - 식(食)

 

 

2일차부터 지나가는 열차칸은

농산물 생산칸(=농경지)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 인류가

 

무계획적이고 초라한 채집과 사냥이 아니라,

정착한 지역의 환경에 따라 규칙(=균형,통제)을 지키는

식(食)을 중심으로 한 "생활양식의 변화"를 뜻한다.

 

이를 "1년에 2번만 먹을 수 있는 스시"를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동시에 폐쇄된 공간인 설국열차의 시스템을 설명하는 부분.)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 

그 거주지가 갖춘 혜택과 한계를 계산하고

식량을 저장(=사유재산)할 수 있게 된 인류에게.

 

그 조건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기 위한 균형.

"통제"가 필요하게 된다.

 

 

 

 

# 통제의 수단 - 교육

 

 

이처럼 "통제"의 필요성을 밝힌 다음

 

인류의 역사가 택한

그 통제의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곧바로 제시한다. 

 

바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해당 인간집단과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통제.

 

그것에 필요한 규칙과 사상들을

어릴 적부터 세뇌시키듯 집어넣어

가장 효과적이며 안전하게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

 

 

문제는 그 통제를 위한 교육이

해당집단의 권력자와 지배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그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세뇌는

중세시대에 보듯이 "종교"와도 밀접히 연결된다.

( =부활절 달걀을 연상시키는 삶은 달걀 선물.)

 

 

 

 

# 2가지 혁명(=시스템 탈출)의 차이.

 

 

그런 교육의 현장에서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번째 날부터 이루어지는 커티스 일행의 싸움은

 

교육되어 지는 지배체제와 통제에 대한

피지배층의 반발과 저항을 뜻한다.

 

이와 비교해, 첫 날의 전투는

동굴 속 원시인들이 농경사회를 구축하는

생존에 관한 혁명을 의미한다.

 

 

이런 두 혁명의 차이는

 

물(=생존권)을 확보했으니 멈추자 권하는 길리엄과

엔진실까지 가서 윌포드를 죽이겠다는 커티스를 통해

 

영화상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두 혁명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요소는

똑같이 물을 사용하는 공간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점.

 

첫째 날은 급수실(=생존)이었고,

둘째 날은 사우나실(=향락)을 배경을 하는데,

 

이는 각각 원시시대와 문명시대의 혁명임을 반영한 듯.

 

 

 

 

# <설국열차>가 진정으로 전하는 혁명.

 

 

하지만 영화는

커티스의 두 번째 혁명도 불완전하다 밝힌다.

 

설국열차 속 인간사회를 구축한

권력자 윌포드를 처단하는 계획이 성공한들,

 

누군가를 짓밟고 (=모두의 생존을 위해 일정인구는 죽어야 한다.)

공포와 불안을 동력삼아 (=열차 밖에 나가면 죽는다.)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점.

 

권력자만 바뀔 뿐이며,

이것조차 시스템에 포함된 계획의 일부이다.

 

 

이에 커티스가 좌절할 때에,

혁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남궁민수(송강호)이다.

 

그가 열고 싶은 문(=미래)은

열차(=현재의 시스템)를 바꿀 수 있는 앞쪽(=권력)이 아니라, 

열차의 바깥쪽(=새로운 이상향)으로 향하는 통로였던 것.

 

즉 열차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탈출하는 것!

 

 

 

 

결국 영화 <설국열차>는

 

변화를 꿈꾸는 인간들의 움직임이.

인류가 가야할 역사의 방향이.

 

진정으로 열어야만 하는 문(=미래)은

 

열차의 앞쪽이 아니라, 열차의 바깥쪽.

 

그 새로운 이상향을 향한

"현 시스템에서의 탈출"이라 전한다.

 

 

ex)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쯤??

 

 

 

 

# P.S ① - 늙음(=현재)과 아이(=미래). 그리고 지도자의 희생.

 

 

꼬리칸과 엔진칸의 두 노인.

 

현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안주하려는 기득권세력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늙어버린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은

 

미래로 나아갈 아이들을

현재를 위한 소모품으로 삼으며,

 

시스템의 균형을 위해

비인간적 폭력과 비극을 유도하고 정당화한다.

 

 

그 악순환을 벗어나

진정한 혁명 혹은 미래로 이끄는 동력이

바로 지도자의 희생이다.

 

잡아먹히려는 아이를 구해냈던 길리엄의 팔은

식인의 지옥에서 미래를 열었고,

 

엔진실에서 소모당하는 아이를 구한 커티스의 팔은

열차의 감옥에서 미래를 열게 된다.

 

 

 

 

추가로!!

 

윌포드와 길리엄이 비슷하게 커티스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두 팔로 안는게 좋다고 말하는데,

 

이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지도자로서의 희생"을 포기하고

현 체제와 타협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

(=커티스는 여자 대신에, 희생을 감수한 한 팔로 요나(=아이,미래)를 안아 끝까지 보호한다.)

 

 

 

 

# P.S ② - 길리엄과 윌포드의 관계

 

 

길리엄은 커티스에게

윌포드를 만나면 대화를 나누지 말고 바로 죽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길리엄은 과거에 윌포드를 만나

그의 말에 설득당한 것으로 보인다.

 

한 때는 훌륭했던 지도자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며 타락한 기득권으로 변모한 인물.

(=현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케이스.)

 

 

 

 

# P.S ③ - 양복 입은 요원(?)이 "요나"를 끝가지 노리는 이유.

 

 

끝까지 요나를 노리는 양복 요원.

 

그는 윌포드가 구축한 설국열차(=시스템)이 유지되도록

인간에게 행사하는 "폭력성이 의인화된 인물"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설국열차(=시스템)으로부터

"탈출"할 미래를 지닌 요나를 노린다는 설정인 듯.

 

 

 

 

# P.S ④ - 폭력 vs 폭력

 

 

혁명을 목표했던 커티스의 폭력도

결국은 설국열차 시스템 유지(=인구수 조절)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이는 양복 요원의 폭력과 마찬가지.

 

 

이처럼 같은 성격의 두 폭력성은

각각 권력계급과 피권력계급을 대표하며,

 

권력→피권력 = 위에서 아래로의 폭력 (양복요원↓)

피권력→권력 = 아래서 위로의 폭력 (커티스↑)

그 방향성만 다를 뿐 대칭구조를 이룬다.

 

 

이런 상징적인 구도는

 

열차가 U자 구간을 통과할 때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똑같은 형태의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 P.S ⑤ - "요나"의 탈출이 지니는 의미.

 

 

요나는

설국열차가 작동된 해에 태어나

오로지 열차 안에서만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18살 성인이 되는 해에

열차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처럼

새로운 이상향을 향한 문(=미래)으로 나가는 것이

 

열차(=현재의 시스템,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의 성장이라는 의미쯤 되는듯.

 

 

 

 

※ 사족 ①.

 

남궁민수가 커티스에게 열차 밖에 대해서 말하다 멈춘 내용은, "북극곰(≒희망)을 봤다."로 추측된다.

 

 

※ 사족 ②.

 

영화가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다루는 시선이 무척 건조한데,

 

이는 인간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숫자로 계산하고, 몸집에 맞춰 도구로 취급하는

열차(=시스템)의 비인간적 비정함. 그 삭막한 정서의 반영인 듯.

 

 

 

 

 

스포 죄송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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