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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음악가 시리즈② - 피아노계의 진정한 젠틀맨, 프란츠 리스트.

|2013.08.05 02:37
조회 4,967 |추천 52

※ 그런데 PC로 쓸때 어떻게 써야지 모바일로 볼때도 문단구분이 되죠?...ㅠㅠ

알려주실 분.. :(( 그리고 링크는 최선을 다해 찾아보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돌아왔습니다!! 헤헷♥


약속드렸던대로, 이번에 이야기해드릴 분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 리스트입니다.

부제목에 피아노계의 파가니니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 재능과 기교면에서 거의 파가니니와 동급이다. → 피아노계의 파가니니다. ]

 

음... 대충 이렇게 된건데....

 

자꾸 파가니니라고 앞에 수식어를 붙히다 보니까 어떻게 선입견(괴팍한성격, 좋지 않은

이목구비, 악마)이 생기실지 몰라서;; 다른 부제목을 모색하다가 갑자기 똭! 떠올랐습니다.

 

이 분의 일생은.. 천재적인 선천적 재능빼고는 파가니니와 닮은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색

할정도로 다른 분(멋진 분)이십니다!ㅠㅠ ( 파가니니가 안멋지다는건 아니에요 :) )

이 분에 대한 일화를 읽으면서... 저 조차도 여자로서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빨리 들려드리고 싶네요. 시작할께요 :)

 

 

② 피아노계의 진정한 젠틀맨, 프란츠 리스트. [Franz(Ferenc) Liszt, 1811.10.22 ~ 1886.7.31]

 

 

 

[Franz(Ferenc) Liszt, 1811.10.22 ~ 1886.7.31]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분들 중, 한 분이신.. 프란츠 리스트야! 헿헿헿♥

 

이 사람을 내가 피아노계의 진정한 젠틀맨 이라고 소개한데에는 이유가 있겠지?ㅋㅋ

정말 지금으로 따지자면 소히 말하는 완벽남♥ 19세기의 대스타, 클래식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음악가 중 한사람이야.

 

이 사람의 인생에서 비극이 있었다면.... 너무 빠르게 찾아온 성공정도?

 

흠흠.. 횡설수설 하지말고 이 사람의 성장기부터 돌아보자면..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어.

(그런데 헝가리국적인 이유는... 흔히 지금의 이민을 갔기 때문이라고 보면 되.

리스트는 그렇게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냈어.)

 

이 사람은 음악가들의 필수조건 중 하나인 열악한 환경을 다행히 빗겨나갔어.

 

리스트의 아버지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이자 부자인 *에스테르하지가(家)의 토지

관리인(집사)였거든.

 

[ *에스테르하지가(家) 기억해둬! 3탄에서 다시 나올꺼야... 3탄이 누군지 어느정도 알겠지?ㅋㅋ]

 

어느 아버지가 그렇 듯, 이 사람의 아버지도 자신의 자식이 더 나은 삶,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하고 하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랬어.

 

그래서 리스트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뒤로, 여섯살때부터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어. 

 

(참 운이 좋게도 이사람의 아버지는 대단한 음악애호가여서,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었지만

리스트를 적극 지원해주고 음악적 재능을 한눈에 알아봐주었어.)

 

당연히 타고난 재능과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덕에 그의 실력은 날로 갈수록 늘어갔고,

악보없이도 자유자재로 피아노를 다룰수 있게 됬지.

 

이 사람의 데뷔는 파가니니보다도 무려 6년이나 빠른 8살에, 공개연주회를 열게 되면서 이루어

졌지. (왜 자꾸 비교하게 되는거지..?ㅋㅋ)

 

난 이 분에 대해 계속 공부하면서 들던 생각이 이거였어. "운 억수로 좋네!"

 

첫 데뷔연주회는 당연히 성공의 대성공을 거두었지~

화려한 데뷔와 함께 거액의 장학금까지 모일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어.

 

이 사람의 아버지는 이 길로 LTE의 속도로 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를

갔어.

 

이 뒤 부터가 진짜 중요해. 이제부터 리스트의 인생의 첫 막이 열렸다고 보면 되.

 

리스트는 빈으로 이사가서 정말 많은 음악가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고.. 인맥을 넓혀갔어.

 

(친구들한테는 거의 이 부분부터 제가 따로 정리해놓은 노트에 그려져있는 그래프를 보여

주면서 하는데...ㅠㅠ 저희집에서는 스캐너가 음슴으로 주말쯤 되야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ㅠ

조금 복잡해서 그래프보시면 이해가 조금 빠르실텐데..ㅠㅠ)

 

이 사람은 태어난 시기부터가 운이 좋았어.

 

온갖 음악계의 거물들이란 거물들은 거의 다 이시대에 살았거든.

 

리스트의 첫번째 인맥의 주인공은, 당시 베토벤의 제자로 유명한 카를 체르니 (Cari Czerny)

였어.

 

이때 딱 나오는 지인들의 가장 많은 질문.

"피아노 교본 체르니? 100, 30,40 하는 그 체르니?"

 

응. 맞아.

여러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 체르니.

 

다들 어렸을적에 피아노 한번씩 배워보지 않았어?

바이엘 졸업하고 체르니 들어가고 싶어서 선생님 조르고 그랬던 추억 없었남?

 

난 그랬는데..ㅋㅋ

체르니만 쳐도 뭔가 피아니스트라도 될 것처럼 체르니에 엄청 집착했는데ㅎㅎ

 

( 잠깐 이 체르니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사람은 베토벤의 제자였지만

예술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에 가까웠기보다는, 현실적인 음악선생님 겸 작곡가였어.

 

그 만큼 아이들과 교육을 사랑하고 일생동안 음악교육에 전념하면서, 작곡활동을 해왔는데

그때 만들어진 곡들이 그때 그시절 우리가 배웠던 체르니교본이야.

 

이 사람이 만든 곡들은 거의 다 연습곡 형태(형식이 매우 잘 지켜지고, 기본기가 출중했거든.)를

띄고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좋은 교육용 연습곡집으로 쓰이고 있지. )

 

다시 리스트에게로 돌아오자!

 

리스트는 꽤 대담하게 그 시절에는 거의 신급으로 숭배되었던.. 그 당시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를 찾아가서, 그 자리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를 연주했어.

 

이런 리스트의 천재성에 감동한 체르니는 일체의 돈을 받지 않고, 오로지 그에 대한 기대와

열정만으로 그를 가르치게 되었어.

 

그런 스승의 열정에 보답하듯이, 리스트의 실력은 계속 급부상해갔지.

 

리스트는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관심이 많았어.

 

시대를 잘 타고난 덕과 인맥덕분에,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살리에리에게 그 작곡을

전수받을수 있었지.

 

( 음... 오프라 윈프리한테 토크를 배우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ㅋㅋ 그만큼 살리에리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궁정악단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 당시 베토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사람 중 한 명이거든. )

 

그렇게 쑥쑥 자란 리스트는 11세때, 빈에서 첫 독주회를 열게 되었어.

 

아무리 신동이라고 했지만, 음악의 본고장이었던 빈(온갖 날고기는 음악가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에서 겨우 11살밖에 되지 않은 남자아이가 독주회를 열었다는건..... 그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어.

 

( 이 자리에는 베토벤까지 참석했다고 해. 베토벤은,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마음이 끌려 빈

에서의 리스트의 독주회에 참석해서 그 연주를 듣고, '이 터키인 꼬마 녀석아, 참 대단한 놈

이구나.’하면서 입맞추었다는 일화가 있어. 아아, 터키인이라는건 베토벤의 착각이고~ )

 

반응또한 파격적이었지.

 

그의 독주회가 끝난 이튿날... 그에게는.............

"우리들 속에 신이 있다."는 최고의 찬사가 쏟아졌어.

 

그 길로 또 우리 리스트의 아버지께서는 LET-A의 속도로, 바로 파리의 음악원으로 향했지만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하고(그 당시는 아무래도 옛날이다 보니까.. 인종

차별주의가 심했지.) 독학과 개인레슨으로 실력을 다져나갔지.

 

될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된다고 그는 그렇게해도 부족함없는 실력을 다져나갔지.

 

그로부터 몇 년뒤, 그는 화려한 외모와 기교를 뽐내며 보란듯이 파리의 관객들을 확! 사로잡는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등장했어.

 

으응? '화려한 외모'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고? 응, 기분탓이야.

..............알았어, 조용히하고 글이나 쓸께.

 

그렇게 스무살의 리스트는 이미 스타중에 스타였어. 하지만 아까 말했지. 이 사람의 인생의

비극이 너무 빠르게 찾아온 성공이라고.

 

갑작스러운 성공과 함께, 부담과 회의를 느낀 그는 돌연 성직자가 되기를 열망했어.

 

하지만 이 사람의 아버지가 정말 극성이었지. 요즘 강남엄마 뺨치게 대박이야.

(강남의 어머님들.. 본의아니게 비유적표현이 이래서 죄송합니다.ㅠㅠ)

 

드디어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동경해왔던 음악가의 길을 걷게되고, 클래식계의 샛별로 떠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됬는데.. 이 인기절정의 순간에 성직자가 되겠다고? 말이 되?

 

결국, 리스트는 너무도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때문에 꿈을 접고.. 파리를 거점으로 하는

그 유명한 연주여행을 떠나게 됬어.

 

하지만 이 여행길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커다란 슬픔에 빠지게 됬지.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었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도 큰 고통으로 다가왔어.

 

감당할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

 

 

이 때, 그의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렸어. 결정적 계기를 맞이하게 되.

 

그건 바로...............

 

 

 

...........................

 

 

 

..........................

 

 

 

............................

 

 

 

 

 

................파가니니..............!!................

 

(사적감정을 배제하고) 리스트 이 사람이 만약 이 때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어느정도 음악사 공부를 해왔던 사람들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수 있을꺼야.

"파가니니가 없었다면, 리스트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것이다!"

 

그 정도로 리스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인물이 바로 파가니니라는 거야.

 

파가니니는 음악사 뿐만 아니라, 훗날의 피아노계의 전설. 리스트의 인생에도 커다란 한

획을 긋게 된 거지. (그 당시의 음악가들에게도 충격을 준건 마찬가지였지만, 리스트에게는

의미가 조금 남달랐어. 그의 인생 통째로 바꿔놓은게 되니까.)

 

파가니니의 신들린 듯한, 그러니까 화려한 기교로 무장한 연주를 듣고 감격한 리스트는

이렇게 외쳤어.

 

"나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던가 아니면 미치광이가 되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격이 너무 컸나봐.....

 

 

 

 

장난이야ㅋㅋㅋㅋㅋㅋ

 

 

 

 

그런데 파가니니에서 끝이 아니야, 충격은 연이어 찾아왔어.

 

리스트가 시대를 잘 타고난 이유가 아까 뭐랬지?

이 때(19세기 초~ 19세기 말)로 말하자면 서양 음악사를 쥐고 흔들던 사람들의 전성기였어.

 

이 시대에 살아있던 사람들이 서양 음악사의 거의 5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되.

이 때를 거론하지 않고서는 음악사를 아예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이 때는.

 

그 시기에 살아 계시던 또 하나의 전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라는 곡을 듣게되.

 

여기서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해야되는데...;;

 

클래식 공부를 하고 계시다는 분도 계시고... 혹시라도 이 부분을 읽고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실 분도 계시지 않을까 해서.. :)) 조금 적어볼께. 너무 자세하게 이해하려고 하지마.

 

이 부분을 조금만 자세히 쓰더라도 이것만 1시간 내내 설명할수 있을정도로

초심자들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니까 :)

 

이 때에는, 리스트의 주 관심사는 '고정악상'기법이었어.

쉽게 얘기하자면.. 표제음악에서 그냥 고정된 관념을 나타내는 선율.

(그런데 이거 하나만 알아둬. 기초이론 같은게 아니라.... 하나의 표현기법중에 하나야.)

 

표제음악은 무척.... 추상적개념이라서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손짓발짓을 해가며

떠든대도 크게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 못할지도 몰라.

(막 무시하고 그러는거 아닌거 알지?ㅠㅠ 초심자배려를 위해서니까.. 오해하지 말아줘ㅠ

하트 뿅뿅!)

 

여기까지만 알아둬.

 

암튼 이 사람은 이걸로 작품의 뼈대가 되는 '고정악상'기법에 주목하게 됬고, 이를 계기로

표제음악의 방법론을 터득하게 되었어.

 

 

마지막 3연타!

이 무렵 파리에서 갓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인! 병약한 청년인 쇼팽과의 만남은 리스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지.

 

정말 너무나도 빠른순간.... 그의 인생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가게 된거야.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친 충격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습하는 등, 그의 인생의 열정기를

맞이하게 되.

 

그 어느때보다 음악에 대한 열의가 가득차게 되었지.

 

 

 

 

 

 

 

그렇다면 이제 그가 왜 피아노계의 전설로 남게 되었는지 알아볼까?

 

 

그는 정말 '피아노의 신'이라고 불릴만한게,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흉내낸것과 같이,

 

그는 고작 피아노 한대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당당히 맞설수 있을만큼의 소리를 구사해냈어.

 

이건 정말 기교라는 말로 표현할수가 없어.

피아노를 만든이조차도 피아노로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을꺼야.

 

리스트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피아노에 강렬한 관현악적 색채미를 가미했다는 점과...

 

[ 음과 음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걸 '레카토'(흔히 피아노 연주할때 이음줄로

표시되어 부드럽게 연결되는 음들)라고 하는데, 이 레카토를 첼로나 호른과 같이 폭이 넓고

감미롭게 표현해서 오케스트라에서 주를 이루는 현악기와 관악기소리를(어쩌면 오케스트라

보다도 더 풍부하게) 낼수 있었지. ] ← 안 읽어도 됨.

 

즉, 한마디로 그냥 기교와 같은 것만으로 오케스트라에서 관현악기의 음을 (때로는 피아노로

파이프 오르간과도 같은 효과를 냈어.) 다채롭게 표현 할 수있었다는 거야.

 

이것들은 모두 어떤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리스트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음향능력을.. 그 매커니즘을 최적화한 최초의 음악가라는 거지.

 

그래서 리스트를 기점으로 지금까지도 피아노연주만으로 귀족이 모인 살롱에서 벗어나 수천 명

관중앞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당당히 맞설수 있게 되었어.

 

또다른 리스트의 매력은... 연주에 즉흥성이 있다는 거야.

그는 어딜가서 같은 작품을 연주할때마다... 표현을 달리했어.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볼까? <헝가리광시곡>정도.

이건 재미없으니까 패스!

 

 

그리고 리스트또한 파가니니 못지 않게 굉장히 똑똑했어.

 

혹시 '리사이틀'이라고 알아?

가끔 예술의전당 같은데에서.. 피아니스트들이 하는거 있잖아.

진보라 리사이틀... 이희아 리사이틀... 이런거.

 

리사이틀 형태의 공연을 처음 시작하고, 이 '리사이틀'이라는 용어를 제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리스트야.

 

1840년 런던에서 리스트가 독주회를 가졌을때부터 사용되었지.

 

독주회랑 거의 비슷한데... 연주자가 교대로 출현하는 연주회랑은 다른 개념이지.

완전히 한 연주자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연주회.

 

지금은 독주회랑 리사이틀이랑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니스트가 혼자 연주회를 이끈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어. 이 사람이 처음이었지.

 

그는 등을 돌려 연주하던 기존의 방식또한 깼어.

 

피아노를 측면으로 배치함으로서 자신의 기교를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어.

(우리가 지금 피아노연주회 같은데 가면, 측면으로 볼수 있는것도 다 이사람 덕분이야ㅋㅋ)

 

기교가 파가니니급이라고 했지?

어땠겠어... 손가락이 건반위에서 날라다니고... 아주 난리가 났겠지.

 

이렇게 신의 경지에서 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에.. 여자들은 감탄을 자아냈어.

 

 

 

특히.. 나도 좀 설렜던게ㅋㅋㅋㅋㅋ

 

이 사람은 평소에 손보호를 위해 녹색 벨벳장갑을 끼고 다녔거든?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장갑을 벗는 순간을 여인들이 가장 좋아했대..ㅋㅋㅋㅋ

 

뭔가 설레지 않아?.. (또 나만 이상한거야?)

 

한 신사가 깔끔한 연회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나와서 피아노에 앉아.. 손에 있는 가죽장갑을

멋있게 똭! 벗자... 그 남성적인 큼지막한 손(일반사람들보다 1cm나 더 길었다고 해)을

하얀색 건반위에 올려놓고... 음악에 취해서 화려한 기교를 펼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봐!

멋지지 않니??

 

그리고 그는 연주가 끝나면 관람석으로 내려와 청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어.

기발한 무대연출과 매너까지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으로 리스트는 자신만의

연주회를 창조해냈지.

 

그렇게 맨 처음 열게된 리사이틀형태의 공연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의 연주를 들은 청중들은 이렇게 말했어.

"연주솜씨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참네....다 악마한테 영혼을 팔았대?'

그 정도로 파가니니와 맞먹을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거야.

 

피아노계의 파가니니... 그가 왜 이렇게 불렸는지 이제 알겠어?

 

이걸 계기로 당시 리스트는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가 되었어.

가는곳마다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으며, 특히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의 인기는 대단했지.

 

그는 30대 후반에는 어떤 귀족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초대되어서 피아노는 물론,

오페라와 관현악등도 작곡하게되었는데.....

 

조금 특이한게.. 리스트는 일찍이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등등

많은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을 했거든?..

 

이러한 시도도 이 시기에는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볼수있어.

 

왜냐면 당시에 관현악을 동반하는 교향곡은 연주회에 가야만 들을 수 있었거든.

 

그런데 리스트의 편곡 덕분에 베토벤의 교향곡과 같은 대작을 살롱에서도 감상 할 수

있게 된거야. (나쁜게 아니야, 귀족중심의 음악을 대중적시각에 맞춘거지.)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었어.

 

그는 편곡하면서도 자신의 뚜렷한 색채미를 지니고, 잃지 않았어.

당연히 편곡한 곡과 작곡한 곡들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고.

 

 

 

여기에 리스트 하면 또 하나 빠질수 없는 것! 화려한 인간관계였어.

 

그는 피아노는 체르니에게 직접배우고, 작곡을 살리에리로부터 배웠고.. 베토벤한테

입맞춤까지 받은 사람이야.

 

게다가 아까 쇼팽도 리스트 인생의 3번재 홈런의 주인공이었고. 쇼팽에게 조르주상드를

소개했고, 브람스등을 도우며 친분을 유지했어.

 

여기서 끝이 아니지!

 

젊은 시절의 리스트는 화가 들라크루아, 작가 발자크와 스탕달, 음악가로는 멘델스존과

베를리오즈, 파가니니와 교류하며 가깝게 지냈으며....그들과 영감을 주고 받으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넓혀갔어.

 

파가니니가 거미손이면, 이 사람은 거미인맥!ㅋㅋㅋㅋ

 

 

마지막으로 리스트 하면 빠질수 없는 것.

 

바로 도덕적 소양이야.

리스트는 상류층으로서 도덕적 책무도 절대 잊지 않았어.

 

부인 마리와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던 중 호수에 휩쓸린 헝가리(조국)의 참상을 듣고는

수해복구 성금을 모으기 위해 17일간 조국에 머무르며 총 9번의 연주회를 개최했다고 해.

 

당연히 수익금 전부는 피해자들에게 기부했지.

 

<성 엘리자베트의 전설>, <파도를 넘는 파울라의 성 프란시스코>와 같이 종교적색이 강한

곡들(모두 소망또는 기원을 담고 있었으니까)은 모두 이 사람이 헝가리에 머물때 작곡된 작품이야.

 

그렇게 리스트는 헝가리에 잠시남아서 젊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1886년에 딸 코지마가

있는 독일 남부의 도시 바이로이트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러 갔다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하게 되.

 

참고로 리스트의 딸 코지마의 남편이 바그너야.

즉, 리스트와 바그너는 장인어른과 사위의 관계라는거지. 그런데 둘이 친구다.

 

바그너는 1813년생, 리스트는 1811년생.

 

..ㅋㅋㅋㅋ 이 얘기는 다음에 바그너편 할때 더 자세히 할께. 이 사람도 대단한 거물들중 한사람

이지만 무척 재밌는게 많아.

 

 

그는 천재적인 선구자로 불리는 몇 안되는 음악가 중 한명이었어.

 

하지만 그에게도 또 하나의 비극이 있다면...

너무 대중을 위한 음악을 추구했다는 사실 정도.

 

그의 열정, 경쟁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꼭 본받아야해.

 

생각을 해봐.

 

이 사람이 파가니니를 보고 "아,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가 아니라...

 

"헐.. 저런 천재가 있었다니... 난 안되... 저런사람이 있는데에서 난 뭘하려고 한거지.."

이러면서 낙심했다면?

 

우리는 음악사 가운데 천재적인 선구자로 뽑히는... 이 위대한 사람을 잃게 됬을꺼야.

 

 

마지막으로 이 사람이 작곡한것들 중에 가장 유명한 <헝가리광시곡><초절기교 연습곡>

그리고 <성 엘리자베트의 전설>을 놓고...가고 싶은데...ㅠㅠㅠ

 

링크 클릭클릭! 

 

성 엘리자베트의 전설에 대한 동영상이나 mp3파일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ㅠㅠ

미안해...ㅠㅠ 대신에 다음 판은 더 알차게 준비해서올께♥

 

진짜 열심히 쓰긴 했는데.. 막 대충쓴것같고.. 많이 못알려준것 같아서 미안해 죽겠다..ㅠㅠ

다음 판은 진짜 알차게 속이 꽉!꽉! 채워서 돌아올께! 금방올께! :))

 

 

 

....

 

 

 

 

이번 판은 댓글에 재미없다고 달려도.. 뭐라 할말이 없을것 같습니다.

 

내용 자체도 그렇고...너무 학구적으로 판 것 같아서 중간중간 드립을 치기는 했다만..

맘에 드실지도 잘 모르겠구요..ㅠㅠ

 

다음판은 정말 열심히 준비해오겠습니다 :)) 기다려주신분들께 감사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로 궁금한점을 문의하시면 실시간으로 대답해드립니다 :))

 

 

 

 

 

 

 

 

 

 

 

 

 

기담 채널에 와보니.... 기담시리즈가 사라졌더라구요.

그래서 깜짝놀라 검색을 해보니 '세기의 기담'이라는 신규채널을 만들어서

옮겨가신것을 봤습니다.

 

혹시 저때문인가 싶어 사과드리려 기담님의 최신글을 열었는데...

 

...

...

 

 

 이렇게 관대하실수가....ㅠㅠ

 

기담님께는 본의아니게 제가 침범한것 같아 죄송하다고 댓글로 사과드리며..

감사하는 의미에서 고려 중이었던 사라사테 이야기를 5편 또는 그 후편으로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식을 빌려주시고...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신 기담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제 글도 어느정도 시리즈가 완성되면... 예술에 관련된 채널을 따로 만들까 생각중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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