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제가 돌아왔습니다!ㅎㅎ
여러가지 일로 거의 3주?만에 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욕도 안해주시고 이렇게 묵묵히 기다려주시다니...ㅠㅠ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여러가지 일이.. 여러분에게 더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기 위한 정보수집의 과정이라면
더 좋겠건만...ㅠㅠ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들이 자꾸 꼬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정말 제 글을 읽어주신 많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이야기는 훨씬~ 많이 남아있으니 걱정마세요! 제가 시간이 없을 뿐입니다 ^^;;)
어떤분께서는 정말 제 인생에 몇 없을것 같은 극찬까지 해주셨고..
또 어떤분께서는 오타도 알려주셨고..또 다른 어떤분께서는 현기증난다고까지 말씀 해주셨
습니다. (다들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드립을 치고 재밌게 이어나갈테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면서,
엘레베이터 기다리시면서라도 좋으니 가볍고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하는게 제 작은 바람입니다.
..
보시다시피,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파파, 하이든! 입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한번쯤 들어보셨죠?
그냥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이라고 쓰니까 너무 딱딱해보여서 파파라고 붙혀봤어요ㅋㅋ
이 분의 실제 애칭이시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는..ㅋㅋ
저번주 주말에 저희 언니랑 개구쟁이 스머프2를 보고.. 글을 쓰려고 하이든에 관한 책을 읽는데..
거기 나오는 파파 스머프가 딱! 떠오르더라구요 :)
(실제로도 당시 이 분의 애칭이 '파파'였다고 합니다.
키가 작고 땅딸막한 몸매에 유머가 넘치는 하이든을 당시의 사람들은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렀거든요 :)) )
간단히 하이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음악사를 쥐락펴락 하셨던... 클래식계의 거장이시죠.
이분은 특히 놀라운 센스와 기발한 아이디어.. 그리고 온화한 성품과 리더십으로 무척
유명하답니다 :)
[ 음악을 전공하시는 분들께서는 음악가 하이든이라고 하면...
18세기의 빈고전파를 대표하며.. '현악 4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며, 소나타 형식을 완성해
주신 아주 감사한 분이시죠ㅋㅋ ]
흠흠.. 암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③ 파파, 하이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3.31 ~ 1809.5.31])
네이버 백과사전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은 바흐나 헨델의 반세기 뒤에, 그리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귀여운 첫 미소를 짓기 사반세기 전에 태어났다."
재밌네....ㅋㅋ
모두 많이 기다렸어? 미안해ㅠㅠ 정말 너무 많이 바빴어ㅠㅠ
오늘은 이 옆집할아버지 같이 생기신 하이든의 이야기를 들려줄께 :)
이 하이든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전 사람이야.
꽤 오래전 사람인데도...그의 온화한 성품과 리더쉽은 현재까지도 유명하게 전해지지.
맨 먼저 하이든의 성장기를 돌아볼께!
이 분은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도시인 로라우에서, 1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어.
이분의 아버지는 마차 수리공으로 평소 음악을 좋아해서 아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킬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지.
이렇게.... 이사람은 불행히도 음악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6살때 삼촌에게 맡겨져서, 교회성가대에서 노래하면서 여러가지 악기의
연주법을 배울 수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은건 아니었어.
그렇게 2년 뒤, 8살때에는 빈에 있는 성 슈테판 대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지만 17살때 변성기가
와서 성가대에서도 쫓겨나고.. 빈에서의 방랑생활이 시작되지.
꾸준한 수입없이 주일예배의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헐값으로 레슨을 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해나갔어.
그야말로 가진것 하나 없는 열혈청년의 비참한 생활.. 그 자체였지.
하지만 이런 비참한 생활속에서 하이든은 음악가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이어 나갔기에 지금의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이 있는거겠지?
혼자 독학으로 음악이론과 작품을 연구하였고, 독학으로 바흐의 대위법까지 깨쳤어.
(그 당시 이걸 독학으로 할 생각을 했을 줄이야...ㅋㅋ 그냥 천채라고 보면 될 듯! )
꾸준한 그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지 :)
이탈리아 작곡가인 포르포라의 눈에 띄어서 성악 레슨의 반주자로 일하게 된거야.
이게 왜 결실을 맺은거냐고?
하이든은 일하면서 포르포라의 지도를 받게 되었거든. 작곡과 피아노.. 등등 여러가지로.
그의 실력은 그렇게 점차 늘어갔어.
그리고 27살엔.. 보헤미아 모르친백작의 음악대 악장으로 취임해서 그 유명한 <교향곡 1번>을
완성하게 됬어. (링크 클릭클릭!)
[ 그 당시의 하이든의 소나타형식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지. ]
그때 당시 하이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계기로, 이 교향곡을 작곡하게 되었는지는..아직까지도
잘은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이 교향곡 1번이 이 사람 인생에 대단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면 되.
이 이후로, 이 사람은 살면서 총 360곡정도를 교향곡을 작곡하게 되는데..
이게 그 대단한 서막의 시작이었으니까.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진짜 음악인생이 이제 시작되는거지.
그렇게 모르진 백작의 악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빈에서 이발사의 딸인 '마리아'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됬는데 불행히도 그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어.
마리아라는 이 XXX이 하이든보다 연상이었거든? 그래서 교만한건 물론, 기도 세고.. 시샘도 많고
우둔하고.. 착한 남편 하이든의 바가지를 아주 벅벅 긁어댔지.
남편이 착해서 다 받아주니까 아주 그냥 눈에 뵈는게 없어요...
착한 하이든은 아내를 이기지 못하고, 그냥 부양하고 살았어.
그 당시에도 이혼은 제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이 힘든거고.. 타고난 착한 천성때문에
꿋꿋히 이겨내고 살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모르친 백작에게 고용된지 2년뒤, 그의 전속 악단이 해체되지만..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이 오는지!.. 로또에 당첨되게 됬지!
그는 이걸 계기로 그 당시 유럽 최고의 영토와 재산을 가진 에스테르하지가(家),
정확히 말하자면, 빈 근교의 아이젠슈타트 성의 주인인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관현악단의 부악장에 임명되었고 드디어 그의 본격적인 음악인생을 펼치게 됬어!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은 그가 가진 토지만큼이나 크고 넓었단다.
악단운영과 음악지원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하도록 간섭을 하지 않았어.
또한 그 당시의 궁정악단은 요즘의 평생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이렇게 좋은
고용주밑에서 원 없이,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할수 있었던건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었어!
그곳에서의 31년동안 하이든은 음악적재능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
게다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교향곡을 만들수 있었고, 그 당시 이러한
혜택을 누리며 창작활동에 임할수 있었던 작곡가들은.. 거의 없었어.
이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여기서부터는 이제 정말 재밌을꺼야 :))
이 사람의 유머감각은.. 정말 예술적이었어.
하이든은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동료와 후배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던 음악가야.
그의 작품을 보면 유머와 위트를 물론이고, 인간적인 리더십의 향내까지 묻어나지.
대표적으로 <고별교향곡> (특히 4악장) 이라는 곡에 얽힌 일화를 들려줄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교향곡을 만들수 있었다는건, 단원들은 두터운
신뢰에 있기에 가능했어.
그 일화를 말하자면.... 음...
하이든이 궁정악장으로 있던 어느 해의 일이었어.
그는 여름 내내 후작의 궁에서 (행복하게) 곡을 쓰면서 단원들과 연주를 해야했지.
그런데 후작의 체류기간이 평소보다 두달정도 길어지자, 휴가를 가지 못한 단원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가게 되었어.
'여름인데! 나도 바다도 가고! 친구들이랑, 가족들이랑 (비키니입고) 바다로 놀러가고
싶은데! 이런 저택에 쳐박혀서! 내가 연주하는 기계도 아니고 이게 뭐얏!!'
대충 이런 불만?... 응? 내 감정이 조금 이입된것 같다고?.... ㄱㅂㅌㅇㅇ...ㅋㅋㅋ
흠흠.. 암튼..
이때!!!! 우리의 파파, 하이든!!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단원들과 에스테르하지공(公)을 위해
<고별교향곡>을 쓰게 되.
음...진정한 서번트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실현이라고나 할까?
보통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어떻게 되지?
그래. 힘차고 빠른게 일반적이야. 하지만 이 고별교향곡이라고 하는건 조금 달라.
하이든은 이를 절묘하게! 변화시켰어.
빠르게 4악장을 시작하다가.. 중간에 이르러 느린 박자로 전환하면서 단원들을 무대에서
하나씩 퇴장시키도록 했어.
먼저 오보에와 호른 연주자가 떠나고... 더블베이스와 첼로, 비올라가 그 뒤를 따라 나서.
실제로 <고별교향곡>이 연주되고 단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자, 에스테르하지공은 당
혹감을 감추지 못했어.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고.. 마지막에는 두명의 바이올리니스트만 남을때,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 무대조명이었던 촛불까지 끄고 떠나ㅋㅋㅋㅋ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처량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다가... 끝나는 아주 멋진곡이지!
어때? 하이든의 의도를 알것 같아? 내가 왜 서번트 리더십의 선두자라고 했는지.. 알겠어?
그는 서번트리더십을 발휘하여 단원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어.
에스테르하지공은 하이든의 의도를 간파하고, 즉시 단원 모두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구성원들에게는 휴가라는 보상을 통해 동기부여를 이끌어냈고, 후작에게는
넓은 아량과 관대함을 베풀수 있도록 했지.
가장 음악가 답게, 예술적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 하이든. 멋지지 않니?
그는 이렇게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단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어!
그가 주위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받았는지.. 그의 업적에 대해 조금만 더 써볼까?
훗날, 그의 고용주인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은 동생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역시 하이든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어.
후작은 오페라극장과 인형극장이 딸린 호화로운 궁정을 재건축했는데.. 악장이었던
베르너가 사망하자, 하이든이 그 뒤를 잇게 되었거든?
이를 계기로 하이든은 인형극과 수십편의 오페라, 바리톤을 위한 실내악작품을 200여곡
이상을 작곡하는 등 창작활동에 몰입했어.
이렇게 하이든의 명성은 전 유럽게 퍼졌고, 모차르트를 만나 교향곡과 현악사중주 분야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이르렀거든.
"응? 그런데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큰 신뢰를 받았는지랑 무슨 상관이야?"
생각을 해봐. 이 사람은 이 가문에서 30년동안, 인생의 1/3을 여기서 단원들과 보내오면서
많은 교향곡들을 작곡했다고 했어.
만약 악단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이 사람은 31년동안 궁정악단에 근무하면서 사람들과 아주 사소한 갈등 한번을! 일으키지
않았을 정도로 온화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고 해.
오죽했으면 니콜라우스 후작조차도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이 악단을 해체하고
단원대부분을 해고할때.. 하이든만 장기간 근무에 대한 연금을 계속 받을수 있게 뒀다고 해.
그렇게 악단이 해체되고.. 그는 이미 유럽전역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했지? 빛나는 성공을
거뒀으나... 그의 애국심은 변하지 않았어.
그는 60살의 나이에 고국 빈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명성은 여전했어.
그와 함께 그의 프로정신은 그 무렵 더욱 빛을 발했고.
하이든은 베토벤 등의 젊은 음악가들을 교육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어.
영국 런던에서 연주회장을 경영하던 흥행사 잘로몬~이 하이든을 찾아왔어.
높은 작품료를 요구하면서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그는 영국을 두차례 방문하면서
93번부터 104번까지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어.
<놀람교향곡>,<군대교향곡>,<시계교향곡>,<런던교향곡>등등!
당시에 작곡된 곡들이며, 의뢰자의 이름을 따서 <잘로몬 교향곡>이라고도 해.
이 <잘로몬 교향곡>들중에 특히 <놀람교향곡>은 고별교향곡과 같이 하이든의 재치와
유머가 담겨있기로 유명하지!
하이든은 연주회장에서 낮잠자기를 즐겼던 런던의 귀부인들을 골탕먹이기로 했어.
그는 현악기의 경쾌하고 조용한 연주를 29초 정도 흐르게 하다가~ 난데없이 팀파니
소리가 터져나오게 했어!
♩♪....♩♪....♬..........................!!!!!!!!!!!!!!!!!!!!!!!!!!!!
졸고있던 부인들은 어떻게 됬을까? 깜짝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
이 <놀람교향곡>은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주제의 변주기법을 아주 잘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야.
(비오던 날이었는데.. 언제였더라..
내가 너무 졸린 수업시간에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냥 음악이나 들을까 싶어서 이게 있길래
재밌어서 듣고 있다가.... 막 졸고있는 옆 친구한테 들어볼래?하고 준 적이 있었어.
잠 좀 깨라고..
그래서 줬는데.. 애가 이걸 듣더니 잠꼬대 하듯이 으응.. 좋네... 이러면서 엎어지는거야.
그런데 30초정도 지났을까.. 나는 이어폰 두 쪽을 다 개한테 주느라 언제깰지 몰랐지.
갑자기 애가 "XX!!!!!!!!!!"하면서 오리처럼 소리를 꽥!! 지르면서 고개를 확! 들더니...
"악!!! 목 뼈!!!"이러면서 지 혼자 의자랑 같이 뒤로 엎어지는 거야... 진짜 실화야.
난 처음에 등골이 오싹했어. 애 이러다가 죽는거 아닌가 싶어서. 난 그냥 으악! 하고 일어날줄
알았는데. 깜짝놀라서 애를 일으켰거든? 결국에는 수업중이시던 선생님한테 들켜서 둘 다
쫓겨나고 복도나와서 그 때 개한테 세상 살면서 들을 욕을 다들었지ㅋㅋ 지금도 내가 하이든의
'ㅎ'자만 꺼내도 개는 내 멱살부터 잡아ㅋ)
재미없었다고? 알았어.. 미안해ㅋㅋ
흠흠.. 아직 하이든은 죽지 않았어!
아까 영국에 2차례 방문했다고 했지?
하이든은 영국에서 극진한 대접과 함께 부와 명예를 마음껏 누렸어.
내 기억으로...옥스퍼드 대학은 그에게 명예박사학위까지 수여했지, 아마?.. 맞을꺼야! 맞다!
그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몇가지 중요한 업적을 남겼어. 헨델의 <메시아>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천지창조>와 <사계>라는 위대한 *오라토리오를 작곡했고,
<*오라토리오 : 그당시에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음악이야. >
영국의 국가를 듣고 난 뒤 빈으로 돌아와서는 오스트리아의 국가를 작곡했어.
이 멜로디는 아직까지도 독일 국가의 주요 멜로디로 활용되고 있지.
특히 천지창조는 그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결정체라고 할수 있을정도로 완성도도 높고,
이건 내 생각인데..가장 하이든다운 음악이랄까?
영국으로서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
이렇게 극진한 대접과 함께 부와 명예를 선사했는데 왜 그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로
돌아간다고 하는건지...
영국은 헨델처럼 하이든 역시 귀화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어.
"영국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것이 있으나, 단 하나 나의 모국 오스트리아가 없다."
그의 남다른 애국심덕분에 오스트리아는 국가도 생기고...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해냈으니
국가로서의 경쟁력도 생겼지.
<천지 창조>의 공연에 몹시 흥분했고, 그로부터 갑자기 병상에 눕게 된 하이든은
이후 현역에서 은퇴하고, 자신이 가르폈던 제자 베토벤이 이름을 떨치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폴레옹이 빈을 침공하기 바로 직전인 1809년 5월 31일, 7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어.
이듬해 1809년 5월 26일,가족을 모두 머리맡에 모아놓고 자신이 애용하는 클라비어
앞에 앉아 자작의 오스트리아 국가 <황제 찬가>를 쳤다고 해.
그의 삶을 보면 다른 음악가와 다르지 않게 열정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어.
가난한 마차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최고의 자리인 궁정악단의 자리에 올라서
유럽전역에 이름을 떨치며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된 그.
난 그에게 아직도 이런 찬사를 보내고 싶어. 영원한 클래식의 파파, 하이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리더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세 가지 중 첫째는 명성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살아있는 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며, 셋째는 죽은뒤에도 명성을 떨치는 것이다."라고도 하잖아.
하이든은 이 세가지를 모두 이루었어.
난 하이든에 대해 공부하면서 너에게 이 말을 가장 해주고 싶었어.
만약 니가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하이든을 꼭 기억해줘.
조직원들이 '부림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꼭 잊으면 안되.
조직원 모두가 서로를 섬기면서 이해하는것 만이 함께 살수 있을 길이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한다면 책임감의 무게는 그만큼 커져. 무조건적인
명령보다 신뢰와 믿음이 중요한 이유라는거 꼭 기억해.
....
어떠셨나요? 뭔가 깨달음을 얻어셨나요?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뭔가가 올라오지 않나요?
난 그랬는데... 또 나,나만 그런건가....ㅋㅋㅋ..
마지막으로 파파 하이든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책 한권 추천드리고 갈께요.
서번트 리더십에 관한 책이랍니다 :)
헤르만 헤세의 작품 <동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인데요,
잠깐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소설에 나오는 '레오'라는 인물은 일행들과 여행에서 모두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시종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일행들도 그런 레오를 심부름꾼으로 여겼죠.
그런데 여행 중간에 갑자기 그가 사라집니다.
그러자.. 꽤 흥미로운 일이 생겼어요.
그가 사라지자 일행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거죠.
사람들은 레오가 사실 자신들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진정한 리더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무조건 사람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면서 굽히라는게 아닙니다.
레오는 분명 일행들의 뒤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것을 봐왔을겁니다.
그리고 보이지않는곳에서 그들을 마음으로 이끈거죠.
이상 좋은하루 되세요 :) 긴 글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하고.. 늦게 드려서 죄송해요ㅠㅠ
내일 학교가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지금 밤 12시네... 한마디만 할께요.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