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원하는 남자 vs 능력있는 남자를 원하는 여자
위와 같이 편을 갈라서 마구마구 싸우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싸울 의미가 없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자식을 번성시키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인 이상, 남자가 예쁜 여자를 밝히고, 여자가 돈많은 남자를 밝히는 것은 당연지사(물론 요즘은 능력 있는 여자와 몸좋은 남자도 짝짓기시장에서 충분한 매력요소로 등장한 상태이다).
근데 왜 서로를 욕하는 걸까?
이유1. 이 '욕하는 자'들의 기저심리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능력없는 남성인데, 못생긴 여성인데 사회에서 자신들을 '루저'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화가 치밀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에 대해 욕을 하는 것이다. 못생긴 여자도 예쁜 여자를, 돈없는 남자도 부자 남자를 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키는 현 세태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았을 때 딱히 못생기지 않은 여자나 딱히 가난하지 않은 남자도 안심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자신이 피라미드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개개인은 판단하기 힘들고,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피라미드의 밑바닥으로 추락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통 남녀'들도 현 세태를 그저 냉담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이유2. '진정한 사랑'과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 사회의 물질주의/외모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물론 이러한 보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것이 정량화되어야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연수입/부모재산/키/몸무게 등과 같이 수치화될 수 없는 '사랑'과 '성격'이라는 특성은 짝짓기시장의 매매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안면골격 및 지방의 배치로 형성되는 안면외모 역시 정확하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서구적인 외모가 매스미디어를 등에 업은 채 표준화된 미인형을 구성하고, 성형외과 의사들이 얼굴 구성요소의 비례를 이용하여 '미인의 . 기준'을 정립해나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안면외모 역시 순전히 주관적인 특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랑'과 '성격'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사회상은 쉽게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판단의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니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도래로 개인간의 경쟁이 가속화된 결과, 더욱 개인의 정량화가 쉬워져서 인생이 팍팍해진 것 뿐이다. 끝없이 경쟁을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얼마전 운명을 달리한 성재기 씨는 이러한 세태를 못마땅해 하고 있던 수많은 남성 중 한명일 뿐이며, 그보다 좀 전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된서리를 맞은 안선영 씨는 이러한 세태에 자신의 사고방식을 적응하려고 했던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굽히지 않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에 서로 다른 타개책을 찾았던 사람들이었다.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두 사람의 인생말로가 현대 결혼시장에서의 남녀를 잘 비유하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려 했던 성재기 씨는 죽었고, 욕을 먹으면서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려고 한 안선영 씨는 잘 살고 있다. 성재기 씨는 너무 순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안선영 씨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속물일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사람은 죽고 속물이 잘 사는 세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닥친 시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