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늘 나름 베프라고 생각한 친구를 만나고 와서 너무 어이없는 기분에 혼자서 씩씩거리면서 분을 삭히다 평소에 눈팅만 하던 톡에 글을 다 씁니다.
저는 지난 달에 결혼한 신혼인 아줌마입니다. 이제 서른됬구요..
배우자를 결정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어 결정할 수 있는 큰 특권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내가 준비가 되면 결혼하려고 생각하면서 대학 졸업하구 직장생활 하면서 알뜰살뜰 모아서 이 정도면 살림살이 장만할 돈이랑 결혼식 비용은 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올해 초부터 결혼준비를 시작해서 지난 달에 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와 신랑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과, 그들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하객분들에게 신경을 많이 쓴다고 썼어요.
특히 친구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작은 고민부터 시작해서 사춘기를 같이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취업이 안 될 때 같이 울고, 바람피운 전 남자친구가 떠났을 때 같이 밤을 새우며 욕을 하고 토닥여준 그녀들. 자라오면서 만난 시기가 다른 그런 친구들이 한 열댓명 되는데 그들이 다들 와준다는 말에 너무나도 고마웠답니다.
헌데..
문제는 그 중 한 친구.. 제가 딴에는 가장 신경썼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오늘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 한 말이 화근이었어요. 편의상 '순이'라고 부를게요.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같은 대학에 진학해서 거의 같이 살다시피 붙어다니던 친구인데,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조금 멀리 떨어졌지만 그래도 한 달에 두 어번은 꼭 만나는 친구에요.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정말 서로 바닥까지 안다고 생각하는.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얼마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네요.
결혼한다고 프로포즈 받았다고 하는데 순이는 대뜸 드레스는 어디서 할거야? 난 XXX (유명 해외 브랜드)에서 할건데. 예단이랑 예물은 어쩌고.. 요새는 몇 천 주면 얼마를 돌려준다는 둥.. 자기는 부모님이 뿌린 것이 있어서 거둬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손님이 많을 거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제 가까운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슬슬 하나 둘 있어서 사실 현실적인 결혼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을 안 하던 터라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들었어요.
아 그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사실 저희는 예단이랑 폐백이랑 다 생략했거든요.. 양가 어른들도 흔쾌히 승락해 주셨구요. 결혼식에서 거품으로 드는 비용은 정말 과감하게 다 삭감했었어요. 흔히들 하는 웨딩카나 포토테이블도 안 했어요.
그래도 결혼 전에 친한 여자친구들끼리 이쁜 옷 입고 저녁 먹는 처녀파티는 기념으로 해 보고 싶어서 계획했는데 순이가 그 날 안된다고 하는거에요. 다들 직장 다니고 사정이 있으니까 2달 전에 날짜를 정해서 알려줬거든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토요일은 남자친구랑 매주 만나기로 해서 그렇다고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당근 직장다니면서 주말에만 데이트 하는 그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구.. 전 그 친구가 꼭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예 날짜를 금요일로 다시 바꾸었구요.. 순이는 원래 직장이 금토 쉬구요. 다른 친구들은 흔쾌히 당연히 가야지 하며 반차까지 내고 왔어요.
결혼식에도 베프가 들러리 해 주는 거 참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이 친구랑 다른 두 명이 들러리를 해 줬어요. 들러리 드레스랑 부케는 비싼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녀석들이니 당연히 선물로 해 줬구요.
결혼식도 다들 소소하지만 의미있고 예쁘게 잘 했다고 칭찬해줘서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신혼 여행 갔다와서 신혼집에서 적응하고 살림 좀 꾸며놓고 하면서 이제 슬슬 집들이 할 준비 하고 있었는데요. 여행 갔다와서 결혼식 와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일일히 전화를 했는데 순이만 안 받는 거에요. 두어번 했는데 안 받길래 문자 남겼구요.
이틀 있다가 문자 답장이 왔어요. 자기는 몸이 안 좋아서 쉬는 중이라고.
문자 보자마자 걱정되서 전화했는데 또 안 받더라구요.
목이 안 좋다. 쉴래. 이러면서.
대전에서는 순이 혼자 사는 거 알기 때문에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문자 보내고 쉬라고 했죠.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또 안 받는거에요.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하면서도 뭐지 이게? 혹시 사귀는 남자랑 뭐 안 좋은 일 있나 싶어서 일단은 조용히 있었는데 오늘 만나자고 한거에요.
한달음에 나가서 저녁 먹었죠.
아.. 근데 완전 불편한거에요. 말도 안 하고 인상쓰고 있고.
답답해서 왜 그러냐고 몇 번을 물어보니까 그제서야
아 이거 너한테 말 안하려고 했는데 나 너한테 좀 서운했어.
이러는거에요.
뭔데 그러는거야. 했더니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내가 대전에서 너 결혼식 보러 서울까지 갔는데 너 어쩜 나한테 부케를 안 주냐?
이러는거에요. 하..
부케는.. 원래 결혼식 결정된 친구에게 주는 거 아닌가요? 순이는 아직 결혼식 날짜도 안 잡았는데..
그리고. 챙겨줄 친구가 순이 하나도 아니구.. 들러리 드레스에 들러리 부케도 해 줬는데..
그럼 부케는 챙겨주고 싶은 다른 친구에게 선물하면 안되는 건가요?
행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결혼식에 든 부케, 내 맘대로 내가 주고 싶은 친구에게 주면 안되나요??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마음에 어버버 뭐라고 말도 못 하다가
그럼 너 지금 내 결혼식 끝나고 한 달 동안이나 그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연락도 안 받은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대요. 그리고 자기가 이상한 거 아니래..
순이네 어머니 아버지 동생도 저랑 잘 알아서 다같이 오셨거든요? 근데 그 분들도 다 영희 (제 가명입니다) 너무했다. 어쩜 저러냐. 하셨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순이에게... 순이야 내가.. 내 결혼식에 온 15명의 친구들 중에서도 널 특별히 생각하니까 들러리도 해 달라구 하고 들러리 부케도 해 줬는데 그런 거는 생각 안 했어? 그랬더니 그건 그거고 부케 받는 건 다른 거라네요. 제가 심했대요.
갑자기 밥맛이 확 떨어지면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일단은 참고 몇 숟갈 더 먹고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어요. 그리고 집에 왔죠.
신랑이 베프 잘 만나고 왔어? 하는 말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려고 하는거에요.
솔직히 탁 까놓고 말해서...
결혼한다고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손수 적은 편지에 우리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을 장식해서 우리 사이에 돈이 뭐냐하면서 상품권 준 녀석도 있었고, 행여나 결혼식 전에 예민할까봐 매일같이 전화해서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는 녀석도 있었구, 유럽에서 일부러 휴가까지 써 가면서 온 녀석들도 있었는데, 그녀들도 활짝 웃는 얼굴로 잘 살으라고 축하만 해 주고 갔는데.
정작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던 순이는 결혼한다고 하니까 명품드레스며 예단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다가 결혼 선물로는 포장도 없이 편지 한 장 없이 책 한 권에 돈 껴서 앞에서 내밀면서는 뭐할지 고민하다가 너 책 좋아하니까 그냥 책 했어. 이랬던 게 갑자기 주마등처럼 막 지나가는 거에요.
막상 내 결혼식 보려고 왔다고는 하는데 사실 집은 서울이구요. 어차피 주말에는 집에 올라와요.
사람이 간사하다고... 그 때 당시에는 그닥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 말 듣고 나니까 갑자기 괘씸한 마음이 들어서 별 걸 다 끄집어 내서 불평하게 되는군요... 당시 고마웠던 기억까지 아.. 얘가 그 날 서운한 마음이 계속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이지.. 행복한 기억만 한가득한 꿈같은 결혼식이었구 신혼생활도 잘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내 결혼식에 온 베프는 내게 서운한 마음 뿐이었구나. 라는 기억이 새겨져버려서 속상하네요...
제가 너무한 걸까요..?
부케문화가 대체 뭐길래 그거 하나가지고 그렇게 속상할 수 있는건지.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요.. 좋은 날인데 그냥 막 축하만 해 주고 오면 안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