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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 광풍과 종북놀이 광풍

참의부 |2013.09.08 18:21
조회 68 |추천 1

종북놀이… 이명박이 집권하면서 생긴 언필칭 우파들의 놀이

 

매카시즘(McCarthyism)은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광풍을 말한다. 이 광풍은 당시 미국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공화당 당원집회에서 "미국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9-1957), 1946년에 미국 위스콘신 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이 후 경력위조, 상대후보 명예훼손, 불법금품수수, 음주추태 같은 비리가 불거지면서 상원의원직 지탱도 힘들 지경에 몰린다. 이 상황의 돌파구를 매카시는 당시 극단적 대립상태였던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에서 찾는다.

 

1949년 마오쩌뚱의 중국대륙 장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 등장, 소련의 핵실험, 중앙유럽·동아시아의 공산주의 영향력 증대, 여기다 당시 미국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가 휩쓸고 있었다. 반공은 이 상황을 불붙이기에 매우 좋은 뇌관이었다.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공화당 당원 집회, 여기서 매카시는 "미국에선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폭로한다.

 

매카시의 이 폭로는 당원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언론들에게도 매우 좋은 기사거리였다. 그래서 미국 다수의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그러자 매카시는 계속 근거없는 폭로를 이어나갔으며 그가 폭로를 계속할 때마다 공산주의자 숫자도 늘어갔다. 신문들은 매카시의 폭로를 사실여부에 관계 없이 헤드라인으로 삼았으며 매카시의 폭로를 다룬 신문은 불티나게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상원에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이로써 매카시는 자신의 추문을 잠재우고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까지 부상했다.

 

매카시의 소속당인 공화당은 당시 야당이었다. 공화당으로선 여당인 민주당을 몰아붙일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공화당은 상하원 할 것 없이 여당인 민주당을 향한 강공을 계속했고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매카시에 동조했다. 가히 매카시 광풍이었다. 이 광풍에 공산주의와 무관한 사람들도 이름만 거론되면 조사를 받아야 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 극작가 아서 밀러, 레너드 번스타인, 시인 및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이다.

 

노조원, 교육자 등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력을 망쳤으며,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자 대부분의 평결은 나중에 번복되었으며, 위헌적으로 공포된 법과 면직 조치도 나중에 불법으로 결정되거나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되고 혹은 적법하지 않은 절차로 인정받았다. 또한 그에 의해서 기소된 인사들 중 아무도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1952년, 공화당은 오랜 민주당 정권을 뒤집고 집권에 성공했다. 또 의회도 다수당이 되었다. 그런데 공화당은 집권에 성공하면서 매카시가 점점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다. 공화당 내 의원들 사이에서 "독재자의 방법으로 자유를 지켜서는 안된다."는 말도 나왔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미헌법의 제정정신에 따라 국가안보보다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카시는 굴하지 않았다. 한번 얻은 유명세를 통한 권좌'비미활동위원회(非美活動委員會,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이를 통해 더욱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이런 광기는 한 용감하고 양심적인 기자에 의해 제압되기 시작한다. CBS의 에드워드 머로우 기자가 그다.

 

당시 CBS에서는 <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에드워드 머로우였다. 1954년 3월 9일, 머로우는 이 프로그램에서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며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논박했다. 이 방송 후 많은 미국인들은 매카시보다는 머로우를 더 신뢰한다며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방송 이후 하루 동안 CBS에 접수된 12,000건의 전보와 전화 중 머로우를 지지하는 비율이 15대 1이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매카시즘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매카시는 이런 미국인들의 피로감을 다시 되돌리려 더 무리한 수를 뒀다. 마침내 아이젠하워 대통령,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지도부, 육군 장군들까지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분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육군 장교들에게 논박을 허락했고 1954년 국회 청문회에서 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발언으로 판명되었다.

 

청문회 당시 미 육군 측 변호사들의 집요한 추궁에 매카시는 흥분하며 이성을 잃어버렸다. 36일 동안 생중계된 청문회를 텔레비전으로 본 미국인들은 매카시의 허황된 모습에 등을 돌렸다. 1954년 12월 상원은 매카시 비난 결의안을 67대 22로 의결했다. 그리고 매카시는 미치광이 혹은 간신모리배 등에 비유되었다. 상원의원의 직위는 유지했으나, 거의 활동은 할 수 없었고, 공화당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때문에 그는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알콜 중독자가 되었으며 끝내 1957년 만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광풍이 낳은 폐해는 컸다. 당시 매카시즘에 당한 피해자의 수를 정확하게 집계하기 힘들지만 수백 명이 수감되었고, 1만 명에서 1만 2천 명이 직업을 잃었다. 혐의가 제기되었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성애 혐의도 매카시즘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취업이 거부되었다. 한 미치광이에게 농락당한 195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실제상황이다.

 

종북놀이… 이명박이 집권하면서 생긴 언필칭 우파들의 놀이다. 우파… 사실상 친일친미파들이 남북분단 후 '빨갱이잡기'놀이로 50년 가까이 권력을 가졌다. 그런데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권력을 빼앗겼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저들의 빨갱이 논리보다 먹고사니즘이 국민들에게 더 관심을 받았던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빼앗기고 보니 그 10년이 막막했고 다시는 자신들이 권력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들은 권력탈환의 가장 큰 무기를 찾았으며 그것이 종북놀이(빨갱이놀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김대중도 평생 빨갱이로 몰려 죽을 고생을 했고 노무현의 장인이 빨갱이였다는 점. 그런 그들이 북한과 친하게 지내려는 정책을 고수하는 점… 저들에겐 최적의 무기였다. 그리고 그 무기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조중동 등 친일 친미 족벌신문이라는 매우 유용한 친구가 있었다. 더구나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들 족벌신문 폐해를 누구보다도 절감, 이들의 힘을 빼려고만 했다. 족벌신문으로서도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김대중 노무현 역사가 빨갱이 역사가 되는 것이 좋았다. 종북놀이가 시작되었다. '대북퍼주기'란 말의 확산이 그 시초였다.

 

그런데 순진한 노무현과 그 일파는 이런 저들의 원대한 계획을 쉽게 생각한 철부지였다. 대북송금특검도 받아들이고, '김대중이 북한에 퍼줘서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논리가 퍼져도 방관했다. 이윽고 "제가 정권 재창출 의무가 있습니까?"라는 말도 했고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는 말도 했다. 더 나아가서 "노무현 배신한 정동영 미우니까 기권하든지 0번 찍자"고도 했다.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릴 때 미국 민주당이 동조한 것과 같다) 이명박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고 그 여세는 종북몰이의 확산이었다. 이는 아예 반대파들이 권력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이후로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이의 연장이 박근혜의 집권이다.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원세훈의 '원장님 말씀' = 종북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기면 안 된다… 그리고 남재준, 황교안… 김태흠, 김진태, 권성동… 그들의 행동과 언어를 보면 가히 조지프 매카시의 환생이다. 조지프 매카시가 당원대회에서 "나는 공산주의자 297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했던 것처럼 김진태는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31명은 종북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조지프 매카시… 위스콘신 주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20세가 되어서야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속성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 고학으로 밀워키에 있는 예수회 계통 마켓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마켓 대학교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지방 판사가 되었다. 지방 판사 재직 시절 위스콘신 주의 낙농업을 하는 농부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낙농업이 발달한 위스콘신 주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2차대전 참전 후 귀향한 그는 인기의 여세를 몰아 상원의원에 출마, 당선되었다. 하지만 워싱턴 중앙정가에서 위스콘신 촌사람 초선의원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거기다 앞서 거론했지만 개인적 비리로 그나마 상원의원 자리도 보전할 수 없게 될 처지였다. 그가 선택한 '매카시즘 광풍'… 하지만 그는 그 광풍에 의해 48세로 요절했다.

 

▲ 변희재

변희재… 내가 아는 변희재는 대학 졸업 후 취업경쟁을 통한 직장경험도 없는 젊은이다. 글솜씨 하나로 스타탐구라는 책을 써서 이름을 알렸고 인터넷매체 대자보, 서프라이즈, 시대소리, 브레이크뉴스를 전전하며 친노 논객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브레이크뉴스가 경영난으로 매각되면서 한동안 낭인생활을 하다가 1인매체 빅뉴스를 창간하면서 독립신문 신해식, 프리존 뉴스 강길모, 조선일보 이현우 등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우파논객으로 전향했다. 때마침 이명박이 집권했고 우파논객들이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기고하는데까지 성장하더니 논리의 종착점이 '종북'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종북놀이의 권력자다.

 

일베…전야…음습한 곳에서 암약하는 사람들이 익명이라는 가면아래에서 종북놀이의 첨병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만이 아니라 전 언론에서 '종북'은 보통명사로 쓰이고 있다. 비로소 오늘, 3권분립국가 대한민국 땅이지만 구속되었다는 이유로 직업도 박탈하고 공민권도 제한하려는 기도까지 서슴없이 방송을 탔다. 그리고 야당이라는 이들은 자신들이 종북으로 몰릴 것이 겁나 몸만 사리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여. 광풍은 언젠가 끝이 난다. 나는 당신들에게 조지프 매카시의 인생을 한 번 더 더듬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임두만《진실의 길》주필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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