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와 ‘비아’의 투쟁
단재는 북경에서 국내외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간헐적으로 전해 들으면서 이석증·오치휘 등 중국인 아나티스트들과 교우를 맺고 있었다.
이 무렵에 단재의 업적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은 1924년에『조선사(朝鮮史)』의 총론을 집필한 일이다. 이 ‘총론’에서 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자신의 역사관을 이론화하는 사론을 발표하였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생하여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생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 하면 조선민족의 그리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단재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이 시간과 공간으로 확대되는 것이라고 보면서, 투쟁은 ‘심적 활동’이라고 파악하였다. 달리 표현하면 역사는 정신(精神)과 의식(意識)의 투쟁사(鬪爭史)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주체인 ‘아’와 객체인 ‘비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나니,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하고,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은 제각기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은 비아라 하며, 무산계급을 하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제각기 제붙이를 아라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하며, 이뿐 아니라 학문이나 기술에나 직업에나 의견에나 그밖에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인 아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한 비아가 있고, 아의 중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중에도 또 아와 비아가 있어,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번극할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사회의 활동이 휴식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나니,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니라.〃- 신채호,『조선상고사』총론,「개정전집」上, 31쪽.
단재가 제시한 아와 비아의 관계는, 국가와 민족의 대립, 지주·자본가 대 무산계급의 대립, 학문·기술·직업상에서의 아와 비아의 대립을 거론하고, 이러한 대립의 투쟁은 휴식 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단재의 사관은 뚜렷한 자아 주체론이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고 조선민족을 아의 단위로 삼아 정치·사회 등 각 분야의 소장성쇠(消長盛衰)를 서술하는 것이다.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 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급과 풍속은 어떻게 변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풍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이것은 정신이 없는 역사다.〃- 신채호,「독사신론」,『신채호 역사논설집』, 13쪽.
그는 사람을 소아와 대아로 나누고, 소아는 유한하나 대아는 영원함을 강조한다. 소아는 물질적인 것이고 외형적인 것이며 거짓된 것으로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고, 대아는 정신적인 것이고 참된 것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저것은 정신의 내가 아니요 물질의 나이며, 저것은 영혼의 내가 아니라 껍질의 나이며, 저것은 참 내가 아니요 거짓 나이며, 큰 내가 아니요 작은 나이니, 만일 물질과 껍질로 된 거짓 나와 작은 나를 나라 하면 이는 반드시 죽는 나라, …. 이제 이 물질과 껍질로 된 거짓 나와 작은 나를 뛰어넘어 정신과 영혼으로 된 참 나와 큰 나를 쾌히 깨달을진대….˝ - 신채호,『조선상고사』총론,「개정전집」上, 31쪽.
망명지에서 고대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온 단재는 우리 민족은 단군의 후예이고, 그 중심 종족은 부여족이라고, ‘부여족 정통론’을 전개한다.
˝나는 우리 부여족이 발달한 실제 자취로 우리나라 역사의 주요 골자로 삼고 기타 각 민족은 비록 우리나라 땅을 차지하고 주권을 다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적국의 외침의 한 예로서 보겠다. 우리 부여족의 역사와 왕통(王統)이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민족을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 신채호,『조선상고사』「대아와 소아」, 290쪽~291쪽.
단재가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사론을 쓰면서 ‘아(我)의 사관’을 정립한, 태산과 같은 업적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다음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의 상태를 가려서 기록한 것이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는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니, 아아…, 역사가의 책임이 그 또한 무거운 것이다.˝ - 신채호,「독사신론」,『신채호 역사논설집』, 12쪽.
●「낭객의 신년만필」집필
단재는 1925년 1월『동아일보』에「낭객의 신년만필」이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 안질로 고통을 겪으면서 사론 집필에 몰두하여『삼국지동이열전 교정』·『평양패수고』·『전후삼한고』·『조선사 정리에 대한 사의』등 많은 글을 남겼다.「낭객의 신년만필」에서는 이 무렵 단재 사상의 편린을 살피게 한다.
˝이해 문제를 위하여 석가도 나고 공자도 나고 예수도 나고 마르크스도 나고 크로포트킨도 났다. 시대와 경우가 같지 않으므로 그들의 감정의 충동도 같지 않아야 그 이해 표준의 대소 광협은 있을망정 이해는 이해이다. 그의 제자들도 본사(本師)의 정의(精義)를 잘 이해하여 자가의 리(利)를 구하므로 중국의 석가가 인도와 다르며 일본의 공자가 중국과는 다르며, 마르크스도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와 레닌의 마르크스와 중국이나 일본의 마르크스가 다름이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 신채호,『개정전집』上, 25쪽~26쪽.
외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아’의 주체성을 상실한데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외래사상의 망종이 노예사상이라는 질책인 것이다.
〃우리 조선이 고대부터 고정한 계급제가 있어 고구려의 오부(五部), 백제의 팔성(八姓), 신라의 삼골(三骨)이 모두 귀와 부를 소유한 자의 별명이다. …우리 선민들이 이것을 타파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하여 반혁명의 종적이 그 모호불비(模糊不備)한 역사의 기록 속에서도 자주 출몰하였으나 당의 외구가 려·제 양국을 유린하며 그 망아가 착절되며, 고려 일대에 더욱 양반 대군주의 쟁투, 노예·잡류 대 양반의 쟁투에 누차의 유현이 있었으나, 몽고의 외구가 침입하여 그 영향이 휼적하였으며(오기인 듯하며, 문맥상 ‘심대하였으며’로 이해하기 바람), 이태조가 고려대의 사제유폐(四制遺弊)를 개혁하여 빈부의 조화를 도모하였으나, 그 귀천의 계급이 존재하므로 미구에 다시 그것이 폭렬하여 소년계·검계·양반살륙계 등 비밀혁명단체가 분기하더니 또한 임진란의 8년 병화로 말미암아 8도가 창잔함에 드디어 그 종자까지 멸절되었다.〃- 신채호,『개정전집』上, 27쪽~28쪽.
삼국 시대에는 당의 침략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여 그 싹이 꺾이고, 고려 시대에는 ‘양반 대 군구’, ‘노예 대 양반’의 쟁투가 있었으나 몽골의 침략으로, 조선 시대에는 여러 가지의 ‘비밀혁명단체’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그 씨앗까지 절멸되었다고 개탄한다.
단재가 개탄한 ‘혁명의 씨앗’은 ‘아’의 주체성을 가진 민중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이 아무리 무산자일지라도 그래도 그 뒤에 일본제국이 있어 위험이 있을까 보호하며, 재해에 걸리면 보조하고, 자녀가 나면 교육으로 지식을 주도록 하여, 조선의 유산자보다 호강한 생활을 누릴 뿐더러, 하물며 조선에 이식한 자는 조선인의 생활을 위협하는 식민의 선봉이니, 무산자의 일본인을 환영함이 곧 식민의 선봉을 환영함이리라.〃- 신채호,『개정전집』上, 30쪽.
일제의 지배세력을 격렬하게 증오하면서 일본의 무산계급 또한 한국인과 동일시할 수 없는 격렬한 민족주의의 계급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 식민지 현실 외면한 지식인 비판
〃불평등한 이 세계를 한번 뒤집어 모든 동포가 더 행복을 누리자는 심리가 아니요. 오직 한 몸 한 집을 살자는 생각으로 찾아가면 각 나 하나의 지식을 얻는 중학교·대학교… 모든 학교도『정감록(鄭鑑錄)』의 청학동이며, 시와 소설을 짓는 문단이나 논설기사 등을 편집하는 신문사도『정감록』의 철옹성이다. 난리를 토평한 인물은 많이 나지 않고, 난리를 피하는 일사만 있으면 그 난리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모두 피난 심리의 대적을 토멸하여야 할 것이다.〃- 신채호,『개정전집』上, 31쪽.
일제의 강점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민족독립의 시대적 과업을 외면한 채 일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지식인·언론인·작가 등의 ‘청학동 도피근성’을 격렬하게 질책한다.
〃수백년의 아귀를 곁에다 두고 1원 내지 5원의 소설책이나 팔아 일포(一飽)를 구하려는 문예가들이 무슨 예술가이냐? 금강의 경(景)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기아(飢兒)의 눈에는 일시(一匙)의 반(飯)만 못하며, 솔거의 화송이 아무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익사자의 눈에는 일편의 목판(木板)만 못하며, 살도 죽도 못하게 된 조선 민중의 귀에는 모든 미려한 가극과 소설의 이야기가 백두산 속 미신귀인 조선생의 강신필(降神筆)만 못하리.
1원이면 일가 인구의 며칠 생활할 민중의 눈에 들어갈 수도 없는, 2원 3원의 고가 되는 소설을 지어놓고 민중문예라 호칭함도 얄미운 것이어니와, 민중생활과 접촉이 없는 상류사회 부귀가 남녀의 연애사정을 그리므로 위주하는 장음문자(裝淫文字)는 더욱 문단의 수치이다.
예술주의의 문예라 하면 현 조선을 그리는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인도주의 문예라 하면 조선을 구하는 인도가 되어야 할 것이니, 지금에 민중에 관계가 없이 다만 간접의 해를 끼치는 사회의 모둔 운동을 소멸하는 문예는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니다.〃- 신채호,『개정전집』上, 34쪽.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무시·외면하는 일체의 예술이나 신문학을 비판한다. 부잣집 남녀의 연애사건이나 예술주의에 급급하는 작가·문인들을 호되게 질타한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류는 아우슈비츠의 비극 이후에 서정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아우슈비츠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한국에서 예술이나 문학은 허위이고 모순이었을 뿐이다. 단재는 이런 사실을 냉철하게 비판한 것이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저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