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계는 90년대부터 변질되었다.
90년대의 여성계는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여성운동이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단 2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 짧은 기간에 페미니즘이 바꿔놓은 청소년들의 성 가치관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페미니즘에 의해 단 20년 동안 일본에 야기된 오늘날의 사회문제들과 청소년들의 성 가치관을 통해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이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출발선에 설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출생이 귀하다고 노력 없이 성공하려는 귀족도, 출생이 천하다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노비도 민주주의의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기쁨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상과 철학, 흥미와 재능 등 다양한 주제로 개인들은 모이고 공감하며 소통한다.
그런데 인간의 특성 중 상대방과 대화 없이 가장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성별이다.
성별은 외관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하며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로 분류된다.
서로 더 큰 영역과 좋은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필연적인 수직적 경쟁을 하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공감과 소통의 기쁨을 더 선호하는 방어적인 여성성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내 편인지 적인지를 먼저 판단한다.
같은 남자를 두고 경쟁할 상대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고 경쟁 상대라면 그때부터는 적, 경쟁상대가 아니라면 경계를 완화하고 공감과 소통을 시작한다.
일본과 한국의 여성들은 서로를 편으로 인식하고 공감하며 소통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여성 모두 스스로의 혁명을 통한 자의적인 참정권의 획득이 아니라 전쟁을 통한 타의적인 참정권을 획득하였고 유교적 남성상과 여성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남성에 대해 순종적이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더욱 공감하고 소통한다.
다만 한국보다 산업화가 빨랐던 20년의 차이만큼 한국의 경제와 문화가 일본을 답습하듯 한국의 페미니즘 또한 일본의 페미니즘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민주주의의 이념 아래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한계가 있다.
여성성이 출산과 육아라는 사회적 돌봄에 기쁨을 느끼도록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리에 앉는 여성은 있지만 사회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는 일은 어렵다.
모성의 기쁨을 알고 있는 여성부터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다 보니 민주적인 투표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기고 선출되어 정치권에 입성하기는 힘들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결코 정치의 절반을 차지하지 못하므로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민주주의 이념 안에서 남녀평등의 여성인권운동은 한계를 보이며 극단적 여성주의, 즉 페미니즘이 여성계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에서 페미니즘이 시작되고 공격의 목표를 청소년들의 성 가치관에 대한 공격으로 설정하고 흔들어댄다.
남성성의 부작용인 파괴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언론을 이용해 연일 남성이 약한 여성에게 저지른 죄가 남성의 성욕으로 인해서 비롯한다는 보도를 통하여 청소년기 남성들의 성 가치관을 훼손시킨다.
또한 여성의 성욕에 대한 책임감인 숭고한 모성을 남성들에게 종속되는 것이라 비하하며 청소년기 여성의 성 가치관을 훼손시킨다.
이렇게 페미니즘에 의해 성 가치관이 흔들린 일본의 청소년들은 가정의 숭고한 가치인 부성애와 모성애를 잃게 된다.
가정을 이룰 필요가 없으며 성욕의 해소는 성매매를 통해 해소하면 되므로 가정을 이루고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남성성을 기피하는 남성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고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가정 안에서 소통하는 모성을 포기하는 여성을 양산한다.
90년대 급격히 늘어난 오타쿠, 초식남, 게이 등 남성들의 문화와 포르노 배우, 성매매 여성 등 여성들의 문화를 양산하게 되며 결국 정치세력화보다 사회문제를 먼저 일으킨 페미니즘은 일본으로부터 당시 70년대의 일본과 같이 한국에서 정치세력화에 난항을 겪고 있던 한국으로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본에서의 실패를 경험한 페미니즘은 한국에서 더욱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하여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세우게 된다.
페미니즘이 세운 페미니즘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정치권 진출 실패, 선거를 통한 정치권 진입이 제한적임.
2. 여성 정치인에 대한 일본 여성들의 외면.
3. 젊은 남성들의 결혼 기피 현상, 성욕의 해소.
4. 일본 남성들의 남성성으로부터의 도피, 오타쿠, 게이 문화 등.
그리고 이 실패의 원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들을 다음과 같이 마련했다.
1. 정치권과 결탁을 통한 비례대표 진출
페미니즘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비례대표라는 국민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국회의원을 양산했다.
비례대표가 없었다면 여성의 정치계 진출은 최대한으로 잡아도 5% 수준을 넘기 힘들다.
특히 한국처럼 경제활동이 남성에게 치중되어 있는 경우 여성이 뛰어난 스펙을 갖춰도 선거로 남성을 이기기 힘들다.
아무리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해도 여성들이 모두 여성들의 편이 아니며 오히려 여성 특유의 편 가르기 질투가 방해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여성단체들이 선두에 서서 반대하는 것이다.
비례대표를 만들어낸 주체도 정치권과 결탁한 페미니즘이고 그 과실을 누리는 것도 페미니즘 자신이다.
2. 여성의 창녀화, 우민화를 통한 지지기반 구축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개인들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줄 알고 있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들을 지지한다.
그런 경우에는 선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직 그 성향이 정해지지 않은 청소년들을 선동한다.
여성 비율이 높은 교사가 첫째 도구이다.
성교육 때 남학생들 앞에서 '여자가 발가벗고 있어도 절대 만지거나 쳐다보면 안된다', '남성의 성욕은 더럽고 나쁘다'고 세뇌시킨다.
세뇌된 청소년 남성들은 성욕이 발현하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여학생들에게는 '성은 자유롭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기면 된다', '순결은 중요하지 않다. 순결을 강조하는 남성은 쳐다보지도 마라', '남녀는 평등하니 남자들이 즐기는 성욕을 여자들도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등 여성의 고귀한 여성성을 폄하하는 교육을 한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설명하면서 '이건 100% 남성의 잘못이고 남성의 책임이다. 남성의 성욕이 문제다. 얼마나 불쌍하냐?'면서 청소년들을 선동한다.
요즘 여학생들이 문란한 건 교사들의 영향과 책임이 크다.
그렇게 숭고한 남성성의 발현 수단인 성욕과 숭고한 여성성의 발현 수단인 모성을 짓밟아버린다.
사회적 성 가치관이 형성될 수가 없다.
그릇된 성 가치관이 청소년들을 세뇌시킨다.
그렇게 남자 아이들은 스스로의 남성성을 혐오하게 되고 여자 아이들은 스스로의 모정을 부정하게 된다.
3. 남성이 성욕만 해소하고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현상을 막으려고 성매매특별법이 시행.
성매매특별법의 실시로 정상적인 성욕의 해소가 불가능한 남성들은 성욕을 해소할 공간을 잃게 된다.
창녀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이용하는 건 불법이다.
언제든지 단속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이용하기에는 무리다.
덕분에 대부분의 경쟁력이 약한 창녀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렇게 먹고 살 길을 잃은 경쟁력 없는 창녀들은 대부분 국제 원정을 나가게 되고 그나마도 불가능한 생계형 창녀들은 성매매특별법을 폐지하라며 시위를 한다.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에 의해 형성되던 화대도 천정부지로 올라서 5~7만원 하던 화대가 15~30만원으로 오르게 된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은 공부하고 노력할 필요 없이 창녀가 되면 억대 연봉에 오르는데 힘든 공부와 취업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
쉽게 흔들리고 창녀가 된다.
성매매로 성욕을 풀 수 없는 남성들은 자위로라도 성욕을 해소해야 하는데 페미니즘은 그것마저 막는다.
UN을 핑계로 아청법이라는 근거없는 법을 만들어서 야동을 다운받는 남성들에게 성욕에 대한 공포를 심음으로써 남성성을 한 번 더 훼손한다.
성특법과 아청법의 콤비네이션으로 남성들은 열심히 번 돈을 값비싼 창녀에게 바치는 호구가 되거나 묵묵히 성욕을 부정하는 초식남이 된다.
그러면서도 계속 성적인 문화에 노출시켜 어린 여성들은 점점 노출에 관대해지고 결국 몸으로 돈을 버는 창녀가 된다.
4.남성성의 훼손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오타쿠, 초식남, 게이 등 소수의 남성 신문화
페미니즘은 아예 이들을 동지로 만드는 전략을 쓴다.
유물론적 마르크시즘에서 기인한 쌍둥이 형제인 주체사상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대한민국 안보와 성 가치관을 흔들기 위해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자는 주장을 하고 오타쿠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척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오타쿠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사회적 관심에 굶주린 동성애자와 오타쿠의 본성을 자극한다.
이렇게 일본에서 실패했던 페미니즘은 모든 실패요인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고 진행 중이다.
이 페미니즘이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이념을 파괴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계급사회는 소수의 권력으로 다수의 대중들을 선동한다.
귀한 것은 귀하며 천한 것은 천하다는 이념이다.
그 기득권의 이념을 깨부수고 태어난 민주주의 이념이며 저들이 원하는 건 계급사회로의 회귀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시간을 역행한 사례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며 죽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정상적인 남성성과 여성성, 즉 가정을 이루는 행복과 기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몇 십 년의 세월이 더 필요할지도 확신이 없다.
일본에서의 페미니즘보다 더 강력해진 페미니즘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성 가치관을 20년간 흔들어댔다.
대한민국이 지금 페미니즘을 박멸해도 남성성과 여성성을 회복하는데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