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신분제를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왕과 귀족에 맞서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이뤄낸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민주주의이므로 그 기반이 취약하다.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어낸 서방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지성에 대한 자부심은 분명히 본받을 점이 있다.
흑인들은 더딘 진화의 속도로 인하여 오랜 시간동안 백인들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흑인들은 저항했고 결국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인권이라는 이름 하에 그 흑인들을 도운 백인들도 있었다.
민주주의의 이념은 그렇게 차별에 항거하여 행동하고 실현하고 발전해왔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해 보임으로써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흑인도 정치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백인 위주로 짜여진 정치판에서 '흑인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인정을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서 인종차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위주로 짜여진 사회에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인정을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도 정치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위주로 짜여진 정치판에서 '여성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인정을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서 남녀차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 벽을 무너뜨리고 남성 위주의 사회, 정치판 등에서 인정받는 여성들이 늘어나야 비로소 남녀차별이 없어진다.
대한민국에서 '전라도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도 할 수 있다!'라는 인정을 타 지역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전라도도 정치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도 정치 할 수 있다!'는 인정을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서 지역차별의 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 벽을 무너뜨리고 인정받는 전라도 출신 정치인들이 늘어나야 비로소 지역차별이 없어진다.
그런데 페미니즘과 민주당과 종북은 꼼수를 부린다.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받아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권자로부터 인정받는 길을 외면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집단끼리 동맹을 맺고 투표권을 무기로 정치권과 결탁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거짓을 인정하라고 소리친다.
그 거짓의 외침이 대한민국에서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우습다.
비례대표를 만들어 유권자의 인정을 받지 않은 국회의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선진국 여성들은 선진국 남성들에게 '여성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대신 스스로 '해 냄으로써 입증'해왔다.
그래서 선진국 여성들이 선진국 남성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며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소위 복지 선진국, 인권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그런 식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해 냄으로써 입증'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 김성주 대표, 조윤선 장관 등 소수의 여성들이 개인의 능력을 입증한 적이 있을 뿐이지 그녀들이 결코 대한민국 여성들의 수준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그녀들은 결코 노력하지 않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간교하게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진 표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여성들은 아직도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주장만 반복한다.
선진국 여성들은 선진국 남성들과 함께 뛰며 경쟁한다. 더 나은 성별이 아닌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경쟁한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업혀서 뛰라고 소리친다.
당연히 대한민국이 선진국보다 빨리 뛸 수가 없다.
대한민국 남성들 등에 업혀있고 싶다면 조용히 남성들이 잘 뛸 수 있도록 먹는 것을 줄여 살을 빼고 조용히 남성들을 응원해라.
대한민국이 선진국보다 빨리 뛸 수 있기를 바란다면 남성들의 등에서 뛰어내려 스스로의 힘으로 걷는 연습부터 해라.
그게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