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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기묘한 이야기23 - 미해결 사건 전담부2

파도 |2013.09.30 08:13
조회 5,756 |추천 8

안녕하세요~ 파도입니당ㅋㅋ

 

일단..

그 많은글을 저대신 직접 손으로 써서 올려주신

174女님...

너무너무 감사해요 ㅠㅠ

매번 그림도 올려주시고~

 

짱짱짱

 

저도 혹시나 해서 모바일로 보니까..

 

사진 터치해서 확대 해서 보면 보이긴 하던데..

 

일단 이번에도 사진으로 올려놓고~ ㅋㅋ

 

 

미해결 사건 전담부 2

 

 

 

#1 사카이데 대나무숲 소녀 실종 사건

2005년 4월 29일. 일본 카가와현 사카이데시.
그날은 고시키다이 방문객 센터 안쪽의 대나무 숲에서 죽순캐기 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5살의 오오니시 유키는 어머니와 언니의 손을 잡고 이벤트에 참가했다.
유키의 가족 외에도 18가족이 더 참가해, 약 60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꽤 규모있는 지역 이벤트였다.

 

대회는 별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회 종료 시간인 오후 2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막 4번째 죽순을 찾아낸 유키는 흥에 겨워 [한개 더 찾아올게!] 라고 어머니에게 말한 뒤 혼자 대나무 숲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시간이 오후 1시40분,

 

그리고 이것이 유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후 2시가 되어 대회가 종료되었지만, 유키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대나무 숲 부근을 수색했지만, 유키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후 오후 3시에는 방문객 센터 측 에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오후 3시 45분 경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경찰견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약 3000여명의 경찰 인력이 동원된 대대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유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오후 2시의대낮에, 60명의 사람들 가운데서한명의 소녀가 홀연히 사라진 것이었다.


부근에는 연못이 있어 혹시 빠진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못의 물을 모두 빼냈지만, 유키와 관련된 단서는 찾을수 없었다.

당일 쓰고 있던 모자나 신고있던 신발같은 유류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죽림 한 가운데의 공터에서 기묘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유키의 물통냄새를 토대로 수색에 나섰던 경찰견 한마리가 공터 가운데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것이었다.

 

경찰은 다음날도 4마리의 경찰견을 투입했지만, 그 4마리 역시 그 공터에서 멈춰섰다.
경찰견은 지면과 신발의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냄새에 의지하여 수색을 한다.
만약 유괴사건이라면 유키의 냄새가 멎어도, 범인의 냄새가 남아있기 때문에 경찰견은 그것을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경찰견이 수색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마찰이 중단되었다는 뜻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산골이어서 자동차의 진입은 불가능한 곳이었다.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중에서 유키를 납치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상황은 일어날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는 6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 중 헬리콥터를 목격한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연 유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사건이 벌어진 고시키다이는 예로부터 요괴가 나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이었다.
유키는 요괴에게 잡혀가기라도 한 것일까?
2005년 벌어졌던 이 실종사건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채 남아있다.
유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 악마의 시 번역자 살해사건

 

1991년 7월 11일, 일본 츠쿠바 대학.
조교수 이가라시 히토가 대학교 엘리베이터 홀에서 살해당한 뒤, 이튿날인 7월 12일 발견되었다.
현장에서는 피해자의 혈액형과는 다른 O형 혈흔과, 범인이 남겨둔 것으로 보이는 중국산 쿵푸 슈즈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피해자인 이가라시 조교수는 1990년 살만 라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었다.

 

그는 1976년 부터 1979년 까지 이란에서 유학을 하며 이란 왕립 철학 아카데미 연구원으로 일했을 정도로 이슬람과 이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악마의 시는 1988년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가 써낸 소설로, 무함마드의 권위를 무시하고 이슬람교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권의 엄청난 반발을 샀던 소설이었다.
당시 이란의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격분하여 살만 루슈디는 물론이고 출판에 관여한 이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살만 루슈디는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을 영국 정부의 비호 하에 숨어살아야만 했다.


이와 같이 당시 악마의 시에 관여하는 것은 이슬람권 전체의 공분을 사는 일이었다.

이가라시 히토는 악마의 시를 번역 출간하며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는 실수였다." 라던가,
"이슬람은 원래 훨씬 더 건전하고 건강한 정신의 종교였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었기에, 언론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란정부의 암살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그의 죽음을 보도한 이란의 일간지 "사람" 이 "이가라시 히토의 죽음은 전 이슬람 교도에게 희소식" 이라고 발언한것이 알려지며 이러한 의견은 더욱 힘을 얻었다.
CIA의 전 직원인 케네스 폴락은 이란 군부에 의한 범행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목격되기 쉬운 엘리베이터 홀에서 범행을 저지른것은 다른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간지 "후미하루"의 1998년 4월30일호는 사건 당시 도쿄 출입국 관리소가 츠쿠바대학에 단기 유학을 와있던 방글라데시인 유학생을 용의자로 지명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학생은 이가라시의 시체가 발견된 바로 그날 오후 방글라데시로 귀국해 버렸다는것이다.
그리고 이슬람권 국가와의 마찰을 두려워한 일본 정부는 수사를 그대로 종결했다는 것이 후미하루의 기사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이에대해 일본경찰은 목격이 쉬운 엘리베이터 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인간의 원한때문에 일어난 사건일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방글라데시인 유학생에 대한 추적을 포기했다고 발혔다.


수사도중 이가라시 조교수의책상 서랍에서는 살해 몇주전에 쓴것같은 메모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이가라시의 글씨로, 단노우라 전투에 관한 4행시가 일본어와 프랑스어로 적혀있었다.
그런데 4행의 [단노우라에서 살해당한다.] 라는 부분이 이상했다.

일본어로 적혀있는 부분은 원문 그대로였지만, 프랑스어로는 [계단의 뒤에서 살해당한다.] 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이 메모를 적은 시점에서 이미 이가라시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는 의견도 있다.이 사건은 이후 어떠한 진전도 보이지 않았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인 15년이 지남에 따라 지난 2006년 7월11일 영구 미제로 남게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외국인이 범행을 저지른뒤 일본 국내를떠났을 경우 시효를 인정하지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측에서 유류품을 모두 유족에게 돌려주고 사건을 종결해 끝까지 미심쩍은 부분을 남기고 말았다.

 

 출처 - 괴담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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