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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후회(後悔) - 2화

용용이 |2013.10.18 16:23
조회 609 |추천 5

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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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後悔)

by 용용형제 (Copyright MoonS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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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그 때의 너, 지금의 나

 

 

챠챠챠챠챠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준식과 하진은 여전히 굳은 체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있다.
열차가 어느새 다 지나가고,
이제
정말 정적.
하진은 고개를 끄떡하며 실례한다는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준식에게서 멀어진다.
준식은 멀어지는 하진을 멍하니 돌아본다.


준식의 발,

 

움찔움찔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도저히 쫓아가서 잡을 용기가 없다.
하진은 돌아보지 않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준식에게서 멀어진다.
준식은 하진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한동안 정신을 놓은 채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쉬운 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때,
준식의 시야에 들어오는 바닥에 낡은 여자 지갑.

준식은 천천히 그 지갑을 줍고는 앞서 사라진 하진을 쫓아 뛰어간다.

 

 

준식은 급하게 지하철 밖으로 뛰어나와, 주위를 다급하게 둘러본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준식의 손에 들려있는 낡은 여자 지갑.
준식은 조심스레 열어본다.
젊고 예뻤던 하진의 얼굴이 박힌 신분증.
그리고 그 옆에 집주소.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신우 아파트>

 

문득,

10년 전 어느 가을 밤이 생각난다.

.

.

.

.
10년 전, 어느 가을 밤

 

'신우 아파트'

라고 적힌 다소 낡은 아파트.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오랜된 아파트.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효과음 같이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돈다.

현관에서 조금 떨어진 어두운 주차장에
준식과 하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다..


[뭐? 끝내자고? 그 말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하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준식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준식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진을 바라본다.

뭔가 체념한듯한 담담한 표정이다.

 

[….너 며칠째 연락도 안되다가…불쑥 집 앞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끝내자고]
[어…이제 그만 하자…]
[지금 장난해?]
[장난 아니야…]
[그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끝낸다면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만난 시간이 있는데…너무 일방적이잖아!]
[이유? 없어….아니 그냥 이제 힘들어….그래…너 말처럼 우리 권태기야…!]

 

준식과 하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서있다.
계속해서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도는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

하진은 분노에 찬 얼굴로 준식을 노려보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인다.
준식은 그런 하진을 무시하듯 몸을 돌려 도로 쪽으로 걸어가버린다.
하진은 떠나는 준식을 보고 절규하듯, 소리친다.

 

[권태기 좋아하네! 소은이 때문이지? 나 다 알아! 니가 걔 만나고 있다는 거! 어떻게 만날 사람이 없어서 내 친구를 만나냐! 넌 쓰레기야! 아니 니네 둘 다 쓰레기야!!]

 

준식은 하진의 외침에 걸어가다가 멈칫하고, 몸을 휙 돌려 다시 하진에게 다가온다.

 

[뭐?….]

 

화가 난 준식.

 

[쓰레기! 너하고 소은이 둘 다 쓰레기야!]

 

가을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있다가,

 

준식은
하진의 뺨을

 

세차게....

내려친다.

 

 

[.....니 맘대로 생각해라! 암튼 이제 연락하지마!]

 

준식은 다시 도로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이내 하진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

 

낙엽이
바람에 휘날린다.

.

.

.

.

'인간은 할 말이 없으면 폭력을 선택한다고 했던가….'

 

준식은 역 앞 벤치에 앉아 하진의 신분증 앞 면을 보고 있다가 뒷면을 살펴본다.
주소 변경란에 적혀있는 새로운 주소.

 

<….성동구 옥수동 271-3…>

 

준식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주소를 지도 검색 해본다.

 

<현 위치에서 800m>

 

준식은 추운 듯 코트와 목도리를 여미고,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식이 일어나자 건너편 큰 상가건물 상단에 있는 전광판이 눈이 들어온다.

 

<2014 갑오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준식은 전광판 문구를 가만히 보고 서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추운 듯 몸을 웅크리고 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나는 언제부터 변했던걸까.....그떄 그 여름....'

.

.

.

.

.

10년 전, 어느 여름 저녁.

 

한강공원에서 아파트단지로 나가는 굴다리 안.
터벅터벅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준식의 뒷모습.
옥수동 거리를 걸어가는 현실의 준식 뒷모습과 유사하다.
굴다리 안,
주황색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뒤로 길게 늘어져 있다.
하진은 거리를 두고 앞서 가는 준식의 뒤를 따르고 있다가,

발걸음을 빨리 해서 준식 옆으로 다가간다.

 

[요새 항상 왜 먼저 앞서 가? 나랑 같이 가기 싫어?]
[니가 빨리 오면 되잖아…]

 

무심하게 대답하는 준식.
 
[나 걸음 느린 거 알잖아….좀 맞춰주면 안되?]
 
준식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하진을 돌아본다.

 

[넌 왜 항상 너한테만 맞추라고 그러냐? 그러는 너는 나한테 맞추는 게 대체 뭔데?]

 

하진은 말 없이 준식을 올려다 본다.
잠시 정적.

이 때,
둘 옆으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간다.

 

챠챠챠챠챠...

 

굴다리 안으로 울려 퍼지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

 

[변했어…너…]

 

하진은 속상하다.
하지만, 준식은 하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가며,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어….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라고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챠챠챠챠챠...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

.

.

.
준식은 주택이 늘어서 있는 골목 어느 한 집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집을 올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손에 든 휴대폰 화면을 본다.

 

<목적지 도착>

 

준식은 주머니에서 하진의 지갑을 꺼내, 다시 한번 유심히 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한 겨울 찬 바람,
아무도 없는 새벽의 주택가 골목.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준식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준식은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본다.

 

12시 42분, 1월 1일.

 

준식은 하진의 집 대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간다.

 

근데,
대문이 조금 열려있다.

준식은 순간 조금 당황한다.
대문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우편함이 눈에 들어온다.
준식은 들고 있는 지갑과 우편함을 번갈아 본다.


 

열려있는 문,
조그마한 우편함
그리고
지갑.

 

계속해서 번갈아 보는 준식의 시야를 통해 그의 고민이 여실히 나타난다.
준식은 초조한 듯 다시 한번 시계를 본다.

 

12시 44분, 1월 1일

 

준식은 예전 굴다리에서 자신의 모습이 불연듯 떠오른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어….'

 

준식은 결심한 듯 우편함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하진의 지갑을 넣으려고 할 때,

 

꺄아악! 퉁!

 

하진의 집 안 쪽에서 앙칼진 여자의 비명소리와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준식은 소리에 놀라 순간 동작을 멈춘다.
조금 열려있던 대문이 진동에 의해 조금 더 열린다.
준식은 그런 대문을 다시 한동안 쳐다본다.

 

'정말…..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걸까?'

 

준식은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골목 쪽으로 뒷걸음질 쳐 대문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꺄악!

 

그 때, 다시 한번 하진의 집 쪽에서 여자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린다.


 

준식은 ‘뭐야’

 

하면서 또 다시 동작을 멈춘다.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그리고 대문, 열려있는 대문을 본다.


순간,
과거 하진과 다투는 모습과 하진의 뺨을 세차게 내리치던 자신의 행동이 번개처럼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챠챠챠챠챠.....

 

굴다리 안에서 울리던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마치 쳇바퀴 굴리는 소리처럼 준식의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준식은 다시 하진의 집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대문 쪽으로 손을 뻗는다.

긴장된다.


 

그때,
하진의 집 대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헉'

 

놀라는 준식.

그리고
그 앞에서 서있는 하진,


 

준식을 보고 역시 놀라는 표정이다.
하진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방금 전 지하철에서 봤던 옷차림과 같지만,

누군가에게 뜯긴 듯, 군데군데 단추가 떨어져 있다.
한마디로 꼴이 말이 아니다.
둘은 놀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보며 서있다.


 

그때,

준식의 시야로 들어오는 하진의 손에 들린 물건.
꽤 무거워 보이는 트로피 같은 물체를 거꾸로 들고 있고 물체의 모서리 끝으로 어떤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마치 걸쭉한 피 같다.

 

준식은 땅으로 떨어지는 액체와 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준식으로선 상황정리가 안 되는 듯 하다.


그리고 곧이어
하진의 뒤 열린 대문 안 쪽, 집 현관에서 비틀비틀 하진의 남편 '오만수'가 마치 좀비 같이 걸어 나온다.


[이.......이......년이........]

 

하진은 만수의 목소리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준식의 뒤로 숨는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만수가 씩씩댈 때 몸 주위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하진은 준식의 뒤에서 숨어 겁에 질려 심하게 떨고 있다.

 

[도....도와줘....]

 

어둠 속에서 비틀대는 만수의 실루엣.
준식은 하진을 뒤로 숨긴 채, 대문 안 쪽을 계속 주시한다.
만수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는,

 

[이....이... 씨...발...년! 당장 안 와!]

 

두리번 대며 하진을 찾는다.
그리고 대문에 서있는 준식을 발견한다.

 

[다...당신 뭐야...]

 

만수가 준식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현관 앞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비틀비틀

위태롭다.

 

준식은 그런 만수를 보고 움찔 하며 조금 뒷걸음질 친다.

 

[씨....발...넌…뭐...냐...고...! 그 년 어디에 숨겼어!]

 

만수는 조금 가파른 계단을 위태롭게 몇 걸음 내려오다,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앞으로

 

쿵!쿵!쿵!


 

머리를 찧으며 꼬꾸라진다.
육중한 육체가 계단 모서리에 의해 충격을 받으면서 피가 낭자한다.

 

하진은 준식의 뒤에서 그 장면을 보며 놀란 듯, 들고 있던 물체를


 

쿵!

 

떨어뜨린다.

 

정적.

쓰러진 만수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준식은 천천히 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쓰러진 만수에게로 다가가

 

[이....이봐요.... 이봐요....정신 차려요....]

 

쪼그리고 앉아 쓰러진 만수를 살짝 살짝 흔들어 본다.

미동도 없는 만수.

준식은 엎드려져 있는 만수를 조심스럽게 뒤집는다.


피범벅이 된 얼굴.
혀가 길게 빠져있고 눈동자가 올라가 있다.

 

이건 분명
죽었다.


 

준식은 놀라서 뒤로 주저 앉는다.
하진도 천천히 죽은 만수 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준식은 뒤로 몸을 질질 끌며 일어난다.
하진은 준식 앞으로 나와 처참하게 죽은 만수의 얼굴을 보고, 역겨운 듯 손으로 입을 막는다.

 

[니....니가 그런 거야? 저 머리....아까 그 손에 든 물건으로....?]

 

준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죽은 만수의 터진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만수 미간에 있는 큰 점이 왠지 돋보인다.

 

[모…몰라….그런가 봐…]

 

하진도 정신이 나간 듯 하다.
 
[저 사람 누군데? 남편이야?...]

 

하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준식은 주머니에서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낸다.

 

[일...일단, 신…신고부터 하자....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

 

하진은 그런 준식 곁으로 다가가서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준식의 소매를 빠르게 잡는다.
그리고 애처롭게

 

[제발.....그러지 마….]

 

준식은 자신을 올려다 보는 하진을 말없이 바라본다.

 

챠챠챠챠챠.....

 

 

준식의 귓가에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환청이 끊이지가 않는다.
아니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 어쩌려고.....]
 
하진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도와줘.....준식아.....]


젖은 눈으로 준식을 보며 도와달라는 하진.

 

그의

옛 연인.

 

준식의 머리 속에 오래 전 굴다리에서 다투던 모습이 또 스쳐지나간다.

그 때,

준식과 하진의 옆으로 지나가던 자전거…


그 자전거가 굴다리 끝에서 멈추고,
준식에 귓가를 때리던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환청도 멈춘다.

그리고,
자전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현실의 준식, 그 자신. 
준식은 굴다리 끝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다투고 있는 과거의 자신과 하진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다.

 

지금,

도와달라며 준식의 소매를 잡고 있는 오래 전 사랑했던 연인의 손.

 

그 애처로운 떨림.

 

예전 항상 먼저 내밀어주었던 그 손

.

.

.

.

.


 

[준식아! 사랑하는 내 남친!]

 

준식은 도서관 앞 긴 계단 끝에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있고,
하진은 그런 준식을 보면서 계단을 올라가며 준식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준식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하진을 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다시 떨군다.

 

[에구....울 준식이 기운 없어요?]

 

하진은 준식 옆으로 다가가 앉아서 고개를 숙인 준식의 머리를 쓰담듬어 준다. 

 

[젠장...또 떨어졌어...벌써 세 번째야.....]
[힘내....인재를 못 알아보는 회사들이 문제지....니 문제가 아니야....] 

 

하진은 풀 죽은 준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위로한다.
 
[야...그러는 너는 한방에 붙었잖아...아....쪽 팔려...]
[나 때랑 같나?....지금은 워낙 회사 들어가기가 힘들어 졌잖아...더 좋은데 갈 거야! 그리고 내가 있잖아! 엉? 준식아~ 힘내~ 화이팅팅팅!]


준식은 풀이 죽은 듯 하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단에서 불쑥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가려 한다.
하진은 가지 말라는 듯이 준식의 손을 잡고는,

 

[가자! 자기야! 기운 내서 또 도전 해야지! 오늘 맛있는 거 먹자!]

 

준식을 잡아준다.

.

.

.

.


지금도 역시,

그 옛날, 그 연인이 준식의 손을 잡고 있다.

이번에는 자신을 도와달라며,
예전에 늘 먼저 내밀어 주었던 그 손으로 말이다.

 

 

'그 때의 그 손으로 지금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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