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님! 정말 찡한 성탄절을 보냈군요..... 찌님의 발기랄랄한 동거의 야그를 들으면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헛갈릴때가 있네요. 절대........오해는 마세요. ...좋은 의미로 받아 주세요..아직 우리에겐 동거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았고 주변에서 또한 무분별한 동거의 형태를 겪어 왔고 문화적으로 또한 우리의 동거란 결혼할 형편이 못되는 커플...그리고 일부 무책임한 젊은 커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는게 현실이죠.
하지만 동거라는 형태의 생활이 선진 유럽에서 태동이 되었듯이 그곳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생활 형태가 사회가 인정하는 결혼생활의 한 다양성으로 인정되어 왔죠. 그대표적인 예가 1차대전 후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던 철학자 Jean Paul Sartre와 보봐리 부인과의 계약결혼(동거<Concubinage>의 한 형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죠. 그들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100년전에 시도한 그 동거생활은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이후 동거라는 새로운 결혼의 한 형태가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번져왔죠.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동거엔 다음과 같은 일종의 rule이 존재하죠.
1. 절대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는다(LOVE IS FREE).
2. 가사(가사 경제 + 가사 노동)는 각자 1/2씩 분담한다.
3.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4. 2세(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그때가서 결혼을 적극 검토한다.(서로 만족하지 않으면 2세가 태어날 수 없다.고로 어느정도 실험적 결혼생활 후 결혼을 결정하는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다)
5. 어느 한쪽이 싫증을 느끼게 되면 동거 의무는 즉시 해제된다.
얼핏 보기엔 철없는 이들의 무절제한 피난처 같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철저한 자기 관리와 책임이 뒤따르는 결혼이라는 제도보다도 엄격한 실험적인 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살아보고 나서 법적인 평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엄격한 책임이 내재한 그러한 동거라 볼 수 있다.
저도 10여년전에 유럽에서 비록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동거를 경험한바 있다. 결국 추구하는 길이 달라 쓰라린 가슴을 욺켜쥐고 갈라 섰지만 얼마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식사도 하던 기억이 난다.단 감정이 남다르다. 그냥 이성이 아닌 동성 친구 같은 원가........ 서로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동거 문화도 좀 더 성숙되었으면 한다. 당사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원망하기에 앞서 좀더 자신에게 철저하게 되물어야 한다..................내가 지금 왜 이사람하고 같이 살까?...........목적이 무었인가?..............나의 자기관리는 제대로 하는가?.............동거가 더이상 결혼을 빙자한 철없는 이들의 到避岸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도 동거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外界人 취급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이 결혼할 여건이 않되는 그런 부류도 취급되어서는 더더욱 아니된다. 그들에게도 성인으로서 같이 살 궐리가 있는 것이다.
찌님!!! 저 찌님의 따끈한 동거뉴스 즐겨 봅니다. 흐뭇합니다. 우리에게도 이제 이렇게 선숙된 동거문화가 자리잡고 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찌에게 많은 팬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ㅉ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입니다. 부디 행복이 계속되길 기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