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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작년 겨울에 먹었던 국화빵 집이 열려있더라

분명 어제는 닫겨 있었는데

오늘부터 장사하나봐

거기 진짜 맛있었잖아

너 우리집 올 때면 내가 매일 사오라 했었는데

시간이 참 빨라

그게 벌써 일년이나 지났나봐

그러고 조금만 더 지나면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겨울이야

우리 둘 다 추위 많이타서

사람들 다 니트입고 기모후드 입고 할때

둘만 패딩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추워 죽겠다고 난리였잖아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추워하냐면서ㅋㅋㅋ

손 깍지끼고 네 패딩주머니에 넣고 거닐었었는데

우리 둘다 손이 엄청 차가워서 하나도 안 따뜻했지ㅋㅋ

춥다고 난리였으면서 넌 항상 우리집에 바래다주고

나 바래다 줄 때는 택시타고 바래다 주면서 자기는 꼭 지하철타고 집에 갔었지

너가 나 바래다준다고 쓴 택시비만해도 20만원은 될거다...

알아서 갈 수 있으니까 그 택시비로 데이트를 몇번 더 하자는 내 말에도

여자는 밤길 위험하다고 꼭 바래다 줬었는데

우리 집이랑 너희 집이 정 반대방향인데도 불구하고

꼭 나 학교 마치고나 일 끝나고 앞으로 데리러 오고

참 그것도 기억난다

나 일하는데 너 갑자기 찾아와서는

내가 전에 예쁘다고 한 머리띠 사왔었잖아

난 좋아서 방방뛰고 막 자랑하고 욕도먹고^^;;

그날 지하철타고 집에 가는길에 졸다가 급하게 내려서 머리띠 나두고 내리고

나 완전 울먹이면서 역무원한테 전화하고 너한테 전화하고 난리였잖아

결국 못찾고 그 머리띠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건데 가지고 내린 사람 저주걸렸으면 좋겠다고

엄청 쌍욕하고 너한테 미안하다며 울먹거리니까

니가 다음날 비슷한걸로 사왔었지

똑같은건 없고 비슷한게 있어서 이걸로 사왔다고... 그거 아직 우리집에 있는데

내가 손톱으로 니 목 할퀴었을때 상처도 진짜 조그맣게 하나도 안아프게 있는데

계속 찡찡거려서 내가 반창고 붙여주니까 좋다고 팔짝팔짝 뛰던 애기같은 모습도 생각난다

그러고 봄 됐을때

벚꽃도 피고 장미도 피고

우리 벚꽃보러 가기로 해놓고 못가고

장미공원 가기로 해놓고 싸워서 또 못 갔었잖아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벚꽃도 다 떨어지고 장미도 지고

내년엔 꼭 같이 가자고 우리 둘 다 너무 아쉬워 했었는데

못 가겠다 그치

어쩌면 둘 다 다른 사람이랑 가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집 앞에 시장에서 같이 꼬지먹고 핫도그 먹고

너 거기 꼬지 진짜 좋아했었잖아 이제 못 먹어서 어쩌냐

꼬지하나 먹으러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올 수도 없고ㅎㅎ

나 집에서 자고있는데 너 갑자기 전화와서는 보고싶다고 나 좀 만나달라고

넌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까 당연히 학교에 있을거라 생각하고는 빈말로 그냥

우리집에 와~ 했는데 갑자기 띵동 해서 엄청 놀랐지

화장도안하고 씻지도않고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얼굴 가리고 화냈었지 갑자기 오면 어떡하냐고 앞으로 이러지 말라고ㅋㅋㅋㅋㅋ

나 너희학교 갔을때 너희 학교 사람들이 막

나 예쁘다 그러고 사람들 식당 아저씨한테도

주황색 홀리 티 입은 여자 봤냐고 예쁘다고ㅋㅋㅋ 너 나보다 뿌듯해 했잖아

너 간짬뽕 좋아해서 우리 돈 없을때는 그냥 편의점가서 간짬뽕 먹고 그랬었는데

계곡가서 내가 너 물에 빠뜨린다고 밀었는데 발 찍혀서 피나고

너 처음으로 나한테 욕했지...ㅠㅠ 난 미안해서 막 어쩔줄 몰라하고

지금 생각하니까 왜이렇게 웃기냐ㅋㅋ 웃음만 난다

그러고 내 생일땐 내가 평소에 갖고싶다고 한 원피스 사줬잖아

그 원피스보러 네번이나 가서 점원이 나 갈때마다

저번에도 와서 이 원피스 보고 가셨죠? 해서 얼마나 쪽팔렸었는데

헤어진 직후엔 힘들었던 기억 싸웠던 기억 울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세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니까

이제는 좋았던 기억만 남아

우리 참 예쁘게 사겼었구나

나만 배려하고 나만 이해하고 나만 아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구나, 하고 느껴

늦은 밤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이 쓸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날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금 익숙해 졌어

내가 쓸쓸하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집에 도착할때가 많았거든

있지

많이 고마웠고 또 많이 미안했어

사실 너도 나한테 미안해해야 할 일들이 수천가지지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난 진짜 좋았거든

살면서 제일 좋았던 것 같아

너 잘 지낸다고

내 생각 이상으로 잘 지낸다는 말 들었을 때

내심 섭섭하고 화나기도 했지만

이젠 정말 다행이기만 해

네 덕에 배운게 참 많아 너 또한 그럴 거라 생각해

우리는 이제 끝이 났지만

우리 만날때 서툴고 부족해서 상처로 남았던 부분

다음 사람에게는 절대 그러지 말자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이제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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