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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 - 영화배우 문숙 고백 중에서... (3)

사랑아사랑아 |2013.10.29 07:57
조회 1,026 |추천 1
[잊을 수 없는 사랑]

영화배우 문숙이 30년 만에 고백하는 “23세 연상 고 이만희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가슴 아픈 이별…”

30년 만에 다시 본 영화 ‘삼포 가는 길’에서 만난 그의 숨결

“그토록 건장하고 힘차게 현장을 지휘하던 분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쓰러지기 전 간경화를 앓았다는 얘기를 얼핏 듣긴 했지만,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죠.”

그러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이 감독은 열흘 만에 44세라는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고, 문씨는 내내 중환자실 문밖을 지켰지만 끝내 단 한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못한 채 그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던 순간, 죽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존재가 그 사람을 데려간 거예요. 시간이 더 흘렀으면 우리의 연애 관계도 한껏 부풀어오른 고무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조금씩 조금씩 변했을 텐데…. 우리의 사랑은 그만 한순간에 뻥 터져 자취도 없이 사라진 거죠.”

스물한 살 나이에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라고 믿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고 나니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했다. 삶의 열정과 활기로 가득 차 있던 젊은 배우 문숙은 그의 죽음과 함께 영영 사라져버린 것 같았고, 자신에게 남은 건 모든 의욕을 잃은 껍데기뿐인 것 같았다는 것이다. ‘삼포 가는 길’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그는 껍데기만 남은 채로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더 출연했지만, 배우로 일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저는 영화감독과 살던 여배우잖아요. 사람들은 그걸 ‘아무나 건드려도 되는 여자’로 여긴 거예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어떻게 해보겠다고 접근하는데, 정말 황당할 뿐이었죠.”

그러던 중 그는 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의 청혼은 자신을 힘든 세상에서 지켜줄 바람막이이며 구원 같았고 문씨는 77년 그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78년과 84년 아들, 딸을 차례로 낳았지만 92년 이혼했고, 이후엔 플로리다주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매년 개인전을 열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겪은 충격 때문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항상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요가와 명상도 공부해 몸의 건강을 음식으로 다스리는 치유음식 조리사 자격을 얻었으며 지금은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자연건강음식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30년이 흐른 지금 이 감독에 대해 얘기하게 된 건 지난 2004년 뉴욕에서 우연히 ‘삼포 가는 길’을 다시 보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75년 봄, 이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열린 시사회 때 원작자 황석영씨 옆에 앉아 울음을 참고 본 것을 마지막으로 애써 피해왔던 영화였다.

“뉴욕에 머물고 있는데 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링컨센터에서 ‘삼포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곧 상영한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했어요. 저는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듯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죠. 미국으로 떠난 뒤 누구에게도 제 이력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 영화 제목조차 입 밖에 낸 적이 없었거든요.”

그는 “왜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당신이 그 영화 주인공인 게 분명하다. 같이 보러 가면 좋겠지만, 당신이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혼자라도 보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아무 일 없는 듯 생각하려 했어요. 하지만 무관심한 척하기엔 덫에 걸린 발목이 너무 아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떼어놓을 수가 없었죠. 만나지 않으려고 그토록 도망다니던 영화 ‘삼포 가는 길’이 30년 만에 나를 찾아낸 것이, 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상영된다는 것이 우연치고는 너무 운명적으로 여겨졌어요. 게다가 제 딸이 마침 그 영화를 찍을 때의 저와 정확히 같은 나이였죠. 저는 우연이라는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나는 숙명적인 사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문씨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네 나이였을 때의 모습을 보고 싶으냐”고 묻고 함께 영화를 봤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자 30년 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생생하게 밀려왔다. 긴 세월 동안 유리병에 넣어 간직한 보석들이 색깔 하나 바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그는 오랜 세월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뒀던 한 사람의 숨결이 다시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며 살았지만 사실 제 마음속엔 큰 상처가 있었던 걸 알았어요. 말 한마디 없이 내 곁을 훌쩍 떠난 그에 대한 미움, 그리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저 자신에 대한 실망과 증오, 그리고 그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뒤엉켜 굳은 철문이 돼 저를 가두고 있었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백화가 나오는 장면마다 놓치지 않고 그를 따라잡는 카메라 뒤편, 그분의 눈길을 의식하는 순간 제 마음속 무거운 철문 사이에 균열이 생기더군요.”

문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감독과의 강렬하고 짧은 사랑을 가졌던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최근 이 감독과 함께한 1년의 추억을 담은 책 ‘마지막 한 해-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을 펴냈다.

“황석영 선생님이 제 책에 그런 글을 써주셨어요. 우리는 이만큼 늙었는데 이만희 감독은 지나간 세월 속에 우리보다 젊은 나이로 머물러 있다고요.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감독님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젊은 연인으로 살아 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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