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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5. 아름다운 패배가 키운 ‘차세대 지도자’ ⑺

참의부 |2013.12.28 19:30
조회 174 |추천 0

 

노무현은 ‘어이 없이’ 끝난 짝사랑 사연도 털어놓았다. 공사판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했을 때 예쁘장한 간호보조원들에게 자꾸 마음이 쏠려 별 일이 없으면서도 나가서는 은근히 그녀들과 마주치길 기대하면서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러나 그녀들은 도대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상심에 빠져있던 어느 날, 울산의 국세청에 다니던 친구와 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면회를 와서는 며칠간 같이 놀아주곤 돌아갔다. 그러자 그에 대한 그 처녀들의 대우가 확 달라져버렸다. 반갑게 인사도 받아주고 입원실 청소까지 해주었다. 이에 노무현은 내심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그 중 한 아가씨가 그에게 오더니 대학 다니는 그 친구의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김이 팍 새는 순간이었다. 그는 “세월이 지난 뒤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에 상심이 꽤나 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상심을 달래기 위해 병원에 있는 동안 두 편의 단편소설 습작을 썼다.”

 

노무현은 한가로운 사석에서는 손수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술자리에서는 주흥이 일면 곱사등이춤도 추는 등 흥을 아는 정치인인지라 익살에도 능했다. 자식들 얘기를 쓴 대목에서도 그 특유의 익살이 넘친다.

 

˝큰놈은 겨우 대학에 들어갔으나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도 아니고, 딸아이도 별로 세지도 않은 대학에 시험쳤다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있으니, 아내는 아무래도 욕심이 차지 않아서 속이 상한 모양이다. 가끔 아내는 “당신을 닮았으면 공부를 잘 할텐데 나를 닮아서 돌인가보다.”라고 해 놓고는, “당신이 아이들에게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면서 다시 나에게 화살을 겨누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 정도만 해도 고맙다. 두놈 다 나보다 키가 크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다. 공부는 별로지만 건전한 시민이 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기왕이면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기를 바랐지만, 나나 아내의 생김새를 생각할 때 그건 얼토당토 않는 욕심이다. 두 놈 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심지어 한 일자 주름살까지도 나를 닮았으니, 나로서는 아내도 아이들도 탓할 건덕지가 없다.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토로하려 하면, “그건 아버지를 닮아서 그래요.”하고 슬쩍 내 약점을 찌른다.˝ - 노무현,《여보 나 좀 도와줘》, 새터, 2004년, 131쪽~132쪽.

 

‘아버지’ 노무현은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아버지, 존경받는 아버지가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일”이며, “세상 여건이 어렵더라도 그래서 당장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도, 적어도 아이들한테 위선만은 보여주지 않도록 고민하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한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 일이 보도되자 어머니는 동네 사람 부끄러워 못살겠다고 한탄하신 반면에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날 아이들은 무덤덤했다. 부끄러운 일 한 적 없으니 마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당부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엿다. 며칠 뒤 경찰서에 면회를 와서도 형제간에 장난을 치고 까불었다. 당시 한 놈은 중학교 2학년, 다른 한 놈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아내가 너무 가정적이라서 불만이다. 명색이 정치인의 아내가 도무지 밖으로 얼굴조차 보여주려 하질 않으니, “정치라는 일은 미쳐야 하는 것이니 같이 미쳐보자”고 통사정을 한다. 이 또한 그 특유의 익살이다.

 

˝이제 둘째아이가 올해면 입시준비가 끝난다. 나는 그 때를 기다린다. 이제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내를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올 참이다.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 때 내 아내 양숙씨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일 테니까…. “여보 나 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씨, 우리 같이 한 번 미쳐보자. 응?”˝ - 노무현,《여보 나 좀 도와줘》, 새터, 2004년, 139쪽~140쪽.

 

오랜 세월 그와 ‘동행’해 온 문재인은 노무현을 두고 “그 분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치열한 사람이었다. 그 분도, 나도 어렵게 컸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려 했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보고자 애썼다”고 했다.

 

이처럼 천성이 따뜻한 사람 노무현은 특정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았다. 그도 젋은 시절 한때 이념을 두고 고뇌했지만 사회주의, 특히 그 권력구조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상대주의 철학에 기초를 둔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당시엔 청년들과 어울려 다니면 수시로 이념논쟁을 벌였다. 난 당시 사회주의에 찬동을 하지 못했다. 노동자 변론을 자주하면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주의가 그 대안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내게 사회주의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한 책들이 있었다. 리영희 교수의 <베트남전쟁>이 그것이다. 사회주의가 주제는 아니었지만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도 심취해 읽었던 책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주덕 사령관이 연안의 방직공장 여공들과 함께 배구를 하는 장면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내가 사회주의에 결국 승복 못한 건 아마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배운 법률 체계가 헌법에서부터 일반법까지 모두 상대주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에 마음이 좀 끌리다가도 권력구조에 부닥치면 그만 ‘이건 아니다’로 돌아서곤 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224쪽.

 

부민협 활동을 하던 당시 노무현은 “리영희 선생의 저서들을 시작으로 ‘의식화’되었다.” 이 무렵 부민협에서는 선생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는데, 그 뒤풀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선생의 저서 가운데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높게 평가한 대목은 오류가 아니었는지를 물어 인정을 받아냈다. 아마 노무현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이념도 ‘절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도 리영희 선생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노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투신한 계기가 되었던 ‘부림사건’은 청년과 학생들이 수십 권의 기초 사회과학 서적 또는 현실비판 서적을 교재로 공부한 것이 빌미가 됐다. 기소 내용엔 ‘그 책들은 읽으면서 북한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ㆍ고무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 그 가운데 리영희 선생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도 있었다. 변호사로서 변론을 위해 읽은 책을 통해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후 노 변호사는 더욱 폭넓은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서 이른바 ‘의식화’됐다. 리영희 선생 책이 그 출발이었다. 그 후 우리가 부민협을 할 때, 리영희 선생 초청강연회를 두세 번 한 적이 있다.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리영희 선생에게 질문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 오류가 아니었는지”라고. 그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오류였다. 글을 쓸 때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 그 시절은 역시 자료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때는 정신주의에 과도하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솔직함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 이종은·김담,《단숨에 읽는 문재인의 운명》, 132쪽, 가교, 2012년.

 

노무현은 큰 정치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의 꿈은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노무현은 그 하나의 증거를 남기고 싶어했다. 노무현이 아내에게 보낸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라는 메세지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1929년~1968년)의 소망과 맞닿는다.

 

킹 목사도 노무현처럼 비주류 변방인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참혹한 변방’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킹은 암살당하기 얼마 전 워싱턴 링컨기념관 계단 위에서 행한〈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친구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오늘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고난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아직도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꿈은 ‘미국의 꿈’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 불공정과 박해의 무더위로 숨막히는 불모의 땅, 미시시피주마저도 언젠가는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바뀌어 질 수 있으리라는 것 또한 나의 꿈입니다. 나는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색깔이 아니라 각기의 개성에 따라 평가되는 그런 나라에 살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하며 간절한 꿈의 메세지를 전했다. ‘흑인’ 킹이 암살당한 지 40년이 지난 미국에서는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킹의 ‘꿈’ 한 조각이 이루어진 셈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노무현의 꿈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것인가? 현실은 여전히 암담하다.

 

● 노무현과 링컨 그리고 정의가 성공하는 역사 

 

노무현은 젊었을 적부터 백범(白凡) 김구(金九) 지사(志士)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백범은 “종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지조를 지킨 지사로서, 우리 한민족에게 벗어나기 힘든 운명처럼 다가운 분단에 끝까지 맞선 분이기 때문”이다.

 

백범을 존경해온 노무현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차츰 의문이 생겼다.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패배했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는 정의가 패배한다’는 역사적 당위로 귀착되었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

 

긴 울림을 남기는 대목이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는 노무현에게 평생의 화두가 되고 정치활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가 되고 도전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600년 동안 굴러온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가로막고 선 ‘도끼 발톱을 곧추세운 사마귀’ 당랑지부(螳螂之斧)를 연상케 한다.

 

˝춘추시대 때 제(齊)나라의 장공(莊公)이 어느 날 수레를 타고 사냥터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이었다. “어허, 기세가 대단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벌레인가?” 마부가 대답했다. “저놈은 사마귀라는 벌레입니다. 놈은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후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힘은 생각하지도 않고 저렇게 덤벼드는 것이지요.” 이 말에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록 작은 벌레이긴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천하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미물이긴 하지만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가도록 하라.”˝ - 노무현,『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년, 5쪽~6쪽.

 

『장자(莊子)』「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고사다. 원 뜻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모하게 덤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인류 역사에는 이런 가상한 용기를 지닌 ‘당랑지부’들이 있어서 잘못 굴러온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고자 했다. 그는 백범을 만나면서 ‘정의가 패배해온 역사’에 의문을 품어오다가 링컨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역시 패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참이었다.

 

˝나의 정치 역정 또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정치현실에서 나는 늘 쫓기는 입장이었다. 나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지만 92년 총선에서도,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96년과 2000년 총선에서도 계속 떨어졌다. 당에서도 힘 없는 비주류였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물었다.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이 자문의 틈을 자연스레 비집고 올라온 것이 링컨이었다.˝ - 노무현,『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년, 6쪽.

 

노무현과 링컨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가난한 집안, 낮은 학력, 노동자 생활, 변호사 개업, 선거에서 거듭된 낙선, 논쟁(링컨)과 청문회(노무현)로 전국적 인물 부상, 동서화해(노무현)와 남북화해(링컨), 제16대 대통령 당선…. 게다가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까지도…….

 

“자문의 틈을 자연스레 비집고 올라온” 링컨을 본격 연구한 노무현은 “자신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한”《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펴내면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링컨의 삶에서 찾고자 했다. “‘정의는 항상 패배한다’ 이것이 가당찮은 역설에 지나지 않도록 만들면서 진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깨끗이 씻어준 본보기는 김구 선생이 아니라 링컨이었다. 나는 훌륭한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링컨에게서 얻는다. 해방 이후 한국사는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여러 가지 왜곡된 타협을 강요해왔다. 이상이 현실에 굴복하고 현실이 이상을 구박하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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