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조금 쌀쌀하고, 춘천 마라톤 완주한 지도 오래 되지 않아
운동하러 가기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백운산 임도를 떠올리며 숲으로 가서 나무들처럼 인디언들의 11월을 음미해 보기로 하며 집을 나섭니다.
대한 걷기 연맹 공인 “건강 숲길” 제1호 – 백운산 국유임도 11㎞
백운산 국유임도는 자연휴양림을 끼고 11㎞, 왕복이 아닌 문자 그대로 둘레 숲길입니다.
출입구에서 휴양림까지의 약 2㎞ 정도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지만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면서는
숲 속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숲은 종합병원이요, 당신의 두 다리는 의사입니다.
본격적인 숲길 입구에 세워진 “건강숲길” 공인1호 기념석,
차량 통행이 가능한 초입 2㎞의 길도 계곡 쪽과 숲 쪽으로 다양한 휴식 시설이 있어
그 자리에 머물러도 훌륭한 휴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숲의 치유력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휴양림에 대한 인기가 높아져서 전국의 어느 휴양림이라도
사시사철 예약자가 넘쳐난다지요.
하긴 숲길만 한 바퀴 돌아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인데
숲 속에서의 1박이라면 온 몸이 깨끗해지기도 하겠군요.
걷기에 좋은 자연 환경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받은 일일 것입니다.
집에서 차로 10여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언젠가 걷기에 대한 글을 쓸 때,
경포호수 한 바퀴를 돌면서 강릉 시민들을 부러워했는데, 이제 많이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걷자
휴양림 게이트를 차로 통과하면서 입장료 천원을 내는 짧은 순간,
관리인은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듯이 “산불예방 기간이므로 등산로 출입은 안되며,
취사 및 흡연은 할 수 없으며…” 주의사항을 순식간에 알려줍니다.
등산로는 순환 임도 사이 지름길처럼 계곡을 끼고 있는 조금은 가파른 오솔길을 말합니다.
침엽수에서 떨어진 잎들이 레드 카펫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융단길을 만들어 주었네요. C-:
걷기 시작하면서 보는 숲길은, 나뭇잎이 모두 다 떨어지지는 않은 11월의 나무들 덕분에,
대종상 시상식의 레드 카펫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융단길이 되어 눈을 씻어 줍니다.
곧 인적 없는 숲길이 시작되자 계곡물 흐르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남은 나뭇잎 소리,
산 속의 새 소리들이 귀를 맑게 해 줍니다.
일요일 오전이라 부지런한 등산객은 손으로 꼽을 만큼 지나칠 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새삼 돌아봅니다.
한 발 두 발 걸으면서 잘 한 일, 아쉬웠던 일,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힘들새 없이 전망대에 다다릅니다.
조금 더 긍정적이고 친절했었더라면 하는 반성이 듭니다. 마음이 착해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내려가도 될 것 같습니다.
임도의 추억 – 이 길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사실 이 길은 지난 3~4년 동안 많이도 와 본 길이었습니다.
걸어서도 다녔고 뛰어서도 다녔고, 혼자서도 걸었고 동행과도 걸었으며,
조금만 걷다가 돌아가기도 했고 순환 길을 두 번이나 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멀리 올라온 길이 아득히 보입니다.
생각해 보니 혼자 달리기 연습하다 길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뱀에 놀란 적도 있었고,
이른 아침 눈 내린 하얀 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환호했던 아름다운 추억도 있었네요.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저의 모습은, 등산 장비 일체를 갖춘 등산객들이 볼 때
무슨 괴물로 보였을 것 같기도 하여, 그 후론 달리기는 이른 아침 시간에만 하는 원칙을 세웠지요.
언젠가는 헉헉거리며 중간쯤 오르막을 달려가는데 내려오는 등산객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역시 마라토너는 다르네. 요 아래 “서곡막국수”에서 기다릴 테니 운동 끝나는 대로 내려오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제 갈 길을 갑니다. 학부모로 만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한 지인입니다.
드디어 백운정 전망대. 전망대에서 보이는 원주 시내
그 날은 숲길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서곡막국수”에서 낮술에 대취하여
기억이 달아난(?) 날이었습니다.
등산객 여러분, 수 년간 수 십번 다녀 본 제가 단언컨대,
백운산 둘레 숲길은 산책로이므로 등산 장비로 중무장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려 가자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선생의 시’
올라오는 동안 무거워진 다리를 가벼워진 마음이 내려가는 길을 이끌어 줍니다.
내려가서 만나는 누구에게도 친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라온 길이 아래로 아득히 굽이굽이 보이지만 이미 지나온 길입니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내려올 때 보입니다.
고은 선생님의 시 구절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건강숲길” 공인 제1호 기념석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두 시간의의 숲길 산책으로 지난 한 해를 되새김하고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과연 “건강 숲길”의 힘입니다.
걷기의 대가로 알려진 베르나르 올리비에(프랑스. 1938~)가 권하는 걷기도
역시 혼자서 조용히 걷기입니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 한 번쯤 좋은 길 찾아 혼자 걸으면서
‘모두 다 사라지기 전’에 사색에 푹 빠져 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 숲길 입구에 위치한 “서곡막국수” 산행이든,
산책길이든 바퀴 걸었다면 그냥 지나치긴 서운한 운치 있는 맛집입니다 C-:
다시 일상으로 – 사소하기에 소중한 일상
숲길 걷기로 정화된 마음으로 즐겁게 집을 향합니다.
교통 질서 무시하는 운전자에게도 “바쁘겠군”하며 너그러워집니다.
아파트 입구 슈퍼에 들러, 아이들을 위한 과자,
우리 부부를 위한 포도주를 사고 만 원을 내니 60원이 남습니다. 만 원의 행복입니다.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