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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그녀때문에 죽기전에 할일

불타는꽃사슴 |2013.12.31 16:12
조회 287 |추천 0
이제 몇시간만 있으면 28살이 되는 모태솔로 입니다. 껌



좀 씹으시는 형아, 누나들이 말씀하시는 동정남이라고도



하죠.^^♡



저의 첫사랑은 동네앞 하천에서 시작된거 같습니다. 초등



학교2학년때 집근처 하천에 1학년 여자애가 탱탱볼이 빠



졌다고 들어갔다가 못나오고 끙끙되길래 제가 구해줬는데



평소 친구에게 놀림받고 심지어 하급생에게도 ㅅㅂ놈아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심한 찌질이였는데 여자앞에서



벙어리이기만 했던 저는 한순간 인간이라는 탈을 섰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도랑물에 내려가 그녀의 손을 잡았습



니다. 그이후 저는 동네할머니와 친구의 인수, 인계?를 거



쳐 집근처의 교회에 가게 되었고 저의 첫사랑 그녀도 교회



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때문에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니었고 예수님이란 분이 계시는데 돌맞는 여인을



보호하시고 가난한자와 병든자를 돌보시고 특히 원수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너무 감동받아



서 다니게되었습니다. 명절빼고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나



가고 2달에 한번씩 발간되는 매일성경 같은곳에 글을 보



내서 저의 글이 실리고 기독교방송에 제 사연을 보낸 다음



라디오로 들을때가 가장 기뻤고요 남이 보기에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6학년이 되기전 초콜렛



데이때 그녀는 제친구와 저에게 교회입구에서 포장도 없



는 소박한 가나초콜렛을 하나 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부다 나눠줬던거겠지? 라고 저 자신을 위로하지만 당시



에는 아! 그녀가 나의 이름이라도 기억해주는구나! 내가



여자애한테 인기도 없는 찌질이는 아니구나!라는 혼자만



의 망상에 사로잡혀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준 초



콜렛을 아껴먹고 포장지는 남겨둘려고 했으나 구질구질하



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을까봐 그녀가 처음으로 준 초



콜렛은 영영 못보는곳으로 갔는데 지금에서야 눈물이 나



는군요. 가나(초콜렛이름)야! 오빠가 못지켜줘서 미안해!



ㅠㅠ 어느새 나를 지켜주지 않고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었고 성적이 좋지 못한 덕에 실업계에 진학하



게 되었는데 집은 진주였지만 연고지에서 학교를 다니면



저의 자신을 통제하기가 어려울것 같고 더군다나 실업계



인데 집에서 통학하면 술, 담배만 하고 부모님 등꼴 빠지시



는걸 진심으로 깨닳기 힘들것 같아서 멀리 창원에 있는 기



계공고 기숙사에서 생활 하였는데 처음에는 무지 힘들었



습니다. 삥뜯는 애들도 한무리가 있고 시끄러우면 매번 저



녁에 단체로 기합받고 2학년이 되닌깐 나아지기는 했는데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난후 집이 무척 그립고 입학당시 같



은 교회 다니는 형이 자기도 기계공고를 다니는데 자기 학



교보다 내신이 더 안좋은 학생이 가는 학교라며 제가 다니



는 학교는 못하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고 그것이 학업내내



거슬리고 해서 결국은 2학년 2학기 부터 왕복100km를



일년 반동안 통학하였습니다. 장거리 통학을 하면서도 매



일 집에가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날생각에 슬프지는 않았



습니다.



고3이되고 같은 학교 친구 한명이 진주에 살길래 연고지



에서 실습을 나가게 되었는데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탈때 그녀가 보였는데 공장에서 일하고 용접냄새,



쇠냄새, 떡진머리... 이런모습을 중학교 남자동기들에게



조차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녀와 여러번 버스에서 만났



지만 대화도 못하고



21살에 헬스장에서 알바를 하면서 친한 아주머니 고객에



게 저의 고민을 털어 놓았고 저는 용기내어 문자로 그녀에



게 고백을 하였고 결론은 차였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왔



고 자취하며 대학교 다니던 그녀는 매주 토요일에 집에



오는데 역앞 사거리에서 저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는 서로 모른척하고 저도 우산으로 외면했는데 그녀가 부



르더군요. 오빠라고 두번이나 불렀지만 나같은거한테 여



자는 무슨..이라고 속으로 되새기며 가던길 계속갔고 그



이후 교회도 안나가게 되었는데 22살이 될쯤 10여년동안



교회를 과자랑 여자만 보고 다녔다. 나도 노는물에 속하구



나! 교회가서 교인들 피만 빨아먹는놈이구나! 이런 못쓸놈



이라고 제 자신을 꾸짖었고 고등학교때 절친과도 싸운후



2008년부터 지인과의 관계를 끊고 나 혹시라도 돈 많이



벌면 연락할께라고 다짐한다음 직업훈련원에 들어갔습니



다. 기능사양성1년과정을 수료하면서 자격증을 3개나 취



득하고 간신히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회사에 입사했지



만 일못해서 입사 딱 두달째에 사장님한테 욕을 듣고 생전



처음으로 일하던곳에서 짤리는 굴욕을 당한뒤로 돈 떨어



지면 막노동 나가는 히키생활만 하다가 최근에 주소도 이



름도 안적힌 청첩장이 우편함에 있길래 무시했는데 저녁



에 아버지께서 저의 동기가 결혼 한다는 내용의 대화로 누



군가에게 통화를 하실 때 혹시 나의 짝사랑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아침에 청첩장을 보니 다행히



그녀의 이름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좋아한다는 것에 심각



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제 그녀와 저는 학교도 교회도



어디서 우연이라도 만날곳도 없고 대뜸 연락해서 또 고백



하면 또 차일게 분명하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쥐뿔도



없는데 그녀가 테레사수녀도 나이팅게일도 아닌데 계속생



각이 나는 겁니다. 이모에게 저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네가



노력한게 없는데 어떤여자가 거들떠봐?였고 친구에게 청



첩장을 받은 이후 계속 그녀 생각이 나네요. 이제 너무 멀



어졌는데... 몇달전부터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나죽



으면 그녀가 조금이라도 날 생각할까? 내이름도 기억못



하겠지? 에잇, 그래도 눈물 조금은 흘러주겠지? 라는 잡생



각이 들던중 오늘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왕에 죽더라도 남



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죽자고. 경찰, 소방원, 군인? 이



셋은 나이 제한도 있고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거 같고 간호



조무사가 되어서 전쟁터에 의료지원가서 총맞아 죽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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