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일동안 평생 못들었던 욕은 다들어 본거 같다.
거기다 덤으로 부모욕까지 엄청 들었다.
첨엔 멘탈붕괴가 오더니 지금은 내성이 생겨서 그러려니 한다.ㅋ
그리고 난 소설 지망생도 아니고 주작으로 날아오르고 싶은 병신도 아니다.
만약 내가 주작을 한다면 저 많은 정보를 찿아내고 써야 하는데 일베나 갈라고 그런 수고를 니들같으면 하고 싶겠냐?
난 단지 너무도 잘못알려준 북한의 어떤 현실을 공유하고 싶었고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었던 이야기를 익명으로 하면서
위로를 얻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정말 많이 위로를 얻었다.
너희들이 알고있는 많은 북한 이야기는 왜곡되거나 편파적인거야.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이 있고 그들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으며 힘없는 서민들을 갈취해서 먹고사는 망나니들도 있지.
이북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도 지옥같지만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어.
그들 모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한결같은 로봇은 아니거든.
특히 젊은이들은 감성적이고 유행을 따르고 연애를 하고싶어하는 어찌보면 니들이랑 똑같은 사람들이야.
단지 시대와 사회를 잘못 만난것 뿐이지.
그들은 절대로 머리에 뿔나고 얼굴이 빨간 괴물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들은 분명 이세상 그어떤 나라들보다도 더 끔찍한 철권통치를 아주 효과적으로 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통제할수는 없어.
또한 후진국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한것은 너희들도 익히 알고있는 사실일거고 북한의 부정부패는 이루 말할수가 없어.
그 한줌의 기득권세력들이 부정부패로 축적한 부로 저런 인생을 사는거야.
결국 난 너희들에게 졌다.
민증 인증했으니까 그것보고도 주작이라고 그러는 애들이 있다면 어쩔수 없지.
5탄과 마지막 6탄으로 나는 물러갈거야.
다만 내 바램은 너희들 모두가 북한사람들을 외계인이나 로봇으로 생각치 말아달라는거야.
기득권 세력은 미움 받을만 하지만 그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죄도 없는거야.
단지 그땅에서 태어난것이 죄인거지.
여기서 글싸지르고 이러는것이 오프라인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내상황을 대리만족하는 내 병신력일수도 있지만
그럴지라도 난 너희들이 북한사람들을 미워하지않았으면 해.
4편에서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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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우리는 막막 했었어.
그 작은 개울물같은 강을 건너왔다는 죄아닌 죄때문에 우리는 그어디에서도 발편잠을 잘수없는
도망자 신세였지.
연길에서 안도로 가는 소형버스를 탔는데 금방이라도 뒤덜미가 잡힐거 같은 불안감과
억울함등이 속으로 밀려와서 참 어지러웠어.
1조로 떠난 저들은 살길을 찿으러 갔다는 이유로 자기가 살아오고 헌신해온 고향땅에서 무참히 죽어갈것이 아니겠노.
갈곳도 없고 잠시 마음놓고 쉴곳도 없는 우리에게 그 조국이란곳은 무엇을 해주었을까?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강요당하고 세뇌당한 우리에게 행복할 권리라는것은 애시당초 없었던 것일까?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래진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나는 안도의 어느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지.
모두가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것만 같았고 리야카를 끌고 두부장사하는 아저씨도 마치 우릴잡으러 오는 공안처럼 생각되더라.
자연스러운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순간이었지.
딱 이렇게 생긴 마을이었던것 같애.
시내로 나가려면 택시를 타고 수십여분을 가야했던것으로 기억이 나네.
코구녕만한 집안에는 곰팡이 냄새가 풍겼고 집주인은 우리가 오자마자 대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버리곤 가버렸지.
우리는 여기서 언제올지 모를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내야 했어.
자그마한 tv한대와 dvd플레이어가 다인 집안에서 우리는 2개여월을 보내지.
이 오래된 드라마를 몇번을 돌려봤는지 몰라.
숨어있는 동안 나는 고현정을 너무 좋아하게 됬었지.
지진희를 그렇게 동정했던적이 없었던것 같애.
사실적인 연기와 감성은 충분히 나를 감동시켰었지.
물론 나중엔 바꼈지만.
그렇게 끔찍했던 독방생활이 3개월쯤 접어들 무렵
드디어 우리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게 돼.
탈북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어 우리는 그 어떤 다른 국경으로도 갈수가 없었어.
너무도 위험했고 솔직히 갈수있는 용기가 안나더라고.
바로 몇시간전 통화했던 동료들이 체포되는 상황을 알게됬는데 그리 쉽게 결심할수가 있었겠노?
우리는 국경을 넘어서 제3국을 경유하는 방법을 버리고 중국에서 직접 탈출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돼.
그러나 이 방법은 비용이 3배이상 비싸고 안전역시 완전히 담보할수 없는 상황인거야.
그렇다고 그 시골마을에 언제까지나 맥놓고 있을수는 없었지.
고민끝에 어머니와 우리는 3배의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동안 우리엄마는 엄청나게 야위여 갔지.
앞으로 어떤상황에 처할지 모를 자식들 땜에 잠인들 오시겠노.
어쨋거나 우리는 안도현을 벗어나 다시 연길로 들어가.
그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지.
브로커가 갈아입을 옷을 사준다고 해서 연변의 서시장이라는 큰 쇼핑몰로 쇼핑을 나갔지.
눈이 뒤집어 지는줄 알았어.
한국의 쇼핑몰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지만 내가 본 그곳은 정말로 굉장했지.
그곳에서 처음으로 찢어진 청바지를 보고 궁금했지.
저걸 파는것일까 아니면 버리는것일까?
설마 저것을 사입는 사람들이 있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거든.
난 절대로 시도도 못해볼 희한한 옷들과 물건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속으로 연신 탄성을 질러댔지.
소스라치게 놀란곳이있었는데 바로 여성 란제리 샾이었어.
여성의 속옷을 꺼리낌없이 전시하고 팔수있다니...
그리고 저렇게 새우그물처럼 다 비치는 속옷을 입는 여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참 웃기는 생각이였지.
그 곳을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가는것이 뻔뻔스럽게 느껴져 꽃게눈을 하면서 지나쳤었어.
어쨋거나 챙피하지 않을 만큼의 옷차림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저녁을 먹을 음식거리를 사고있는데
아줌마가 내동생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거 아니겠노.
(아가씨 조선에서 왔재? )
순간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어쩐지 머리결이 참 곱다했재오)
많은 북한사람들을 보아왔던 모양이야.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생각을 했지.
나름 멋지게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얼굴엔 탈북자라는 지울수없는 낙인이 찍혔나 보다.
몇일을 더 머문후 우리는 중국의 모 지역으로 이동을 해.
어머니의 강력한 요구로 우리는 자가용을 이용해 이동을 하게 되지.
버스나 기차에서는 불시검문의 위협이 있거든.
떠나는 날 우리를 데려다 주기로 한 그녀석은 자기 와이프가 아닌 세컨드를 데리고 나오더라.
우릴데뎌다 주고 거기서 몇일을 놀면서 즐기다 온다는거겠지.
좋은 말로 하면 애정표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경박스러운 행동들이 참 웃겼지.
어떻게 저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안쓸수 있는지 궁금했어.
우리가 얼마나 달렸는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거다.
대한민국을 왕복으로 10여번은 다녔을 거리를 우리는 좁은 승용차의 뒷자석에서 쉬임없이 가고갔지.
그때 느낀건 정말로 중국은 넓고 크구나 하는 생각이였지.
거기다가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많은 자동차는 처음봤지.
한국오니 차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버리는 상황도 가끔 보이더라고.
결국 차가 그렇게 많은건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였어.ㅋ
한국가서 돈벌면 차부터 사고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
그러나 지금도 차는 없다.
휴계소에서 잠깐|씩 자고 먹고 엄청난 멀미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희망을 향해서 한걸음씩 전진했지.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우리는 중국의 모 도시에 도착해.
연변을 보았던 우리들은 다시한번 뒤집어졌지.
정말로 화려하더라.
사람들은 더 세련됬고 고층건물들은 깨끗하고 완벽했으며 대중교통 또한 훌륭한 차들이였지.
평양의 대중교통은 수십년도 넘은 노후화된 설비들이라 비교할 상태도 아니였거든.
다만 공기가 좀 탁한게 흠이더라고.
우리는 어떤 경치좋은 산기슭에 위치한 아파트에 들어가게 돼.
여장을 풀고 몇시간을 잔지도 모르고 일어나니 배고 죽도록 고프더라.
장거리 여행으로 변비까지 생겨 참 불편했었어.
그런데 그집 주인인 한족여인이 밥줄 생각을 전혀 안하는거야.
이 아줌마의 남편은 저녁마다 맥주를 몇박스씩 메고 들어오곤 했는데 밤새껏 와이프와 술을 마셔대는거야.
우리는 정해진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말이지.
밥도 아주 조금에 이상한 중국 나물 한가지로 달랑 던져주고는 우리와 말한마디 하지않았지.
말은 안했지만 노골적인 멸시가 느껴지더라.
분하고 억울했지만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노.
브로커는 분주히 준비를 하더라고...
여권사진을 찍고 시간과 날짜를 확인함과 동시에 비행기 티켓을 사고...
그때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포토샾하는것을 보았다.
마우스로 내 눈섭을 손질하고 피부를 깨끗하게 하는거야.
그리고 당시 코등에 엄청 큰 여드름이 있었는데 사진을 받고보니 감쪽같이 없어진게 아니겠노.ㅋ
사실 보이는 모든게 신기했어.
그때 처음으로 피씨방도 가보았다.
어느날 저녁엔 브로커가 약에 취해 들어오더니 날보고 자본주의 의 맛을 알게 해준다고 히죽거리면서 날 데리고 시내로 나갔지.
그때 처음으로 룸살롱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가보았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였는데 문앞에 삐끼 가 배꼽인사를 하는 바람에 나도 같이 해버렸다.
브로커새키가 겁나게 쳐웃더라고.
그리고 룸으로 들어가 앉았었지.
브로커는 단골손님이였나봐.
들어가면서 몇명의 이름을 호명하며 부르는것 같았어.
잠시후 문이 열리더니 옷을 입었는지 안입었는지 분간이 안되는 아가씨 두명이 둘어오는거야.
어떤 상황인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한 아가씨가 난생 처음보는 나에게 안기며 오빠라고 소릴 질렀어.
평생 처음당한 행동이었고 난 그여자의 행동자체를 이해못했지.
용수철 처럼 튕겨서 그녀를 내려놓고 구석에 서있었어.
엄청 당황하고 겁난 표정으로 말이야.
그런상황에도 남자란 어쩔수없는 동물인지 자꾸 깊이 파인 가슴골과 하얗고 늘씬한 다리사이로 눈길이 가는거야.
그러고 나는 거기서 그녀가 부어주는 술을 마셨지만 한번도 그녀를 터치해보지 못했다.
사실 그녀와 가까이 앉지도 못했어.
그녀의 요염한 손짓과 술기운에 내 청바지는 터질것 같았지만 20여년간 굳어진 나의 세계관은
다른 어떤 행위도 부정하고 용납하지 않았지.
그리고 나는 거기서 끝내 기절해서 업혀오는 망신을 당해.
다음날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자꾸 그녀 생각이 나면서 내몸은 지옥의 노짱처럼 불타는거야.
그다음 일은 프라이버시라 생략.
그렇게 우리는 거기서 또 1개월 여간 준비를 해.
그러던 어느날 브로커가 불쑥 오더니 내일모래 떠날거라고 말해주더라고.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불안감과 희망이 뒤섞인 알지모를 감정이 뒤섞여.
마치 밤을 새고 몹시도 피곤한 아침 거한 아침밥을 먹고 마을버스를 탔을때같은 느낌이야.
그 불편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담담히 다음을 준비해.
사실 브로커는 여권을 위조하는거였어.
중국에 관광왔다가 분실당하거나 도난당한 여권을 사서 나와 비슷한 나이로 매치가 되는 여권을 골라 사진과 도장을 위조하지.
지금은 모두 사진이 인쇄되어 나오는 여권이지만 그때엔 사진을 따로 붙이는 그런 여권이 있더라고.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해보면 그들의 위조기술은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였어.
드디어 아침이 밝아왔지.
비행기 시간에 맟추어 우리는 택시에 오르지.
떨리는 마음으로 택시밖으로 펼쳐진 중국을 보면서 생각했어.
내가 이곳에 다시 올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올거라고.
그때는 날 멸시했던 저 중국아줌마부터 엿먹일 방법을 찿을거라고 말이야.
결국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게 되지.
난생처음 그렇게 멋있고 많은 비행기들을 보았어.
북한도 순안국제비행장이 있지만 다 낡아빠진 러시아제 여객기뿐이었고 몇대 되지도 않았지만
그곳 공항은 참으로 별세상 같았어.
거기다 엄청많은 보안요원들도 보이고 참 무섭고 신기한 경험이였지.
얼빠진 표정으로 공항앞 광장에서 나는 중국에서의 마지막 담배를 피워.
왜 담배가 그리 빨리 타버리는지 연달아 두대를 피우고야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지.
이젠 죽어도 살아도 이길뿐이었어.
브로커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어찌어찌 하여 어찌가면 될것이다.
그러나 네가 길을 잘못들거나 게이트를 헷갈리면 그때는 나도 어쩔 방법이없다.등등.
근데 그렇게 넓고 큰 공항에서 거기다 모든 안내문구는 영어와 중국어 뿐이었는데 황당하지 않겠노.
그러나 이젠 돌아설수도 없는 길이였어.
중국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내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거라고 예감했지.
잡히면 북한에 끌려가 죽는 순간이 될것이고 살면은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태어나는 새로운 내가 될것이 아니겠노.
나는 이를 악물고 동생의 손을 잡은채 그 죽음의 문턱이 될지도 모르는 희망의 게이트를 향해서 걸어나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