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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역사로 보는 군주&부인의 사랑이야기 -징기스칸&보르테

콜로라도 |2014.01.06 10:54
조회 18,464 |추천 18

"아버지 얼마나 다 가야해요..."

 

열살쯤 되었을까 한 소년이 지친 듯 모래언덕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자 앞서가던 아버지는

 

어린아들을 뒤돌아보며 달래듯이 말을 건낸다...

 

"이제  온기라트 부에 거의 도착했단다. 좀 더 힘을 내렴.... 그곳엔 미인이 많지 곧 너의 색시감을

 

구할 수 있을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일어나 다시금 걷는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여보시오... 거기 지나가는 분.... 어디로 가는 것이오"

 

자신을 데이 세첸이라고 밝힌 그 노인은 두 부자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소년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낙타에 올렸다. 그리고 연신 자기집으로 가자고 성화였다.

 

노인과 부자가 도착한 곳은 바로 온기라트 부였다. 그 곳에서 노인은 두 부자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데이 세첸은 자신에게 딸이 있으니 이 참에 소년과 결혼을 시키자고 하였다. 예수게이라는 이 남성 또한 데이 세첸이 온기라트 부 내에서도 상당한 재물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혼담에 기꺼이 응했다. 잠시 후 마유주를 가지고 온 한 소녀를 본 소년은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버지가 말한대로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 또한 소년을 보자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개졌다. 데이 세첸은 크게 웃으며 자신의 딸이 보르테라고 했다. 테무진 보다 한살 많은 보르테는 아름다우면서도 밝은성격이었다고 한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바라보며 설레였고 마냥 좋아했다고 한다.

 몽골제국의 대칸이자 원나라의 태조 징기스칸은 온기라트 부 내에서

 어렸을 적 자신의 첫사랑이자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테무진이라고 했다. 정식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진 몽골어로 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낳기 직전 전투에서 쓰러뜨린 적 부족장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예수게이는 크게 만족하며 당시 몽골풍습대로 자신의 아들을 데이세첸에게 맡긴 후 자신의 부족에게 돌아갔다. 테무진은 보르테와 함께 놀며 데이세첸의 일을 도와주었다. 예정대로 라면 이대로 결혼할 나이가 차면 보르테를 대리고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갈 터였다. 하지만 하늘은 그들을 호락호락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데릴사위로 보낸뒤 홀로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 족의 적대적인 부족장들에게 독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테무진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친척들과 부족 사람들은 모두 테무진과 그 가족들을 저버리고 주르킨, 타이치우드로 가서 가문이 완전히 망해버려 남은 부족 인원이라곤 자신과 어머니, 형제들을 포함해서 고작 9명이 돼버렸다. 테무진은 남겨진 가장으로서 물고기를 잡거나 땅굴에 숨은 쥐를 잡아먹으며 어머니와 형제 및 부하들을 부양해야 했다. 그 와중에 이복형 벡테르가 자신의 자리를 넘보자 그를 죽였는데 이 때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으며 이것을 명분으로 삼은 배신자들에게 쫒기다가 붙잡힌 후 여러차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의 부족장 타르고타이 카릴톡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갖은 학대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훗날 사준사구의 일원이 되는 티라운과 그의 형, 아버지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였다. 다만 탈출했을 당시에 개에게 쫓긴 경험으로 성인이 돼서도 개를 두려워했고 한다. 또한 천신만고 끝에 사지에서 도망쳐 나온 테무진은 얼마 후에 가족들의 말을 훔쳐 달아난 말도둑을 잡으러 갔다가 훗날 사준사구의 일원이 되는 볼츠를 만나서 인연을 맺었으며, 그의 도움으로 말을 되찾아 오기도 하였다.)

 

테무진의 나이 17세가 되었을 때 그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보르테를 데리고 오기로 결심했다. 나름대로 예물을 갖추고 간 그는 데이 세첸에게 보르테를 내 줄것을 요청했다. 데이 세첸은 내심 그가 온기라트 부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테무진을 처다 본 후 자신의 딸을 맞길만 하다 여겼는지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 무렵까지 테무진을 기다린 보르테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8세였다.

 

어느정도 여유를 되찾은 테무진은 아버지 예수게이와 '안다의 서약'을 맺어 의형제를 맺은 적이 있었던 케레이드 씨족의 족장인 옹 칸을 찾아가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선물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예를 맺음으로써 부족을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었다. 이로 말미암아 테무진의 이름이 몽골 초원에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그의 휘하로 모여들어 흩어졌던 부족을 어느정도 재건할 수 있었다.

 

비록 어느정도 세력을 회복하였다고는 하나, 테무진의 세력은 여전히 초원에서는 약자에 불과했다. 어느 날 메르키트 부족이 테무진의 부족을 습격하였다. 테무진은 가까스로 몸을 피했으나 사랑하는 아내인 보르테는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당했다. 보르테의 살려달라는 비명소리는 테무진의 귀를 때려 테무진은 달려나가려 했지만 보오르츄 등이 가까스로 말렸다. 이대로 나가면 개죽음에 불과할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분통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렇듯 테무진은 스스로 아내를 되찾아오는 일도 불가능했을 정도로 세력이 미약했다.


 

9개월 후 테무진은 의부인 옹 칸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자무카 등의 도움을 받아 메르키트를 쳐서 절반의 남성들을 죽여 복수에 성공 간신히 아내를 되찾을 수 있었다. 연신 보르테를 외치던 그는 한 메르키트 포로에게서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테무진은 사랑하는 보르테를 되찿았다는 기쁨에 장막을 열고 보르테를 반갑게 불렀지만..... 이내 곧 얼어붙고 말았다.그녀는 불은 배를 잡고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난 기쁨의 눈물인지 이제야 찿아왔냐는 원망섞인 눈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내인 보르테는 메르키트 족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메르키트 족의 장수였던 칠게르에게 겁탈당했으며 칭기즈 칸이 구하러 왔을 때에는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다. 이 때 테무진의 가신들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아들로 키우거나 들판에 버리자고 하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뱃속에 있는 아이가 메르키트의 씨앗이라고 주장했다.   테무진이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보르테는 산달이 다가와 아이를 낳게 되었다. 테무진은 고민 끝에 보르테의 막사를 방문했다. 어쩌면 그는 가신들의 말처럼 아이를 보내거나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이를 꼭 안고 원망과 희망의 눈빛을 보인 아내 보르테와 힘차게 어미의 젖을 빠는 아이를 본 순간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 확신했고 가신들에게 이 아이는 보르테가 납치되기 전 관계를 가져서 생긴 자신의 아들이라며 더 이상 이 문제를 왈가왈부 할 시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보르테에게서 태어난 장남 주치는 두고두고 '남의 씨앗'이란 의혹을 받아 은근히 천대를 받게 된다. 이런 주치의 출신 문제는 두고 두고 후계자 문제에서 갈등을 빚게 된다. 주치라는 이름부터가 '손님'이란 뜻이었으니 더욱 그런 점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테무진은 힘을 합쳐 메르키트를 무찌른 후에 잠시동안 자무카의 자다란 세력과 합류하여 함께 부족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서로간에 뜻이 맞지 않은데다 한 부족을 두 지도자가 계속 다스리기도 힘든 노릇인지라 곧 결별하였다. 이후에 자신을 지지하는 부족들에게 몽골 칸으로 추대되었으며, 이후부터 '칭기즈 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따라준 장수들과 부하들, 형제들에게 관직을 나누어 주는 등 논공행상을 하였다.

 

이후 자무카의 동생을 죽인 관계로 사이가 악화되어 그들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결국 자무카를 도망가게 만든 징기스칸은 이후 더욱 더 세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이 무렵 보르테와의 사랑도 더욱 깊어져 그녀에게서 총 4남 5녀를 보게 된다.

 

상당한 세력을 일군 징기스칸은 금나라 승상 왕경의 요청을 받아 옹 칸과 함께 금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타타르 족을 정벌하게 되었다. 타타르 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칭기즈 칸은 오랜 숙적이었던 타타르를 무찌르고 타타르 족의 장수인 메구진 세울투를 잡아 죽이는 등 크게 활약하며 명성을 떨쳤다. (타타르족은 이때 거의 씨가 마르게 되는데 징기스칸은 타타르족을 마차옆에 세운 후 마차바퀴보다 큰 자나 작은자나 목과 허리를 베어 가차없이 도륙했다. 그리고 타타르족의 미녀공주들인 예스이,예스겐 자매를 부인으로 거두었다.)

 

징기스칸은 세력을 회복하게 되면서 많은 여성들을 농락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인 보르테를 사랑해 그의 막사를 자주 방문해 여러가지 일을 논의했다. 그녀는 테무진에게 있어서 단순한 성적유희의 대상이 아닌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였다. 징기스칸에게서 이러한 대접을 받은 여성은 어머니인 호엘룬과 아내인 보르테 뿐이었다.

 

이후 자다란의 구르 칸으로 추대된 자무카가 자다란, 타타르, 타이치우드, 메르키트 연합군을 구성하여 공격해오자 함께 타타르를 정벌했던 케레이트의 옹 칸과 몽골-케레이트 연합군을 결성하여 쿠이텐에서 맞서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회전 승리 이후 타이치우드를 추격하던 칭기즈 칸이 적측의 장수 지르고아다이의 저격으로 목을 맞아 피를 많이 흘려서 사경을 헤메게 된다. 다행히 사준사구 중 하나인 젤메가 밤새도록 칭기즈 칸의 피를 입으로 빨고 뱉으며 지혈해주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놀라운 활솜씨로 자신의 목을 맞추었던 타이치우드의 장수 제베를 거두어 들여 부하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징기스 칸은 자신을 쏜 병사를 찾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아끼는 백마의 목을 쏜 녀석이 누구냐며 포로들을 심문하는데 이때 제베가 나서서 "내가 쏜 건 맞지만 내가 노린건 백마가 아니라 당신 목이었다." 라고 말한다. 솔직 담백한 걸 좋아하는 칭기즈 칸은 '날(화살촉, 칼날 등을 총칭)'이라는 뜻의 새 이름 제베를 하사 하고 크게 기용했다.
옹 칸과 함께 자무카를 꺾으며 초원의 강자로 거듭난 칭기즈 칸은 과거에 자신을 사로잡아 노예처럼 부리며 굴욕을 주었던 타이치우드 족을 섬멸하여 복수하고, 타타르의 잔여 세력을 추격하여 전멸시키는 등 강력한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칭기즈 칸과 함께 동맹을 맺었던 메르키트의 옹 칸은 욕심이 많은 인물이라 칭기즈 칸과 함께 약탈을 하면서 얻은 전리품을 좀처럼 나누어 주지 않으려 하는 등 비겁한 짓을 저질러 칭기즈 칸의 성질을 돋우었다.


결국 옹 칸이 자무카와 은밀히 연합군을 결성하여 갑작스럽게 배신을 하고 몽골족을 급습하였다 당시 직접 연합군을 지휘하였던 자무카는 다시 한 번 칭기즈 칸의 군대를 격파하였고 징기스 칸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였다. 처참하게 패배한 칭기즈 칸은 일단 자신의 부하들과 부족민들을 모두 분산시켜 달아나게 한 후에 자기 자신은 오직 20명 남짓한 결사대만을 이끌고 달아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후 징기스칸은 아우인 카사르와 더불어 기적적으로 군세를 회복하고는 대승을 거두고 마음을 놓고 있던 옹 칸의 케레이트 족을 쳤다. 그 뒤 다시 초원으로 진격을 하면서 미친 속도로 사람을 모았는데 다 자발적으로 왔다. 이는 칭기즈 칸이 이전까지 행해지던 관습과 달리 혈통 차별 금지, 공평한 약탈물 분배 등으로 자기 자신보다 부족민들을 위한 행동 등을 취해 초원의 비 기득권 층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의 이러한 파격적인 정치력은 몽골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강력한 몽골기병으로

재탄생한다.

 

이후 케레이트, 나이만, 자무카 등을 비롯한 모든 숙적들과 싸워 이긴 칭기즈 칸은 몽골 초원의 명실상부한 독자 세력으로 부상한다.특히 타타르족과 메르키트 족은 끝까지 쫒아가 남자는 어린아이라도 모두 다 죽여 멸족을 시켜버렸다. 그 명분은 조상의 복수와 감히 대칸의 아내를 노린 죄였다고 한다. 그리고 통일 전쟁을 마친 1206년 소집한 쿠릴타이(몽골 지역의 대족장 회의)에서 몽골 제국을 세웠다. 보르테는 대 카툰(황후)가 되어 시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성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징기스칸과 보르테는 그래도 여전히 함께 다정하게 어울리며 사냥도 함께했다. 그들의 옆에는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네 아들이 있었고 다섯 공주 중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옹기라트 족에게 시집보내 이때부터 옹기라트 가는 부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부족이 되었다.

 

몽골을 완전히 통일한 이후, 칭기즈 칸은 부족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법과 질서를 바로잡으며 무엇보다도 칸의 귄위와 권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동안 입은 피해를 회복하고 힘을 보충하는 데 주력하였다. 몽골 최초의 법전인 야삭도 이때 만들어졌으며 당시 큰 권력을 가진 종교집단의 수장인 테브 텡게리를 처형해 그 세력을 꺾어 버림으로써 몽골의 모든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또한 몽골문자를 만들게 해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업적을 기술하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원조비사였다.( 몽골의 법전인 야삭에는 대개 몽골의 낡은 풍습이나 악습 등을 폐지, 개혁하며 오래전부터 초원에서 생겨났던 크고 작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초원 사람들이 더이상 다른 사람의 신부나 신랑을 강탈해가지 못하도록 법률로 금지했는데, 자신의 아내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당했었던 칭기즈 칸의 괴로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통일 이후 징기스칸은 상대적으로 약한 서하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낸 후  숙적인 금나라를 공격했다. 이후 여러번의 전투 끝에 마침내 금의 수도인 연경을 포위할 수 있었는데 금도 더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공주를 내주고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항복해 버렸다.   이 무렵에 당시 요나라 왕족 출신의 금나라 관리였던 야율초재를 등용하였다. 실무와 정치에 능한 야율초재는 이후로 몽골제국 내정을 다듬는데 일조하였다. 본래 칭기즈 칸은 금나라 땅을 점령한 후에 그 곳에 살던 농민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땅을 가축을 키우기 위한 방목지로 개간할 생각이었으나(...) 야율초재의 조언에 따라 점령지의 농민들을 죽이지 않는 대신 조세를 걷어 들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이후 칭기즈 칸이 호라즘에 보낸 사절단이 오트라르 성의 성주에게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호라즘과의 관계는 차츰 험악해졌다. 이후에 칭기즈 칸이 사과를 요구하는 전령을 보냈으나 사절단을 해친 이날축이 하필이면 국왕 호라즘 샤의 동생이라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과를 받으러 갔던 전령들은 되려 수염이 깎인채로 돌아오는 수모를 겪었다.
진노한 칭기즈 칸은 친히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호라즘 원정을 떠났다. 이때 그는 예스겐의 청을 받아들여 후계자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자식들과 함께 보르테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보르테와 징기스칸은 가슴속에 묻으려고 했던 일들이 차남인 차카타이에 의해 언급되자 크게 당황하였다. 보르테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이러한 아내의 모습을 본 징기스칸은 대노해 형인 주치와 싸우던 차가카이를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결국 두 사람 모두는 칸의 자격에서 탈락하고 온화하가 친화력이 많은 삼남 오고타이가 후계자가 된다.    당시 아바스 왕조를 깨뜨리고 전성기를 맞던 호라즘 왕국은 40만에 달하는 군대를 갖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몽골군 역시 중국을 상대로 싸우며 더욱 발달된 전략, 전술을 지니고 있었으며 중국의 성곽을 공격하면서 공성전 경험을 충분히 쌓은 상태였다. 몽골군은 뛰어난 기동력을 앞세워 순식간에 오트라르 성을 무너뜨리고 내지로 진입하여, 호라즘 전국토가 몽골인들의 말발굽에 탈탈 털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오트라르 성이 함락된 후에 몽골 사절단을 죽였던 이날축은 양쪽 눈에 녹인 은을 붓는 형벌을 받아 죽었다. 크게 참패한 호라즘 샤는 모든 것을 잃고 카스피해의 작은 섬으로 들어가 숨어있다가 그 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수도인 부라하가 함락당하면서 그의 아들들은 몰살당하였다. 또한 이날축 처벌을 반대했던 샤의 어머니 테르켄 하툰은 수도가 함락된 후에 몽골군에게 끌려가서 몽골인들의 하녀 및 성노예로 전락하였다.

 

 징기스칸이 외국원정을 떠나 당대에만 넓혔던 영토... 그의 자손들은 여기에 중국전역과 이란, 러시아 등을 추가시킨다.

 

호라즘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칭기즈 칸은 얼마 후에 서하를 완전히 정벌하기 위해 직접 출정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서하 원정 도중에 칭기즈 칸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했을 당시의 칭기즈 칸은 이미 나이가 60세가 넘은 노인이었기 때문에 낙마 사고는 굉장히 치명적이었을 것이다.(야사에 의하면 서하의 왕비가 음부에 독을 바른 후 징기스칸과 관계를 가져 죽게 했다는 설이 있다.)

칭기즈 칸은 점차 병이 깊어 죽음을 눈 앞에 둔 와중에도 끊임없이 서하 정벌을 지시한 후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게르에서 살다 평범하게 늙어 죽고 싶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1227년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그리고 같은 해에 서하도 함께 완전히 멸망했다. 보르테의 경우 후계자 선정에서 참여한 것을 제외하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보르테를 진정한 아내로 인정하였고 그녀에게서 낳은 네명의 아들만이 후계자 후보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몽골공화국의 공식역사는 징기스칸이 제국을 세운 1206년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구 소련시절에는 러시아의 보복으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다가 1990년대 이후

다시금 연구와 헌화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으며 국부로 존경받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울란바토르에 있는 징기스칸 거대상이다.


PS: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이라크에선 알렉산드로스 3세와 함께 가장 최악의 침략자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론리플래닛 지은이인 토니 휠러가 이 세 나라 가서 칭기즈 칸 이야기를 했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멱살까지 잡히고 "그 XX 이야기는 왜 하는데? 이름만으로도 기분더러워. 또 그 말하면 당신 가만 안 둬." 이런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야기하니까 정말이지 기분좋게, 긍정적으로 대꾸하는 사람을 도통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징기스칸을 중국인이라 우기고 있다. 나아가 지들 동북공정을 넘어서 중화우월주의에 써먹고자 모델로 쓴다. 내몽골 자치구에서 가짜 무덤까지 만들고 몽골이 지배한 곳은 죄다 중국 땅이라는 주장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물론 개념있는 학자들과 일반인들은 원나라 황제들이라면 몰라도 칭기즈 칸에 대해서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 대만에서는 중국대륙과 함께 몽골도 미수복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라고 우기기도 한다. 지금이야 대중문화물에서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지만, 의외로 사학적으로 연구도 된 설. 이쪽의 대표자는 오야베 젠이치로로, 오슈, 만주, 몽골을 돌며 자료를 수집해 '칭기즈 칸은 요시츠네'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읽어보면 어처구니 없는 논리 전개다. 또한 자료수집은 열심히 했지만 일본의 만주침략 당시라 말도 안되는 위증 자료까지 증거랍시고 내놓고 그걸 빌미로 학살과 침략을 실현화한 것들이다.(하라이즈미에서 탈출한 요시쓰네가 가신인 무사시보 벤케이를 이끌고 사할린 해협을 거쳐 고생끝에 몽골 땅에 들어온 후 마침내 징기스칸이 되었고 무사시보 벤케이는 제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Ps2: 참고로, "집안이 못났다고 실망하지 마라..." 식으로 전개되는 칭기즈 칸이 했다는 말은 사실 '김종래'라는 기자가 그의 일생을 토대로 독자를 격려하는 내용의 가상의 글을 만들어서 자신의 자기계발서에 쓴 것인데 어느샌가 그 얘기가 쏙 빠지고 칭기즈 칸의 어록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감동적인 역사인물의 실제 어록이라면서 인쇄해 들고 온 지인을 보고 멘붕했다고(...) 어디 가서 이런거 진짜라고 우기지 말자. -엔위하키 미러 인터넷발 징기스칸 어록에서 발췌   출처:엔위하키 미러, 네이버케스트 징기스칸편
추천수18
반대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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