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인터넷 타고 왔다갔다 하다가
네이트에 판이라는게 있었지 생각하고 들어와서 보니
아 나도 이런 걱정을 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
저는 올해 서른셋, 만으로 서른 둘인 남자입니다.
해외근무만 사년째 되네요.
한동안 힘들었던 건설업에서 사년째 힘든 밥줄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왔네요.
(해외 건설은 국내보단 경기를 미세하게 덜 타는군요.)
스물 여덟에 졸업을 앞두고, E모 기업과 유모기업에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눈이 너무 높았나 싶어 중소기업 포함 하루 평균 두세개씩 이력서를 쓰는게 육개월 째.
여자친구도 취업 안되냐면서 슬슬 발을 빼는 분위기에,
나이는 점점 차오르고, 고향에서 명절때마다 부모님에게 받는 '내 아들 사랑 관점'의 질문은.
'아니 왜 네가 취업이 안되니?'(안될만 하니까 안되겠죠...)
거의 자포자기 한 채로 게임중계에 빠져서 밤과 낮이 바뀌고 피시방 단골 등록에 새벽 편의점 알바동생과 삼각김밥 친구먹는 스토리는 다들 익숙하신지 모르겠네요.
그러다 여자친구도 떠나고, 이게 계기였는지 아님 때가 된것인지, 아님 계기가 없었든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밤잠도 없어졌겠다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취업의 8할은 어쩌면 자취방 가까운데에 신문보급소가 있었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각오나 의지나 그런것도 없었고,
신문배달원 급구, 이런 광고문구를 본 것 같아요.
신문 한 부를 한집에 한달간 넣으면 2000원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삼백부를 주더군요. 다른데는 그만큼 안주는데 조선일보가 요율이 좀 좋았어요.
코리아 헤럴드랑 스포츠조선이랑 같이 넣었던 것 같아요.
몸이 움직이니까 배가 고프더군요.
새벽공기와 함께 아주 오랫만에 느꼈던 배고픔이 왜 그 당시 그렇게 기분좋은 느낌이었는지...
그렇게 어영부영 우연처럼 시작한 바른생활이 차츰 익숙해지고.
새벽이 바쁘고 피곤하니 저녁에 잠을 잘 자게 되더군요.
다행히 천성이 게으르고, 덜렁거리지만 모난데는 없어서 잘 버텼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 새벽 스케줄 하나 소화하는게 그렇게 힘들더군요.
세벽 세시 반까지 가야 하는데 지각도 숱하게 했었고, 비오는날 넘어져서 한코스 도는데 다섯시간 걸린적도 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님댁에 신문 넣다가 열심히 산다고 칭찬받을때는 좀 낯뜨겁더군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두달쯤 지나고 일을 하다보니.
아 인생에 공짜는 없구나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아는 내용이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흔한 말.
제가 책으로 배운 인생에서는 너무 흔한 말인데,
그때 느낌은 아직도 새롭습니다. 아 인생에 공짜는 없구나.
그 후로 영어학원비가 없어서 못다니던 학원을 다닐 돈이 생기더군요.
신문배달을 끝내고 아침시간이 피곤하지 않게 될때쯤. 아침 영어 말하기 수업을 등록했는데.
지각이라는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배달 마치고 집에서 씻고 나오니까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생님 오시기 전 삼십분전에 교실에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오해 아닌 오해들로 저는
등록이후 지각 결석을 한번도 하지 않은 성실한 학생이 됩니다.
뭐 이런 경우가...
학원에도 근로장학생 비슷한 제도들이 있더군요.
영어실력과는 상관없이 아침청소/오픈/마감청소를 하고 수업을 두시간 삼십만원 한도 내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더군요.
그 당시 제가 돈도 없고 옷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서인지
좀 후줄근하게 다니니까 원어민 선생님은 가끔 커피까지 사주시며 다른 학생들보다 더 관심을 주시더군요.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모님의 기대와 제 자신의 취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이력서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의 목표는 취업이지 영어공부가 아니니까요.
취업전선에 탄력이 오는 시기는 두말하지 않고.
토익 스피킹이 7급을 찍으면서 부터 입니다.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진짜예요)
애인도 없고 학교도 안다니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고 친구도 다 취업했고
할일이 없어서, 영어말하기 수업을 진짜 열심히 따라갔는데 초급-중급은 잘 넘어갔는데 중급에서 고급이 잘 안넘어가요. 그래도 고급반 선생님께서 성실하다는 소리 하나 믿고 고급반에 넣어 주셨습니다. (아 이렇게 사람관계와 평판이 중요하구나 이런것도 느꼈구요.)
청소할때 이 선생님 강의실만 깨끗히 닦았던 불평등한 마인드가 문득 생각이나서 웃기네요.
이*다이아몬드공업같은 굴지의 세계적인 중소기업의 면접에 갔을때는
타 지원자들의 영어실력에 주눅이 들어 눈물을 보인적도 있었구요(아 진짜 부끄럽네요. 하지만 너무 간절했기 때문인가 눈물이 그냥 나오더군요. 영어라는게 네이티브들은 확실히 달라요. 아니 왜 미국 대학교 석사가 중소기업 면접에 오냐고.)
반도체 엠*코리아(이 기업도 상당하죠.) 면접 가서는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질문도 못받고 나온적도 있습니다.(이과대 아닙니다. 이과대는 취업 잘되시잖아요. 저 의외로 인문대 출신입니다)
아 중요한 건. 제가 옛 감상에 빠지는게 아니라.
서류가 통과되기 시작한 타이밍이 그 즈음이라는 겁니다.
제가 자빠져 놀고 먹으며 이력서 쓸때는 죽어도 안오던 면접 공지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내세울 것 없는 이력서에 띄엄띄엄 내 진짜를 채워갈 무렵
거짓말 처럼 서류통과가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이력서에 신문배달과 학원 아르바이트, 토익스피킹 점수를 써 넣었죠. 히히)
모르겠네요 인사업무는 제 영역이 아니라 잘 모르긴 하지만.
진짜 내 이력서를 읽긴 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읽어봐도 내 전 이력서는 쓰래기였어요.
아 지금 여긴 새벽이네요.
어머님한테 어제 저녁에 국제전화가 왔는데.
'야 아들, 내가 니 애민데, 진도 조도에 니 아버지랑 노후에 살 딱 좋은 집이 나왔는데. 이거 네 통장에서 좀 해결한다. 반대는 우리가 반대한다.'
하셔서.
어머님이 좋으시면 좋다고 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는데. 왜이렇게 오래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눈물나.
(조도가 섬이라 그런지 집값이 저렴하더군요.)
너무 중구난방해서 제가 취업하고 느낀 감흥을 번호순으로 적어 봅니다.
1. 현재 저는 저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꿈꾸던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요.
애초에 제가 그리던 직업은 아니었어요.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진 않더군요.
하지만 어렵게 어렵게 적응하며 제 2, 제 3의 테스트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결과야 뭐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죠.
2. 사년동안 일만하다가 결혼을 못함. 연애도 못함(해외임).
(아 이걸 하면 저걸 못하고 저걸 하면 이걸 못하고 진짜 인생이 쉬운게 아니구나아아아)
3. 적성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일이 주어짐에 감사하며 열심히 짜증도 좀 내면서 일하고 있는 보통 직장인입니다. 제가 겪은 취업의 진통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들 그런과정 겪으시면서 취업하시잖아요. 불우한 환경이 아니었던 제 상황은 오히려 좀 나은 편이죠.
4. 자랑질도 아니고 염장질도 아니고 그저 저도 과거에 백수 백조 이야기에 틈틈히 글도 남기고 과거에 즐겨보던 판이어서 한번 남겨 봅니다. 어서어서 자극받으실 분들이 자극 받으셔서 취업 대박 나시면 좋겠어요.
5. 취업 하고 나서도 힘드네요. 난 왜 취업만 하면 내 인생의 행복이 시작될거라 생각했을까요.
아 진짜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 이렇게 돈벌어오는 거였나요... 아 아빠한테 짜증낸거 엄마한테 싫은소리 했던거 완전 한순간에 후회되고 성은이 망극하게 감사하게 됩니다.
6. 난 내가 좀 잘났는데, 운이 없어서, 혹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내가 저평가 받는다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와. 진짜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 엄청 많고, 뭐 이런놈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꼼꼼한 사람들도 엄청많고, 뭐 전생에 개미였나 싶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도 엄청 많네요. 이런 사람들이 고속 진급해서 임원다는구나 요즘 이런생각 함. 뭐 인종이 틀린 것 같아. 뇌가 두개라던지 뭐.
캄사합니다. 변변찮은 글이라도 읽어주신게 어딘가요.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