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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6

무념무상 |2014.02.26 09:10
조회 1,040 |추천 6

출처:웃대, 피더스님

 

 

젠장할, 젠장할. 나는 다시금 미친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래,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녀가 이 동네에 살고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이 확실하다. 여기서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 그녀는 정말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이 동네에 산다는 걸 알고, 내가 누군지 전부 알고, 나한테 전화를 건걸까.


‘아니, 아니지.’


저 여자가, 지금 주차장에 서있으며,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저 여자가. 정말 내 통화 상대가 맞을까?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확실하다. 밤이라서 잘못본게 아니다. 저 여자는 지금 휴대폰에 대고 입을 움직였고, 그 소리는 정확히 이어폰 줄을 통해 내 두 귓속으로 전달됐다.


문제는 바로 그녀가 정한 타겟이였다. 김지희. 대채 이 늦은 시간에 뭘 하고 돌아다니는거야? 신발, 미치겠군.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요. 찾았으니까.”


내 귓가에 또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가로등 아래에 서있던 여자의 입이 움직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 여자다. 어젯밤 나에게 살인을 생중계했던 여자도, 똑똑함을 넘어 이상할 정도였던 여자도, 지금 즐거운듯이 옅은 웃음을 전달하고있는 이 통화 상대도. 모두 저 여자다. 싸이코패스, 미친년.


“그래…, 그럼 난 이제부터 조용히 있을께.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감상이나 하고 있겠다고.”


아주 조용히, 움직이는 내 입가가 저 여자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입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도 이해했다는 듯이 ‘알았어요.’ 라고 대답해왔다. 나는 오른쪽 귀에 꽃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휴대폰은 왼쪽 목부분에 끼워있었고, 왼쪽 이어폰은 그대로 꽃아둔 상태다.


이제 문제는 바로 지희였다. 섣불리 다가갈 순 없었다. 이대로 지희의 이름을 크게 불러 그녀가 날 알아보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왼쪽 목덜미에 끼워져있는 휴대폰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이대로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에게 접촉해야하나? 아니,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였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김지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가능성이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내 휴대폰을 타고, 싸이코의 귓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담 바로 알아차리겠지. 지금 김지희의 옆에 서있는 남자가 바로 나라는걸. 자신과 통화하고, 자신의 살인 생중계를 들어주고있는 남자라는걸.


‘어쩌지? 어떡하지?’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참아요, 여긴 너무 눈에 띄거든요. 그리고, 보는 눈도 있고.”


보는 눈? 보는 눈이라고? 나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김지희와 나, 그리고 내 통화상대를 제외하면. 그렇다면 여기서 보는 눈이란건 나를 말하는거겠지.


심장이 요동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편의점의 불빛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부분에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지희에게 문자를 날려야하나? 물론, 통화는 그대로 연결시킨채로. 요즘 휴대폰에게 그 정도 기능쯤은 우습다.


아니, 그럴수는 없었다. 보는 눈이라고 표현한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가자 마자 자신의 귓가에 종업원의 ‘어서오세요.’ 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이것 역시 위험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골목길로 들어가 문자를 날릴 시간도 없었다. 한 시라도 빨리 생각을 해내야만 했다. 김지희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여자를 살인마의 손으로 부터 떨쳐내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도, 김지희는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집으로 향하는 건가? 아니, 대채 왜 지희 집은 저 쪽에 지은거야? 아니 그보다 왜 저 쪽 방향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거야?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문자를 한다해도 너무 늦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의심받지 않을 정도의 발걸음으로 지희에게 다가갔다. 주차장에 서있던 그녀는 이미 지희의 뒤를 따라걸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걸어갔다.


상황은 간단했다. 지희가 맨 앞에 서있었고, 그 뒤를 살인마가 그리고 그 뒤를 내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대로 괜찮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뒤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다면 쉽게 지희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이대로라면….


“어, 오빠?”


아주 찰나의 순간이였다. 자신의 뒤에 사람이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묘한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지희가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에, 나는 얼굴을 가리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신발, 신발, 신발, 그냥 그대로 걸어가지 그랬어. 그냥 앞 만보고, 집 까지 쭉. 대채 왜 뒤를 돌아봐서….


다행히도 지희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전에 말했다시피 휴대폰의 음질은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였기에, 방금 지희의 목소리는 내 휴대폰이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조그맣게 들려왔다고 하더라도, 살인마는 자신의 귀로 들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아직은 가능성이있었다.


지희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지희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물론, 내 손은 미세하게 떨려댔다.


지희가 다가왔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여자, 미치광쟁이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가볍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쳐서. 살인마는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자신이 뒤로 돌아간다면 의심받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오빠, 이 시간에 뭐하는거야?”


다행히도 지희는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됀다. 지희가 몸으로 내 모습을 어느 정도 가리고 있었고, 살인마가 앞을 보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내 두 입에 가져다대었다. 흔히 있는 제스처였다. ‘쉬잇’. 그러자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고, 나는 그 모습에 괜시리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알고나 있을까.


휴대폰은 왼쪽에 위치해있다. 그렇다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가볍게 말하는건 살인마에게 들리지 않을 지도 몰랐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향하게 한다음, 지희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마. 그냥 내 옆에 서서 집 까지 걸어가.”


그러자 지희의 표정도 어느 정도 진지해졌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쳐했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목소리는 휴대폰 너머로 전달되지 않은 듯 했다. 내 통화 상대는 그대로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거리까지 걸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이르다. 통화는 연결되고 있었다. 나와 지희가 말을 하지 않아야했다. 아니, 나는 제외하더라도 지희가. 지금 그녀가 실수라도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그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 살인마에게 닿는다면. 지희는 둘째치더라도 내 목숨이 위험했다. 아니, 내 신변이.


“아저씨, 돌발상황이예요. 그 언니 아는 사람 만난거 같아요. 아, 진짜 귀찮게 만드네요.”


왼쪽 이어폰을 통해, 내 귓가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직까지 내가 그 남자라는 걸 알아채진 못한 모양이다. 나와 지희는 마치 연인처럼, 나란히,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지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경직된 표정으로, 지금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였다. 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할 수가 없는거겠지.


“하, 진짜. 아무튼 이대로 따라가볼게요. 뭐, 설마 집까지 같이 가는건 아니겠죠? 아,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지금 떨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지희도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괜찮다. 이대로면 괜찮다. 집 까지, 지희는 그녀의 집 까지 바래다주고, 나는 재빨리 집 까지 뛰어가면 됀다. 달리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이래뵈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달리기 대표 주자까지 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 순간이였다. 가로등 너머로 사라졌던 살인마의 모습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연기? 연기였다. 마치 깜빡하고 안 산 물건이 있어 다시 편의점에 가야한다는 듯한 표정. 우리는 천천히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고, 그녀는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신발, 미치겠네. 긴장되서 죽을 것 같다. 다리를 뗄 때마다 부들부들 떨려왔고, 주머니 속에서 조약돌을 쥔 손 마저도 벌벌 떨려왔다.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말을 안듣는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걸까.


러시안 룰렛.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다. 19세기 경 러시아에서 교도관들이 죄수에게 강제로 시킨 죽음의 게임. 6연발 리볼버에 총알 하나를 넣고, 탄창을 돌린다. 언제 총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상태에서 총구를 관자놀이에 겨눈 뒤, 한발 한발을 당긴다.


러시안 룰렛에 참가했다고 했을때, 내가 죽을 확룰은 얼마나 될까? 6분의 1. 수치 상으론 약 17%. 긴장감만이 내 주변을 감돌았고, 공포만이 내 신경을 지배했다. 지희는 어느새 울상이 되어있었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서운 상황에 발을 들였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본능적으로? 아니면 여자의 감으로?


거리는 고작 10M 남짓. 1000CM, 0.01KM. 살인마와의 거리. 그리고, 내 통화 상대와의 거리.


아주 천천히, 그리고 어느 정도 고요하게 우리들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단어는 바로 욕설이였다.


‘신발.’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너 내 얼굴 모른다 그랬잖아. 일단은 그렇게 말한다고 그랬잖아. 진짜일까? 아니면 거짓말? 아니, 진짜여야한다. 지금 나와 지희의 옆을 지나가면. 상대는 반드시 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있을까? 내 얼굴을 알고있을까?


그리고 이윽고,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를 지나는 그 순간, 나와 살인마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동그랗지만 날카로운 눈동자.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너무도 날카롭게 느껴졌다.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로 내 눈알을 파내는 듯이. 하지만 눈을 감을 순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의심받지 않게, 최대한 괜찮은 척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찰나의 시간. 서로의 눈동자가 마추치는 그 순간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눈 깜짝할 사이,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지나갔다. 일순간 나란한 모습으로 서있던 세 사람이였지만, 살인마가 지나갔다. 살인마와 내가 서로 등을 대고 있었다. 어느새 이마에서 흐르던 땀은 볼을 타고 흘러, 내 턱 끝에 맺혔다.


모르는건가? 내 얼굴을 정말 모르나? 그저 지나가는 행인1, 아니 2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는건가? 자신이 타겟으로 삼은 여자의 남자친구. 그 정도로 생각하고? 아니면 혹시.


알 지도 모른다. 내 얼굴을. 자신이 통화하고 있던 상대의 얼굴을.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왼쪽 귀에 꽃혀있는 이어폰이 한동안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땅을 밟고 있는 나와 지희의 걸음 소리. 그리고 뒷편에서 들려오는, 점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나는 지금 살인마와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이였다.


“후…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희가 왜 그러냐는 듯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잡고있던 지희의 오른손을 더욱 꽉 쥘 뿐이였다.


‘하, 하하. 신발.’


미친듯이 나를 옭죄어오던 긴장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분명 지금도 살인마는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지희의 손을 더욱 꽉 붙잡고, 걸음걸이에 조금 더 속도를 붙히기 시작했다. 지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고마워서 눈물을 흘릴 지경이였다.


어느새 우리는 상당히 걸어왔다. 지희의 집이 편의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였다. 지희가 철제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려는 그 순간에 나는 또 다시 지희에게 주의를 주었다. 예의 그 제스처를 다시금 표현한 것이다. ‘쉬잇’ 이 얼마나 위대한 제스처인가.


지희는 문이 소리나지 않게 열곤,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지희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였지만, 의외로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희에 집에 들어가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다. 이 살인마가 만약 지희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내가 집을 나올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차라리 지금 당장 내 집을 향해 전력질주로 뛰어가는게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지희는 안전하다. 구해냈다. 살인마의 손으로부터 구해낸 것이다. 그 사실에 안도한 나는, 이제 집을 향해 뛰어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였다.


“아저씨.”


왼쪽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섬뜩하고 날카로운 한 마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거지? 나를 봤다는 이야기를 꺼내려는건가?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빌었다. 하늘에 빌고, 신에게 빌었다. 나는 무교였지만,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이 소원만큼은 들어주길 바랬다.


“미안해요. 놓친거 같아요.”


그 말에, 나는 심장을 옭죄어오던 갑갑함을 한번에 뚫어버릴 정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안도의 한숨.


“그래? 어쩔 수 없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사실 아직도 목소리가 심히 떨려왔지만 말이다.


“남자랑 같이 집까지 걸어갔거든요. 조카 운 좋네요. 그쵸?”


“그래, 조카게 운 좋은 놈이네 그거.”


나는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아직 모른다. 나를 목표로 삼고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한 시라도 빨리 집으로 들어가는게 나로썬 안전할 것이다.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건가? 이 여자는 분명 ‘남자’ 라고 표현했다. 아니면, 아직까지 연기하고 있는건가? 다 알면서. 내가 그 여자를 구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있으면서.


“근데 그 남자 말이예요, 좀 이상해요. 다리도 막 떨고, 손도 떨리고. 뭐라 해야하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해야하나? 마치….”


그녀는 말의 간격을 넓혔다. 침묵이 이어질때마다 내 심장은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였다. 항상 이 다음에는 나를 식겁하게 만드는 단어를 내뱉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있었던거 같아요.”


나는 숨을 죽였다. 나를 떠보는건가? 그녀는 역시 내 얼굴을 알고있었던건가? 그게 아니면, 정말로 그저 이상했기 때문에, 자신의 살인이 실패한 이유를 나에게 어떻게든 변명하기 위해 지껄이는 걸까.


“그래? 감이 조카게 좋은 남자였나보지.”


나는 빌라의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 여자가 지금 나를 떠보는거라면? 만약, 우리와 지나치고 난 뒤, 내가 누군지 알아차려서 그대로 내 집으로 향했다면? 신발, 나보고 뭘 어떡하라는거야?


“아저씨, 왜 그렇게 목소리가 떨려요? 숨 차요? 뭐하는데. 집에서 누워있는거 아니였어요? 침대 위에서. 아 혹시 아저씨 침대 위에 지금 여자친구도 같이 있나? 그런거예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냥 추워서 그런다 추워서. 뭐 잘못됐냐? 우리 집이 좀 낡아서 바람이 잘 들어오는데 네가 뭐 보태준거 있냐고.”


“그래요? 그럼 뭐 알겠어요. 아무튼 오늘은 힘들거 같아요. 저도 피곤하거든요. 아저씨도 아까 졸리다고 그랬죠? 오늘은 이만하죠. 아저씨, 잘 자요. 내 꿈꿔.”


“성기까지마.”


내 욕설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상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이다. 지금까지 이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 쪽이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심장이 요동쳤다. 이대로 잘 된건가? 정말, 괜찮은건가? 그 여자는 정말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건가? 그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또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생각한 목덜미에 끼워둔 휴대폰을 책상위에 내던지듯이 올려놓곤, 거칠게 옷을 벗었다. 후드 티에서 부터, 츄리닝 바지까지. 날씨는 추웠지만 지금 내 몸은 아주 후끈후끈거렸다.


긴장감의 끈이 풀려서 그런걸까, 침대에 몸을 던지자 마자 잠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제, 아니 이제는 이틀전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그 싸이코패스의 전화를 처음으로 받은 날과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잠의 강, 거부하지 않는 나.


아직까진 정확히 할 수 없었다. 모든게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러시안룰렛 게임에서, 내 관자놀이는 아직까지 온전했다. 하지만 그걸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차례에 정말로 총알이 들어있지 않았던걸까, 아니면 그저 총알이 걸려서 나오지 않은 것 뿐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걸렸던 총알이 총구를 통해 내 관자놀이를 꿰뚫고 지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 몸뚱아리의 대부분이 잠의 강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 속으로 내 머리통이 들어가려던 그 순간 방금 전화 통화에서 상대가 말했던 단어가 떠올랐다.


‘내 꿈꿔.’


“에라이, 신발.”


악몽을 꿀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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