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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1

무념무상 |2014.02.27 16:26
조회 995 |추천 4

출처:웃대, 피더스님

 

 

질문을 던진 내 목소리는 확연히 떨려왔다. 상대방, 그러니까 살인마도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만큼. 심지어 지금 나와 이 여자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였으니까. 한 걸음,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울듯한 거리.

내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망설이는 건가? 이 순간까지도 나와 그 살인 게임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을 하고있는걸까? 이 여자는 똑똑하다. 그리고 생각이 깊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나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허공에 멈춰있던 내 손을 재빠르게 뻗었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있던 마스크를 향해. 내 손이 움직이는 그 순간, 짧지만 지키고있던 정적이 깨졌다.


“넌 대채 누구냐고!”


내 손이 움직이는 그 순간, 석상처럼 굳어있던 그녀의 몸 역시 반응했다. 그러자 내 몸 역시 그에 반응하듯 움찔거렸다. 칼을 들고있는 상대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내 손을 뿌리치듯이,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회칼을 휘둘렀다. 바람을 날카롭게 가르며 내 손목으로 다가오는 회칼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소름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런 신발!”


반사적으로 나는 그녀를 향해 움직이던 손을 뒤로 당겼다. 찰나의 순간, 회칼을 휘두른 그녀는 일순간 뒤편에 앉아 벌벌 떨고있던 김지희를 바라보았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눈빛이였을까, 사냥에 실패한 먹잇감에게, 긴장하고 있으라는 듯한 싸인이였을까. 확실히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골목길 바깥을 향해 내달렸다. 방금전 내가 뛰어왔던 방향으로.


“이 미친! 거기서 이 강아지야!”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 발걸음질은 얼마 가지 않아 멈추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 중, ‘쫒아가지 마라’ 라는 단어가 내 눈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빠르지 않다. 내가 달려간다면 충분히 붙잡을 수 있다. 붙잡은 뒤, 마스크를 벗겨 얼굴을 확인하면 됀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하지 못했다. 상대는 칼을 가지고있었고, 싸이코패스다. 내가 그녀를 확실히 제압할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박이다. 지금까지 그녀와 해온 도박과는 차원이 다른 도박. 칩 대신 목숨을 건.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그녀를 따라 움직이던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막상 얼굴을 확인하기가 무서워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저 이번 도박에서 내가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허억…신발….”


가쁜 숨을 골랐다. 지금 고작 몇 걸음 뛰었다고 숨이 가빠진게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잘 알고있었다. 방금까지 내가 겪었던 이 상황의 분위기가 나를 이토록 흥분하게 만들고있었다.


“신발!”


내가 괜한 울분에 못이겨 소리쳤다. 아쉬움일까, 아쉽진 않았다. 팔꿈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중력을 타고 흘러 내 손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피, 까닥 잘못했으면 내가 죽을수도 있었을 상황이다. 이 정도로 넘어갔다는 사실에 안도해야할지도 모른다.


“오빠….”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김지희, 맞아. 김지희가 있었지. 살인마의 대치구조가, 아주 잠깐이지만 내 머릿속에서 김지희를 지우고있었다.


“오빠, 설명좀 해봐요. 이게 지금 무슨 일이예요? 네? 오빠, 말 좀….”


살인마가 떠나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걸까, 김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이며 숨을 고르던 내 옆에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시끄러웠다. 따지고보면 지금 이 상황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넌데. 아니, 그렇게 따지고보면 장본인은 그 살인마인가.


“일단….”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김지희의 말을 끊었다. 어째됐던 지금 이 곳에서 김지희의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해주기는 어려웠다.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감정은 내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었고, 머리는 이미 너무도 난잡해서 터져버릴 지경이였다.


김지희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희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한 여자가 아니라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나와 김지희는 편의점 안에 들어가있었다. 그럴리는 없을것 같지만, 아직 근처에서 살인마가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 조금 시간을 보낸 뒤에 돌아가자 라는 생각이였다. 물론, 김지희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 거들었다.


편의점의 전자 시계가 PM 8:00 에 다다랐을 무렵, 그제서야 다른 아르바이트 생이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순간 나는 그 녀석이 살인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훨씬 작은 그 키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 살인마의 키는 상당히 컸었다. 170, 혹은 그보다 더.


인수인계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온 나와 김지희는 그대로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갔다. 팔꿈치에서 흐르던 피는 이제 멎은 듯, 더 이상 손바닥까지 흐르진 않았다. 편의점에서 찾은 싸구려 붕대가 어느정도 효력을 보이는 듯 했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문 앞에 도착한 나는 힘없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김지희가 뒷편에 서있었지만, 나는 번호를 가리지 않았다. 안다면 어쩌랴, 어짜피 지금은 남의 집 비밀번호를 외울 상황이 아닐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고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김지희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알 수 있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집에 복수의 사람이 앉을 의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거실의 한 가운데에 놓여져있는 소파에 기대며, 나는 맨 바닥에 엉덩이를 붙혔다. 물론, 김지희도 말없이 나를 따라 앉았다.


한동안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팔꿈치에 묶여있던 붕대를 고쳐감을 뿐이였다. 임시방편으로 대충 묶었던 붕대를 어느정도 꽉 조여매자, 미미하게 흘러나오던 핏줄기마저 멎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긴 한숨과 함께, 한 마디 말을 김지희에게 건넬 수 있었다.


“신고…할까.”


신고. 지금까지 뒤로 미뤄왔던 그 과정.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경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경찰이였던 친구가 죽은 탓도 컸지만, 최근에서는 더욱 더 내 머릿속의 이미지가 좋지 못했다. 강현우, 나는 아직 그 형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정말 신고 말고는 답이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 그저 전화로만 통화해오던 살인마를 실제로 만났고, 까딱 잘못했으면 나나 김지희가 죽을수도 있었을법한 상황이다. 내키지 않아도 신고하는 수 밖에 없다. 신고하고,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지희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정말 뜻밖이였다. 나는 당연히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자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내뱉은 대답은 달랐다.


“안해도…되요.”


“뭐?”


‘대채 왜?’ 라는 질문을 나도 모르게 끄집어내려 했지만, 나는 목을 턱 틀어막았다. 저마다 사정이란건 있는 법이다. 내가 그런것처럼, 그녀 나름대로 경찰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나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드는 의문은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왜, 대채 왜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고 하는걸까. 나는 스스로 그 대답을 찾지 못했다.


“너 지금 죽을뻔했어, 나도 그렇고.”


“알아요.”


“근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는거야? 이건 누가봐도 이미 일반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닌데.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받는게 낫지 않겠어?”


나는 은근슬쩍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는거야?’ 첫번째 문장이 내 본심이였다. 그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곧바로 대답을 꺼내진 않았다. 그리고, 30초 정도의 침묵이 흐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빠,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물어올지는 아주 뻔했기 때문이다. 담배가 피고 싶어지는걸 간신히 참으며,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니, 그러는 척을 했다.


“그 여자랑 무슨 관계죠? 알고있던 것 같았는데.”


그 여자는 아마도 살인마겠지.


불은 켜지 않았기에,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만이 방 안을 비추고있었다. 벌써 밤이 되어버린걸까. 아직 시간은 여덟 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직 여름도 아닌데 바깥에서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 만큼 고요했다. 그리고 그건 방 안도 마찬가지였다. 꿀꺽하고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만큼.


“얘기하자면 긴데.”


말해야했다. 여기까지와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숨기는 건 말도 안됀다. 그녀는 이미 그 살인범에게 목숨을 잃을뻔했고, 살인마에게 얼굴도 들켰다. 말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뱉은 저 한 마디를 시작으로, 꽤나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입을 열고 있는 도중에 그녀가 끼어드는 일은 없었다. 상황의 심각함을 느끼고있는걸까. 그녀의 표정은 아주 경직되어 있었다


전부 말했다. 요 3~4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새벽 두 시 반에 나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 살인을 저지르는 소리를 내 귀로 들었다는 것, 그 다음 날 내가 그 시체를 발견해버렸다는 것, 살인마가 같은 동네에 살고있다고 확신했다는 것, 내가 살인마의 범행을 막으려했다는 것, 그리고 살인마는 나에 대해서 알고있다는 것 까지도.


어제,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내가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 줬던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때에는 김지희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된거지.”


오늘 아침, 경찰이 찾아온 이야기와, 지금 이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마치자, 그제서야 김지희는 깊은 숨을 내쉬였다. 그녀가 내쉬는 저 숨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걸까, 당황,공포,소름,불안. 그 외에도 온갖 것들이 들어가있을 것이다.


“하, 솔직히 말해서 못 믿겠어요. 오빠 소설가잖아요. 이거 다 진짜예요? 거짓말 안치고?”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본 그녀의 표정에는 당황함이 가득 묻어져나왔다. 무리도 아니다. 믿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살인마와, 알고지냈던 동네 오빠가 이런 말도 안되는 관계였다니. 설령 귀신이라도 이 관계를 단숨에 알아맞추기는 힘들거다.


“아니, 진짜 못 믿겠어요. 근데 오빠가 저한테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아까 그 여자랑 대화한 내용을 눈 앞에서 들었더니 헷갈려서 죽겠어요. 아아, 진짜 미치겠네.”


김지희는 계속해서 독백을 읊조렸다.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독백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말없이 팔꿈치를 쓰다듬을 뿐이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김지희는 독백을 끝마치고, 한숨과 함께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딘가 모르게 약간 비장한 표정. 그게 믿어주겠다는 뜻임을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도 작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빠, 근데 물어볼게 있어요. 이게 진짜면 오빠도 이상한거 아니예요?”


“뭐가?”


“오빠는 왜 지금까지 경찰에 신고를 안한거예요?”


갑작스런 질문. 그러고보니 강현우 형사의 태도와 말투를 설명하지 않았다. 아니, 고작 그 정도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라는 걸 믿으려나? 그렇다면 내 친구가 순직한 이야기까지 꺼내야하나? 그러던 나는 고개를 한번 고친 뒤, 생각을 바꿨다.


지금껏 그 미치광쟁이 살인마와 통화를 하면서 조금은 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게 있었다. 대화.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이란게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는 뼈저리게 느껴왔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 전에 먼저 물어볼게, 넌 왜 경찰에 신고하지 말자는 건데?”


그러자 김지희의 표정에서 일순간 당황함이 묻어져나왔다. 나는 지금 이 질문이 주도권을 내 쪽으로 가져오기엔 아주 적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미스터리 소설가라서 말이야, 소설을 쓰다보면 범인과 주인공이 대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경찰이 끼어들면 전개가 되지 않을때가 많아. 그래서 주인공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 정도 만들어 놓거든.”


나는 말을 이었다. 대화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지. 단지 경찰을 싫어한다거나, 경찰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거나, 혹은….”


내가 말 꼬리를 늘리자, 김지희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 말을 꺼내는게 도움이 될까? 만약 정말 그녀가 그렇다면 어쩌지? 에이, 설마. 그럴리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음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경찰과 마주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거나.”


‘예를들어 전과가 있냐는 얘기지’ 라고 덧붙히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 끝을 편집했다. 꺼내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여기까지 내뱉자, 김지희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젠장할, 저 말은 꺼내지 말껄 그랬나. 뭐야, 그럼 진짜 전과가 있는건가? 전과라고? 물건을 훔쳤다거나…, 아니 그 정도는 살인마와 대치하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정도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혹시….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퍼져나갈때, 귓 가에 미미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 웃음? 고개를 들어 김지희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녀는 작게 웃음 짓고있었다. 지금 내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한건가? 그렇게 생각한다해도 문제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첫번째랑 두번째 둘 다 인게 되겠네요. 물론, 세번째는 아니구요.”


그녀의 말에 나 또한 작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농담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렇담 나 역시 농담이였던 척을 하는 수 밖에.


“첫번째는 그렇다고 치고, 경찰에 안좋은 기억이 있다고?”


“네.”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하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면 억지로 말할 필요까지 있을까. 아니, 이 정도의 상황에서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못할만큼의 사건이면 들어보는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내 고민을 싸그리 무시하듯이, 그녀는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녀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그녀가 지금부터 내게 건넬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저번에 말씀 안드렸나요? 저희 부모님에 관한 일.”


그러고보니 전에 흘깃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이라, 김지희의 부모님? 본 적이 없는데. 아, 아아. 본 적이 없는게 당연하구나. 그래, 김지희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 정도까지만 알고있었다. 전에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어께를 가볍게 으쓱거리자, 김지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방 문을 닫자, 방 안에는 숨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졌다. 가쁜 숨소리,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야하게 들려왔지만, 그러한 상상의 나래를 머릿속에 펼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양 손에 힘을 쥐었다. 그러자 오른손에 들려있던 회칼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실패? 성공?”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건 계획에 성공한걸까 실패한걸까. 조금은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결과는 비슷했다. 그렇다면 성공에 조금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이 정도면 뭐, 성공이려나.”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오른손에 쥐고있던 회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곧바로 의자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진정되는 듯 하다.


회전식 의자를 빙 돌려, 방 안을 살펴보았다. 먹다버린 과자 봉지가 아무렇게나 올려져있는 컴퓨터 책상, 하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책장, 벗어놓은 옷가지가 내팽개쳐져있는 방 바닥. 이불과 뒤엉켜버린 휴대폰 충전기 등, 방 안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였다.


일단 방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벗어두었던 하얀색 마스크를 다시 주워들었다. 마스크를 보는 순간, 방금 전 자신을 향해 손길을 뻗어오던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태호, 미스터리 소설가이자 ‘백견’ 을 쓴 장본인. 그 생각을 하자 입꼬리가 들어올려졌다.


후드 집업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어 통화기록을 살폈다. 제일 위에 올라와있는 그 번호. 「이태호」. 손가락을 뻗어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려다가, 잠시 멈칫하고선 화면의 오른쪽 위에 표시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슬슬 걸어볼까?’


손가락이 움직일랑 말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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