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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3

무념무상 |2014.02.27 16:31
조회 807 |추천 4

출처:웃대, 피더스님

 

 

술래잡기라니, 이건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이 여자는 김지희를 죽이고, 나는 김지희가 살해당하기 전에 이 여자의 정체를 찾아내라? 말도 안됀다. 애시당초 나는 아직까지 이 여자를 찾아낼 단서가 없었다. 아는 거라곤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것과, 상대가 여자라는 점.


“막연하군.”


나는 생각을 그대로 입 밖에 내뱉었다.


“너무 막연해, 말이 안되잖아? 난 너를 찾을 방법이 없어. 하물며 경찰에 신고도 안한 상태로 말이야. 그런데 넌 김지희를 알고있고, 집도 알고있어. 너무 너한테 유리한 조건인거 같은데.”


“그건 아저씨가 생각할 문제 아닌가요? 그 언니의 집 주변을 뒤져도 되고, 김지희를 미끼로 던져넣어도 되잖아요. 물론, 더 효율적인건 후자 쪽이겠지만요.”


김지희를 미끼로 던지라고? 그러니까, 이 여자는 지금 오늘 낮에 있었던 상황을 다시 한번 연출하라는 소린가? 살인마와 김지희가 접촉하게 만들고, 그 장면을 내가 덮치라는 건가.


위험하다, 가능성이 너무 낮은 도박이였다. 그런 상황을 만든다고 해도 내가 살인마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리가 없다. 분명 그녀는 흉기를 들고있을텐데, 일이 잘 풀려봤자 오늘 같은 상황의 반복일 뿐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침묵하고있자,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게임, 그 언니한텐 비밀이예요. 아저씨 그 언니한테 이미 말 했죠? 저에 관한 일 같은거. 그거면 충분해요. 그냥 최근에는 저한테 전화가 안걸려온다는 식으로 대답하세요. 자기가 목표물이 됐다는 걸 알면 그 언니가 경찰에 신고하려들지도 모르니까요.”


“…….”


자기가 살인마의 목표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김지희도 경찰에 신고하려나?


“만약 그 언니한테 이 사실을 말한다면 전 곧바로 그 언니 집에 불을 질러버릴거예요. 그리고, 지금처럼 그 언니를 아저씨 집에 계속 숨겨두어도 문제예요. 제가 죽일 기회가 없잖아요, 이거야말로 불이라도 지르지 않는 이상.”


“그럼, 김지희에게 아무런 사실도 말하지 않은 채. 김지희는 그냥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라고? 미쳤군. 그녀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어. 12시 부터 8시까지. 나보고 하루 종일 그녀의 옆에서 호위라도 하라는거야?”


“편의점에는 CCTV가 있어요, 섣불리 제가 죽일 수 없죠.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러간다 해도, 오늘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 언니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호신용 전기충격기가 나와서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구요.”


그녀의 말 대로였다. 분명 김지희도 앞으로 경계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했다. 불공평한 조건. 이 게임은 그녀에게 너무 유리했다. 아니, 애시당초 그녀에게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질 나쁜 장난 정도임이 분명했다.


“만약 그 언니가 이 게임에 대한 일을 알아차린다면, 저는 그 순간 그 언니를 죽일거예요. 그러니까 조심하시는게 좋아요, 아저씨.”


침을 꿀꺽 넘겼다. 거부권이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를 찾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였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의 사건으로 실루엣은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 것이였다. 키는 꽤 컸었고, 몸매는 날씬했다. 만약 뚱뚱했더라면 옷 안에 무언가를 겹쳐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날씬하단건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그렇게 한숨 쉬어봤자 어쩔 수 없어요. 알잖아요. 아저씨한텐 거부권이 없어요. 그냥 이 게임에 참가하는 수 밖에.”


“알아, 그래서 한숨 쉬는거야 이 멍청한 여자야.”


“그런가요?”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의 수가 많아졌다. 어두운 거실에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는 내가 좋아하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이 상황은 결코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였다. 하다못해 이 여자의 전화가 지금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나마 후련한 기분을 느꼈을텐데.


“게임은 내일 부터 시작이예요. 내일 오후 12시 부터. 만약 전달사항이 생기면 다시 전화할거예요. 그럼 그땐 꼭 받아요, 알았죠? 그럼 이쯤하도록 하죠. 전 피곤하거든요, 아저씨도 슬슬 자야하지 않겠어요? 내일 부터 힘들어 질텐데.”


나는 자연스럽게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 20분. 아직 잠이 들기에는 이른 시간. 심지어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럼 아저씨, 잘 자요, 내 꿈꿔.”


“신발….”


내가 무어라고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뚝, 하고 통화가 끊겼다. 기분이 불쾌해졌다. 이 여자의 저 끔찍한 목소리를 오늘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에도 난 저 말을 듣고 악몽을 꿨었다. 미세하게 몰려오던 잠마저 싹 달아다는 느낌이였다.


나는 귓가에 대고있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부딛혀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투명 유리를 다시 옆으로 밀어내자 창문에 흐르고 있는 물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몽환스런 분위기를 뽐내진 않았다. 그저 칙칙하고 어두운 기분 만이 내 주변을 감돌았다. 그렇게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다, 문득 내 손이 너무 차가워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사이다를 꺼낸 뒤, 역시 컵에 따르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차가운 레몬향 탄산이 목구멍을 톡톡 쏘아대자, 그제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사이다를 집어넣은 뒤, 나는 닫혀있던 내 방 문을 열었다. 김지희는 이제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자고있는 김지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아니, 깨어있었을때에도 못생긴 편은 아니였지만, 눈을 감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하여금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성욕? 인간의 일곱가지 죄 중에서, 나와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그 죄, ‘색욕’. 그게 지금인걸까.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색욕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안쓰러움, 그래 안쓰러움이다. 이 여자는 내일부터 살인마의 표적이 되야하는 상황에 처해있었고, 심지어 본인은 그걸 모른다. 나 때문에 이런 일에 말려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조금 마음이 착잡했다. 아, 이건 그걸까. 그녀가 자신이 부모님을 죽인거라고 생각하던 것과 같은 그 죄의식일까. 물론,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기에 그 죄의식의 무게가 조금은 더 가볍지만 말이다.


그 순간이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뭐지? 전달사항이 있으면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벌써? 나는 허겁지겁 거실로 달려가 휴대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박태민」


어라?


일순간 나는 화면에 띄워진 이름의 주인공이 누군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머릿속 깊숙히 박혀있던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눈 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박태민. 박태민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친구들 중 한 명.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생각해보면 너무 갑작스러운 연락은 아니였다. 태민과는 불과 2개월 전에도 같이 술을 마시곤 했기 때문이다. 그저 3일 동안 내게 일어난 사건의 스케일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잠깐 잊어버린 것 뿐였다.


나는 통화연결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었다.


“여보세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깊은 한숨.


“야, 전화 걸어놓고 한숨 쉬는건 또 뭐야?”


그러자 그제서야 상대방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미안. 내가 요즘 좀 힘들어서.”


힘들긴 개뿔. 이 녀석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알고있기나 할까. 한숨을 쉴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다. 이 녀석이 내뱉은 한숨의 이유는 어느정도 예상이 갔다. 어짜피 또 여자친구와 헤어졌기 때문이겠지.


이 녀석과 술을 마시는 이유는 언제나 비슷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 녀석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나로썬 소설을 쓰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위함이였고 말이다.


이 동네와 번화가는 꽤나 가까웠다. 가끔 창문을 열어두는 날엔 취객들간의 다툼이 일어나면 달려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번화가로 향하는 길목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엔 바로 숯불갈비집 하나와, 각종 음식점과 가게들이 즐비해있었다. 숯불갈비집의 정면에는 고급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고, 아이스크림 가게의 왼편으로 500M 쯤 걸어가다보면 작은 술집이 보인다.


태민은 그 술집의 바텐더였다. 술집의 이름은 ‘Aldebaran’. 어째서 번화가의 술집 이름을 그런 고급스러워 보이는 단어로 선택한 건지 나는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건 태민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보면 그런 고풍스런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괜찮았다. 솔직히 말해 그 곳에 들어간 적은 한번밖에 없지만서도.


“그래서, 왜 전화 건 건데?”


솔직히 말해서 이유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한숨을 쉬는 그 순간에 눈치 챈 게 아니라, 이 녀석 한테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알면서.”


‘서’ 의 뒤에 ‘어’ 를 쭈욱 늘려붙히면서, 녀석이 말해왔다. 능글맞은 녀석. 원래의 나였다면 조금 더 고민했었을 것이다. 술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였지만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였다. 한창 글쓰기가 불타올랐을 시점에 이 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주 좋은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왔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심경을 날려버리는 것에 술은 아주 안성맞춤이였다. 나는 가볍게 어께를 으쓱거리곤 수화기에대고 말했다.


“어디서.”


“전에 마셨던 거기에서.”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금세 아아, 하고 알데바란의 오른편 골목에 위치한 포장마차를 떠올렸다. 고급 술집에서 일하는 바텐더면서, 정작 좋아하는건 소주와 맥주라니, 별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벗어두었던 점퍼를 걸치고 내 방으로 들어가 김지희를 살폈다. 자고 있다, 이대로면 내일 아침에서야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어짜피 살인마가 말한 게임은 내일부터였다. 그렇기에 이 곳에서 얌전이 자고있다면 김지희는 안전했다.


그녀의 잠버릇은 꽤나 고약한 듯 했다. 덮고있던 이불과 배게를 침대 밖으로 전부 내팽겨쳤다. 그리곤 추운 듯, 몸을 웅크리고 양 어께를 부여잡은 채 덜덜 떨고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풋, 하고 웃음을 지었다. 바닥에 떨어진 이불과 배게를 집어들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어라.


이불을 덮어주던 중, 내 시선은 그녀의 왼쪽 어께에 향했다. 그 곳엔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검지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의 찰과상. 그리 오래된 상처는 아닌 지, 옅게 굳은 딱지 속에서 조금이지만 진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오늘 다친 건가? 아까 낮의 그 일 때문에? 그러자 괜스레 더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불을 목 부분까지 덮어준 뒤, 나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문 채로, 신발을 신었다. 담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많이 피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가는 길에 담배 하나를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도어락의 잠금을 열었다.






*





번화가는 역시 북적거렸다. 수많은 차들의 엑셀 소리와, 가끔가다 울리는 경적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한 몫했다. 시끄러운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번화가에는 그다지 드나들지 않았다. 가끔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중고 서점에 가기 위해서 나오는 것과, 오늘처럼 술을 마시러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번화가 한 가운데에서 고급스런 분위기를 마음 껏 뿜어대고있는 알데바란을 발견했다. 검은 색 코팅이 칠해진 유리라서 안 까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곁눈질로 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데에서 바텐더 일을 한다는 건 역시 굉장한 일이 아닐까.


알데바란을 지나쳐 주택가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서자 마자, 익숙한 외형의 포장마차와 함께 박태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미 소주 한 잔을 입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내가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어내며 들어간 순간, 태민이 날 알아차렸는지 내게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오랜만이다.”


“오랜만은 개뿔, 두 달 전에도 봐놓고.”


“그걸 오랜만이라고 하는거야 임마.”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나는 태민의 앞에 마주보고 앉으며 소주 한 잔을 주문했다. 하지만 태민이 아무런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곧바로 계란찜 하나를 더 주문했다.


“뭘 그렇게 보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네가 진짜 저기서 일하는 애가 맞는지 싶어서.”


나는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르켰다. 손가락의 끝이 알데바란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녀석도 알아차렸는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왜, 바텐더는 소주 마시면 안되냐?”


“이미지가 있잖아 이미지가.”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서로 잔을 부딛혔다.


“그러는 넌 소설가라면서 술도 잘 안마시고, 담배도 끊고. 그게 뭐냐?”


“왜, 소설가는 술 마시고 담배도 펴야 돼?”


“이미지가 있잖냐, 이미지가.”


“소설가 이미지가 뭔데?”


그러자 그는 약간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소주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긴 뒤, 말했다.


“약간 방구석 폐인같은 느낌?”


“와, 너 지금 이 세상 소설가 다 디스한거야, 알어?”


그러자 태민은 피식 웃으며 계란찜을 한 숟갈 펐다. 나 역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는 길에 샀던 담배의 포장을 뜯곤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반대쪽 주머니에 들어있을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히자, 태민이 의아하다는 듯 이 나를 바라보았다.


“너 담배 끊지 않았냐.”


“최근에 좀 복잡해서, 그리고 끊은게 아니라 참고있던거야. 그런 말도 못들어봤냐. 담배는 끊는게 아니라 평생 참는거라고.”


“와, 이 새끼 소설가라고… 누가 한 말인데?”


“나도 몰라.”


“멍청한 새끼.”


“넌 알아?”


그러자 태민은 어께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새끼.”


그 다음의 이야기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하소연하는 이 녀석의 장단을 대충 맞춰주며, 우리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이 녀석과 술을 마시는 날에는 대게 이런 패턴이였다. 헤어진 여자친구.


대채 이 녀석은 술집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기에 여자를 이렇게 만나고 다니는 걸까. 연예인 빰 칠 정도로 외모가 잘 생긴것도 아니고, 화술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한 때 바텐더라는 직업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바텐더가 되면 다 이 녀석처럼 카사노바가 되는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게 틀린 생각이란건 잘 알고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바텐더들은 이 정도로 여자 관계가 복잡하진 않을 것이다. 이 녀석은 그냥 타고난 놈이다. 여자 복이 넘쳐흐를 정도로 많다. 만약 내가 손금을 볼 줄 안다면 제일 먼저 이 녀석 손금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쁜년이라니까, 그러면 안되는건데. 그렇지?”


태민의 하소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여자는 계속 만나면서, 헤어질 때마다 이리 하소연을 하니, 이건 참 낭패스러운 일임이 분명했다.


“야, 넌 이래봤자 얼마안가서 또 사귈꺼잖아. 카사노바 같은 새끼.”


“카사노바라니, 내가 비록 만난 여자는 많았어도, 한명 한명한테 최선을 다했어. 그런데도 왜 나랑 헤어지자는건지 이해가 안되서 이러는 거라고.”


“어련하시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기울였다. 태민 역시 잔을 기울였다. 그리곤 다시 하소연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넌 요즘 뭐가 그렇게 복잡해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는건데?”


그 말에 나는 순간 멍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복잡한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 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였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충 대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소설이 안써져서.”


소설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태민의 표정이 약간 꿈틀거렸다. 이 녀석은 예전부터 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였다. 그저 친구가 하고있는 일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분명하다.


“왜, 신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견을 출판한 뒤, 함께 술을 마시게 된 날에 태민은 자신도 구입했다며 내 앞에 백견을 들이밀었다. 물론, 이 녀석이 그 책을 읽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토록 책을 멀리하던 이 녀석이 내 책을 돈주고 구입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조금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왜, 뭐가 안 써지는데. 나한테 말해봐. 창의력하면 또 나 잖냐.”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으려 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조금은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지금 쓰고있는 신작의 일부분이라고 속이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다고 내 상황이 무언가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저 이 녀석의 대답을 듣고있었다. 이 녀석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


“그게 말이지.”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큰 부분은 대부분 제외시켰다. 전화 상대가 첫날 밤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과, 내가 그 시체를 발견했다는 점도 제외했고, 김지희에 관한 일과, 강현우 형사의 일들도 대부분 제외했다.


첫번째 사건은 이미 인터넷 기사도 올라와있었다. ‘백견 살인사건’. 만약 이 녀석이 이 기사를 봤다면 (봤을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었다.


마치 소설의 간단한 시놉시스를 설명하는 정도였다. 이 녀석은 책을 읽는 건 싫어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아한다. 여러모로 별난 녀석이다. 이야기가 끝마쳐지자, 태민은 비어있던 잔에 소주 한 잔을 따른 뒤, 한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결말은, 생각했어?”


“응?”


“결말 말이야, 결말. 어떻게 끝나냐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결말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건 사실 현실인데. 이 사건의 끝이 어떻게 될 지는 나로썬 예상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예상 할 수 있는건 아무도 없었다. 나도, 김지희도, 살인마도.


“뭐야, 소설 쓰는데 제일 중요한건 그거 아니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기승전결 말이야 임마.”


“와, 네가 그런 것도 알고있었냐.”


“나 너랑 같은 학교 나왔거든?”


내가 비꼬자 태민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 다음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물어보는게 아니라, 의견을 구하는거지.”


“그거나 그거나.”


태민은 계란찜을 한 숟갈 퍼, 입 안에 집어넣었다. 나 역시 같은 행동을 취했다. 짭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아직 취기가 오르진 않았다. 예전부터 나는 술에 꽤나 강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건 뭔데.”


“그거?”


“주인공이 살인마랑 통화하면서 느낀 이상한 기분.”


“아아.”


이 녀석에겐 그렇게 표현했었다. 내가 살인마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그 위화감을.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 마치 뭔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듯한 찝찝한 기분. 하지만,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한단 말인가. 나도 모르는데?


“나 뭔지 알겠다.”


“뭐?”


내가 어물쩡거리며 대답을 미루고 있자, 그 녀석이 먼저 내게 말해왔다. 안다고? 뭘 안다는거지? 직접 통화했던 내가 알지 못했던 그 위화감을 이렇게 이야기로 전해듣고 알아차렸다고? 나는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인공은 범인과 한번 몸다툼을 했다고 했었지, 그리고 아직까지 살인마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그리고 그 몸다툼을 하면서도 살인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 맞지?”


편의점의 옆, 쓰레기 처리 장소에서 오늘 낮에 있었던 사건을 그렇게 설명했었다. 범인과 주인공의 몸다툼. 김지희에 관한 일을 제외하다보니 내용이 이상하게 변질되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마치 자신이 탐정이라도 되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왔지만, 나는 이 녀석의 말이 별로 쓸모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부분을 제외하다보니 이 녀석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지금 내가 겪고있는 상황과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내뱉는 말이 쓸모있을리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내뱉은 다음 말은 내게 적지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음성변조 한거야, 맞지?”


“음성변조?”


“그래, 음성변조. 범인은 사실 남자였던거지. 음성변조하면 목소리가 조금 어색하게 들리기 마련이야. 주인공이 느꼈던 기분은 그것 때문이고. 맞지? 내 말이 맞지?”


음성변조라고?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정말 그 살인마는 남자일까? 아니, 뭐하러 남자가 여자인 척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오늘 낮에 봤던 범인의 그 실루엣은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확실했다. 확실히 여자였다.


그럼, 여자가 음성변조를 한 건가? 어째서? 어째서 여자가 여자 목소리로 음성 변조할 이유가 있는거지?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서. 그렇다면 이번 역시 숨길 이유도 하나.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내가 알고있기 때문에?


하지만 아직 음성변조를 했다는 사실이 확실한 게 아니였다. 아직까진 그저 의심정도로만 생각해두자. 그렇게 생각하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술잔을 한번 더 기울이는 그 순간, 포장마차 안에 베토벤의 운명이 울려퍼졌다. 나는 하마터면 잔을 놓칠 뻔 했다.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들어 화면을 바라보았다. 「박태민」. 어라? 나는 내 앞에 앉는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민은 웃으며 자신의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태호씨.”


어.


들려온 목소리는 확연히 달랐다. 박태민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좀 더 굵진한 남성의 목소리. 태민은 그 뒤로 계속 ‘안녕하세요’ 라는 문장을 내게 말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계속 바뀌였다.


“어라.”


“쩔지?”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자 태민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 하고 말해왔다. 그 순간이였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휴대폰을 쥐고있던 내 손에 불긋 힘이 들어갔고, 반사적으로 무릎을 들어올려 테이블을 차버렸다. 그 때문에 술병이 쓰러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호흡이 가빠졌고, 심장이 다시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깊지 않은 기억속에 들어가있던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다시 두 귀에 각인되는 듯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생각했다. 아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바로 떠올랐다.


이 목소리다.


틀림없다. 이 목소리다.


태민이 방금 내게 말해온 ‘안녕하세요’ 는 여자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내가 잘 알고있었다. 차갑고,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특유의 톤. ‘안녕하세요’ 의 ‘안녕’ 부분을 듣는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안색이 창백해진 걸 보자, 태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야, 너 왜 그래?”


“야, 이거 뭐야. 이 목소리 뭐냐고!”


내가 소리지르자, 가게 안의 몇 몇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겐 시선따윈 주지 않고, 태민이 건네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의 화면에는 각종 이모티콘이 그려진 어플 창이 하나 띄워져있었다.



‘목소리를 내 맘대로! 여자 버전 - 003번’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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