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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4

무념무상 |2014.02.27 16:32
조회 806 |추천 3

출처:웃대, 피더스님

 

 

머릿속이 혼잡하다. 혼잡하고, 복잡하다. 나는 망연히 휴대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일순간 나에게 쏠렸던 시선들은 다시금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태민만큼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정말 남자일까?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본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가볍게 지나치는 편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의문을 확실히 해야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남자일까, 아니,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는 여자다.


내가 비록 태민 처럼 수많은 여자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낮에 보았던 살인마의 실루엣으로 미뤄본데, 상대는 확실히 여자였다. 그렇다면 여자가 여자의 목소리로 음성변조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아까도 생각했지만 답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있는 목소리였기에, 혹은 내가 알지도 모르는데 목소리였기에.


“야, 너 괜찮냐?”


태민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어왔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버린 다음, 의자에서 떼어졌던 엉덩이를 다시금 붙이기 시작했다.


“아… 어, 괜찮아.”


그렇게 말하곤 잔을 기울였다. 씁쓸한 술의 맛이 혀를 통해 뇌에 전달되자, 전신을 감싸오던 흥분이 어느정도 가라앉는 듯 했다. 태민 역시 한 모금을 들이마시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물었다.


태민이 날 이상하게 보는 건 당연했다. 그로썬 지금 내가 말한 이야기들이 전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일테니까. 그게 현실이란 걸 알고있는, 그 사건을 실제로 겪고있는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맞아?”


복잡하게 나열되어있던 내 생각을 뚫고, 태민이 물어왔다.


“응?”


“내가 말한거, 범인이 남자라는 설정이 맞냐고.”


“아… 몇 번 생각해봤던 설정이긴한데.”


나는 어정쩡한 대답으로 이야기를 끝마쳤다. 녀석은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는 사실에 내심 심통이 났는지, 입을 삐죽내밀곤 술잔을 기울일 뿐이였다. 다행이다, 얼른 대화의 주제가 다른 것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이 녀석의 여자 이야기라도….


“그럼 주인공이 느낀 그 기분은 뭔데?”


녀석이 다시 물어왔다. 아, 하고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른다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 나는 어께를 으쓱거리며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아직 안 정했어.”


“뭐야, 그럼 생각하고 있는 건 있어?”


나는 다시한번 말문이 막혔다. 나도 모른다니까. 애시당초 이건 사실 소설이 아니고 내게 일어난 사건이다. 심지어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걸 소설 속 주인공이 알고있을리가 없다. 나는 잔을 한번 더 기울이며 말했다.


“아직 없는데.”


그러자 태민은 담배를 피우다 말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진짜 소설가 맞냐?”


“맞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 주제의 대화는 여기서 끝마쳐졌다. 그 다음에는 다시 이 녀석의 여자관계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 알데바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했었던가?


솔직히 말해서 그 다음에 태민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음성변조’ 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안주삼아, 나는 홀로 술을 들이킬 뿐이였다. 가끔가다 무의식적으로 태민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말이다.


새벽 1시 반에 다다랐을 무렵에야 나는 태민과 헤어질 수 있었다. 항상 헤어지던 시간보단 조금 이른 시간이였다. 태민 역시 지금 내 머릿속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의 배려에 조금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담배를 피우며 걷고 있었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의문이 떠오르는 찝찝한 기분이였다. 내가 김지희 외에, 이 동네에서 알고있던 여자가 있었던가? 이 동네에서 살아온지도 어느덧 3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없었다.


애시당초 외부와는 일절 교류하지도 않던 내가 김지희와 알게 된 것도 상당한 기적이였다. 백견을 출판하기전, 부모님께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느껴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없었더라면 나는 김지희와도 알고지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상대는 누굴까, 분명 여자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목소리로 음성변조를 하는 수고를 거쳐서까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상대는 나를 알고있었다. 내가 아는 여자가 아니라면, 내가 알지도 모르는 여자인걸까.


목소리를 듣게되면, 내가 자신의 정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후에, 자신의 실제 목소리를 내게 들려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한 일일까? 그렇다면 그건 나름대로 소름끼치는 일이였다. 앞으로 나는 이 동네에서 여성과 대화하면서, 항상 상대가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담뱃불이 어느덧 필터 앞까지 타들어가있었다. 불을 끄지 않은 채로 땅 바닥에 내던진 뒤, 스트레스를 해소하듯 거칠게 발로 밟아댔다. 담배 꽁초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제서야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뒤, 내가 제일 먼저 살핀건 내 방이였다. 문을 열고 안을 확인하자 김지희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어째 나갈때보다 코 고는 소리가 조금 더 커진듯한 느낌이다. 김지희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냉장고로 향한 뒤, 사이다를 꺼내 마셨다.


술을 마셨을 때 와는 다른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였다. 시원하다. 톡톡 쏘는 탄산이 입에서부터 시작하여 내 몸 속을 감도는게 느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나를 옭죄어오던 답답함이 조금 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샤워를 할까 했지만, 귀찮음이 몰려왔기에 나는 곧바로 거실에 이불을 피고 눕기로 했다.


침대를 김지희에게 내준 상태라, 달리 잠을 잘 곳은 거실 밖에 없었다. 우선은 거실 한 가운데에 놓여져있던 테이블을 옆으로 치웠다. 아침에 형사들과 이야기할때와, 김지희와 이야기할때 사용했던 테이블이다. 형사라는 단어가 생각나자, 돌연 강현우 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경찰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직 그 첫번째 피해자에 관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을까. 요즘 경찰의 수사력을 얕보는 건 아니였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 여자를 잡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답답하네….”


나는 한시라도 빨리 경찰이 그 여자에 관해,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관해 눈치 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대한 의심받지 않게 행동해달라고 부탁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형사가 정말 내 말을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살인마는 똑똑했다. 물론, 저번처럼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의 추리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 여자가 상당히 똑똑하단 점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대화를 해왔기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남몰래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이 돌통나면, 위험해지는건 김지희의 목숨이였다.


“젠장, 그 형사 거만한 척 하더니.”


그 순간이였다.


어두웠던 방 안에 일순간 환한 빛이 나타났다. 뜬금없이 눈 앞에 나타난 빛줄기에 나는 표정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니, 내 휴대폰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전화가 온 건 아니였다. 문자메시지?


나는 잠금장치를 해재한 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강현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전에 명함을 받았을 때 저장해둔 번호였다. 사실, 조금 더 욕설 섞인 이름으로 저장해두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형사한테 그런 짓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존칭을 제외한 이름만 저장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또 뭔 일이야.”


달갑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형사는 지금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언제 갑자기 ‘당신을 살인 용의로 체포합니다’ 라며 미란다 원칙을 읊어댈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에게서 날라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일 오후 3시 쯤에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주무시고 계실지도 모르기에 문자로 대신 합니다.」


용의자에게라도 차릴 예의는 있다는 건가? 나는 코웃음을 치며 화면을 끄곤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다시 메시지가 와도 주변이 밝아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였다.


그나저나 내일, 아니 12시가 지났으니까 벌써 오늘이겠지만. 무슨 이유로 나를 만나보려는걸까. 혹시, 정말로 나를 체포하려 드는 건 아니겠지? 여러 의문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휘저음으로써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잠들고 싶었다. 아직 모든 의문의 답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모든 생각을 뒤로하고 싶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건지, 시간이 늦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까보단 피로감이 몰려왔다. 천천히 두 눈이 감겼고, 나도 모르는 사이 코를 골아가기 시작했다.


잠에 든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몽롱했다. 하지만, 전과 같이 잠의 강에 빠져드는 편안함을 들지 않았다.






*






정신을 차리자, 감긴 두 눈꺼풀을 꿰뚫고 따가운 빛이 눈을 찔러대고 있었다. 아, 난 어제 거실에서 잠들었지. 잠들기 전에 커튼을 치지 않았던가? 여러 의문이 떠올랐고,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고소한 향기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 연달아 무언가를 굽는 듯한 소리마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음식을 만드는 건가? 내 집에서? 아, 김지희. 그래, 김지희는 어제 우리 집에서 잠들었었지. 그제서야 어제의 일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어난 나를 발견한 김지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프라이팬 위의 계란 후라이를 뒤집었다.


“아, 일어났어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


“아침 준비요. 뭐 아침이라기엔 늦은 시간이지만.”


그 말에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2시. 젠장할, 항상 8시에 기상하던 내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칼같았던 내 습관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였다.


“아침 준비를 왜 네가 해. 내가 집 주인인데.”


“먼저 일어났는데 배고팠거든요.”


그 말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확인한 나는 내가 아직도 외출복 차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머리는 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나와, 내 방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그 사이에 아침은 완성되어 있었다. 계란과 햄, 반 쯤 남아있던 김치찌개가 전부 였지만, 항상 식빵 몇 조각으로 떼우던 나로썬 호화스러운 반찬이였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진 않았다. 나중에라도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한번쯤은 느껴보고 싶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그 상황을 느끼기엔 내가 처한 상황과 상대가 알맞지 않았다. 햄을 베어먹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긴장감이 가득 담긴 침을 꿀꺽 삼켰다.


살인마가 말한 술래잡기는 오늘 부터 시작이다. 게다가 김지희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 안됀다. 어떡해야하지? 김지희를 미끼로 사용한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 더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다. 이건 패스.


그렇다면 김지희 집 주변의 자택들을 모두 뒤져봐야하는건가? 살인마를 찾아낼 가능성도 낮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이게 전부인 듯 했다. 그렇다면 우선은 김지희의 안전이다.


“오늘은 아르바이트 쉬는 날이지?”


“네? 아, 네. 주말이잖아요.”


“그럼 오늘은 계속 집에 있겠네?”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오늘은 별 약속도 없구요. 왜요?”


“아니… 위험하니까.”


그러자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계란 후라이 하나를 자신의 밥 공기 위에 올렸다. 젓가락으로 콕, 하고 찌르자 완전히 익히지 않은 노른자가 줄줄이 흘러나와 밥을 적셨다.


“조심할게요, 저보다 오빠가 더 조심해야되는거 아니예요?”


“어?”


“그 살인마가 노리고 있는건 오빠잖아요.”


“아, 응….”


지금 노려지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숟가락에 가득 퍼진 밥 덩어리와 함께 넘겨버렸다. 내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묵묵히 밥을 넘기자, 김지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오빠가 경찰에 신고안한 이유를 아직 못 들었는데, 위험하다 싶으면 경찰에 신고하시는게 어때요? 전 신경쓰지 마시고.”


전 신경쓰지 말라니, 경찰에 신고하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걸까. 당연히 모르겠지, 알고있다면 이런 말을 꺼낼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김치찌개의 김치를 건져 먹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갈 때, 집에 바래다줄게.”


“괜찮아요, 집 까지 그리 멀지도 않은데요 뭘.”


“사이다가 떨어졌어, 사러가는 김에 바래다줄게.”


단호하다고 한다면 단호하다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 내가 들어도 내가 내뱉은 단어가 조금 딱딱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지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식사를 마친 뒤, 나와 김지희는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나는 방금전에 갈아입었던 옷을 다시 한번 입어대기 시작했다. 김지희는 애시당초 이 곳에 왔을때랑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벗어두었던 점퍼 하나를 걸칠 뿐이였지만 말이다.


집을 나서고 문을 닫았다. 등 뒤에서 도어락의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휴대폰으로 어제 새벽에 보았던 문자의 답신을 입력했다.


「괜찮습니다.」






어제 내렸던 비는 여전히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태민과 술을 마실때만 해도 조금 사그라들어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들은 각자 우산을 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생각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들을 다시 곱씹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휴대폰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문자메시지. 강현우 형사에게 온 것이라 생각한 나는 전원버튼을 눌러 화면을 띄웠다.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의 발신자에는 ‘강현우’ 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알겠습니다.」


짤막한 문장, 나는 어께를 으쓱거리곤 휴대폰의 화면을 다시 잠궜다. 아니, 잠구려던 참이였다. 휴대폰의 상단에 보이는 글자가 움직이려던 내 손가락을 방해했다. ‘남은 메시지 1건’. 지금 메시지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메시지가 남았다는 건.


나는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 메시지 보관함을 띄웠다. 그곳에는 확인하지 않은 또 하나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발신자의 이름은 「미친년」. 나는 순간, 헉 하고 놀랐지만 김지희와 함께 걷고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소리를 내뱉는건 간신히 억제할 수 있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간신히 메시지를 터치했다. 짧은 로딩 후에, 화면에는 살인마가 보내왔을 메시지의 글자가 나타났다.


「다 숨었니? 아, 나한테 술래는 아저씬가?」


멍청한 년, 그 말은 술래잡기가 아니라 숨바꼭질을 할 때 쓰는 말이라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상대방에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순 없었다. 나는 휴대폰의 화면을 끈 뒤, 앞을 가리던 우산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어느새 김지희의 집 앞에 다다라 있었다. 김지희의 집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빌라였다. 철제로 만들어진 대문의 앞엔 곧바로 계단이 놓여져있었다. 1층, 그러니까 정확히는 1.5 층에 해당하는 집이 하나있었는데, 이걸 1층, 그 다음부터 2,3 층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3층 301호. 김지희는 이 곳에 살고있었다. 뭐, 사실상 한 층에 한 가구 밖에 존재하지 않아. 몇 호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김지희는 빌라의 안까지 따라들어오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써 대답할 뿐이였다.


3층에 도착하자, 김지희는 우리집과 마찬가지로 도어락이 부착되어있는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선 집 문을 두어번 쿵쿵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삼촌은 벌써 나가셨나보네요.”


그리고 그제서야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삐삐- 하는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띠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불은 전부 꺼져있었다. 같은 빌라라지만, 우리 집보다는 확실히 조금 더 넓은 내부.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하실래요?”


김지희가 물어왔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금부터 해야할 일이 있었다.


“오늘은 되도록이면 밖에 나가지마, 앞으로도 조심하고 알았지?”


“알았어요, 오빠도 조심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방금전에도 들었던 도어락의 기계음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절반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남의 집 앞, 심지어 남의 빌라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의를 따질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여섯 번, 아니 일곱번 정도 연기를 빨아들였을까. 나는 절반도 채 타지 않은 담배꽁초를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그대로 4층으로 향해 걸어올라갔다. 휴대폰을 꺼내어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작성했다. 수신인은 「미친년」.


미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부터 살인마를 찾아야했다. 김지희를 미끼로 쓴다는 방법은 패스했고, 내가 할 일은 그녀의 집 주변을 쥐 잡듯이 뒤지는 것. 솔직히 말해서 이런 방법을 쓴다고 살인마가 쉽사리 들켜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자에겐 그 여자 특유의 어투가 있었다. 상대방을 깔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 마치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의 들뜬 목소리. 음성변조를 통해 목소리를 바꿨다고 하더라도, 어투는 여전히 남아있을 터. 찾아 낼 수 있다.


하지만 찾아내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이 게임에서 이기면 그 여자가 정말 순순히 자수해준다는 보장이 있는가? 없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밖에 없는데. 지나친 생각은 뒤로 던져버리기로 했다.


나는 4층 401호의 문을 두드렸다. 김지희의 집에서 가까운 곳. 같은 빌라 사람들과, 혹은 옆 빌라 사람들. 모두 찾아보는 수 밖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작성한 문자를 전송했다.




「다 숨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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