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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형(神獸之形) 9

Wagi |2003.12.30 06:13
조회 156 |추천 0


그런데 어떻게 봉황까지 끼게 되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봉황은 영감같은 게 좀 있었는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말을 걸곤 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재형은 사악하게도 일언반구 언질도 주지 않고
그냥 고교시절의 추억이니 우정 따위를 들먹여서 합류시킨 것이다.

 

단순한 봉황은 멋도 모르고 들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처지지만.

봉황의 영감이 아직 퇴색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재형은 의식적으로 도자기 삼남매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재형은 죽은 목숨인 것이다.

남들과 다른 동생을 그들은 품속의 병아리처럼 보호했다.

봉황은 지금도 자기가 본 것들이 사람인 줄 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감각이 무뎌져 갔던 것 같지만
부모님부터 형누나들까지 필사적으로 봉황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 애썼었다.

다행스럽게도 봉황은 아이 때에 있던 영감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없어져 간다는 케이스에 해당됐던지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상한 것들을 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알 리는 없지만.

큰형은 아직 레지라서 집에는 당연히 못 들어올 것이고
큰누나는 연수원에, 둘째 누나는 미국 유학중이었다.
절대 알려질 리 없다는 자신감과
단단히 봉황의 입단속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면서 그래도
호기심 충족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혹시나 해서 데려가는 스페어 같은 거니까.
꼭 영감이 있기를 바래서가 아니라고.

 

 

재형은 꺼림칙하게 울리는 마음 속의 소리를 묵살하면서도
조금 미안해져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피자집 전화번호 대라."

 

 

배부르게 먹고 소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밤늦게 티비시청까지 마친 셋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2층 민혁의 방으로 올라갔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민혁은 조금 꺼려하면서도 군말없이 따라들어왔다.

착실하게 샤워까지 마친 봉황이 피곤한 얼굴로 침대에 쓰러졌다.

컴퓨터를 켜놓고 들여다보던 재형과 민혁은
조금 질린 얼굴로 봉황을 돌아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모르는게 약이지."

"알아도 잘 시간이야, 저 놈은."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원래 12시가 되기 전에 자는 봉황에게
오늘은 상당히 무리를 한 날이다.

아무튼 속편하게 잘 수 있는 봉황이 부럽기만 했다.

민혁은 재형에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재형 역시 겁이 없다고는 해도 은근히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어서
그런 민혁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1시가 지나고 2시가 지났다.

애써 게임으로 주의를 집중하려고는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등 뒤를 확인하는 회수가 늘어갔다.

그러다가 침대가 시야에 들어오면 입장을 잊은 채
숙면중인 봉황을 노려봐주었다.

봉황이 알았다면 진정 억울함에 펄쩍 뛸 일인 것이다.

벽시계의 바늘이 15도로 3시를 알렸을 때 재형은 컴퓨터를 껐다.

 

"왜 그래?"

"자자. 안 자고 있어서 안 나타나는지도 몰라."

"지금 잠이 오겠냐? 너와는 달리 난 섬세하단 말이다."

"자는 척이라도 해."

 

어둠 속에서 민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입이 바짝 말라왔지만 물을 가지러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어 그냥 포기했다.

 

 

섬세하다고 말할 때 풋 하고 비웃었던 거, 일생 기억해 줄 테다!

 

애꿎은 재형에게 속으로 마구 원망의 말을 던지면서도
민혁은 혹시나 도망갈까 재형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야, 좀 놔라. 너랑 나랑 무슨 정체절명의 연인들도 아니고,
남자한테 꼭 잡혀 있다니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라고."

"감수해, 새꺄. 희안한 취미땜에 폐를 끼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노닥거리는 말끝에 둘은 위화감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민혁은 으악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이불 속에서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나왔어, 나왔다고!

 

필사적인 민혁의 방어태세에 재형 또한 적잖이 긴장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포기할 생각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재형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집어쓴 이불을 살며시 잡아 내렸다.

 

"헛,"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뱉어버린 재형에게 '그것'이 보였다.

민혁의 설명보다 더욱 확실한 형체를 지니고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는 식으로 타오르는 듯 보이는 하얀 안개덩어리.

재형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까부터 들리고 있었던 것을,
공포에 사로잡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재형은 자기도 모르게 당황해 버려
소리가 샌 입을 두 손으로 겹쳐 덮었다.

 

-아아, 슬프다…. 슬프다….

 

머리속에 직접 울리는 소리는 말할 수도 없이 처절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귀로 들리는 것이라면 듣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뇌에 직격하는, 처절한 정도의 감정.

한과 정념으로 뒤섞여 듣는 이를 광란으로 끌고 가는 마성(魔聲)이다.

재형은 뭔가 가슴이 북받혀 올라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소리는 더욱 더 처절하게 재형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뭐하는 거야, 너?"

 

봉황이 침대에서 일어나 이상하다는 눈으로 재형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민혁의 발치에 머무른 그것을 보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저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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