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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최고의 무술가는 한국인

검객 |2014.03.08 21:31
조회 25,884 |추천 118

흔히들 일본의 무술로 알고 있는 가라데는

일본 고유의 무술이 아니다.

  

 

가라데는 본래 오키나와의 '오키나와데'에서 비롯되었으며,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 땅이 아니다.

1879년 일본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독립된 땅이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정복된 후

오키나와데는 가라데로 바뀌어 일본 전역에 보급된다.

  

 

그러나 가라데는 실전성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무술이었다.

특히 실전 겨루기를 할 때 상대 앞에서

주먹을 멈추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런 일본의 가라데를 실전성을 가진

극강의 무술로 바꾼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한국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단군 시대의 조선을 의미하는

'배달(倍達)'이었다.

최.배.달. 바로 그였다.

  

 

산에서 추위와 싸우며 무술을 수련한 그는

전일본 가라데 대회에서 우승을 한 후

일본의 유명 도장(道場) 깨기 여행에 나선다.

그리고는 일본 최고의 가라데 도장들을 하나 하나

자신의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더 이상 일본 가라데 계에서 상대할 적수가 없어지자

그는 이번에는 일본의 다른 무술가들과 일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일본의 유도, 검도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닌자도 있었다.

그리고 전부 이겼다.

 

 

일본 무술계에서 더 상대할 적수가 없어지자

그는 이번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황소와 결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투에서 소의 양뿔을 자르고

정권 지르기로 소를 즉사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일본을 벗어나서

유럽, 미국, 남미를 여행하면서

최고의 무술가들과 시합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시합들에서도 역시 승리했다

(일설에는 중국의 진노인에게 패한 것이 유일한

패배라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 온 그는

자신의 실전 무술을 전수하기 위해

'극진 가라데' 도장을 차리고

실전 무술 보급에 앞장선다.

 

 

 

그의 실전 무술은 오늘날의 실적 격투 시합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의 태권도 발전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한국에는 극진 가라데를 보급하지 않았다.

극진 가라데 도장은 그의 죽음 후 최근이 되어서야

한국에 몇몇 개가 생겨났다.

 

 

현재 일본의 극진 가라데 본부의 수장은

역시 재일 교포이며, 그의 이름은 문장규이다.

 

추천수118
반대수4
베플으아니|2014.03.09 18:19
소는 뭔 죄여....퓨
베플ㅇㅇㅈㅉ|2014.03.09 11:40
바로 이 영화의 실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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