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는 6·25 남침을 저지하고 전후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도운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 학생들이 조국과 동맹국에 대한 고마움을 알도록 가르치는 유일한 韓國史 교과서이다. 從北좌파 성향의 정치세력과 언론, 그리고 단체로부터 집중 난타를 당하면서도 이런 책을 쓴 분들과 출판사는 일제 때의 독립운동가들과 비견되는 애국자, 또는 義人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좌편향 교과서를 읽고 나서 교학사 교과서를 읽었기에 그런 감동이 더했다.
좌편향 교과서들은 이산 가족이 왜 생겼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면 북한주민들이 자유 의사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선택, 대거 월남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韓美軍 등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하면서 9만여 명의 피난민들을 싣고 온 사실도 적지 않는다. 교학사는 이 두 사건을 기록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 미국을 압박, 韓美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되었음도 설명하였다.
교학사 교과서는 전쟁중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설명하면서 남한에서 있었던 보도연맹원(전향한 좌익) 학살에 대해서도 기술, 공정을 기했다.
<전쟁을 통하여 한국과 미국은 굳건한 군사 동맹국이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군의 재침을 막기 위해서는 미군의 존재가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는 데 노력했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1954년 1월 양국의 국회에서 승인되어 11월 정식 발효되었다. 이에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안정적으로 전후 복구와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316)
<한국의 전후 회복은 미국의 원조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신생국 한국은 미국의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원조 물자는 미국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되었으나 판매 수익은 특별 회계에 편입되어 경제 재건에 사용되었다. 빈곤과 전쟁으로 인하여 세금을 거의 징수할 수 없는 조건에서 미국의 원조 물자로 확보하게 된 재정은 전후 경제 재건과 1950년대의 경제 유지에 절대적이었다. 전후 경제 재건 자금의 90% 이상이 원조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후반에 정부 재정에서 원조로 이루어진 자금의 비중이 50%가 넘었다. 1954~1960년의 경제 성장률은 4.7%였으나 공업은 12.2%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대한민국은 어려운 시기에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이를 통해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1950년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은 70달러 정도였다. 전쟁 이전 상황으로의 복구는 1955년에 가서 이루어졌다.>(316, 317)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자유민주체제의 건국, 농지개혁, 한미동맹 구축, 교육확대 등이다. 이런 제도 개혁은, 박정희 정부가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좌편향 교과서는 이런 업적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데 교학사는 가르친다.
<교육열과 교육 투자: 한국 정부는 어려운 경제 여건이었지만 교육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유학의 기회도 많았다. 한국은 전쟁 복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로 변모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한국은 건국 시부터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성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1950년대 말에는 적령 아동의 문맹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중등 교육과 고등 교육을 받는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하였는데, 여기에는 사립 학교의 역할이 컸다.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한국인의 교육열은 1960년대 이래 고도성장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한국 현대 시기의 중학교의 성장
연도
학교 수(개)
교원 수(명)
학생 수(명)
1945
166
1,186
80,828
1950
395
9,100
380,829
1955
949
10,594
475,342
1960
1,053
13,053
528,614
좌편향 교과서의 기술을 분석하면 이것들은 학생들이 공산주의의 악마성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 교학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산 전체주의와 대결하는 나라의 교과서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321쪽은 <사료 탐구: 공산주의 체제와 파시즘>이란 欄(난)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스탈린주의, 다시 말하면 건설 시대의 공산주의는 어느 사이 일종의 독특한 러시아적 파시즘으로 변형되어 가고 있다. 파시즘의 모든 특질이 그곳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전체주의 국가, 국가 자본주의, 민족주의, 지도자 이념, 그리고 군국화된 청년이 바로 그것이다. 레닌은 오늘날 의미하는 바의 낱말이 가지는 독재성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오늘날의 파시스트적 의미에 있어서의 지도자이자 독재자이다.-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이경식 역), 〈러시아 지성사〉-
도움글 파시즘은 민족의 적을 없애려 하고 공산주의는 계급의 적을 없애려 한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유혈 폭력을 사용하여 적을 없애려 하며 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를 절대적인 위치에 올려놓으려 한다. 양 사상은 서로 증오하지만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한국 현대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빠트려서는 안 되는 史料(사료)를 챙겨서 학생들에게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역사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原자료이다. 교학사가 실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읽으면 이 분이 과연 좌편향 교과서가 매도한 그런 독재자였나 하는 의심이 생길 것이다.
<자료1. 이승만 대통령 對국민 담화문(1960. 4.):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내가 아래서 말하는 바대로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포들이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당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1.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2.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3.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에게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 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이 교과서에 실린 '5·16 혁명 공약'은 한 시대의 현실과 고민과 꿈을 알게 하는 자료이다. 이런 자료를 읽게 하여야 교사의 중개 없이 학생들이 직접 역사를 느끼게 되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된다.
<자료2. 5·16 혁명 공약(1961. 5.)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체제를 재정비하여 강화한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채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 도의와 민족 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이밖에도 박정희의 유신선언문(1972.10.17), 노태우의 6·29 민주화 선언문 등(1987. 6.)이 실렸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교학사의 서술도 충실하다.
<북한은 1956년 핵물리학자 30명을 소련에 파견하여 연수를 받게 하였고, 1964년에는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북한은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 1993년에 북한은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을 탈퇴하였지만, 미국이 북한에 매년 중유를 공급하고 경수형 원자로 발전소를 건설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1년 만에 다시 복귀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약속을 어기고 2002년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다시 핵 확산 금지 조약을 탈퇴하였다. 그리고 2006년 핵 실험을 강행하고 2009년 2차 핵 실험까지 강행하였다. 이제 북한은 핵 보유국임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좌편향 교과서 5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정확하다. 교학사는 이어서 <북한은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미사일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미사일 개발에 주력한 북한은 1993년에는 사거리 1,300km의 노동 1호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고, 2009년에는 사거리 6,000km의 대포동 2호의 발사에 성공하였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지려고 이러한 실험을 강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北의 핵개발을 설명하면서 '핵실험' 사실을 누락시킨 좌편향 교과서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존재 자체가 좌편향 교과서의 反교육-反국가-反역사성을 고발한다.
출처:조갑제닷컴